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정이춘자

12회 피어라 꽃 <해남진도제주> 이랴, 개벽 세상으로 가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7. 22. 07:00

화원에 도착해서 말을 목장에 넣고 말총이는 감목관 거처부터 알아보았다. 관마청은 목장에서 5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말총이는 군두의 지시대로 말에게 풀을 먹이고 우물가에 있는 말똥을 치웠다. 한양으로 뽑혀 가는 말들이라 그 사이에 몸이 축나거나 병이 들까봐 군두는 말 관리를 철저하게 시켰다. 저녁 일을 마친 후 말총이는 목자들 몰래 군부를 찾아갔다. 그는 아버지가 준비해 준 말린 생선포와 술을 싼 보자기부터 내밀었다.

뭣이여? 이것이?”

군부의 입이 헤 벌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말총이가 입을 열었다.

옆집 사월이가 시방 관마청에서 대감마님 수종 들고 있는디라우. 사월이 어매가 지한테 눈물 바람을 함서 이 옷을 꼭 사월이한테 잔 갖다 주락 하요.”

말총이는 옷보따리를 보여주었다.

에미라고 딸을 시집 보냄서 이불은 다 두고, 보신 한 짝도 못해 줬다고라우.”

군두님이 알믄 베락 떨어질 것인디?”

군부는 손에 든 술병을 보고 입맛을 다시다 술병을 밀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말총이는 다급해져 술병을 다시 밀며

지가 군두님한테도 직접 가서 말씸을 드릴랑께 꺽정 마쇼. 군두님도 사람인디 어매가 시집간 딸 생각하는 거를 못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구만이라우. 오늘 저녁 자시 전까지 갔다 올께라우.”

그때까장 안 오믄 내가 사람 풀어서 끌고 올 것인께 그리 알어.”

야우. 알것구만이라우. 꺽정 말고 맛있게 잡숫고 기시쇼. 다 잡숫기도 전에 올 것인게.”

군부는 술병과 안주를 들고 들어가며 빨리 돌아오라고 다시 한 번 신신당부를 했다. 말총이는 옷보따리와 술병을 챙겨 호동이의 등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들판을 달리는 것이 신났는지 호동이는 박차를 가하지 않아도 나는 듯이 달렸다. 관마청 밖에서 말을 내려 큰 나무 밑에 호동이를 매놓고 콧등을 쓸어주었다.

곰방 오께 쪼깨만 지달려라이.”

관마청 목자에게 진도 군두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군두들의 처소로 안내해 주었다. 진도 군두는 화원 목장 군두와 함께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말총이냐? 무슨 일이냐?”

군두 나으리. 사월이 땀시 디릴 말씸이 쪼까 있는디라우.”

군두는 붓을 놓고 방 밖으로 나왔다.

사월이 어매가 지한테 이 옷을 줌서 사월이한테 꼭 전해주라고 했구만이라우. 에미가 되갖고 시집가는 딸한테 보신 한 짝도 못해줬다고 날마다 눈물바람인디 이참에 지가 여그를 온다고 항께로 이것을 잔 갖다 주라고 하드만요.”

알았다. 내가 전해주마.”

아니구만이라우. 지가 지금 들어가서 전해줘야 하구만이라우. 사월이 어매가 신신당부를 함서 딸이 몸이나 성한지 꼭 만나보고 오라했구만요. 그라고 이것은 따로 싸줌서 꼭 감목관님한테 디리라고 하드만이라우. 그래도 맹색이 사운디 술 한 잔도 대접을 못했다고 함서 어뜨케나 당부를 하던지…….”

…….”

군두는 마루에서 말총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태연한 척 했지만 말총이는 속으로 애가 바작바작 탔다. 오금에 힘을 주고는 쐐기를 박듯 다시 입을 열었다.

지가 그랬지라우. 사월이는 인자 팔자가 펴부렀는디 뭣할라고 이런 옷쪼가리를 갖다 주락 하냐고. 그랑께는 그 어매가 발을 뻗고 울드만이라우. 딸 시집보내고 얼굴 한 번 못 봤다고, 이라고 못 볼 줄 알었으믄 안 보낼 것인디 그랬다고 함서 우는디 지가 안 올 수가 없었구만이라우. 이참에 소식을 안주믄 어매가 여그로 올란다고 한께.”

알었다. 따라 와.”

군두는 못마땅한 얼굴로 앞장섰다. 내아로 들어가 군두가 기침을 하더니 아뢰었다.

지산 말목장에서 마님 심부름을 왔습니다요.”

문이 열리고 사월이가 나왔다. 사월이는 말총이를 보더니 흠칫 놀랐다. 말총이는 사월이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누가 왔느냐?”

안에서 나지막한 감목관의 목소리가 들리자 말총이가 얼른 나섰다.

대감마님. 마님 친정서 어매가 보내서 왔구만요. 꼭 직접 뵙고 전해 드리락 해서 이라고 염치불구하고 들왔구만이라우.”

들어오너라.”

말총이는 보따리를 들고 마루로 올라섰다. 그는 방에 들어가 넙죽 엎드려 감목관에게 큰절을 하였다.

마님 어매가 감목관님을 한 번 꼭 뵙고 술 한 잔 드리고 자운디 그리 못했다고 함서 이것을 전해주락 했구마요.”

말총이는 술병이 든 보따리를 감목관 앞으로 내밀었다. 감목관이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며 수염을 쓰다듬자 사월이가 술병을 아랫목 쪽으로 밀어놓았다.

그라고 딸을 시집보냄서 이불 한 채도 못해 주고, 보신 한 짝도 못해 준 것이 한이락 함서 이 옷을 꼭 딸한테 전해도라고 했구마이라우.”

말총이가 옷보따리를 사월이 앞으로 내밀자 사월이가 끌어당겨 안았다. 옷보따리에 얼굴을 묻더니 사월이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어머니 소식을 들으니 기쁜가 보구나. 너는 이번에 한양에 갈 목자냐?”

야우. 지산목장에서 마님 옆집에 살았구만이라우. 지가 어매가 없어서 마님 어매를 어매같이 알고 커서 마님이랑은 성제간같이 컸구만요.”

알었다. 잠깐 이야기 나누다 가거라.”

감목관이 나가자 곧 약과와 인절미, 식혜가 놓인 다과상이 들어왔다. 치자물 들인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곱게 입은 사월이는 전보다 더 야위어 보였다. 아침에 핀 나팔꽃처럼 싱그럽던 얼굴이 피기도 전에 사그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말총이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말총이 자신을 잊어버리고 감목관의 첩실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월이를 보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말총이가 뚫어지게 바라보자 사월이가 고개를 숙였다.

나랑 혼인한 거 맞지야? 나 아직 그리고 있재?”

사월이 눈에서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그녀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사월이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말총이에게 떡을 들어 권했다. 말총이는 고개를 저었다. 말총이가 문밖을 힐끗 내다보고는 급하게 낮고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뒷간이 어디냐?”

어째?”

언제라도 내뺄 요량이 생기믄 뒷간 담 너머로 바로 보이는 나무에다 내가 베수건을 묶어놀 것인께. 너도 담 넘을 디를 잘 봐 놔. 넘기 높으믄 허물어 놓고. 담 너머에 내가 말을 두 마리 준비해 놀 텡게 나올 때는 남복을 입고 와라이. 저 옷 속에 남자 저구리, 바지 있어.”

.”

사월이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바짝 귀를 세웠다. 전할 말을 끝낸 말총이가 식혜를 들이켰다.

느그 엄니랑 식구들은 잘 있은께 꺽정 말고 니 몸이나 챙겨. 그렇게 야워갖고 쓰것냐?”

…….”

사월이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때 감목관이 들어왔다. 그는 아직까지 가지 않은 말총이가 못마땅한 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랫목에 앉았다. 말총이가 얼른 일어섰다. 말총이가 나가며 허리를 주억거렸지만 감목관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말총이가 배를 잡고 뒷간이 어딨는지 묻자 사월이가 감목관 눈치를 한 번 보고는 따라 나왔다.

사월이가 마루에서 뒷간 쪽을 가리켜 알려주었다. 말총이는 뒷간에 들어가 가장 가까운 곳의 나무를 확인하고 나왔다.

감목관의 방에서 흐흠하는 헛기침 소리가 났다. 말총이는 마루에 서 있는 사월이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뒤돌아섰다. 사월이는 꼼짝도 않고 서서 말총이가 사라질 때까지 치마만 움켜쥐고 있었다. 선걸음 그대로 말총이를 따라 달려가고 싶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가슴이 터질 듯 했다. 얼마나 여러 번 자결해 버리고 싶었던가? 치마끈을 뜯어내 놓고도 목을 매지 못했다. 자신이 죽어 버리면 감목관이 부모님께 해꼬지 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감목관에게 처음 능욕을 당하던 날 말총이와의 인연은 끝난 것이라 여겼다. 첫 몸 준 이에게 시집간 거라고 자신의 입으로 말총이에게 말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마음일 뿐 말총이가 내치면 어쩔 수 없었다. 감목관의 첩실이 된 몸으로 말총이를 기다리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었다. 사월이는 그래도 혹시 말총이가 자신을 빼내러 올까 고대했지만 그러나 기대하지는 않았다. 감목관이 기거하는 내아는 목자가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죽지도 못하고,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시들어가야 할 팔자인가 보다 생각했다. 세월이 어서 흘러 늙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말총이가 혼인했다는 소식을 듣는 광경을 수도 없이 상상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 그날로 죽으리라 결심했다.

감목관이 다시 안에서 헛기침을 했다. 어서 들어오라는 소리였다. 사월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 구렁텅이에서 가슴을 태우는 일은 이제 다 끝났다. 말총이는 그녀를 잊지 않았다. 사월이는 입술을 한 번 꼭 깨물어 보았다.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 뛰고도 싶었다. 사월이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후우 내쉬고는 방문을 열었다.

다음 날부터 바람이 몰아치고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다. 목자들은 정신없이 마구간에 말을 집어넣고, 마초를 베어 창고에 들였다. 사나흘은 꼼짝없이 화원에서 발이 묶일 것이었다. 말총이는 가슴이 뛰었다. 첫날 저녁은 군두와 군부들이 마구간을 단속하느라 목자들을 다그치더니 다음 날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지대가 낮은 논들이 물에 잠기고, 목자들의 집도 수해를 입은 모양이었다. 화원 목자들도 자기 집과 논밭을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밤이 깊어 목자들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고, 말들이 뒤척이는 소리도 줄어들자 말총이는 조심조심 일어나 마구간으로 갔다. 호동이와 부용이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나와 주위를 둘러보다 호동이 등에 훌쩍 올라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관마청에 닿았다. 등잔불을 켜 두었는지 빗속에 내아의 방문이 부옇게 떠 보였다. 보아 둔 나무에 말고삐를 맨 후 머리 수건을 벗어 뒷간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묶었다. 말총이는 풀이 우거진 곳에 숨어 한참을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누구에게 들킬 것만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방문은 열릴 줄 몰랐다.

사월아, 사월아 새집 줄게 헌집 다오. 사월아, 사월아 새집 줄게 헌집 다오.’

말총이는 어렸을 때 사월이와 함께 부르던 두꺼비집 노래를 주문처럼 속으로 외웠다.

 

<마지막 연재입니다. 다음 내용은 책으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