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꿈(2회) - 유배지(2)
그러나 용담 계곡의 그 장관은 오래가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주문을 왼다, 천제를 지낸다, 검무를 춘다 하는 소문이 퍼져 나가자 경주 관아에서 관인을 보내 사람을 모아들이고, 가르치는 일을 일절 중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섣달을 며칠 앞두고, 수운은 조용히 행장을 꾸려 애제자 중희만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백사길은 간 곳을 모르는 스승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집에서 주문 공부에 정성을 기울였다. 가끔씩 인편에 가르침을 담은 가사를 전해 오는 것으로 스승이 강건하심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가 바뀌어 봄이 오고, 여름이 한창에 접어들었을 때 홀연히 스승이 대추나무 골 백사길의 집에 나타났다.
스승은 당신이 머무는 것을 일체 입 밖에 내지 말도록 당부하고 백사길은 그 말에 따랐다. 어느날 어떻게 알았는지 검곡의 최경상이 문안을 드리러 오고 그 후로도 제자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결국, 수운 스승님은 다시 용담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맞이했다. 오랫동안 수운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전보다 더욱 부지런히 용담 계곡을 메워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주 관아에서 관졸들을 풀어 수운을 붙잡아가더니 옥에 가두고 말았다.
수운은 며칠 후 풀려나와 용담으로 돌아왔지만, 한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사절하였다. 그러나 이미 몰려드는 사람은 인력으로 어찌 할 수 없이 늘어만 갔고, 경상도 일대 도처에서 동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펼쳐졌다.
수운은 용담을 떠나 경상 북부 지역의 제자들 집을 전전하며 글을 쓰고 가르침을 펴 나갔다. 그해 임술년(1862) 그믐, 흥해 매곡동 손봉조의 집에 머물고 있던 수운은 각처에 통문을 돌려 주요 제자들을 모이게 했다.
“이제 우리 도를 펴고 가르침을 베푸는 일도 차제와 법식을 갖추어야겠기에 각처에 별도의 접을 정하고, 접주를 임명코자 하오.”
경주 부서 접주가 된 백사길에게도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상도 일대는 물론, 충청도 지역의 마을마다 시천주 소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드높아지고, 동네 아이들도 거리낌 없이 주문과 용담 가사를 외며 돌아다니게 되자 인근의 서원까지 나서서 동학을 엄금하라는 통문이 나돌았다. 곧 조정에 상소가 잇따라 당도했다.
“동학은 하늘을 섬기니 천주학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소. 백성들이 몰려들어 풍속을 어지럽히니, 엄단하여 훗날의 화근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해 겨울, 조정에서 파견한 정운구는 수하를 동학 입도자로 가장하여 용담 일대의 형편을 탐문하고, 경주 관아의 포졸들을 동원하여 수운을 체포하였다. 수운은 사도로서 민심을 현혹하고, 검무로써 모반을 꾀한 대역죄인이라 하여 참혹한 고문을 당하였으나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당당히 동학의 교의와 보국안민의 대의를 설파하였다. 대구 감사 서헌순과 심문관들은 산에서 제사 지내며 검으로써 모반을 꾀한 일로만 몰아붙인 끝에 사형에 처할 것을 결정하고 말았다.
수운은 벚꽃이 점점이 흩날리는 갑자년(1864) 3월 10일(음) 대구 관덕당 뜰에서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참형을 당하였다. 조선왕조가 신봉하는 주자학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며 좌도난정률의 조문을 적용하였고 참수한 후에는 남문 밖에 사흘 동안 효시했다. 백사길도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대구 옥에 갇혀 재판을 받았다. 엄중한 취조 끝에 황해도 문화현으로 유배형이 내려졌고 함께 공부한 도반들도 각처로 유배형을 받아 흩어졌다.
황해도는 땅이 거칠고 메마르며 서리가 일찍 오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쪽으로는 서해 바다가 자리하고 넓게 펼쳐진 재령평야와 연백평야가 있어 벼슬아치들이 너도 나도 한 자리 차지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곳이기도 했다.
유배지에 온 날 밤, 백사길은 결국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오히려 정신은 또렷이 맑아지기만 했다.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흩어진 마음을 모았다. 주문을 나지막하게 외며 기운을 바르게 해 나갔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그렇게 주문을 외기를 한 식경이나 했을까. 땅 속으로 깊게 침잠하듯 앉아 있는 스승님이 나타났다. 그것은 체포되어 천릿길을 오가던 스승의 모습이 아니었다. 스승은 눈부시도록 찬란한 빛 속에 쌓여 자신을 보며 환히 웃고 있었다.
‘아아, 스승님…….’
스승님을 부르려고 하는데 말은 나오지 않고, 뜨거운 눈물이 먼저 흘렀다. 스승님의 죽음이 허망한 끝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며 백사길은 희열인 듯 통곡인 듯 울음이 터져 나왔다. 스승의 환한 미소는 벼랑에서 떨어지는 백사길을 안아 올리는 찬란한 날갯짓이었다.
다음날 동이는 새벽닭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에 나가려고 옷을 추스르던 해주댁은 동이가 꼼지락거리며 일어나는 기척을 보이자 윗목에 놓아두었던 약 종지부터 얼른 동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니? 참말로 큰일 날 뻔했지, 어서 이 물 마셔라.”
“어머니, 이게 무슨 물이지요?”
“응, 이게 경주에서 온 어르신이 처방해 주신 약이다. 동이야, 너 아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폭이다. 맥없이 축 늘어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알고 보니 그 어른이 공부도 많이 한 좌수 어른이란다. 침도 잘 놓고 약이 될 만한 것들을 많이 알고 계시더라. 너에게 약이 되는 것들을 여러 가지 일러 주시는데 마침 수돌 엄마가 구월산에서 캐다 말린 승검초 뿌리가 있어서 이렇게 달인 거야. 그런데 그 어른이 동학이라는 것을 믿고 경주 접주라나 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그것이 나라에서 엄하게 금지하는 것이라 벌을 받고 이렇게 쫓겨났다더라.”
“어머니, 동학이란 것도 있어요?”
“글쎄, 그것이 저 아랫녘 사람들은 너나 없이 따르는 것이라는데 이 에민들 어찌 알겠나?”
퀭하지만 어제와는 달리 영기를 되찾은 동이의 눈망울이 순간 반짝 빛났다.
백사길은 새벽 어스름부터 마당에 나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우람진 산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제법 골이 깊고 산세가 웅장한 것이 고향의 토함산을 닮았다. 어제와는 달리 동네의 정경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집집마다 두툼하게 이엉을 덮은 초가집 주변에 배나 사과 같은 과실수를 심어 놓은 것도 정겨웠다.
“어르신, 일어나셨어요? 제 자식 때문에 오시자마자 혼을 쑥 빼셨습니다.”
돌아보니 어머니의 남색 치맛자락을 붙들고 어제보다 훨씬 보기가 나아진 자그마한 아이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백사길을 바라보고 섰다. 황해도 여인의 태도는 투박하지만 남정네인 자신을 보고도 가리거나 미루는 기색 없이 활달했다.
황해도에 접어들면서 백사길이 눈여겨 본 것은 예사 백성들의 행동거지였다. 그중에서도 색다른 것이 있다면, 천민이 아닌 상민들도 남녀 간의 내외가 없다시피 한 모습이었다.
어제도 백사길은 자기가 머물게 된 아전 한상유 집에서 남녀가 한 밥상에 마주앉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백사길은 아이의 안색을 찬찬히 살피며 물었다.
“잠은 잘 잤니? 이제는 좀 나아졌는가?”
“아이고, 그냥 다 죽어서 저세상으로 간 것을 끌어올린 폭이 아니겠습니까? 제 자식을 살리셨습니다.”
해주댁은 허리를 납작하게 구부리며 자식 살린 어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앞으로도 승검초 뿌리나 단너삼 뿌리를 몇 번 더 달여 먹이십시오. 그리고 워낙 몸이 허하니 기력이 회복되면 침을 좀 놓아 주겠습니다.”
백사길은 동이를 보면서도 당부했다.
“잘 먹고 얼른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네 나이가 몇 살인고?”
동이가 겸연쩍어하며 미처 말을 못하자 어머니가 대신 거들었다.
“열 살 먹었습니다. 이렇게 아직 몸이 작지만요.”
“그래 서당은 다니고 글공부는 하니?”
해주댁은 아이 대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고모부한테 가끔씩이나마 배웠는데 지난해에 돌아가신 뒤론 통 글공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백사길은 다시 한 번 동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르고 갸름한 얼굴에 핏기가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기력이 약하고 입이 짧은 아이일 터였다. 그러나 아이의 제법 영특해 보이는 눈망울에 백사길의 마음이 잠시 머물렀다. 그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두어야 할 인연을 이렇게 만나는 게지…….’
두 달 후 동이네 집 건넌방에 작은 서당이 하나 꾸려졌다. 백사길은 소일 삼아 아이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고, 아전 한상유는 동네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무슨 일이든 해도 좋다고 했던 것이었다. 서당에 다니지 못하는 마을 아이들이 소문을 듣고 한 명 두 명 찾아오기 시작했다. 백사길은 누가 오든 마다하지 않고 맞아 들였다. 여자아이든 노비의 자식이든 가리지 않았다. 동이의 누나 윤이도 동이 옆에 앉아 글자를 배우게 되었다.
백사길은 미리 써 놓은 글자를 펼쳐 놓고 커다란 소리로 읽게 하였다. 글을 익힐 때까지 기다려 주는 훈장님은 다른 어른들과는 달리 야단치는 법도 없고 매를 들지도 않았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이나 마친 후에는 눈을 감고 심고를 하게 했다.
처음에는 자주 까먹던 아이들도 차츰차츰 공부하기 전에 눈을 감고 의젓하게 심고를 하게 되었다. 동이는 공부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공부 시작하겠습니다.’ ‘공부 마쳤습니다.’라고 웅얼거렸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맑은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이었다. 백사길은 공부를 끝낸 동이와 수돌이가 쑥부쟁이에 앉아 있던 잠자리를 잡아 날개를 떼고 날아가지 못하도록 장난을 치며 키득거리는 것을 보았다.
“동이와 수돌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잠자리를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헤헤, 이렇게 하면 얘는 날지 못하고 이렇게 돼요.”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수돌이의 손바닥 위에 한 쪽 날개가 찢긴 잠자리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파닥거렸다. 백사길은 잠자리를 놓아 주게 하고,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여 앉도록 했다. 동이와 수돌이도 쭈뼛거리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지?”
“한울님이요.”
“그렇지. 잘 아는구나. 그런데 저 나무나 곤충에게도 너희와 똑같이 한울님이 있다. 잠자리에게도 생명이 있고 한울님이 있는 거야.”
“사람한테만 있는 게 아니구요?”
“그래, 사람이 소중한 것처럼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소중한 것이다. 마당에 있는 돌멩이나 빗자루도 다 귀한 것인데 하물며 생명이 있는 것은 오죽하겠느냐? 내가 힘이 있다고 힘없는 생명을 함부로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라. 나보다 힘센 사람이 나를 함부로 하면 마음이 어떠하더냐? 그렇게 당할 때도 그게 장난처럼 느껴지더냐? 누가 네 팔을 비틀고 뽑아 내려 든다면 어떻겠느냐?”
동이와 수돌이는 얼굴이 점점 굳어지며 고개를 푹 숙였다. 생각만 해도 오싹한 일이다. 잠자리에게 한 것처럼 누가 자신의 팔과 다리를 가지고 함부로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니 몸이 자기도 모르게 오그라들며 움츠러들었다. 울상이 된 동이가 먼저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저도 잘못했습니다.”
“그래, 작고 힘없는 생명이라도 소중히 대하여라. 하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하찮은 물건까지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느니라. 너희들은 저기 저 하늘처럼 넓은 마음으로 힘없고 자그마한 것들까지 품어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예.”
두 아이들은 스승이 가리키는 하늘을 말없이 돌아다보았다.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드높았다. 백사길이 두 아이의 잔등을 따스하게 쓸어주니 금세 아이들의 얼굴이 풀어지며 빙그레 웃음이 담겼다. 두 아이는 얼른 잠자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풀숲에 놓아 주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날개를 붙여 하늘로 날려주고 싶었지만, 한번 떨어진 날개를 붙여 줄 방도가 없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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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6 - [소설/박석흥선] - 동이의 꿈(3)-박석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