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더냐 - 작품을 시작하며
작품을 시작하며
-최제우와 최시형은 아비와 아들인줄 알았다
1.
정말 부끄러운 일을 하나 고백한다. 중고교시절 수업시간에 東學에 대한 설명에서 ‘민족종교를 창시한 최제우와 그를 이은 최시형’이라 들었을 때 사실, 난 두 지도자가 아비와 아들인줄 알았다. 아니라면 적어도 혈족관계는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동학이 종교라 하기에, 내가 이땅에서 보고들은 종교는 당연히 자손으로 세습되어지기에 응당 그런 줄만 알았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동학을 종교라는 틀 안에 가둘 때, 소가 웃을 일들이 이렇게 많이 벌어지는 것 같다.
2.
사람의 생각에 대해 고민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만나서, ‘당신의 생각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것도 무려 100년 하고도 다시 이십년을 거슬러 올라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일이었다. 운이 좋으면 역사의 한 귀퉁이에 이름이 있었고, 대부분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은 이들을 찾아서 묻고 답하는 일을 일 년 넘게 해댔다.
높은 도덕적 수준과 집단지성, 여기에 역사적 필연이 가져온 합리성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동학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혁명으로 발현된 것이 1894년의 시간들이었고.
사람은 타인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노비나, 여성 뿐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양반이라 할지라도, 일본이나 청에 러시아, 프랑스, 미국의 지배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음은 당연하다.
퇴로가 없음을 알게 된 동학군. 죽기를 각오한 이들에게 스나이더소총이나 무라타소총의 현대식 군사력은 두려움의 상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매한가지’라는 그들의 상황인식은 ‘사후세계’ 보다는 ‘살아있는 세상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3.
주변에서 나의 소설쓰기 시도에 대해 참 여러 반응들을 보여줬다. ‘경험삼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지’ ‘역사소설, 아무나 쓰는 거 아닌데’ ‘동학, 그거 용케 쓴다고 팔릴 것 같지도 않은데, 종이낭비?’ 등등.
다들 맞는 얘기다. 나를 아는 이들이 해준 말들이니, 결코 가볍게 듣지 않았고, 소설을 쓰는 내내 ‘이 짓을 왜 내가 하고 있지?’하는 생각도 무척이나 많이 했었다.
그런데, 동학하던 이들의 삶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한 가지가 분명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우리역사가 참 많이 왜곡됐구나,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해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야겠구나.
오기도 생겼다.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어간 이들. 항일운동으로 이어지며 가산은 탕진하고 집안은 풍비박산 난 이들. 성(姓)이나 이름까지 바꿔가며 살아야 했던 이들은 왜 감춰지고 덮여져야 하는지.
오기로만 끝날지, 나에게 더 큰 일들이 벌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동학을 알리는 데 작은 돌하나 올려놓았다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