동이의 꿈(4회) - 홍경래의 난(1)
두문불출하고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지내던 준기는 열흘이 지나고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옆에 놓인 종이에 동이가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니 막대기를 든 사람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준기는 아직도 부기가 빠지지 않은 부숭한 얼굴을 하고 동이에게 물었다.
“동이야, 도대체 이 그림들이 다 무어냐?”
“우리 선생님이 추는 칼춤인데 원래 큰 스승님이 추셨던 춤이라 하던데요.”
“칼춤을 추는 선생님이 다 있단 말이냐?”
“예, 우리에게 글 읽는 것과 글씨 쓰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데, 그것 말고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세요.”
“그게 무엇이더냐?”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은 것이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귀한 존재래요.”
“그래? 동이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말을 잘 알아듣는가?”
“잘 모르는 말도 있지만 좋은 말인 것은 알아요.”
백사길은 날씨가 좋은 저녁이면 야트막한 동산에 올라가 칼춤을 추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동이는 아버지가 묶어준 종이에 자기가 눈여겨보았던 춤 동작을 그리며 놀곤 했다.
해주댁은 준기에게 동이가 백사길에게 침을 맞은 일이며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동이가 예전에 보았던 것보다 제법 살이 오르고 볼이 붉은 아이가 되어 있었다.
며칠 후 백사길과 마주하게 된 준기가 동이의 그림 이야기를 하자 백사길은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대신 백사길은 핏발이 선 일렁이는 눈에 다부진 덩치를 가진 젊은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네가 풍천에서 왔다는 얘기는 들었네. 그나저나 마음고생이 심했겠군.”
“나라에서는 세금만으로도 허리가 휘는 백성들을 보살피기는커녕 자기 배를 불리는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게다가 왜상이 수시로 드나들고 세상 형편이 하도 어수선하여 금방이라도 나라가 무너질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판국이니 무엇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지요. 이런 세상에 벼슬아치가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망할 놈의 세상이지요.”
준기의 이글이글한 두 눈은 세상에 분노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뒤집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뒤집어엎고 싶었다. 백사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준기의 울분 섞인 말을 말없이 들어 주었다.
백사길의 방을 드나들다가 이른 봄기운이 푸릇푸릇 일어나는 동산에서 백사길이 추는 춤사위를 처음 본 날 준기는 마을의 행사나 두레판에서 판굿을 벌였다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제 할아버지는 절에서 살면서 판굿을 벌이는 걸립패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어렸을 때부터 풍류에 쉽게 젖어들었지요. 홍경래난 때 정주성에 들어갔다가 관군이 성안을 초토화하기 전에 탈출하여 황해도까지 흘러 들어온 분이지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끊임없이 난리가 일어 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과연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홍경래난이라면 평안도에서 일어났던 거사가 아닌가?”
“네, 그곳이 제 할아버지의 고향입니다.”
준기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 운보의 무릎 앞에서 듣던 옛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백사길은 준기에게서 오십 년 전에 일어났던 홍경래 이야기를 들었다.
2장 홍경래의 난(1811년)
대륙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겨울밤, 평안도 가산 땅은 타오르는 봉기군의 횃불로 환하게 밝았다. 무리들의 맨 앞에 나선 키 작은 사내가 주먹 쥔 손을 불끈 들어올리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평안도 땅은 기자의 옛 터이며 단군 시조의 땅입니다. 예의가 바르고 문물이 뛰어난 곳이지요. 그런데 지금 나이 어린 임금이 왕위에 있어 간신배가 들끓고 김조순 무리가 나라를 멋대로 하고 있소. 어진 하늘이 재앙을 내려 큰 흉년이 들었고 굶어 죽은 무리가 길에 널려 있으며 산 사람이 모두 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소. 우리 관서지방의 호걸들이 군사를 일으켜 백성들을 구하고 의로운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은 참된 임금을 위하고 나라를 다시 살리는 길이 될 것이오. 격문을 띄워 지방의 군수들에게 미리 알리니 절대로 요동치지 말고 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군대를 맞으시오.”
말을 마치자 모두 만세 소리를 외치며 힘차게 창을 흔들어댔다. 봉기군들의 입에서 나오는 허연 입김들이 차가운 밤하늘에 퍼져나갔다. 주먹을 휘두르고 쌓인 울분을 발에 실어 언 땅을 굴러댔다. 어그러진 세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모인 사람들은 몰락 양반이며 상인과 농민 그리고 노비들이었다.
“이제 한 번 대차게 힘을 모아 싸워야 해. 그동안 우리 서북민이 얼마나 서러웠는가? 참 오래도록 그저 참기만 했지. 이번에 우리가 한 번 본때를 보여 줌세. 만날 이렇게 당하고만 살 텐가?”
“이곳 사람들에게 변변한 벼슬을 줬나. 사람 대접을 했나. 상전이 시키는대로 떠받들고 사느라 오그라진 어깨 한 번 펴지도 못하고 우리가 참 너무 맥없이 살았지, 그럼!”
홍경래는 평양의 향시를 통과하고 유교와 풍수지리를 익힌 사람이었다. 한양에서 대과에 응시하였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한양에서 보는 대과는 시골 선비에 대한 차별이 심하였고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가기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홍경래의 재능을 잘 알고 힘써 가르쳤던 외삼촌 유학권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홍경래는 과거 공부만이 아니라 풍수지리 책과 여러 가지 술서를 익혔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감록까지 두루 통달하고 있었다. 재능이 있는 숱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돌며 유랑하고 있으니 난세는 난세였다.
“외삼촌, 이제는 과거시험을 접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있느냐?”
“산천을 두루 밟으며 땅을 살피는 풍수쟁이가 되겠습니다.”
“네 실력이 아깝구나. 넌 무술과 병법에도 일가견이 있지 않느냐?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 되어야 할 사람이 땅이나 바라보며 먹고 살게 되지 않았느냐? 네가 벼슬을 했으면 나라를 구할 경륜을 펼칠 정도는 되는 사람인데,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게야. 쯧쯧.”
산천을 내 집 삼아 떠돌다가 홍경래는 가산 땅의 풍수쟁이로 부잣집에 드나들던 우군칙을 만났다. 거사를 일으키기 십 년 전에 만난 스물여섯 살의 우군칙은 깡마른 몸매에 오척 단구로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서로의 마음이 통해 의기투합한 홍경래와 우군칙은 다음 해에 이미 병란을 논의할 정도가 되었다.
“지금 안동 김씨들 세도정치 놀음에 나라꼴이 말이 아니라네. 양반 자리를 돈으로 사고팔며 세상을 구린내 나는 곳으로 만들기에 정신들이 없다지? 백성들은 하루 한 끼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워 초근목피를 씹으며 연명하고 있는데 저들이 하는 꼴은 뭔가? 백성들을 착취하여 고작 자기들끼리 주지육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지 않은가? 이대로 당하고만 말텐가?”
“이런 세상을 뒤집어 엎자면 서북인들도 힘을 키워야 하는데 이곳 출신 벼슬아치들이 없지 않은가? 이곳 형편도 모르고 한양에서 내려온 수령은 자기 주머니 채우기에 바빠 백성들의 한숨에 세상 한 귀퉁이가 무너져도 모르고 있는 형편이지.”
“나는 홍삼장사를 하면서 생각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볼 생각이네, 글을 아는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아야 할 거야. 그러면서 찬찬히 일을 도모해 나가세.”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상인들이니 그들을 한번 포섭해 보겠네. 가산 땅에 부자로 소문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부친 묘를 잡아 주면서 알게 되었다네. 친척들이 대부분 향리거나 부유한 상인들이지.”
우군칙은 부유한 상인들을 끌어 모으고 홍경래는 봉기군 기지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벼슬이 막혀 현실에 불만을 품은 선비들과 상인들 그리고 힘센 장수들이 모여 들였다. 우군칙은 금광을 연다는 소문을 내어 광부들을 모집하였다.
석 냥의 선금을 미리 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가산과 박천 지방의 땅 없는 농민이나 품삯 노동자들, 그리고 유리걸식하는 유랑민들이 모여들었다. 멀리 황해도 지역에서도 오고 소식을 들은 마을의 향임들도 내응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절대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마라!”
훈련을 하고 엄한 군율로 다스리니 더욱 민심을 얻게 되었다. 봉기군은 정주를 떠나 곽산을 거쳐 선천에 입성하였다. 갑작스레 밀어닥친 봉기군의 기세에 놀라 피신하였던 선천부사 김익순은 투항하여 봉기군의 참모가 되었다가 틈을 보아 도망쳐 나왔다.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출신의 김익순은 난이 평정된 후 반역죄로 처형되었고 봉기군에 대항하여 가산 관아를 지키다 장렬하게 죽었던 정시 부자와 대비되는 행동을 하였다 하여 사람들 입살에 오르내렸다.
그의 손자 김병연은 후에 조부의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자 출사의 뜻을 접고 방랑하면서 세태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시를 많이 남겼다. 늘 삿갓을 쓰고 다니는 그를 사람들은 김삿갓이라고 불렀다.
열흘 만에 봉기군이 청천강 이북 십여 개 지역을 점령하자 놀란 중앙정부는 평안감사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봉기군을 척결하도록 지시하였다.
"평양성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는 방어진을 구축하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만일 적에게 밀려 후퇴하는 자가 있으면 법에 따라 처단하여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평안감사의 명령에 따라 관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봉기군과 본격적인 전투를 하였다. 미처 새벽의 여명이 가시지 않은 시간에 관군과 봉기군은 박천의 소나무 숲에서 대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봉기군의 선봉대가 진압군의 본대를 공격하였다. 평안병사 이해우는 백상루에 올라서서 양군의 전투를 내려다보면서 작전을 지휘하였다.
“봉기군에게 절대로 밀리지 말라, 물러나지 말라.”
“세 갈래로 진을 이루어 관군에 맞서 싸워라!”
백상루는 관서지방에서 첫번 째로 손꼽히는 누각으로 백 가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곳이었으나 얼음이 덮인 긴 강과 찬바람 몰아치는 넓은 들판에는 서로 죽고 죽이는 함성만이 가득했다. 이해우는 관군의 중앙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긴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병사를 이끌고 봉기군의 후방을 쳐라. 일이 급하니 속히 시행하라.”
관군과 봉기군은 비슷한 병력을 가지고 평야에서 전투를 벌였다. 관군의 지휘부는 언덕 위에 있었고 겨울이어서 은폐할 것이 없는 평야에서의 전투는 관군에게 크게 유리하였다. 송림전투에서 봉기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관군은 봉기군의 근거지를 없앤다고 이르는 곳마다 불을 지르고 봉기군에 협조적이었다 하여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 죄 없는 백성들이 가을 바람에 쫓긴 낙엽처럼 숱하게 스러져 가고 하루아침에 사는 것이 지옥처럼 힘든 세상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나동그라지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헤매었으며 잠깐 사이에 삶과 죽음이 나뉘었다.
관군들이 마을에 들이닥치던 날 아침 운보는 부모와 함께 마을 뒷산에 갔었다. 겨울이 되어 허기진 배를 나물죽으로 연명하던 날들이었다. 금방 올 테니 집에 있으라는 어머니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날따라 운보는 부모의 뒤를 끝까지 쫄랑쫄랑 따라갔다.
겨울산은 춥고 황량한 바람뿐이었으나 운보 아버지는 마른 삭정이 나뭇가지를 긁어모으고 어머니는 나무 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마른 버섯들을 캔다고 돌아다녔다.
갑자기 바람을 타고 산으로 매캐한 연기 냄새가 올라왔다. 쭈그리고 앉았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보니 마을은 온통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바구니도 버려두고 한달음에 뛰어 내려갔으나 마을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관군이 까맣게 몰려 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노인과 두 딸을 살리겠다고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운보 어머니를 붙잡느라 아버지는 한참 드잡이를 해야 했다. 아버지와 운보의 얼굴도 온통 눈물 범벅이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2015/05/21 - [소설/박석흥선] - 동이의 꿈(3) - 박석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