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더냐(1회) -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 넓게 퍼져라
1장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 넓게 퍼져라
“우리 지네 잡으러 가자-.”
“그래 좋아, 가자, 가자.”
서당이 파하자 아이들이 떼지어 나왔다. 몇몇 녀석은 손에 주먹밥을 들고 헐레벌떡 튀어 나왔다. 책보를 허리에 묶는 둥 마는 둥 아이들은 짚신을 찾아 신기에 바쁘다.
“나도 같이 가, 우리도….”
툇마루에서 상현이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돌아가신 곽 할배가 자신들과 동무들을 가르쳤던 방에서 이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에게 주먹밥을 주는 것도 스승님에게 배웠고 그것을 만들어 주는 이도 매당댁에서 어머니와 자신의 아내로 바뀌었을 뿐 곽 할배가 하던 방식 그대로이다.
“지네 잡으면 우리 뭐 할까?”
“우리 엄니 줄 거다. 우리 엄니 요즘 돈 모아서 서책 만든다고 하시더라. 접장님들 드리면 좋은 책 주신다고.”
“그럼 떡 못 먹잖아. 난 떡 사먹고 싶었는데. 어떡하지?”
상현이는 아이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다. 아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했다. 지네 서른 마리를 잡아 약방에 가져다주면 한 푼을 준다. 그것이면 인절미나 엿을 살 수 있다.
“그럼 반은 엄니 드리고, 반은 떡 사먹어야겠다.”
툇마루에 앉은 상현이가 그 말을 듣고 껄껄걸 웃어댔다. 상현이도 저 무렵엔 칠성이형과 함께 지네와 굼벵이를 잡으러 산으로 들로 쏘다니곤 했었다. 아이들이 돌아간 자리엔 곽 할배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스승님도 이런 마음이셨을까?’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세상이 이리 미쳐 돌아가도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면 즐거웠다. 위안이 됐다. 왜놈들이 하루가 다르게 득실거리고 관아의 행패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지체 높은 양반들의 꼴사나운 허세와 그 양반을 쫓아 양반으로 뒤바뀐 사람들이 유세를 떨며 더욱 가혹하게 재물자랑을 하는 꼴사납고 어지러운 세상에 한숨을 쉬다가도 아이들 얼굴을 보면 힘이 났다. 나라의 근본이 백성인데, 근본이 없으니 나라꼴은 말이 아니다. 구린내 나는 민씨 척족들이 자릿값을 얼마 받았네, 과거에 급제하려면 얼마를 내야 하네 하는 얘기들은 이제 듣기도 지겨울 만큼이나 흔한 일이 돼 버렸다. 그래도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면 희망이 보였다.
‘그래, 저 녀석들이 벼슬에 나아갈 때쯤이면 세상이 좀 달라지겠지....’ 상현이는 나직이 뇌까렸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느냐?”
칠성이가 툇마루에 앉아 생각에 빠진 상현이를 깨웠다.
“형님, 언제 왔소?”
상현이는 툇마루에서 일어나 칠성이를 맞았다.
“뭘 그리 깊이 생각하는데 인기척을 해도 모르는 게냐?”
칠성이가 물었다.
“형님, 스승님 생각이 나서 그러우. 요즘 따라 스승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스승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고요. 스승님이 계셨다면 이 어지러운 세상을 어찌 견디셨을까요? 스승님이 강진민란의 주동자란 걸 우린 몰랐잖소? 이희인 도인이 스승님을 살리지 않으셨다면 우린 스승님도 못 봤을 거고.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을 길이 없었을 게지요.”
상현이가 곽 할배 생각에 잠깐 목이 메었다.
“허허. 스승님의 가르침?”
칠성이도 곽 할배 생각이 나서인지, 잠깐 목을 가다듬었다.
“서당하면서 그걸 몰라! 스승님은 우리보고 어서어서 자라서 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라고 하신 게여. 이 나라가 요 모양 요 꼴로 돌아가다간 다 죽게 생겼으니, 제대로 바꾸라고 말이여. 우리가 동학을 하게 된 것도 다 스승님의 가르침 때문이고. 만약에 다른 서당처럼 만날 천자문이나 외고 그랬다면 어찌 됐을까?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살리고 운수가 갈아드는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우린 아직도 남녀칠세부동석이나 들먹이며 여(女) 접장님들과 배움도 못하고 있을 것이고…. 아니지! 난 자네와 같이 한 서당에서 공부도 못했을 것이네. 난 양인이고 자넨 양반이니까.”
칠성이가 막걸리 한 잔 하고 구성지게 한 자락 뽑기라도 하듯 단숨에 술술 내뱉었다.
“형님은, 어찌 그리 말을 요령 있게 잘 하시오! 형님 말에는 대꾸를 못 하겠소. 명색이 서당 스승인데, 이거 원. 형님이 훈장 해야겠소.”
상현이가 앓는 소리를 한다.
“이 사람이, 농은 그만하자고. 그건 그렇고 어여 들어가지.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왔으니”
툇마루에 앉아있던 칠성이가 앞서 방으로 들어갔다.
“자네 이것 좀 보시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 일단 찬찬히 읽어보고 가감을 좀 해야 할 것 같으이. 목천 김은경 접주님께서 겨울이 지나면 곧 일을 단행하기로 결정을 하셨네.”
칠성이가 한지를 펼쳐 보였다.
상현이는 그게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수운 대선생님의 동경대전(東經大典)을 간행하자는 의론이 인근 동학도인들에게 널리 퍼졌다. 워낙 큰돈이 들어가기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며 도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모으고 있는 형편이다. 쌀이나 보리 한 줌, 계란을 가져오기도 하고, 베를 짜서 가져오거나 짚신을 짜서 가져오기도 한다. 도인들은 돈이 되는 것이든 아니든 자신들이 가져올 수 있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보태려고 했다. 목천, 천안, 직산, 전의 등지에서 도인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동경대전(東經大典)이 무엇이던가! 수운 대선생께서 이 세상과 인생의 이치를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이 아니던가! 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시는 연유와 지금 세상의 운수가 크게 갈아듦을 밝게 가르치는 성경(聖經)이 아닌가! 도인들은 회합 때마다 수운 대선생의 가르침을 서책으로 익히고 싶었던 간절함을 얘기했었다. 경진년(1880년) 강원도 인제 갑둔리에서 경진판이 인출되기도 했지만, 동학으로 몰려드는 이가 수천 수만에 이르니 어찌 감당할 수 있으랴!
“김은경 도인이 간행에 사용할 판본은 구해 두셨고 자네와 나는 김 도인을 도와 허드렛일을 해야 하네. 천안과 목천, 직산, 전의에서 자금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있네. 목천도인들은 동경대전 간행에 힘을 모으기로 했고, 나머지 지역의 우리 같은 젊은 축들이 각 지역에서 모은 자금들을 전달하기로 했네. 돈이 얼마나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베나 짚신, 닭, 떡 같은 것들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을 것이니 그걸 장에서 돈으로 바꿔야 할 것이네. 그걸 지역별로 돌아다니며 얘기하고 어찌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것이 우리 일이지. 참, 도인들이 가져오는 것은 반드시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일일이 기록하라는 김은경 도인의 말씀이 있으셨네. 꼭 유념하고 전해야 하니 훈장님께서 잘 기억하시게.”
칠성이가 찬찬히 설명했다. 얼마 전 상투를 튼 상현이와는 달리 칠성이는 아직도 총각이다. 어려서부터 형과 아우로 지냈지만, 손위 칠성이는 장가든 상현이를 어른 대접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동학도인들이 결정한 것을 상현이와 의논하는 것도 늘 먼저였다.
“알았소. 형님.”
상현이가 칠성이를 지긋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 그런 얼굴로 보시오? 훈장 선생, 무슨 걱정이 있소?”
칠성이가 농을 치듯 말했다. 상현이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마당을 내다보았다.
“왜? 안사람이 또 달걸이를 한 겐가? 허허. 아직 나이 젊은데, 이 형님 앞에서 세상 시름 다 가진 것처럼 그러지 말아라. 혹여나, 안사람 마음 상허게 허지 말고. 마음이 편해야 수태한다고,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디. 안사람이 마음이 넓어서 다행이지, 우리 같은 남정네들 밴댕이 속허곤 달라. 안사람 마음 잘 보듬어 주게나…. 헌디, 그건 그렇고 훈장님 씨가 너무 약해서 그런 건 아닌가?”
상현이의 마음을 바꿔볼 요량으로 칠성이가 농을 했다.
“에끼 형님두, 듣자듣자 허니 정말 너무 허시오. 성님은 장가도 안들었으면서 어찌 그리 잘 아는 게요?”
상현이가 어린아이처럼 입을 빼죽이 내밀며 칠성에게 말했다.
“훈장 선생은 서당에서나 훈장이고, 이 몸은 세상사에서 훈장이니, 장가를 들든 안 들든 그게 무슨 대수겠소? 아니 그렇소, 훈장 어른? 훈장 어른은 훌륭한 분에게 장가들었으니….”
칠성이가 한 번 더 농을 쳤다.
“이것이 간행소 도면입니다. 판각을 하고 인출을 하고 제본까지 하려면 이 정도 공간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세세한 것까지는 준비를 못했습니다. 한 번 살펴 봐 주십시오.”
김은경 도인이 도면이 그려진 종이를 건넸다.
“으음, 이만하면 적당한 것 같습니다. 허망하게도 경진년 것은 대부분 못쓰게 되었습니다. 작업 공간이야 이 정도면 충분하지요. 마음을 모으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 그다음은 순리대로 풀어 가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금이 많이 들어갈 터인데, 어찌 계획하고 계십니까?”
방금 전까지 새끼를 꼬던 작은 체구의 덥수룩한 턱수염을 한 사람이 공손하게 김은경을 응시했다. 하얀 수염과 눈가의 주름으로 봐선 지천명이 훨씬 지난 것으로 보였다. 낡은 옷에 갓도 쓰지 않았다. 짙은 눈썹과 깊은 눈매는 마음을 꿰뚫을 것만 같았고 유난히 큰 귀는 세상사 이야기나, 억울한 백성들의 사연을 다 들어줄 것만 같았다. 옆에 있는 작은 보따리도 주인을 닮아 낡기만 했다.
“도인들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목천이 중심이지만 천안과 직산, 전의현의 도인들이 힘을 보태겠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땔감이나 짚신을 가져오는 자도 있습니다. 돈이 없으니 물품으로라도 함께하겠다면서요. 정성이 지극합니다. 그래서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가 없습니다.”
갓을 쓴 김은경이 공손히 대답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동학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경전이 발간되면 우리 도인들이 수운 스승님의 가르침을 더 깊이 공부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동경대전 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실제로 계획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접주님의 결단이 대단하십니다. 이번 목천의 일이 성공한다면 우리 도인들에게 크나큰 복으로 올 것입니다.”
중늙이가 지긋이 김은경을 바라보며 말았다.
“예 그렇습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 뭇 생명들의 순리를 담은 수운 선생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조선을 살고 우리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백성을 어찌 대해야 하는지,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고 대접하는 그런 나라, 그 이치가 모두 동경대전에 들어있으니까요. 저는 동경대전을 간행하겠다는 결심을 할 때부터 여기 이 가슴에서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선생을 처음 뵙고 수신할 때와는 또 다른 울림이었습니다. 그 벅찬 마음에 며칠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처럼요.”
김은경이 그날을 떠올린 듯 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쓸었다.
“그러셨군요. 김은경 도인의 마음이 많은 도인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오랫동안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온 이 땅의 백성들에게에 동경대전은 큰 희망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턱수염의 노인이 김은경의 손을 붙잡았다. 손은 거칠었고 검버섯이 드문드문했지만 김은경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도인들의 허다한 마음이 모일 것입니다. 그것 또한 잊지 말고 기록하십시오. 땔감 하나, 보리 한 사발이라도 도인들이 가져온 것은 잘 기록해서 그 마음을 보존해야 합니다.”
김은경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같은 선생의 삶의 태도에 김은경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김은경은 단양에서의 그날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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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6 - [소설/변김경혜] - 꿈이 있더냐(2)-줄거리-변김경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