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장상미

비구름을 삼킨 하늘(7회) - 1장 1891년 공주(5)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6. 19. 07:00

 

 

 1장 1891년 공주 (전회에 이어서)

 

선생님이라 불린 어른의 말씀이 이어졌다.

죽음도 삼라만상의 이치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므로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지만, 아직 어린 의령이를 잃고 저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두 분이야 오죽할까요?

 그러나 자신의 핏줄만 소중한 것은 아니지요. 핏줄을 앞세우고 가문만을 내세운 지금의 세상이 어찌 되었습니까? 수운 대선생께서는 집에서 부리는 노비 두 명을 면천하여 한 사람은 며느리로 삼고, 한 사람은 여식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동학을 한다는 것이지요. 백정 출신 남계천 대접주나 덕망 있는 윤상오 대접주나 여기 사지에 갔다가 돌아온 이 아이나 모두 같은 하늘님입니다. 만인이 평등한 세상, 이것이 동학을 행하는 마음입니다.”

나직한 목소리가 마음을 끌었다. 동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봤다. 얼굴을 가리고 가슴께를 뒤덮은 수염에 순한 눈매를 가진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듯 한동안 동이의 눈을 쳐다봤다. 그는 마치 그녀를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동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노인은 곧 엷은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이는 그 눈빛에 마음이 놓였다. 마치 너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 한다는 눈빛. 이제 이곳에서 편히 쉬어도 좋다는 웃음이었다.

이제 다 잤느냐? 어서 일어나야지.”

노인이 그녀를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 동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주인어른이 갑자기 몸을 바르게 세우고 노인과 부인에게 큰 절을 올렸다.

선생님, 부인, 이제야 알았습니다. 왜 저 아이가 우리 곁에 왔는지. 선생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저 아이를 딸로 삼겠습니다. 부인, 저 아이를 우리 딸로 정성껏 키웁시다.”

주인어른의 말에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당황하여 말문이 막혀 있던 부인도 동이를 쳐다봤다. 잠시 후 그녀의 얼굴에도 웃음이 퍼졌다.

, 그러세요. 의령이가 저 아이를 보낸 것이군요. 알겠습니다. 저 아이가 허락한다면 딸로 정성껏 키우겠어요.”

부인이 울먹이며 대답하자 주인어른이 동의를 구하 듯 그녀를 쳐다봤다.

어떠냐? 내 딸로 여기에 남지 않겠느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망의 끝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부모님이 생기려 한다.

부인이 동이를 품에 앉았다.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을 쏟아냈다.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은 여전하였다.

주인어른의 투박한 손이 부드럽게 동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이는 따스하게 올라오는 벅찬 마음을 감당하느라 숨을 몰아쉬었다.

 

윤상오는 자신의 눈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동이를 바라보았다.

한 달 전 다 죽어가는 몸으로 자신의 집으로 업혀 왔던 것이 까마득했다. 동이는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얼굴색은 파리했지만 커다란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소녀의 이름은 이동이라 하옵니다. 어미 아비는 모두 죽었고 저만 혼자 남았어요. 저는 이 시간 이후부터 제 이름도 과거도 모두 잊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 허락하신다면 앞으로는 윤의령으로 살겠어요.”

동이가 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윤상오와 배씨 부인에게 큰 절을 올리자 두 사람은 황급히 일어나 그녀와 맞절을 했다

햇살이 눈부신 한여름의 어느 날 이동이가 공주 신평에 살고 있는 윤상오와 배씨 부인의 딸 윤의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1장 끝. 다음회부터 2장이 시작됩니다.)

 

 

2015/06/12 - [소설/이장상미] - 비구름을 삼킨 하늘(6회) -1장 1891년 공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