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김현옥

님, 모심(13회) - 남대천 물고기의 주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7. 25. 02:00

 

 

                              <남대천의 황어떼>

 

남대천 물고기의 주인

 

 

 

장봉애는 양양 오대산 자락에서 부모님을 비롯하여 일곱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다. 그곳의 물은 오대산 가마소 계곡과 두로봉에서 발원하여 법수치리 계곡, 남대천을 지나 동해안으로 흘러갔다. 양양 사람들은 남대천을 모천, 즉 어머니 강으로 불렀다. 황어, 은어, 연어 떼가 시기별로 산란하기 위해 바다에서 돌아오는 풍족한 강이었다. 그러나 강에 고기가 많아도 그녀 가족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남대천을 비롯하여 양양에 있는 하천들은 다 관아에서 관리하여 물고기도 마음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산간 지방처럼 풀뿌리를 캐고, 한 뙈기 밭농사에 온 가족이 매달려 살았다.

 

그녀는 장녀로 태어났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들 때문에 어머니 젖은 늘 말라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린 동생을 먹일 수 있도록 생쌀을 씹으라고 했다. 쌀을 가루가 되도록 씹어 뱉어서 끓인 죽이 암죽이었다. 한번은 쌀이 정말 먹고 싶어 꿀꺽 삼키다가 들켜, 부지깽이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맞았다. 어른들은 쌀을 못 먹어도 젖먹이 동생들은 암죽을 먹고 자랐다. 그녀는 그 많은 동생을 업어 키웠다. 어머니는 집안 식구들 먹을거리를 대느라 늘 밭 매고, 채소와 곡식을 가꾸느라 바빴다.

어느 해 보릿고개 때였다. 장봉애의 집도 먹을 것이 없어 쑥과 옥수수 가루로 쑨 말간 죽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된장국과 멀건 죽밖에 없어 부모와 형제들은 누렇게 부황이 들었다. 부모님이 텃밭을 일구고, 자신은 부지런히 나물을 뜯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 와도 허기졌다. 곡기와 기름진 것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풀만 먹었다. 솔잎을 찧어 가루로 만들어 쪄서 먹었더니 시고 떨떠름한 맛이 먹을 만했다. 그것을 먹고 난 동생들은 똥구멍이 막혔다. 아버지가 억지로 막대기 꼬챙이로 파다 똥구멍이 찢어졌다.

 

그날 밤중 아버지 장필생(張必生)은 지게를 짊어지고 나왔다. 어둑한 길을 한참 걸어 남대천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시린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날씨도 추웠지만, 장 씨 몸이 유난히 더 떨린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보릿고개 때는 황어가 돌아왔다. 알을 낳기 위해 강을 오르는 황어의 습성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낮에 준비해 온 대나무 살을 굽이도는 여울목에 쳤다. 하류 방향에 살을 엮어서 치면 한번 들어온 물고기들은 빠른 물살에 다시 빠져나오지 못했다.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유난히 더디게 갔다. 다른 때는 집 구들장에 등만 댔다 하면 아침이 왔는데, 그날 밤에는 시간이 늑장을 부리는 것 같았다. 장 씨는 시린 손을 비벼대며 추위 속에 서너 시간을 왔다 갔다 했다. 어느새 새벽이 오려는지 주변의 윤곽이 희뿌옇게 잡혀 왔다. 장 씨가 댓살을 살펴보니 황어와 쏘가리 등 열대여섯 마리가 펄떡거리며 물살을 튕겼다. 그의 심장은 벌떡벌떡 뛰었다. 장 씨는 손발 시린 줄도 모르고, 살막이 안에서 피해 다니는 물고기를 두 손으로 잡아 뚜껑 달린 짚 바구니에 담았다. 여남은 마리 정도 넣으니 바구니가 묵직했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 짚 바구니를 지게에 졌다. 장 씨는 주변을 살피며 부지런히 걸었다. 부리나케 남대천을 벗어나 법수치리 계곡에서 가마소 계곡으로 난 좁은 산길로 들어섰다. 건너편에서 포졸 두 명이 오고 있었다. ‘아차!’ 그는 어디 숨을 곳이라도 없나 둘러보았으나 위아래가 다 절벽으로 막혀 있어 피할 곳이 없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장 씨는 아랫배에 힘을 넣고 태연하게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겨우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에서 두 포졸과 만났다. 장 씨는 그들에게 거친 숨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일부러 고개를 푹 숙이고 그들 옆을 지나갔다. 포졸 둘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는지 그들이 지나가자 술 냄새가 확 풍겼다. 그들을 막 지나쳐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데, 지나쳤던 포졸 한 명이 그를 불렀다.

 

어디 갔다 와?”

배가 나온 포졸이 되돌아보며 물었다.

, 제사 지내고 돌아오는 길입니다요.”

그는 속이 뜨끔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왜 아래옷이 다 젖었어?”

배불뚝이 포졸이 그를 유심히 보더니 또 물었다.

오다가 그만 강에 빠졌습니다.”

할 말이 탁 막혀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바로 걸렸구나 싶었다.

강에 빠지면 윗도리도 젖어야지. 이리 와 보게.”

왜 그럽니까요?”

장 씨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반문했다.

잔말 말고 오라면 어서 와!”

배불뚝이가 반말로 명령했다. 다른 뚱보 포졸도 뭔 일이냐고 물었다.

몸이 젖어서 곧 얼어 죽게 생겼습니다. 빨리 가야 하는데요.”

장 씨는 사정하듯 말했다.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잠깐 오라는데 잔말이 많군. 아무래도 이상한 걸.”

그들은 다시 장 씨에게 되돌아왔다.

바구니 안에 있는 것은 뭔가?”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입니다.”

요즘 춘궁기에 제사 지내는 집도 있나? 그것도 제사 음식을 싸 줄 정도로 부자여? 아무래도 이상한데? 지게에서 내려 열어 봐!”

안 됩니다.”

장 씨는 빨리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걸음을 빨리 옮겼다. 그러자 포졸들이 달려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리저리 피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포졸들이 바구니를 획 낚아챘다. 그 순간 짚 바구니가 땅에 떨어지며 뚜껑이 열려 버렸다. 황어와 쏘가리들이 길바닥에 쏟아지면서 펄떡거렸다. 몇 마리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안 돼, 내 거야.”

그는 소리치며 물고기를 잡으려고 애썼다. 그가 엊저녁 내내 추위에 고생하며 잡은 고기들을 다 뺏길 것 같았다.

이게 뭐야? 이것 어디서 났어?”

포졸들은 장 씨에게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사 지내고 남은 물고기입니다.”

어디에서 제사 지냈는데?”

우리 형님 집에서요.”

형님 집은 어딘데?”

…….”

장 씨는 그만 말이 막히고 말았다.

그 집이 어디야? 이놈 처음부터 수상했어. 이놈을 관아로 끌고 가자.”

저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장 씨는 보내 달라며 애원했다.

그러나 포졸들은 끈질기게 추궁했다. 장 씨는 순간 굶어서 파리해진 얼굴에 두 눈만 덩그러니 커진 자식들이 눈앞에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식들에게 먹이지 못하고 다 뺏긴 것이 원통했다.

…….”

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이 물고기들 남대천에서 잡아 왔지? 이거 도둑질해 왔구먼. 남대천 물고기는 다 주인이 있다는 것 몰라? 나랏님 물고기야.”

 

포졸들은 그를 인정사정없이 때리고 발로 찼다. 지게는 부서지고 그의 온몸에 멍이 들었다. 장 씨는 포졸들에게 질질 끌려가 양양옥에 갇히고 말았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