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변김경혜

꿈이 있더냐(4회) -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 넓게 퍼져라(4)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6. 2. 15:12

작은 초가집은 저녁시간이 다 지났는데도 굴뚝에서 연기가 난 흔적이 없었다. 방에는 유선이 어머니가 한여름도 아닌데 땀을 뻘뻘 흘리며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둘은 바늘쌈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돌을 지난 막내는 명주 쪼가리 천을 입에 물고 침을 흘리며 천진한 눈으로 상현이를 바라본다.

이 녀석이 또, 바늘은 위험하다고 했잖아!”

유선이가 바늘쌈을 얼른 빼앗았다. 동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유선이 어머니.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지요?”

상현이가 유선이 어머니 옆에서 상태를 가늠했다. 곧 숨이 넘어갈 듯 말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계속 울어댔다.

유선아, 안되겠다. 너는 어서 삼거리 칠성이 아저씨를 찾아가서 상황을 말씀드리고, 오는 길에 내 어머니를 모시고 오너라.”

상현이가 아이 둘을 달래며 다시 유선이 어머니를 살폈다.

상현이는 의술을 전혀 모른다. 그저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어린 아이들을 무릎에 올려 앉혔다. 유선이도 상현이 옆에 무릎을 꿇고 조심히 앉았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어미를 바라보았다.

어찌 이리 힘든데 연통하지 않으셨습니까?”

상현이가 유선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었다.

자꾸 받기만 해서요. 낯짝 들기 부끄러워서. 훈장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유선 어머니는 상현이를 보지 못하고 아이들을 보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울음을 그치고 어미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얼마쯤 지나자 상현 어머니와 안사람이 쌀 꾸러미를 가지고 도착했다. 상현이네뿐 아니라 동학도인들은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형편이 좋으면 쌀을, 아니면 잡곡을 두 되씩 담은 꾸러미 두어 개 정도를 항상 준비해 두었다.

유선이 어머니, 왜 이리 미련하십니까. 몸도 성치 않으면서.”

상현 어머니는 한손으로는 누워 있는 유선 어미의 손을 잡고, 한손으론 이마를 짚어 보았다. 땀이 흥건했다. 유선 어미는 지난해 아이를 낳은 후 줄곧 병치레에 시달리곤 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동안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는 않았었다.

어머니가 언제부터 이렇게 아파하셨느냐?”

상현이가 유선에게 물었다.

어제 아침부터 열이 나고 그러시다가 오늘 저녁이 다되어서 이렇게 땀을 막 흘리며 까무러지셨어요.”

유선이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뭘 잘못 드신 게 있니?”

상현어머니가 유선이를 토닥이며 다시 물었다.

고사리를 드셨나 봐요. 상한 것 같다고, 우리에겐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머니가 드신 것 같아요. 사실 며칠 전에 쌀이 다 떨어져서 고사리죽을 먹었는데, 어머니가 남은 고사리를 드신 것 같아요.”

유선이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괜찮아지실 거야. 유선아.”

상현이가 유선이를 꼭 안아 주었다.

그때 칠성이가 의원과 함께 들어섰다. 울던 상현이가 독기 품은 눈으로 의원을 노려보았다.

고놈, 거 참. 내가 와도 소용없어. 약값 얘기는 그냥 했던 거고, 애한테 증상을 들으니 내가 손을 쓸 수가 없었수.”

의원이 손을 내저으며 억울하다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사람이 아프면 와 보는 게 인지상정 아니유. 어서 급하니, 우선 진맥이나 짚어 보시오.”

칠성이가 거칠게 쏘아봤다.

의원이 진맥을 짚었다. 표정이 어두워졌다. 의원은 칠성이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갔다.

이레를 넘기지 못할 것이오. 장사치를 준비나 하시오.”

의원은 짧게 말을 남기고 휑하니 마당을 빠져나갔다.

방으로 들어온 칠성이의 눈빛이 이상했다. 좁은 방은 숨소리가 또렷이 들릴만큼 고요해졌다.

유선아, 동생들 데리고 우선 서당으로 가자. 배고프지? 어머니는 사모님께서 수발을 들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자. 너희들 보면 어머니가 더 힘들어하실 거야.”

상현의 안사람이 칠성이의 눈치를 보더니 유선에게 말했다.

그래라. 이 할미가 어머니를 보살필 터이니 유선이는 동생들 데리고 가서 밥이나 한술 뜨고 있거라.”

상현의 어머니도 유선이를 달래었다.

상현이 안사람은 돌 지난 아이를 안고 유선이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서당으로 향했다. 보름달이 길을 밝혀주었다.

유선아, 아버지하고는 연통이 닿고 있는 게지?”

상현 안사람이 잠든 아이를 안은 채 유선이에게 물었다.

올 초에 연통이 온 후 에는 한번도 없었어요.”

유선이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몇 해 전 제물포로 일을 떠나 일 년에 두어 번 집을 찾아오던 유선이 아버지였다. 남의 땅을 붙이며 어렵게 살다 제물포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며 떠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유선이네 처지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아이를 낳고 사흘 만에 다시 일을 하러 나선 유선이 어머니다. 형편이 딱한 유선이네가 동학에 입도한 건 그즈음이었다. 도인들은 조금씩 쌀을 모아 보태주었다. 상현 어머니는 잘 먹어야 젖이 나오는데하면서 어려운 유선이네를 곁에서 도와주곤 했다.

 

오늘 회합은 동경대전 간행을 위해 그동안 준비된 것들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김은경의 사랑채에 접장들이 여럿 모였다. 동경대전 간행을 위해 함께한 것이다. 목천과 천안, 직산, 정의현 등지에서 두셋씩 모여 열둘이 되었다.

우선 판각과 인쇄, 제본의 세 단계로 일이 진행될 것입니다. 판각하는 각공(刻工) 분들입니다. 판각은 올겨울에 작업하고 인쇄와 제본은 그에 맞춰 이뤄질 것입니다. 이 사랑채는 동경대전 간행을 위해 총본부로 사용될 것이며 판각과 인쇄, 제본을 하는 공간은 각각 마련해 뒀습니다. 동경대전 간행에 참여하는 모든 인력은 저희 집에서 기거하게 됩니다.”

김은경이 접장들에게 일일이 동경대전 간행을 위한 과정을 설명했다.

이번 동경대전 간행은 우리 동학도인들에게는 정말 가슴이 벅찬 일입니다. 이제까지 접장님들이 기억해 두었던 것들을 암송해 도인들에게 설파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도인들도 접장님들의 말씀을 따라하고 암송하기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연전에 인제에서 몇 백 부가 간행되었다 하나 대부분 관에 몰수되거나 도인들이 관의 눈을 피하여 깊숙이 숨겨 두고 공부하느라 이 지역에서는 구경조차 한 일이 없습니다. 이제 동경대전이 간행되면 우리 도인들은 누구나 수운대선생의 가르침을 말과 글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전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올라 춤이 덩실덩실 나옵니다.”

광덕에서 온 김 접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직산 도인들도 동경대전이 새로 간행된다는 기쁜 소식에 기대감이 정말 큽니다. 여자도인들은 빨래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남자도인들은 장작을 패면서도 흥이 절로 난다고 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회합에서도 모두들 흥이 난다고 야단입니다. 동경대전 간행에 쓸 경비에 보태겠다며 한 푼 두 푼 모으는 것이 정말 정성스럽습니다.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직산에서 온 홍 접장도 도인들의 소식을 전했다.

접장님들께 할 말이 있습니다. 천안에서 온 원가 칠성입니다.”

칠성이의 낮은 목소리에 시선이 모아졌다.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