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꿈(1회) - 유배지(1)
1장 유배지(1864년)
“톡 톡 톡….”
동이는 며칠을 호되게 앓아 핼쑥해진 얼굴로 마당에 나와 하얀 비석치기 돌멩이를 발로 톡톡 찼다. 오늘은 꼼짝 말고 누워 있으라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마을에 귀양살이 온다는 사람이 궁금하여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달그락거리며 문고리를 잡고 망설이다가 기어코 일어나 마당으로 나왔다.
어젯밤 열이 올라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 아들 동이를 걱정하던 해주댁은 남편과 두런두런 이야기했다.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경상도에서 우리 마을로 유배형을 받아 온다는데 글쎄 이웃에 있는 아전 댁에 거처하게 되었대요. 얼마나 큰 죄를 지은 사람이면 그 먼 경상도에서 여기까지 오는 건지, 원”
“내일쯤 관아에 도착한다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오는 걸 보니 큰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해. 우리야 뭐 그 속을 알 수가 있나.”
화답이라도 하듯 뒷산에서 소쩍소쩍 구성진 소리로 소쩍새가 울었다. 진달래꽃이 지고 초록 잎들이 무성해지면 이즈음 마을에선 소쩍새와 검은등뻐꾸기가 자주 울었다. 열 살배기 동이는 죄를 지은 사람이 왜 이곳 황해도까지 오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죄인이라면 아주 무서운 사람이 오는 것일까?’
동이는 동네 입구에 있는 장승의 모습이며 절 입구에 있는 무서운 사천왕상을 떠올리며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마당에서 맴돌던 동이가 살그머니 사립문 밖으로 나오자 공깃돌 놀이를 하던 누이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픈 동생을 돌보라는 어머니의 말에 문밖에 나가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문간에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어머니가 너 아프니까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던?”
“이제 다 나았다, 뭐.”
"정말?"
비석치기 돌을 가지고 꼼지락거리던 동이는 아침에 밭일을 나간 어머니가 돌아오기 전에 그 죄인이 어서 왔으면 하고 조바심이 났다. 자꾸만 동구 밖 쪽을 내다보는데 오늘따라 매미가 손님맞이하듯 길고 요란하게 매암매암 울어댔다.
갑자기 마을이 소란스러워져서 동이는 더 참지 못하고 뛰어나갔다. 누이도 벌써 저만치 나가 있고 동갑내기 수돌이도 마을 어른들과 함께 무리지어 섰다. 들녘에서 돌아온 해주댁은 나물거리가 담긴 소쿠리를 내려놓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당산나무 앞에 서 있다가 동이를 보고는 눈을 부라리면서도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낯선 모습으로 행장을 차린 사람이 관아의 군졸들과 함께 들어왔다. 한적한 마을이라 타지 사람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장돌뱅이가 신기한 물건이나 이야깃거리를 들고 오는 날처럼 눈에서 눈으로 고갯짓이 오가며 분주했다.
‘나도 저기에 있는 수돌이처럼 곁에서 잘 보았으면 좋겠는데…….’
더 잘 보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의 손을 잡아끄는 순간 동이는 갑자기 온 세상이 깜깜해지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동이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동이가 깨어난 것은 술시도 다 지난 밤 무렵이었다. 자꾸만 무언가 무서운 것이 쫓아오는 것 같아 뿌리치다가 움푹 파인 시커먼 구덩이에 빠져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무언가 웅얼웅얼 낮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처음 보는 어른이 동이를 내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이제 깨어났구나, 잘 이겨내어 다행이다. 아주 용하구나.”
지친 듯 하였으나 마른 얼굴에 눈빛이 따스했다. 소스라쳐 일어나려는 동이에게 어른은 다시 조용히 말을 했다.
“아니다, 조금만 더 누워 있어라.”
구수하니 정감이 있는 목소리였다. 이마에 열이 있는지 만져 보더니 동이의 가슴께에 있는 이불을 살짝 토닥거려주었다. 낯선 사람과 함께 방에 있는 것이 겸연쩍은 동이는 일어나고 싶어 몸을 살짝 비틀었다. 툇마루에서 들여다보던 누이가 동이가 깨어나는 기척을 알아채고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동이요. 동이가 일어나려고 움직여요.”
허둥거리며 달려오는 아버지를 따라 누이도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방안으로 들어왔다. 동이는 아버지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자 반가운 마음에 얼른 손을 내밀었으나 힘없는 손목은 제풀에 풀썩 꺾이었다.
“아이구, 녀석이 이제 살아나네요.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아이가 힘을 잘 내었습니다, 허허”
집에 가고 싶어 꼼지락거리는 아들의 마음을 읽은 동이 아버지는 집에서 눈물바람을 하며 약을 달이고 있을 아내에게도 빨리 알리고 싶었다. 축 늘어진 동이를 보고 까맣게 타들어갔던 가슴에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졌다.
“아들 녀석은 지금 어떻습니까? 집으로 데려가도 되는가요?”
“예, 일단 어려운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시지요. 더 이상 열이 오르진 않을 것 같습니다.”
동이는 방문이 열리고서야 비로소 여기가 아전 댁인 것을 알았다. 초가지붕 밑에 굵은 기둥이며 댓돌이 높직한 이곳은 가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들어왔던 곳이다. 그런데 당산나무 아래 어머니와 함께 서 있던 자기가 왜 침통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이 방에 누워 있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해주댁은 약을 달이면서 두 손을 비비고 치성을 드리다가 아버지 등에 업혀오는 아들의 인기척을 듣고 달려 나왔다. 동이는 자기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쏟아놓는 어머니 넋두리를 통해 아까 자기를 보살펴주던 그 낯선 어른이 나라에 큰 죄를 지었다는 사람임을 알았다.
키가 많이 크고, 검고 마른 얼굴에, 목소리는 할아버지처럼 낮고 따스하고…. 그 어른의 생김새를 곰곰이 떠올려 보던 동이는 어머니가 먹여 주는 노르스름한 물을 한 종지 마시고 다시 혼곤한 잠에 빠져 들었다.
유배지에서의 첫날, 몸은 천길 만길 가라앉아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으나 백사길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평생을 깃들어 살며 떠날 일 없을 줄 알았던 고향 대추나무 골을 떠나 유배지로 명을 받은 황해도로 떠나오면서 백사길은 유뱃길을 걷는 내내 누군가 함께하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무너져 깨지는 고통을 겪고 나자 오히려 서서히 안개가 걷히더니 희미한 빛이 차올랐다. 용담정에서 수운 스승님을 만나 여러 동도(東徒)들을 사귀며 함께 공부했던 일들이 스치듯 하나하나 떠올랐다.
경주 대추나무 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사길은 심지가 굳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마을사람들의 신임을 얻어 향청의 우두머리 격인 좌수가 되어 향청에서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여 처리하고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기도 했다.
나라에서 임명한 수령이 임지로 내려오면 마을의 향청과 의논하여 정사를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전의 수령은 이방이나 호방을 향청으로 보내어 의견을 묻고 함께 의논할 일을 미리 기록하여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새 수령은 마을에서 영접하는 인사를 했을 때 이외에는 향청에 무엇 하나 의논하는 일이 없었다.
수령이 불법적으로 걷는 세금과 결세가 늘어나자 백사길을 찾아와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때마침 서해안이나 남해안에는 이양선까지 출몰하여 곧 조선 땅에 쳐들어온다는 소문에 마을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세상이 점점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는다는 생각에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어렸을 때부터 함께 공부하였고 마을 대소사를 함께 의논하던 친구 수암이 오랜만에 집으로 찾아왔다.
“자네 용담정에서 살던 근암공 아들 얘기를 들었나? 십 년 동안 세상 공부하고 다니다가 돌아왔다는데, 기도를 드리고 수련을 하는 중에 세상의 이치를 깨우쳤다는 소문이야. 같이 한번 찾아가 보세.”
백사길은 그 아들 얘기보다도, 근암 선생이 머물던 용담이라는 곳에 가 보고 싶은 마음에 길을 따라 나섰다. 용담 계곡은 흐르는 물소리로 시원했고 구미산 숲은 녹음으로 푸르렀다. 드문드문 많아지던 사람들이 언덕배기를 돌아 계곡에 접어들자 연락부절로 오고 갔다.
용담정에 도착하니 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집 안팎에 가득하고, 겨우 넘어다 본 방안에서는 수운이 한 자가 넘는 종이 가득하게 거북 구(龜) 자를 쓰고 먹물을 말리고 있었다. 막 발끝을 딛고 일어나 용틀임하는 것 같은 글씨를 보며 속으로 감탄하던 백사길은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찬찬히 수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하얀 두루마기를 단정히 입은 수운은 말소리며 사람을 응대하는 태도가 낮고 공손했다. 그러나 짙은 눈썹 아래 조금 커 보이는 두 눈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형형하게 빛났다. 백사길보다 앞쪽에 앉은 선비 차림의 사내가 질문을 하였다.
“나라의 기강이 문란하고 민란이 끊임없이 일어나 세상이 갈수록 캄캄하게만 느껴집니다.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이네. 모든 사람이 신령한 한울님을 모신 귀한 존재로 태어났으니 우선은 각자가 하늘을 모신 것을 스스로 깨우쳐 알아야 하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하늘의 지극한 기운과 하나가 되어 힘을 얻도록 하게. 하늘을 공경하고 천리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지러운 세상은 바로 되고, 캄캄한 눈앞은 밝게 열릴 것이네.”
백사길은 놀라서 수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디서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담담하게 이르는 그 말이 백사길에게는 천지를 깨치는 우렛소리처럼 들려왔다. 자기도 모르게 말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질문이라기보다는 가슴을 뒤흔드는 말에 대한 확인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모신 존재라는 말입니까?”
급작스런 목소리에 여러 사람들이 백사길을 돌아보았지만, 백사길의 눈에는 오직 수운의 얼굴만이 광채를 띠며 다가올 뿐이었다.
“그렇다네.”
“양반과 상놈의 처지가 다른데도 그렇습니까?”
수운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이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웅성거렸다.
“동귀일체(同歸一體)라네. 결국은 모두가 하나인 것을….”
수운이 방안은 물론이고 마루와 멍석이 깔린 마당까지 가득 찬 사람들을 향해 강론과 문답을 하고 자리를 뜬 다음에도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듣고 있는 내내 백사길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기쁨으로 환하게 차올랐다. 그들 틈에 끼여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백사길은 사람들에게서 수운이 집에서 부리던 두 여종을 수양딸과 며느리로 삼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부터 용담 계곡을 드나들며 강론을 듣고, 주문을 외던 백사길은 수운의 제자 중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쳐다보는 제자가 되었다.
수운 선생의 소문은 삽시간에 경상도 일대에 퍼져 나가 용담 계곡으로 통하는 길마다 오가는 사람들로 마른 먼지가 가라앉을 틈이 없었다. 상민, 천민을 가리지 않고 제자로 받아들여,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가르치고 대접하는지라, 그 부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양반 선비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근암의 혈육인 수운의 가르침이 근암 선생의 것과 어찌 다른지 자못 궁금해 했다.
게다가 수운 선생의 글씨가 귀신을 쫓는다는 소문이 돌아 글씨를 얻으러 오는 사람에, 하도 사람이 많으니 사람 구경하러 오는 사람조차 몰리면서 몇몇 사람들이 문앞에서 순서와 자리를 정하는 일까지 맡아 해야 했다. 한가한 마을인 가정리 일대에 일찍이 없던 장관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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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6 - [소설/박석흥선] - 동이의 꿈(2)-줄거리-박석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