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 연재를 시작하며
(사진 : 장흥의 동학군 대접주 이방언 장군 판결문)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 연재를 시작하며
봄햇살이 동백나무 잎새에 반지르하게 미끄럼을 타던 날, 평소 올곧은 역사교육을 위해 고향의 골목골목을 돌며 아이들에게 선조들의 자취를 찾아 혼을 불어 넣어주던 박병섭선생님께서 장흥으로 나들이를 주선해 주었다.
고은광순 선생님과 박맹수 교수님을 만나고 동학소설을 쓰겠다고 의지를 밝혔더니 늘 한결같이 국어교육에 대한 열망을 품어내는 동료 배선미샘도 동행해 주었다.
초등학교 근처에서 구두를 닦던 노인으로부터 장흥동학운동을 주도했던 증조할아버지인 이방언어른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우람했는지 전해 듣고 증조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평생을 장흥동학농민혁명회를 이끌어온 후손 이종찬 어른댁을 방문하고서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때 내가 가진 것이 비록 보잘 것 없는 언어능력이지만 거침없이 흘러온 거대한 강줄기에 옆에 작은 실개천으로 흘러가고 싶었다.
이방언 장군의 후손 이종찬 어른의 이야기는 갑오년의 혁명이 끝나지 않고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깨닫게 했다. 이방언 장군은 장흥에서 넓은 들을 지니고 그 들녁만큼 넓은 인맥으로 대원군이 찾아들어 며칠씩 쉬고 갈만큼 넉넉한 분이었다고 한다.
호방한 성격으로 관리들에게 결가세를 줄이기 위해서 담판도 하고 해박한 지식은 유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동학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데...늦둥이 딸은 갑오년에 집안의 종과 결혼을 하여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 후손이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방문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산자락 하나를 넘어서 민주화 운동을 거쳐 장흥농민운동의 대부, 그리고 향토사학자로 살아온 위의환님을 방문했다. 나는 평소에 전국역사모임을 이끌며 교육 현장에서 살아있는 역사교육을 해 나가는 선배과 친구들의 삶에 대해서 늘 경외감을 가졌다.
그리고 국어교사로의 내 삶에 대해서 약간의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언어로 뜻을 세우는 것을 얼마나 사삭스러운 일인지. 우리는 그저 허공에다 삶을 그리다마는 존재들이 아닌지. 그러나 위의환님의 거실에 떡하니 펼쳐진 이소사의 거대한 초상화를 보고 용기를 냈다.
그래! 어쩜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그렇지만 시작해 보자. 그분들의 거룩한 뜻을 언어로 세워 보는 거야.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시간 장흥들판을 거닐며 젊은 이소사와 만났다. 22살의 이소사는 나에게 그 나이에 죽어간 5.18 박관현열사를 떠올렸고, 망월동에 묻힌 수많은 영혼들과 만나게 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 삶이란 유한한 것이야. 다만 뜻을 좇아갈 뿐이란다.
이 글을 처형된 고흥 접주 명사홍님의 혼에게 바치고 싶다. 전남 고흥에서 명씨는 내 고향 나로도에만 있다. 아마 명사홍접주는 나의 고조나 증조 할아버지일 것 같다. 어린 시절 여순반란사건으로 처형된 이웃집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자랐기에 그 할아버지의 영혼에 가난한 내 정성을 바친다.
작품 줄거리
장흥의 대접주들은 개인기에 탁월했다. 무기를 수합하고 전술에 뛰어난 이인한과 많은 인맥을 동원하여 토호들에게 군량미를 대게 했던 이방언, 그리고 험한 산세를 꿰뚤고 있는 구교철과 지략을 겸비한 이사경, 그들은 탁월한 지도력으로 벽사역에서 시작하여 장녕성, 강진성, 병영성을 점령하여 4승을 기록한다. 그때의 동학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이들의 전투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난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고 그동안 치열하게 지역구를 관리한 소득이었다. 이인한은 대흥면 일대를 중심으로 장흥 주변의 섬에 들어가 포접을 하고 이방언은 남면 일대에 도인들의 세력을 구축한 것이다.
장흥전투에서 또한 역량을 발휘한 도인으로 이소사를 든다. 이소사는 22살의 미모의 여성으로 신녀라고 불리우며 말을 타고 장녕성 전투를 지휘하여 부사 박헌양을 처단하면서 당당하고 의기롭게 전투에 참여하였다. 또한 십대의 소년 최신동 또한 장엄하게 전투에 참가하며 도인들의 사기를 돋았다.
병영성 전투에서 이방언은 한 스승아래에서 공부한 친구 김한섭이 민보군으로 출전하여 설전을 벌이기도 하며 승승장구하는데 안타깝게도 일본군의 개입으로 도인들은 밀리게 된다. 조정에서는 선봉대장을 파견하고 좌우위 선봉대장 이규태와 이두황은 서로 경쟁을 하듯 도인들의 탄압에 혈안이 되면 일본에서 민란 진압으로 악명이 높은 남소사랑의 19대대가 장흥으로 몰려오게 된 것이다.
이미 부상을 당한 이소사와 최신동이 잡혀서 나주로 압송되고 천관산으로 숨어 들었던 이인한도 주민들의 신고로 잡히게 된다. 처형된 장흥 부사 박헌양의 아들이 조직한 개인 군대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산야를 샅샅이 뒤지며 도인들을 색출한다. 남소사랑의 회유책도 끈질지게 지속되어 도인들은 하나둘 잡히게 된다.
대접주 이방언은 잡혀서 서울로 압송되었으나 대원군의 조치로 풀려 났지만 다시 시작된 일본군의 도인 색출작전에서 그만 잡혀서 아들과 함께 장흥에서 처형되고 만다. 이소사는 나주에서 무릎이 짓물러서 고통에 시달리는데 배후를 깨기 위해서 일본군들은 치료까지 해주고 남편을 불러서 간호를 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이소사는 자신의 뜻을 당당하게 전하며 최신동과 함께 처형을 당한다.
한편 남쪽으로 쫓기던 도인들은 소년 뱃사공의 도움으로 섬으로 숨어 들어가고 그들은 섬사람들의 도움으로 한 사람도 잡히지 않고 생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뜻을 이어서 1919년 3.1운동의 주역이 된다.
세월이 흘러서 이방언의 증손자인 이종찬은 대접주들의 후손을 찾아서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회를 만들고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기념관을 설립하는 일을 주관한다. 그리고 일본에서 찾아온 이방언 장군의 외손자들을 맞이하며 동학의 이념이 일본에서도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를 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형상화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