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흐른다 12회> 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
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
그날은 양계환이 논농사를 챙기려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침 댓바람에 유석훈이 찾아왔다. 봉강서 월포까지는 한나절은 부지런히 걸어야 할 길인데 새벽 일찍부터 길을 나선 모양이다. 그만큼 급한 전갈이 있는 거였다. 유 접주 표정이 심각했다. 사랑채에 들어서 자리를 잡자마자 그는 품에서 종이 문서를 꺼내면서 말했다.
“양 접주. 우리가 말하던 일이 예상헌 거보다 빨리 왔구마. 전라도 무장에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접주가 기포(起包)했다고 연락이 왔네. 이거이 포고문이여. 언능 읽어봐.”
“엉? 그럼 전국에서 기포한단 말이여? 어디 보자.”
그렇게 물어보면서 전해 받은 포고문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
나라에는 부채가 쌓여 있는데도 갚으려는 생각은 아니하고 교만과 사치와 음탕과 안일로 나날을 지새워 두려움과 거리낌이 없어서 온 나라는 어육이 되고 만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이는 진실로 수령들의 탐학 때문이다. 어찌 백성이 곤궁치 않으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깎이면 나라가 잔약해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은 염두에 두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을 화려하게 지어 제 살길에만 골몰하면서 녹위만을 도둑질하니 어찌 옳게 되겠는가?
우리 무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이나 임금의 토지를 갈아먹고 임금이 주는 옷을 입으면서 망해가는 꼴을 좌시할 수 없어서 온 나라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고 억조창생이 의논을 모아 지금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을 생사의 맹세로 삼노라. 오늘의 광경이 비록 놀랄 일이겠으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각기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면서 함께 태평세월을 축수하고 모두 임금의 교화를 누리면 천만다행이겠노라.
갑오년(1894년) 삼월 스무 날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포고문을 다 읽은 양계환은 유석훈에게 물었다.
“시방 전국에서 다 일어난다는 거여?”
양계환이 다 읽기를 기다리던 유석훈이 대답하였다.
“그리 되게 헐라고 전국 도인들이 다 짜고 있었든 거지. 우리도 서둘러야겄네. 될 수 있는 대로 챙겨서 백산으로 올라오라는 통기가 왔어. 우리 봉강 접은 올 농사 준비를 언능 해 놓고 모레 새벽부텀 올라갈라는디 월포 도인들은 어쩔랑가?”
“잘됐그마. 저번에 우리가 이약헌대로 목숨 걸고 해볼 만한 일잉깨 당연허니 올라가야제. 그래 새 세상이 오기만 헌다먼야 뭔 일인들 못허겄능가. 우리 접 사람들도 채비하고 바로 올라가야 쓰겄네.”
양계환이 그리 대답하자 유석훈이도 편하게 말을 내놓았다.
“근디 아무래도 이참에 올라갈라먼 우리 도인들이 노자를 충분허니 챙기 갖고 나서야 허꺼고, 글라먼 계환이 자네나 나나 요번에는 집안 살림에서 솔찮허니 축을 내야 헐 꺼인디 자네는 어쩐가?”
“울 아부지 모르게 돈을 빼낼라먼 나가 고생 좀 해야 쓰겄구마.”
“허허. 그래도 우리 집은 아부님이 동학 도인들을 이해허는 편이라 그리 어렵진 않을 꺼그마. 아매도 울 아부님이 논마지기 값이나 챙기 주시꺼여. 계환이 자네 아부님은 좀 심들다고 혔제?”
양계환은 손사래를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이, 말도 마소. 우리 집 영감 인색한 거시사 근동에는 소문이 다 낫승깨. 아직도 난 재산 권한이 한나도 없그마. 이참에는 울 엄니를 통해서 논문서 도둑질이라도 해야 될랑가 모르것는디 어찌 되도 되겄지이~! 암튼 나가 울 집서는 젤로 큰 도적이랑깨! 하하하.”
소 팔고, 논 팔고 채비를 단단히 하고 갑오년(1894년) 늦은 삼월에 백산으로 올라온 광양 도인들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인 기세에 놀랐다. 어제 저녁에 늦게 도착하여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둔 장막 언저리에서 어찌 자는 줄도 모르고 그저 아무데나 사람들 틈에 끼어서 잘 때는 몰랐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백산 꼭대기 너른 마당을 돌아보니 사람들은 몇 사람 안 보이는데 장막 옆으로 세워둔 깃발이 유유히 흔들리는 것이 장관이었다. 노란색 비단에 보국안민(輔國安民), 청색 비단에 탐관진멸(貪官盡滅), 붉은색 비단에 척양척왜(斥洋斥倭) 깃발이 대회라도 하는 냥 어떤 깃발이 더 선명한지 자랑이라도 늘어놓을 것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거기에 끼어들기가 부끄러운 듯이 작은 깃발들은 한쪽에 늘어서 있는데 그 숫자가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았다. 깃발만 봐도 세상 일이 다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설렜다. 힘이 났다.
광양 사람들은 김개남 휘하로 들어가 움직이기로 했다. 사람들이 워낙에 많이 모인지라 사월이 되자 동학 도인들은 전주로 진격하기 위해 크게 두 개 부대로 나누어 움직였다. 부안현을 점령하여 황토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부대는 전봉준과 손화중이 지휘하는 부대였다. 그때 김개남 부대는 백산 결진에 합류하여 동학군의 위세를 떨치고 부대를 나뉘어 움직일 때 태인 관아를 점령하고 전주성을 향하여 나아갔다. 하지만 관군이 전주 입구를 지키고 있고 또 관군 1만여 명이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다시 부대를 나누어 남하하였다. 김개남 부대는 태인 용산에 머물렀다. 그때 사람들에게 꼭 지킬 것을 당부하는 동학농민군 12개조 수칙이 나왔다.
동학농민군 12개조 수칙
1. 항복한 자는 사람으로 대한다.
2.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3. 탐학한 자는 추방한다.
4. 순종하는 자는 경복한다.
5. 도주하는 자는 쫓지 않는다.
6. 굶주린 자는 먹인다.
7.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없앤다.
8. 빈한한 자는 불쌍히 여겨 도와준다.
9.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
10. 거역한 자는 좋은 말로 잘 타이른다.
11. 병든 자는 진찰하여 약을 준다.
12. 불효한 자는 형벌한다.
사람들 속에 낀 유석훈과 양계환은 깃발을 들고 싱글벙글하면서 장막에 붙여진 방문 동학농민군 12개조 수칙을 읽고 있었다.
장난끼 섞어 유석훈이 먼저 말을 꺼냈다.
“긍깨 우리는 시방 전쟁을 험시롱도 동학 한울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거구마~이! 12개조 수칙을 잘 지키 감시롱 관군들이랑 싸울라먼 쪼까니 심들겄는디. 쌈 허다가 관군들이 다치먼 치료해조야 헌당가?”
그 말끝에 양계환이 핏발을 세우며 대꾸했다.
“그런 씨부럴놈덜을 뭔 치료를 해준당가? 나헌티 걸리기만 허먼 모가지를 확 따 삐리야제. 그놈들헌테 우리 도인들이 얼매나 많이 당했는디. 그 수칙은 우리 도인들이랑 백성들헌티만 해당되겄제~! 그런 거만 보지 말고 눈 좀 크게 뜨고 잘 보소. 삼. 탐학한 자는 추방하고 칠.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고 안 써 있는가? 긍깨 우리는 탐관을 제거허먼 되는 것이여. 그것들헌테 멍청허니 당허지 말고 싸울 직애는 두 눈 크게 뜨고 그것들을 확 조사부러야 헌당깨~! 그래야 한울님이 사는 것이여.”
핏대를 세우고 열을 올리는 양계환의 말에 유석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글고 봉깨 글쿠먼. 알겄네~! 알겄어~! 잘 싸울 것잉깨 시방부터 열 내지마소.”
동학군이 대를 나누어 움직이자 초토사로 내려온 홍계훈도 역시 경군을 나누어 동학군을 추격하였다. 하지만 홍계훈은 황토현 전투에서 보인 동학군의 위세에 크게 놀란지라 동학군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승부는 피했다. 그 대신 전주영장 김시풍을 비롯하여 몇 사람에게 동학군과 내통하였다는 혐의를 씌웠다. 다음 달 홍계훈은 동학군들이 보란 듯이 그들의 목을 쳐서 전주 남문 밖에 높이 내걸었다. 초토사의 잔악한 조처에 동학군은 크게 반발하였다. 김개남이 이끄는 부대에 젊은 별동대 대장 김인배가 나섰다.
“초토사로 온 놈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하고 사람을 막 죽이고 있어라. 홍계훈이 그놈은 그동안 동학군의 위세를 겁내어 군대도 출동 안 하더니 그나마 관에서 가장 강직하여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사람들만 골라서 효수시켜 주니 원 이걸 우리가 고맙다고 해야 될까라? 그런 무식한 놈이 초토사니 이 나라도 참말로 한심하지라.”
김개남은 김인배의 말이 끝나자 주변 젊은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렇게 한심한 관군 놈들이 저대로 계속 가면 우리나라는 3년도 못되어 일본이나 로서아 수중으로 떨어질 게요. 아니지 청나라도 있지요. 하지만 요새 보면 가장 악랄한 왜놈덜 아가리로 들어갈 공산이 크제라. 지금 이 나라를 지킬 사람들은 우리 동학밖에 없소. 또 관군과 싸워 이기려면 젊은이들이 틈나는 대로 전투 훈련을 해야 쓰겄소.”
김개남 장군이 젊은이들에게 군사훈련을 하라고 말을 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젊은 대장 김인배는 장성 황룡천으로 이동하여 전투를 치렀다. 4월 24일 경군 선발대 대관 이학승이 이끄는 3백여 명이 황룡천변 월평리의 삼봉 아래에 모여 있던 동학군을 공격함으로써 싸움은 시작되었다. 경군의 쿠르르포 포격으로 순식간에 동학군 쉰 명 정도가 쓰러졌다.
“피융, 피융!”
날아오는 총탄에 옆 사람이 쓰러졌다. 겨우 무명 저고리에 무명바지를 입고 황토색 끈을 머리에 질끈 묶은 동학군들은 날아오는 총탄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총알을 피해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김인배 대장은 삼봉쪽으로 방향을 틀어 잡고 달리면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저기 뒤에 삼봉으로! 삼봉으로 달려!”
“피융 피융!”
계속해서 총알은 날아왔다. 총성과 함께 연기가 났다. 김인배 옆에 있던 복술이가 달려가다가 총에 맞았다. 양계환이 복술이를 붙잡아 끌어가면서 달렸다.
“복술아, 안돼. 조금만 더 가자.”
몸이 축 늘어지면서 복술이는 말했다.
“형! 나는 안 되겄어. 형만 언능 달려. 형은 꼭 살아~!”
떨어져 나가는 복술이를 뒤로 하고 김인배와 양계환은 삼봉으로 달렸다.
삼봉에 도착한 사람들은 진영을 다시 정비했다. 삼봉 옆 언덕 쪽에 자리잡은 경군은 계속 쿠르르포를 쏘아댔다. 그때 한쪽에서 대나무 장태 수십 개가 몰려 나왔다. 보통 집에서 보는 닭의 둥우리 같이 생겼는데 조금 더 컸다. 밖에는 칼이 꽂혀 있고 아래에는 두 바퀴를 달아서 굴러 오는데 마치 큰 고슴도치 떼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 뒤에 바싹 붙어 동학군이 함성을 지르면서 달려 나왔다.
“와와-!”
“와와-!”
관군은 연신 쿠르르포를 쏘아댔으나 이번에는 장태가 총알을 먹어 버리고 오히려 동학군 쪽에서도 포를 쏘아대며 수천 명이 무리지어 달려들자 금방 전세는 경군에게 불리하게 전개됐다. 이제 경군은 쿠르르포며, 회전식 기관총이며, 수많은 탄환도 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군 대관 이학승도 어이없이 전개되는 형세에 놀라 도망치려 하였으나 도망칠 곳도 없어 병사 다섯 명과 함께 칼을 휘둘렀다. 그때 이학승이 휘두르는 칼을 받아치는 사람이 있었다. 김인배였다.
“잘 만났다. 여기가 오늘 니 무덤 자리여. 내 칼도 한번 받아 봐.”
옆에 이미 수없이 많은 동학군이 있어 이학승도 어찌하지 못하는 사이에 젊은 동학군 대장 김인배의 칼은 번쩍 날았다. 그대로 이학승의 목이 뎅겅 떨어져 나갔다. 옆에 있던 병사들도 동학군이 휘두르는 칼에 맞고 죽창에 찔려 그대로 쓰러졌다. 마침 이학승이 쓰러진 곳에 있던 양계환이 이학승의 칼을 추켜들며 말했다.
“워매! 이 칼이 인자 임자 지대로 만났구마~이! 묵직한 거이 좋구마~이!”
“만세!”
“만세! 동학군 만세!”
갑오년 4월 24일, 황룡천 전투는 이렇게 동학군의 대승으로 끝이 났다. 나라의 정예부대를 격파한 동학군은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제 전주성이다. 가자! 전주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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