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김현옥

작품 [님, 모심] -12회 영월로 돌아가다 (김현옥)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7. 18. 02:00

 

 

                      <영월 직동 위치>

 

 

영월로 돌아가다

 

 

 

 

주인장, 안에 계십니까? 계십니까?”

한밤중 외딴 산골 집 밖에서 소리 죽여 부르는 소리에 장봉애(張奉愛)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여보, 누가 왔어요. 어서 일어나시오.”

남편 박용걸을 깨웠다. 박용걸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가더니 인사하는 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장봉애는 재빨리 옷을 갖춰 입었다. 이불 갤 틈도 없이 손님 두 사람을 방 안으로 데려왔다. 보름 전인가 들렀던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볼은 홀쭉해지고 광대뼈만 튀어나왔다. 그러나 쑥 들어간 두 눈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품어져 나왔다.

 

해월과 강수의 무명 저고리와 바지가 얇아서 몹시 추워 보였다. 그동안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상투는 헝클어졌고, 옷은 찌든 때에 절어 있는데다가 군데군데 찢어져 살갗이 드러나 보이기까지 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밤늦게 찾아와서 실례합니다.”

키가 크고 마른 강수가 들어오며 인사말을 했다. 이마가 넓고 수염이 텁수룩한 해월도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맑은 눈이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박용걸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이부자리를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해월과 강수에게 큰절을 올리려고 하자 두 사람도 무릎을 꿇고 맞절을 했다.

방 안에 들어오니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어 비로소 살 것 같습니다.”

강수가 활발하게 말하자, 해월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등잔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 몹시 지치고 허기져 보였다. 장봉애는 급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먹고 남은 강냉이죽이나마 챙겨서 상을 차렸다.

 

늦은 밤 신세 지는 것도 미안한데, 이렇게 식사까지 대접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두레상 앞에서 식고를 드린 다음 먹기 시작했다.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해월이 고개 숙이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그동안 어디에서 지내다 이제야 오셨습니까?

박용걸은 두 사람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숭늉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태백산 함백산 깊은 산중을 헤매다 왔습니다.”

강수가 14일간 산속에서 지낸 이야기를 간추려 말해 주었다. 9월 밤은 쌀쌀했다. 그런데 이불도 집도 없이 산속에서 10여 일을 지냈다니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긴 셈이라고 장봉애는 생각했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부지런히 일하고 세 끼 굶지 않고 사는 것, 이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이번 산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삶도 쉽지 않습니다.”

박용걸은 지난 삶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곳 형편은 어떻습니까?”

해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관의 감시와 탄압이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직동까지 나오던 포졸들이 며칠째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입니다. 한시름 놓겠습니다.”

강수가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해월이 신중하게 말했다. 그때 강수가 해월을 한번 보더니 박 씨 내외를 한참 쳐다보았다.

 

박 처사님, 사실 이분은 동학 북도중주인 해월 선생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이분을 보필하는 강수입니다. 그동안 속여서 죄송합니다. 수운 대선생님이 대구 감영에서 참형 당한 이후로 우리 동학 도인은 늘 관의 지목을 받고 쫓기며 살아왔습니다. 그 뒤로도 이필제가 벌인 영해 교조신원운동이며 문경 사변으로 수많은 우리 도인이 희생당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잠시 속였으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서할 게 뭐 있겠습니까? 처음 두 분 선생님 뵈올 때 예사 분이 아님을 짐작했습니다. 이제는 어디 가지 마시고 이곳에서 기거하십시오.”

말씀은 고맙지만, 함께 지낼 수는 없습니다. 만일 여기서 우리가 겨울을 나게 되면 나를 아는 동리 사람이 많으니 두 분이 난처해질 것입니다.”

해월이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안방에 있으면 누가 알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계십시오.”

박용걸이 장봉애게 눈을 찡긋했다. 박용걸의 말에 장봉애는 맘 한편으로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밥과 빨래는 누가 다 한담. 끼니마다 무슨 반찬 내놓을까 걱정하는 안사람 생각은 조금도 안 하다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온몸에 노독이 깊이 쌓였을 것입니다. 부디 마음 편히 지내면서 풀기 바랍니다.”

하면.”

…….”

친척도 아닌데 안방에 있기가 미안하니 박 처사님과 제가 형제의 의리를 맺으면 어떻겠습니까?”

저야, 귀인과 형제가 되는 것이 영광입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말미를 주시지요.”

그렇게 해서 안방을 해월과 강수에게 내주고 장봉애와 박용걸은 건넌방으로 왔다.

 

 

당신은 저 어른들을 우리 집에 머물도록 권하시는데, 집에서 손님 대접할 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군요.”

장봉애가 불편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당신 마음 이해하오. 그러나 두 분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보구려. 사지를 넘어 우리 집으로 오신 분들이오. 우리 집에 머물 두 분은 또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겠소?”

그걸 저라고 어찌 모르겠어요. 하지만 뜻밖의 손님을 겨우내 모실 생각을 하니 여간 걱정이 아니에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궁지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도우라 하였소. 그래서 당신도 나와 만나지 않았소?”

갑자기 장봉애는 지난날이 떠오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시아버지 덕분에 자신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늘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당신과 부모님 뜻을 생각한다면 어려움을 이겨 내야지요. 당신 뜻대로 하세요.”

고맙소. 훌륭한 사람을 모신다는 것은 기쁜 일이오.”

박용걸은 장봉애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