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5회) - 상놈으로 태어난 죄
하지만 아내가 잠든 후에도 손병희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대의의 길에 나서는 것으로 자신이 겪은 설움 따위쯤은 떨쳐 낼 수 있었지만, 막상 고향집에서 바라보이는 세상은 아직도 컴컴한 한밤중이었다.
어머니 최씨는 청주목 아전 출신 손의조의 첩실이었고, 따라서 손병희는 서출이었다. 그는 철이 들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님을 형님으로 부르지 못하며 벼슬길에 나갈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중 제사에 자신은 온전히 절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아전은 중인 계급. 성인이 되어 벼슬길에 나선대도 서울에서 내려온 벼슬아치들의 손발이 되어 갖은 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못할 짓이란 백성의 고혈을 빼먹자고 덤비는 관리들의 앞잡이가 되어 고향 백성들의 원성을 살 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일이다. 철이 들고 사리가 분명해질수록 손병희 가슴의 울분은 더 쌓여 갔다.
장가를 든 이듬해 가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그해 9월 손씨 문중의 모든 남자들이 망월산 자락 선산 문중 묘역에 모였다. 손병희 역시 뿌듯한 마음으로 일가친척들 틈에 끼여 항렬에 따라 한 사람씩 조상 묘 앞에 나가 술을 따르고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되어 분묘 앞에 나아갔다. 그때 자기연배의 문중 어른 한분이 달려들어 그를 밀쳐냈다.
“어디 서출 주제에 감히 조상 묘에 절을 한단 말인가? 썩 물러나지 못할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손병희는 머리끝까지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손병희는 갓과 두루마기를 벗어 마당에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곳간에서 곡괭이를 찾아 들고 다시 문중 산으로 올라갔다. 그는 아직도 묘소를 옮겨 가며 제사를 지내는 친척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성묘가 끝나 한갓진 산소 하나를 골라 한쪽 모퉁이를 곡괭이로 내리쳤다. 사람들이 놀라서 손병희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냐?”
그러나 손병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곡괭이질을 하면서 어깨춤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을 밀쳐냈다. 그러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비탈진 묘소 주변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다가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때 손병희의 울분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서자는 사람도 아닙니까? 저는 손씨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아니랍니까? 해서 저는 조상님 뼈 하나라도 파내서 따로 산소를 모시고 성묘를 하려고 합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서야 손병희는 말석이나마 성묘 행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열일곱 살 되던 어느 봄날 괴산 삼거리 한 주막집에서 벌어진 사건도 손병희의 이름을 드날리게 했다. 백주 대로에서 수신사가 역졸의 상투를 풀어 자신이 타고 가는 말꼬리에 묶어 질질 끌고 가다가 삼거리 주막에 당도했다.
역졸은 피투성이 만신창이 되어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너무 피를 많이 흘려 그대로 두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할 뿐이었다. 마침 이를 본 손병희는 주막집 벽에 걸려 있던 낫을 들고 가 말꼬리를 잘라 역졸을 풀어주었다. 수신사의 마부가 달려와 그를 막아서자 손병희는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어찌 이리 함부로 대하느냐? 너의 주인은 어디 있느냐? 이리 나와 보라고 하라.”
이때 수신사가 주막 방 안에 있다가 웬 소란인가 하고 문 밖으로 나왔다.
“네놈이냐?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방안에서 주안상을 받는 놈이 정녕 네놈이렷다? 양반이면 개돼지보다 못한 일을 저질러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손병희는 노한 목소리로 수신사를 꾸짖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신사는 난데없는 일격에 벌렁 바닥에 쓰러졌고, 가지고 있던 유서통(諭書筒: 임금의 명령서가 들어있는 통)이 땅에 떨어졌다. 손병희는 그 유서통을 집어 연못 한가운데로 던져버리고 수신사 쪽으로 돌아섰다. 수신사는 자칫하면 목숨도 잃겠다 싶어 꼬리 잘린 말을 타고 줄행랑을 쳐 버렸다.
그제야 손병희는 피투성이 역졸에게 이렇게 된 연유를 물었다.
“단지 상놈으로 태어난 게 죄구만요. 이번 행차에 여비를 보태라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보탤 수가 없었죠. 매번 이 핑계 저 핑계로 돈을 뜯어가니 밑천이 바닥난 지 오래이구만요. 그랬더니 거동이 느리고 상전을 우습게 본다며 저를 이렇게 말꼬리에 매달았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기가 차다 못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양반과 상놈, 적자와 서자,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젊은이라는 신분과 계급 차별이 거대한 형틀로 자리 잡고 끊임없이 더 약한 자에게로 전가되는 사회, 힘없는 백성들의 주리를 틀어 고혈을 빨아 지탱되는 사회가 바로 조선 말기의 모습이었다. 차별과 불의의 구조로 이룩된 이 사회에서 손병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감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잊을 수 있는 건 오직 술과 노름의 시간 속에서일 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건달들과 어울려 술에 얼근하게 취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손병희보다 일곱 살 많은 조카 손천민이 찾아왔다.
“아저씨,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뭐, 별 일 있겠소?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면 잘 사는 게지.”
손병희의 말씨는 늘 그렇듯 퉁명스러웠다.
“아저씨, 마음의 근심과 풀리지 않는 의문들과 고통들을 일시에 해소하는 명약 처방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
손병희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동학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아니, 그거는 나라에서 금하고 있는 거 아니요? 조카님이 동학당이라도 된단 말이요?”
“네. 제가 바로 그 동학 도인입니다. 동학을 믿으면 삼재팔난(三災八亂)을 막을 수 있고 세상의 온갖 질병과 화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손병희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휘이 내저었다.
“아, 나는 삼재팔난이 어서 와서 이 세상을 싹 뒤엎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오. 손 하나 까딱 않고 백성들이 땀 흘려 기른 곡식 알갱이 하나까지 모조리 걷어가는 양반 도적놈들 모두 잡아가면 속 시원하겠소. 또 남의 땅에 들어와서 마음대로 대포 팡팡 쏘고서도 적반하장으로 설치고, 힘없는 부녀자들 겁탈에, 가난한 백성 속고쟁이까지 훑어가려는 왜놈, 양놈, 청놈들 모두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갔으면 좋겠소. 세상 돌아가는 꼴이 영 말이 안 되니 홀딱 뒤집어져야 된단 말이오. 조카님이나 동학 실컷 좋아하시어 삼재팔난에서 벗어나시오.”
제 분에 못 이겨 악다구니에 가까운 말들을 내뱉는 손병희를 손천민은 빙그레 웃으며 쳐다보았다. 그러나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다른 날 다시 찾아뵙겠다고는 선선히 물러섰다. 좀 더 닦달하며 어깃장을 부리려던 손병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모양 맥 빠지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2015/05/30 - [소설/임최소현] -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4회) - 임최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