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흐른다 - 줄거리
<섬진강은 흐른다>에서는 광양 진주를 중심으로 남원 구례 하동 여수 동학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번 연재는 소설의 줄거리와 프롤로그 1편을 올립니다.
줄거리
광양 봉강에 사는 유석훈이 외가인 월포 앞 강물에서 재첩을 잡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이것을 본 구동 젊은이 양계환이 물로 뛰어 들어가 구해준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징표로 서로의 은장도를 교환한다.
양계환은 친구 집인 봉강에 들렀다가 광양 민란으로 곤란에 처한 아저씨를 구례로 피신시켜 드린다. 그 후 구례로 오가다가 우연히 먼발치에서 임서엽 처자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임서엽의 집으로 청혼을 넣었으나 처첩을 거느린 아버지의 단정치 못한 행실로 인해 거절당한다.
양계환이 마음앓이를 하는 중에 동학 공부 하자고 친구들이 이끌어서 간 집이 구례 임서엽의 집이어서 깜짝 놀란다. 얄궂은 운명인지 유석훈도 임서엽을 좋아하여 두 사람은 사랑의 눈빛을 교환하더니 나중에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유석훈과 양계환은 동학에 뛰어 들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볼 생각으로 동학 접주로 활동하는데 온 정성을 쏟는다. 갑오년이 되자 양계환과 어느새 덕만의 아버지가 된 유석훈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혁명 활동에 나서고 영호대도소 동학군으로 하동 진주 등 경상도 일원으로 진출한다. 경상도 동학 도인들을 일으켜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려는데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속속 상륙한다. 개화정권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일본군은 관군을 앞세우고 동학농민혁명군을 가차없이 죽인다.
동학군이 관군, 일본군, 민포군에 밀려 쫓기고 죽고 접주들은 처형당하여 효시될 때, 흉흉한 소식을 접한 임서엽은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일본군에게 몹쓸 짓을 당한다. 봉강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구례 친정으로 간 서엽은 석훈의 죽음을 알려 주려고 온 양계환과 함께 구례 농평 마을로 피신하여 아이들을 키우면서 동학하는 삶을 살아간다. 지리산 속으로 숨어든 양계환은 유기환으로 개명하고 항일운동을 계속한다. 구례 연곡사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다시 피신하여 진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간다. 진주에서는 백정 동학도인들과 함께 설렁탕집과 고깃간을 열어 항일 활동 자금을 보내고 아이들 교육 자금을 마련한다. 후손들은 쑥쑥 커서 기미년 3.1만세 운동에 뛰어들고 큰 아들 덕만은 만주로 떠난다. 1923년에는 큰 딸 덕심과 부부의 인연을 맺은 장지필이 나서 백정인권운동을 조직하였고 그 바람은 곧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프롤로그: 숙정이의 동학 여행
아버지는 정이 많고 부지런했다. 새벽 네 시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났고 엄마와 함께 오늘 할 일을 두런두런 말씀하셨다. 숙정이 아직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새벽녘에 잠이 깨어 쉬가 마려우면 뒷간까지 가기가 무서웠다. 별이 총총한 마당 한가운데서 쉬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께서는 집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얼른 숙정에게 옷을 가져다주고 빠른 걸음으로 행선지로 가셨다. 그때 자식들은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께서 사들고 오시는 옷과 책이 그리고 지도와 지구본이 좋았다. 다음에는 무엇을 사 가지고 오실지가 궁금했을 뿐.
엄마도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셨다. 아침밥 먹은 설거지를 마치기 전부터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엄마는 막걸리에 시래깃국을 부지런히 날랐다.
나중에 엄마는 말씀하셨다.
“니아부지는 새벽같이 집을 나가셨어. 해도 뜨기 전에 산중 마을에 들러 좋은 돼지를 흥정하셨제. 알맞춤으로 살이 오른 돼지를 인부들을 불러서 잡는 날은 일이 고되었을 것인데도 니아부지는 암 말씀도 안 하고 그 일을 다 하셨어. 그렇게 고기도 팔고 씨랏국도 끓이게 장사 준비를 다해 주고는 아침밥 먹자마자 다시 나가셨제. 그때 니아부지는 나무 장사도 같이 했거던. 동곡 산중에서 나무를 사다가 초남, 골약 바다에 김 하는 사람들한테 넘깄제. 니아부지가 새벽같이 그리 준비해 주는 덕에 우리 집은 장사가 잘 됐어. 장사가 잘 될 때는 화장실 갈 짬도 없이 바빴제. 그래도 니아부지는 새끼들에게 과자 사러 오는 아이들 상대도 맡기지 말라 하셨고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우리 새끼들이 학교 가서 공부 잘하는 것이 어찌나 좋던지 힘든지도 몰랐어. 니아부지는 기가 펄펄해서 사람들만 만나면 새끼들 자랑을 늘어놓았제. 나중에는 내가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인 거 모르냐고 해도 소용없었제. 니아부지랑 나는 니들이 공부해서 다들 좋은 세상에서 살 것인께 어쨌거나 공부 시킬라고 별일을 다 했어. 그래도 복이 그뿐인가 니아부지가 보증 서서 쫄딱 망하고 니들을 어찌 공부 시킬까 앞이 캄캄한 날이 많았제. 그래도 어찌어찌 지나갔제. 그러다가 숙정이 니가 장학금 받고 유학을 가니까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어도, 자석을 영국으로 유학 보내 놓고 돈을 못 부칠 때는 딱 죽겄더라고. 몇 번은 돈을 빌리러 댕기는디 마을을 다 돌아도 돈을 못 빌렸어. 빈손으로 돌아올 때는 맥이 다 풀려서 걸음도 못 걷겄드라. 그래도 세월이 간께 살았제. 그러다가 니가 영국 대학교 졸업 사진을 보내왔을 때는 니아버지랑 나가 사진 보고 많이 울었어. 변변찮게 돈도 보내 주지 못했는데 졸업을 했다니 우리 딸이 어찌나 대견하든지 그때는 온 동네방네 사람들을 다 불러서 잔치를 했제. 그러고 반년이 지나도 니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그때 니아부지는 날마다 밖에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숙정이 니 소식부터 물었어.
-어이, 숙정이한테 뭔 소식 없었는가?
-아직 소식이 없소. 좀 있으먼 오지 뭐 안 오까니 그래쌓소.
우리는 니가 그 어려운 곳에서 공부를 마치면 바로 돌아올 줄 알았제. 어느 날인가 우체부가 니가 보낸 편지라고 전해 줬어. 니가 공부를 마치고도 영국에 거 엠 뭣인가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어. 그것이 데모하는 사람들 도와주는 일이라니 걱정도 되고 혹시 외국에서 잡혀갈까 무섭기도 하고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제. 그때부터 니아버지가 시난고난 아프기 시작했제.”
그렇게 앓아누운 아버지는 나중에 숙정의 국제인권센터 일을 자랑스러워하셨다. 하지만 딸을 몇 번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것은 숙정의 속내에 깊숙이 뾰족한 돌멩이로 들어와 박혔다. 숙정은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콕 찔린 듯이 아팠다.
유학을 마치고 국제인권센터 일을 시작한 숙정은 런던에 있는 국제엠네스티 사무실인 피터 베네슨 하우스에서 일에 파묻혀 살았다. 세계의 어느 나라에나 억울하게 수감된 사람은 있었다. 그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숙정은 그들을 부지런히 연결했다. 날마다 수십 통씩 이메일을 확인하고, 간절히 답글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비록 원하는 답글이 아닐지라도 성실히 답글을 발송했으며, 해당 국가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그 나라 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에 참여할 사람들을 조직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지구상 이곳저곳에서 활동하는 정의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한동안은 어렵게 활동하는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좋아 신바람 나게 일했다. 그리고 개인적 친분이 쌓여갈수록 그들을 돕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보람으로 가슴이 뿌듯한 일도 생겨났지만, 인권센터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맘 아픈 일들이 더 많이 생겨났다. 때로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숙정은 일에 더 매달렸다. 그것이 마치 생사를 알 수 없는 정의로운 친구들을 살려 내는 일이라도 되는 것인 양 몰입했다. 일은 끝이 없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설 명절 날 얼굴 한 번 보여드리는 것도 힘들었다. 부모님께는 죄송했지만 숙정의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일이 많았다. 숙정이 하는 일은 뒤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부모님께는 죄송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숙정이 일중독에 빠진 사람처럼 지내는 동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숙정은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인권센터 일로 바쁜 세월을 보내면서 숙정은 시나브로 지쳐갔다. 언젠가부터 숙정에게 절망 덩어리가 들러붙었고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절망은 그 덩치를 조금씩 키웠다. 그녀가 느끼기에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졌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선진국에선 자기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후진국 정치세력의 도둑 정치를 막지 않았으며, 오히려 비호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것을 인식하고 항의하는 사람들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다들 먹고 살기에 바빴다. 나라 간 빈부 차는 커졌고 각 나라 안에서 자국민들의 빈부 차도 커졌다. 미국도 영국도 한국도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런 이야기라면 골치 아파하고 자신의 일이 아니니 외면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엠네스티에서 일하면서 친해지게 된 몇몇 친구들의 모국 상황은 여전히 열악했고, 죽음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 숙정은 괴로웠다. 숙정의 상태를 눈치 챈 친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쉬기를 권했다.
“너도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좀 쉬어.”
“아직은 쉴 때가 아니야. 요즘 일할 사람이 많지 않아.”
“일단은 좀 쉬어.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절망 덩어리부터 떼어 봐. 쉬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이참에 한국에 좀 가 있다 오면 어떨까?”
숙정은 친구들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친구들의 말이 아니었어도 그녀는 쉬어야 했다. 몸이 이상했다. 조금씩 아픈 것은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점점 힘들었다.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 너무 아픈 날이 많았고, 하루만 밤을 새고 일에 몰두해도 온몸이 무너지듯이 피곤했다. 몸은 피곤한데도 잠을 설치고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얼굴색은 거울을 볼 때마다 더 짙어졌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숙정은 쉬기로 작정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섬진강편 연재(프롤로그 : 숙정이의 동학 여행)는 5월 14일(목)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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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 [소설/유이혜경] - 섬진강은 흐른다(1)-연재를 시작하며-유이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