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꿈(9회) - 백두산 이야기 (3)
나라의 법부 훈령이 떨어지자 황해도 감사는 포교 여섯 명을 아전 한상유 집으로 보냈다. 포졸들이 도착했을 때 백사길은 초리면으로 떠나고 없었다. 병자를 치료하러 갔다는 말에 문화현 포교 여섯 명과 그 수행인들, 우종수의 집을 아는 한상유까지 모두 열세 명이 그길로 우종수의 집에 달려 온 것이다. 모두들 차려낸 열세 개의 밥상에 앉아 말없이 밥을 먹었다.
새벽 동이 트기도 전 일행은 캄캄한 길을 나섰다. 우종수는 백사길을 호송해 가는 포졸들에게 먹을 것과 여비를 주며 아무쪼록 백사길을 잘 모시고 가 달라고 당부했다. 백사길은 앞으로 자신은 여기에 오기 힘들 것이라며 우씨 모친을 위해 처방문을 길게 써 주었다. 우종수는 자기 모친을 살려준 백사길이 이렇게 죄인으로 집을 나서게 되자 마음이 착잡하여 친분이 있는 한상유에게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을 어찌 이리 죄인 취급을 한단 말인가?”
“나라의 명이 지엄하니 어쩔 수 없네. 나도 면목이 없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네.”
“나도 그렇다네, 함께 살아온 내 속은 오죽하겠는가?”
한상유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죄인의 신분으로 아전인 자기 집에 함께 있었으나 도착한 첫날부터 한 번도 죄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행실이 바르고 학식이 높아서 오히려 자신들이 도움을 받고 지낸 형편이었다.
우종수는 못내 아쉬워하며 포졸들과 함께 길을 나서는 백사길을 배웅하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두 손을 오래도록 잡아주는 것 뿐이었다. 쉼없이 달리던 일행 앞에 날이 점점 뿌옇게 밝아지면서 문화현에서 오 리쯤 떨어져 있는 방고개가 나타났다. 백사길은 자기 옆에 있는 포졸에서 조용히 일렀다.
“이제 내 몸에 오랏줄을 묶게. 중죄인을 이렇게 허술하게 데리고 가면 그 책임은 자네들에게 갈 것이야.”
모두들 말을 잃은 채 백사길의 몸에 붉은 오랏줄을 감아 묶었다. 백사길은 문화 관아에서 하룻밤, 그리고 풍천 관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백사길이 처형을 받는다는 소문이 나자 관아에 구경꾼이 모이기 시작했다. 백사길이 도술로 조화를 부린다는 소문이 났다며 살피러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 건드리다가 큰일 나는 거 아냐? 풍운조화 막 부려설랑 우리 풍천읍이 땅 밑으로 가라앉는 건 아닌지 모르겄네.”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렸으나 결박을 당하고 옥졸에게 끌려나온 백사길의 얼굴은 태연하였다. 모든 사람의 눈이 순식간에 그리로 집중되었다.
“나라 죄인 백사길을 올려 매라.”
“거적을 덮고 물고를 올려라.”
부사의 명을 받고 큰 소리로 외치는 형리의 호령 소리가 감영을 뒤흔들었다. 사령 대여섯 명이 바꿔 가며 사정없이 곤장을 쳤다. 매가 떨어질 때마다 흩뿌리는 피가 사령의 옷을 물들일 무렵 동리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백사길이 조화 부리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조화를 부리기는 커녕 말없이 매를 받아들이고 있던 백사길은 갑자기 백사길이 불쑥 어깨를 들며 부사에게 말했다.
“사또, 오늘 미시(낮 2시)에 나라에 큰 일이 있소. 지금 사람을 죽이는 데만 열중하는 것은 나라에 큰 불충이 될 거요.”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놀라 기웃거리기 시작할 때 파발마가 뿌연 먼지를 날리며 달려왔다. 역리가 땅에 내리며 급하게 장연 부사의 편지를 전했다. 장연의 터진목에 서양의 군함 세 척이 쳐들어 왔으니 군대를 뽑아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양선이 또 쳐들어 왔으니 난리가 난 거라고 불안해하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천주교도들에 대한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치기 시작하자 병인년(1866년)에 임금은 척사윤음을 내려 국내에 있는 프랑스 신부와 천주교도들을 잡아들였다. 프랑스 신부 네 명과 천주교도들이 처형을 당했다. 간신히 탄압을 모면하고 몸을 피한 리델 신부는 황해도 장연에서 배를 타고 톈진으로 탈출하였다. 그리고 청국에 파견된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제독에게 박해 사실을 알리고 원정을 요청하였다.
“지금 조선에서는 천주교를 이단으로 몰고 우리 프랑스 신부들과 신도들을 마구 잡아 죽이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조선으로 가서 이를 중지시키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는 군함 세 척을 이끌고 조선으로 왔다. 그 배에 리델이 함께 타고 양화진까지 갔다가 자기가 탈출했던 황해도 서해에 있는 장연 터진목에 정박하고 다시 조선으로 기어들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난리가 났다며 장연과 풍천 사람들이 황급히 집안 단속을 할 무렵, 관청의 우두머리와 관속들은 군인을 뽑고 군함을 어떻게 격퇴할지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풍천 부사는 벼슬아치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별 계책이 없어 모두들 입을 다물고 마른 침만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백사길에게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방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나라일이 위중하니 차라리 옥에 갇혀있는 백사길에게 계책을 물으면 어떨까요?”
풍천 부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난색을 표했다.
“조정에서 죄를 얻어 바로 내일이면 죽을 사람인데 그가 조정을 위해 좋은 계책을 말할 리가 있겠는가?”
“아닙니다. 백사길은 충직하고 치우침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랏일을 위해서는 자기 한 몸도 바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두들 백사길에게 한번 물어보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그가 소문처럼 비범한 사람인지 아닌지 재주를 먼저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방이 나섰다. 이방은 노름할 때 쓰는 골패 한 쪽을 주머니에 넣고 밤이 되기를 기다려 감옥 문을 열었다. 낮에 형장 아래서 피를 흘리던 백사길은 앉은 채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몸이 힘드실 텐데 쉬지 않으시고 앉아 계십니까요?”
이방은 머뭇거리면서 넌지시 말을 붙여 보았다.
“괜찮소.”
“저……, 황송하오나 잠깐 여쭐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음, 장연 지방에 온 군함 때문에?”
이방은 깜짝 놀랐다. 백사길은 그런 이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주머니 안에 홍륙 쪽은 왜 넣고 왔노?”
“황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이방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나라가 난을 당하여 생각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조정이나 향당이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이렇게 감옥에 계시게 하고서…….”
말 안 해도 다 알아 들었다는 듯 백사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오, 이게 다 천명이니 어찌 마음대로 하겠소?”
이방은 그 말에 더욱 미안해하며 자기가 죄를 지은 듯 머리를 아래로 깊숙이 조아렸다.
“모든 게 죄송합니다만 난리에 해결책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하여 감히 여쭈러 왔습니다.”
“선비는 죽음으로써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마땅하니, 백 번 죽어도 나라를 위해 계책 내놓기를 마다할 내가 아니오. 내 목숨이 있는 한 아는 데까진 말하겠소.”
“그러면 터진목에 들어와 있는 저 이양선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병력으로 물리치는 것과 계교로 물리치는 것 두 가지가 있소.”
“황해도 좌영이 있다고는 하나 병력은 보잘 것 없을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보낸 병사들도 한양 쪽을 방비하느라 이쪽까지 염두에 둘 여력이 없고, 우리로서는 한양에서 아무 일 없이 물러난 대신 황해도 쪽을 노략질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지금 가장 좋은 것은 계교로써 물리치는 길뿐인데,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백사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하였다. 나라의 처지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붓과 벼루를 가져오게 하였다. 모인 사람의 눈이 백사길에게 모아졌다. 백사길은 내일이면 처형될 처지인 자신의 처분을 바라고 불안한 눈망울로 모여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조선의 백성인 이들이 앞으로 받게 될 질곡의 무게가 고스란히 몸으로 느껴지며 목이 메었다.
아직 때가 아니니 물러가라는 간곡한 내용의 편지는 말 탄 군사에 의해 장연 부사에게 보내지고 그대로 배에 전달되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병선은 뱃머리를 돌려 청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군함이 모습을 완전히 감추자 지켜보던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더니 오래도록 날이 어두웠다. 예정대로 백사길은 나라의 명에 의해 처형되었다. 백사길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전해 듣고 안타깝고 애통한 마음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백사길의 아들 형제가 기별을 받고 고향인 경주 대추나무골로 모셔 가려고 문화현에 찾아왔다. 아전 한상유는 큰 아들에게 백사길의 유품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백사길을 쏙 빼닮은 작은 아들의 손을 잡고는 체면도 잊고 엉엉 목을 놓아 울었다.
백사길이 황해도에서 2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풍천 관아에서 죽음을 맞을 때, 수연은 산 속 깊은 암자에서 청수를 떠 놓고 스승을 생각하며 21자 주문을 수없이 외고 또 외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백사길의 모습이 수연의 감은 눈앞에 떠올랐다. 수많은 궁을 글자에 감싸인 모습이었다. 마치 궁을로 이루어진 꽃밭에 서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수연은 직감적으로 스승이 이제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아직 낮이었는데도 어두운 하늘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수연은 암자 입구에 있는 너럭바위가 있는 곳까지 그대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편 길모퉁이에서 백사길을 닮은 사람이 일가족인 듯한 사람들과 함께 올라왔다. 수연의 눈에는 표정이 너무나도 백사길과 닮아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불쑥 입 밖으로 말이 먼저 터져 나왔다.
“스승님! 스승님!”
검게 그을리고 선한 눈을 한 어른이 앞장서서 올라왔다. 행색은 남루했으나 강건하고 예의바른 목소리로 물었다.
“처자는 누구신지요? 누굴 기다리는가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착각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처자는 스승님을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이야기 끝에 수암은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깊은 산속의 외진 길에는 자기 가족 외에 아무도 없었다. 수연도 수암이 되돌아보는 길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막 한 잎 두 잎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만 있을 뿐 길은 텅 비어 있었다. 세상이 텅 빈 것 같이 적막했다. 수연의 눈에 그때서야 울음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스승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고 이제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오래도록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 수연의 두 손을 잡아주고 너럭바위에 앉힌 것은 수암의 아내였다. 수암이 가족을 데리고 이곳까지 온 것은 친구 백사길이 황해도로 유배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도망의 세월로 지친 사람들에게 낯선 땅에서 만난 처자는 마음의 의지가 되는 새로운 인연이었다. 수연은 그날 수암을 만난 것을 백사길이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수연은 마치 백사길을 다시 본 듯 그 가족을 정성으로 섬기었다.
수암의 아들과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몸이 약한 남편과 그리 오래 결혼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뜬 후에 친정 동생에게도 동학을 전도한 수연은 병약한 올케를 대신하여 친정에 들어가 조카 응선을 도맡아 키우다시피 하며 수도 생활을 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프랑스 사령관 로즈 제독은 다시 일곱 척의 군함과 함께 군대를 동원하여 강화도로 쳐들어와 산성을 점령했다. 강화도는 서울의 목구멍이고, 정족산성은 강화도의 머리라고 이야기할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프랑스군은 김포에서 강화도로 잠입한 양헌수 부대의 공격을 받아 한 달 동안 점거했던 강화성을 물러나면서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외규장각에 보존하고 있는 왕궁의 도서와 금은괴를 모조리 약탈하여 싣고 돌아갔다. 정조가 건립을 명하여 육 년 만에 공을 들여 완성했던 외규장각 안에는 왕실의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어람용 의궤와 육천여 권의 왕실 책이 보관되어 있었다.
"Rescue Mission" by Jan Tik, used under CC BY
여름이 기승을 부리고 넘어가던 팔 월에도 중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따라 평양 가까이 침입하여 통상 거절에도 불구하고 만경대 정자에 올라와 이를 막는 군인을 감금하다가 싸움이 붙어 셔먼호가 불타는 일이 있었다.
그해 동학도인들은 수많은 천주교인들과 함께 처형을 당했다. 자신이 알고있는 세계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무지가 다른 세계를 알게 된 사람들을 박해하는 야만의 시절이었다.
준기는 백사길이 순도한 뒤에도 홀로 동산에서 칼춤을 추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거나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이리도 빨리 가실 줄 알고 침통을 물려주었던 것일까. 생각할수록 스승의 가르침을 더 열심히 배워놓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스승의 빈자리를 동이가 채워 주었다. 동이에게 칼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동이가 한 자락도 까먹지 않고 온전하게 춤 동작을 해내던 날 준기는 얼굴 가득 흡족한 표정으로 웃음을 띠었다.
“동이가 이제 제법 잘 하는구나, 이제 삼촌은 떠나야겠다. 글 잘 읽고 있어라. 나중에 잊지 않았는가 한번 보겠어.”
준기의 웃는 얼굴은 이제 스승을 닮아 있었다. 준기는 백사길에게서 받은 침통을 소중하게 담아 들고 길을 떠났다. 세상 구경을 하며 떠돌아 다니겠노라고 했다.
백사길이 쓰던 목검은 동이에게 남겨졌다. 동이는 가끔 스승의 목검이 마치 스승님의 몸이나 되는 양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나무로 만든 긴 칼에 스승의 따스한 기운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한동안 동이와 서당 아이들은 백사길과 공부하던 방 앞에서 오래도록 서성였다. 아들의 안타까운 모습에 해주댁은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