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흐른다(11회) 9장 동학의 꿈
9장 동학의 꿈
광양 도인들은 원평 너른 들판을 관통하는 원평천 왼편으로 자리를 잡았다. 원평장터에 마련된 도소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물가 언덕 쪽으로 돌담을 쌓고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보은 장내리를 보고 온 유석훈과 양계환도 저녁밥을 먹은 후 사람들에게 보은 다녀온 이야기를 하느라고 소란스러웠다. 그때 김개남 대접주가 들어왔다.
“유석훈 접주, 양계환 접주, 우리 이야기 좀 나눌께라?”
“예. 뭔 일이시당가요?”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짬 날 때 광양 접주님들이랑 동학 이야기를 좀 하고 잡소.”
유석훈은 놀란 얼굴을 펴면서 대답했다.
“김개남 대접주를 뵙는 것만 해도 영광인디 동학 말씀을 나누어 주신다먼 참말로 좋지다.”
유석훈은 김개남 대접주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거침없이 활달한 기상을 가졌으면서도 소탈하고 따뜻한 그가 좋았다. 김개남 대접주는 며칠 전에도 도인들에게 법헌 최시형 어른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었다. 유석훈은 전라좌도 조직을 굳건히 세우느라고 쉴 새 없이 바쁜 김개남 대접주의 활동이 놀랍고 고마웠다.
김개남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훈장 일을 함시로 참다운 진리를 찾아서 여그 저그 많이 떠돌아 댕겨 봤소. 그러다 보니 한때는 서학에도 기웃거려 봤소만 어쩐지 나하고는 안 맞습디다. 그러다가 서학보다 더 좋은 우리 학문 우리 도학인 동학 소식을 듣고는 ‘이제야 내가 찾던 진리를 찾았다’ 싶은 것이 온 몸에 느껴집디다. 그만큼 나는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고 있던 차에 동학을 만난 게지요. 나는 그렇게 동학 도인이 되었소. 유접주와 양접주는 어찌하여 동학 도인이 되었소?”
유석훈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수줍은 듯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도 대접주님이랑 똑같은 생각이그만요. 저 사는 집도 그리 부자는 아니어도 그저 살만헌 정도라서 일찍부터 집에서 한학을 공부했지이~다. 근디 어느 순간부터 한학이 우리 사는 현실이랑은 동떨어진 소리로만 들리고 맘에서 멀어지더랑깨요. 향교에도 나가 봤는디 거그서 허는 시회라는 것도 한심헌 말장난 겉기만 허구요.”
“시골서 책 좀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유접주도 똑같이 느꼈소그려.”
“얘~! 글다봉깨 한학 공부도 재미가 없고 씨들하던 판에 남원 류태홍 접주와 인연이 닿았그만요. 류태홍 접주가 전해주는 이약을 듣고 처음에는 오지개 놀랐당깨요..”
“뭔 이야기에 놀랐소?”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양계환이 나서면서 대답했다.
“남자도 한울이요, 여자도 한울이요, 양반도 한울이요, 노비도 한울이라는 소리를 첨 들을직애는 참말로 천지가 개벽허는 소리로 듣키더랑깨요.”
이번에는 유석훈이 말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논학문’에서 스물한 자 주문을 조근조근허니 읊어 주고 뜻을 세세허니 갤차 주는디 그동안 답답했던 머릿속이 훤허니 뻥 뚫리는 거 겉더랑깨요. 그때 그 느낌은 시방도 생생허그만이다~.”
유석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양계환도 김개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개남이 말을 이었다.
“나도 김덕명 접주로부터 동학을 소개받을 때 감동이 대단했지라. 동학만이 우리 조선 사람이 살 길이구나 싶었소. 특히 최제우 대선생께서 경신년에 동학을 창시할 때 그때부터 개 같은 왜놈을 경계하라 하시고 보국안민을 부르짖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소. 지금 나라꼴 돌아가는 형세를 보시요. 탐관오리도 문제지만 왜놈들 설치는 통에 이 나라가 곧 그놈들 손에 떨어질까 봐 걱정이요.”
왜놈들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양계환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놈들 이약이라먼 통간에 말도 마시이다! 지가 사는 광양에서도 왜놈덜 땜시 백성들 살기가 이만저만 심든 것이 아니그만요. 그놈들은 올 여름에도 나락이 채 익기도 전에 입도선매를 해삐릿당깨요. 그놈들 수에 절대로 넘어가면 안 된다고 도인들헌티 신신당부를 허고 단속을 혔지만서도 세금 독촉에 시달리던 우리 도인 몇 사람이 가실에 나락을 주것다허고 선금을 받고 난 담에서야 지를 찾아 왔더만요. 그래서 그 길로 돈을 좀 챙기 갖고 입도선매 계약을 해지 헐라고 그놈들을 찾아갔는디 그놈들은 진작에 딴 동내로 떠부렀더랑깨요. 우리 도인들은 그저 닭 쫓던 개 모냥으로 하늘만 원망하고 돌아온 적이 있그만요.”
“아이고, 저런. 이쪽 지역도 왜놈덜이 간혹 돌긴 하제만 안즉 쌀을 많이 빼내가던 못하는 것 같습디다. 그런데 그 지역은 왜놈덜이 더 설치는 구먼요.”
“그거 뿐이라먼 말도 안 허지이다! 광양은 골약, 월포 바다가 참말로 좋아뿌요. 월포는 다압 섬진강에서 흐르는 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질이라 투망을 물에 담그기만 해도 괴기들이 그냥 옹구발로 져 나를만큼 바글바글허니 몰리 들고 거그다가 해우(김)랑 포래랑 반지락에 게까지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먹을 것이 지천이랑깨요. 근디도 시방은 그쪽 바다에 붙어사는 사람들 형편도 말이 아니더만요. 한 십여 년 전만 해도 왜놈덜 집이 한두 집에 불과했는디 인자는 떼로 몰리 와 갖고 집을 지 놓고 삼시로 시도 때도 없이 그물질을 해 대는 통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우리 땅에서는 말헐 것도 없고 인자 우리 바다에서까지 우리 조선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당깨요.”
“그놈덜이 우리땅을 차지허고 살기 시작허먼 쉽게 물러가던 안헐 것이요.”
“근디다가 그놈덜은 왜국에서 딜이 온 신식 총을 가지고 있어 농깨 그 총을 들이대고 일을 허는 통에 우리 조선 사람덜은 어쩌지도 못허고 눈 뻐끔허니 뜨고 당허기만 헌당깨요. 저번에도 우리 도인 한 사람이 해우를 뜯어다가 발에 떠서 몇 백 장을 몰라(말려) 놔 농깨 그 놈덜이 와서 기냥 걷어가 삐맀다더만요.”
“그런 죽일 놈덜을 봤나? 그래서 어찌했다요?
“그 질로 왜놈들 집에 찾아가 해우를 내 노라고 했더마는 즈그들은 그런 거 갖고 온 적이 없다고 딱 오리발을 내밀더래요. 금방 먼발치에서 그놈들이 걷어가는 것을 보고 달리갔는디도 어먼 소리를 헝깨 어찌나 억울하고 화가 나던지 왜놈들 집이서 큰 소리를 냈다더만요. 긍깨 그 놈들이 바로 총을 들이댐서 목숨이라도 살라먼 아가리 닥치라고 해서 그냥 돌아나왔다던디 그 소리를 들응깨 참말로 나 속에서 천불이 나더랑깨요.”
듣고 있던 김개남이 혀를 차며 물었다.
“세상에 그런 도적놈들을 가만 두었어라? 관가에 발고라도 해사 쓰겄구만.”
“관이라고 어디 우리 조선 사람들 편을 들어주기나 헌당가요? 관에 있는 놈덜도 왜놈덜 앞에서는 꼼짝 못 헌지가 오래 돼 삐맀더만요. 오히려 관가에 발고 하러 간 우리 도인들을 보고 사도를 쫓는 무리들 아니냐고 어먼 죄를 물리고 주리를 틀고 헝깨 잘못 걸맀다간 골벵만 든당깨요.”
“이런 개같은 세상이라니! 이제 이 나라에서 우리 백성들이 믿을 곳은 우리 스스로 한울인 동학밖에 없다는 것이 날로 확실해지고 있어요. 왜놈들이 우리 백성들을 동학으로 한데 묶어주는 일을 하고 있구만요. 그놈들이 우리 조선 백성들의 피땀을 다 쓸어 가는 이때에 우리 동학 접주들이 할 일이 많지요. 지금처럼 힘든 시기에 아프고 힘든 우리 백성들을 다 동학 안으로 불러 모아 우리가 유무상자 정신으로 안아야 쓰겄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한울 세상이 빨리 열리지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석훈이 대답했다.
“예. 지도 진작부터 그리 생각허고 있었그만요.”
김개남은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열변을 토하였다.
“두 접주님들도 이번 취회가 끝나고 광양으로 내리가먼 시방보다 더 큰 열정으로 우리 동학 포덕 활동을 벌려야 쓸 것이오. 마당 포덕으로 들어온 도인들도 동학 정신을 깊이 새기고 스물 한 자 주문을 부지런히 외우도록 하고 그것이 좀 힘든 사람들은 열 세자 주문을 입에 달고 살도록 단단히 일러야겄소. 특히 왜놈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 동학 도인으로 받아들이야 쓸 것이오. 두 사람은 나와 함께 뜻을 크게 지닜으니 이 일을 힘 있게 해낼거라 믿소.”
양계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유석훈은 단호한 결심을 드러내었다.
“예. 대접주님. 광양 일은 우리가 목숨을 걸더라도 심차게 해볼랑깨 걱정마시이~다!”
한 달여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원평 너른 들에서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질서정연하게 나가는 행렬이었지만 들어올 때 다들 꿈에 부풀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다소 썰렁한 풍경이었다. 지난해 공주취회, 삼례취회, 그리고 올해 정월의 광화문복합상소, 이번 삼월의 보은취회, 원평취회를 통해 많은 백성들은 그들의 소망을 간절히 호소하였건만 여전히 최제우 대선생 신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척왜양의 어떤 조치도 조정에서는 내린 바가 없다. 겨우 얻은 것은 탐학한 관리 징벌 조치를 내리겠다는 언급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동학 도인들의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이 나라를 살릴 사람은 동학 도인들밖에 없다는 자각을 삼천리 백성들 가슴에 깊이깊이 담았다. 백성들은 이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그 백성들과 함께 동학 도인 조직은 한층 강고해졌다.
유석훈 접주는 광양 동학 도인들을 챙기면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집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넘었다. 도인들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광양 도인들은 원평 장터에서 조금 떨어진 원평천변에 돌로 성을 쌓고 그 안에 짚단을 깔고 지내면서 원평 도인들의 도움으로 먹을 것은 어찌어찌 해결했다. 하지만 옷을 제때 갈아입지 못한 사람들은 검댕이 덩굴에서 뒹굴다 나온 것 같았다. 된통 고뿔을 앓은 도인 몇 사람은 볼이 패이고 눈이 쑥 들어간 게 저러다 목숨 줄을 재촉당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됐다.
도인들의 초라한 행색도 마음이 쓰였지만 정작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를 헤아려 보면 아무래도 이 나라는 전쟁을 피할 수 없지 싶었다. 지금도 살기가 힘든데 이 일을 어찌할 것인지 가슴 속에 큰 돌덩이가 얹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김개남 대접주와 약속하지 않았던가. 개벽세상을 불러 오는 동학 일에 목숨을 걸겠다고. 지금 보은이나 원평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거개가 다 그 생각을 품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다 같이 함께 가는 길이라면 승산은 충분하다. 그쪽으로 생각이 뻗치자 좀 힘이 났다.
석훈은 다리가 무겁고 걷기가 팍팍해도 광양으로 내려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내내 아내 서엽이가 보고 싶었다. 아내는 이번 취회에 올라오기 한 달 전부터 달거리가 없다면서 아이를 가졌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아내가 처음 그 말을 하였을 때 석훈은 도무지 믿기지 않고 이상하기만 했다.
‘아버지가 되다니. 나를 닮은 한울이 아내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니. 정말일까?’
겉으로 봐서 아내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하기만 했다. 그걸 생각하면 아내가 더 보고 싶었다. 아내는 요즘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마을 사람들에게 열심히 동학 포덕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내는 말을 예쁘게 잘 했다. 동학 경전 이야기를 풀어서 구수하게 전하는 솜씨는 석훈보다 윗길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이라 동네 아주머니들은 주로 석훈이 집으로 모여 함께 길쌈을 했다. 석훈이 어린 시절엔 집에서 길쌈하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그런데 왜국에서 들여오는 값싼 무명베가 퍼지기 시작하자 그 일도 시들해지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고 힘들어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세라도 내야지 싶어 저녁 마다 길쌈에 매달렸다. 심심하면 모여서 하는데 석훈 집은 베틀이 여러 개라 마실 삼아 오는 아주머니들이 예닐곱은 되었다. 지금쯤 서엽은 아주머니들에게 동학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놓고 있을 터였다.
서엽이 시집 와 가마에서 내리자마자 본 시집은 컸다. 대청마루가 훤했다. 서엽은 아래채에 기거했다. 남편이 보은으로 올라 간 뒤로도 서엽은 외로울 틈이 없었다. 낮에는 시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했다. 서엽이 저녁상을 치우고 방으로 들어가 뱃속에 아이를 생각하며 배를 만졌다. 남편 생각이 났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웃굴몰 아주머니와 배튼머리 새댁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 사람은 베틀이 있는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새댁, 오늘도 재미난 이야기 좀 하게. 나는 저쪽에 앉아서 옷감을 짤라네.”
“성님이 그짝에서 짤라요. 그람 나는 이짝에 앉을라요.”
웃굴목 아주머니가 서엽을 찬찬히 보더니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구례 새댁이 쪼까 이상한디. 혹시 아이 생긴 거 아니여?”
서엽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얘. 그런 성 싶어~다. 달거리가 끊어진지 두 달이 넘었구만요.”
“어매. 이 집 좋은 일 났네. 이 집은 손이 귀헌디 복덩이가 들어왔구마. 신랑은 안단가?”
“보은 가기 전에 말을 하기는 했는디 그때는 긴가민가 했지다.”
배튼머리 새댁이 끼어들며 물었다.
“어매. 좋겄다. 난 아직도 소식이 없는디. 니 신랑이 겁나게 보고잡제. 근디 어저께는 그 뭣이냐 ‘내수도문’인가 하는 여자들 이야기 했잖여. 동학에는 애기 이야기도 있는가?”
“응. 있어. 그람 오늘은 동학 태교 공부 좀 하까. 이녘도 알고 있으먼 좋을 것인께.”
“그래. 그것이 좋겄구만. 얼렁 이야기 해보소.”
서엽이 얼른 동학 책을 한번 훑어 읽고서 이야기를 풀었다.
“일단 아이를 임신하면 육고기, 물고기, 논 우렁, 물가의 가재도 먹지 말고 고기 냄새도 맡지 말라고 하셨어~다.”
“어매 그람 뭘 먹으라고? 어째서 그런당가?”
“아무 고기라도 먹으면 그 고기 기운을 따라 사람이 태어나고 모질고 탁한 성정이 된다고 하셨어~다.”
“그건 그러고 또 뭘 개리라고 했단가?”
“한 달이 되면 그때부터는 기운 자리에 앉지 말고, 잘 때에 반듯이 자고, 모로 눕지 말라 하셨어~다.”
웃굴몰 아주머니가 말을 붙였다.
“참말로 좋은 말씀이구마. 그것은 우리도 예전부터 지켜 온 것이긴 혀. 또 뭣이 있는가?”
“김치와 채소와 떡이라도 기울게 썰어 먹지 말라 하셨어~다.”
“그것은 나도 우리 자석들 가질 때 잘 지켰구마.”
“또 이어서 말할께~다. 임신을 하면 울타리 터진 데로 다니지 말며, 남의 말 하지 말며, 담무너진 데로 다니지 말며, 지름길로 다니지 말며, 가벼운 것이라도 무거운 듯이 들며, 방아 찧을 때에 너무 되게도 찧지 말며, 급하게도 먹지 말며, 너무 찬 음식도 먹지 말며, 너무 뜨거운 음식도 먹지 말며, 기대 앉지 말며, 비껴 서지 말며, 남의 눈을 속이지 말라고 하셨어~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굴목 아주머니가 말했다.
“하먼, 그래야제. 그것은 나도 대강 지켰고마. 이걸 다 지키먼 좋은 아가 태어난당가?”
“얘. 앞에서 말한 것은 지키지 아니 하면 사람이 나서 요사(妖邪)도 하고, 횡사(橫死)도 하고, 조사(早死)도 하고, 병신도 된다고 하셨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아무 고기나 안 먹고, 행동을 바르게 하고 열 달 동안 뱃속의 한울님을 잘 공경하고 믿어하고 조심하오면, 사람이 나서 몸도 반듯하고 건강하고 총명도 하고 지혜롭고 재주가 뛰어나고 옳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셨구만요.”
서엽은 숨이 찬 듯 한번 침을 삼키고 말을 이어갔다.
“이 경계의 말씀을 잘 지켜 행동하면 문왕 같은 성인과 공자 같은 성인을 낳을 것이니 정성으로 수도를 하라 하셨어~다. 특히 이 법문을 침상가에 던져두지 말고 남편 되는 사람은 조용하고 한가한 때를 타서 수도하시는 부인에게 외워 드려 뼈에 새기고 마음에 지니게 하라고 하셨어~다. 그러니 이 ‘내칙’은 남편도 꼭 알고 있어야 하겄구만요.”
웃으면서 서엽이 말을 마치자 배튼머리 새댁이 깔깔거리고 물었다.
“구례 새댁 남편은 내칙 알고 기실까? 나는 오늘 우리 서방한테 꼭 말해줘야 쓰겄구마.”
서엽도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지도 남편이 오면 ‘내칙(內則)’을 알고 기신지 물어봐야겄구만요. 모르먼 동학하는 사람 맞냐고 따져야 쓰것당께요.”
웃굴몰 아주머니가 함께 웃으면서 말하였다.
“요새 가만 들어보면 동학이 여자들한티 겁나게 좋은 것이랑께. 난 요담에 우리 순이 시집 보낼 때 동학하는 사위만 봐야겄구마.”
“어매! 동학하는 남자 아니먼 인자 장개도 못 가것구마~이!”
그날 저녁도 여자들은 길쌈보다 동학 공부에 열을 올리고 깔깔거리는 사이에 밤은 깊어갔다.
다음 주 목요일(7월 30일)에 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이 마지막으로 연재됩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책으로 곧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