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꽃(5회) - 칠산바다 닻배 조기잡이
오늘은 박중진의 닻배 출어일이다. 한식날 지나 여섯물이었다. 한식날에 맞추어 떠나면 망종살까지 두 달여간 배에서 살며 조기를 잡았다. 날씨가 청명하면서도 바람이 적당히 불어 포구에 나온 사람들마다 얼굴이 환했다. 닻을 촘촘히 매단 닻그물부터 배에 실었다. 박중진의 아내가 겨우내 들기름을 먹인 면사로 짠 그물이었다. 그물 윗벼릿줄은 짚으로, 아래 벼리는 칡줄을 꼬아 만들었다. 선원은 선주 박중진을 포함해서 열네 명이었다. 선원 중에는 고군면 손행권 부자도 끼어 있었다. 각자 두 달 간 먹을 식량과 김치, 껴입을 옷에 우장, 앞치마, 손토시를 챙기니 짐이 커져 둥둥하니 한 짐씩 짊어지고 배에 올랐다.
배는 돛이 팽팽해져서 굽을 치는 말처럼 곧 달려 나갈 태세였다. 울긋불긋 깃발들도 바람을 가득 안고 부풀었다. 파란 하늘에 펄럭이는 빨강, 노랑, 검정 색색의 깃발이 고왔다.
풍장소리가 시작되었다. 쇠가 높고 강한 소리로 좌중을 일깨우자 북이 부르르 떨며 화답했다. 곧이어 징소리가 묵직하게 이 모든 소리를 미는 듯, 얼싸안는 듯 울렸다. 두 달 내내 선원들이 함께 할 가락과 소리였다. 그물을 당길 때는 어부들의 힘을 모아주고, 내릴 때는 어부들의 기대와 시름까지도 바다에 내려줄 것이었다. 바닷가에 배웅 나온 가족들이 가락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배 안에서 고사가 시작되었다. 상에는 돼지머리가 놓였다. 박중진은 한울님께 정성껏 심고를 드렸다. 선원 열네 명 중 여덟이 동학도였다. 그들도 입을 달싹거리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고사를 끝내고 배웅 나온 사람들에게 떡과 술을 나눠 주었다. 조류가 느린 정조 시간이 끝났다.
물이 들기 시작하자 선원들이 노를 잡았다. 넓은 판자를 댄 뱃전 양쪽에 노군들이 세 명씩 섰다. 닻을 끌어올렸다. 배가 들물 따라 수월하게 움직였다. 울돌목처럼 여울이 급한 곳만 조심하면 저녁이 되기 전에 칠산 바다에 도착할 터였다. 배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바닷가에 나온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배를 향해 비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원들도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가족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바닷가에 선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더니 곧 보이지 않았다.
하조도에서만 오늘 일곱 척의 닻배가 뜨고, 나배도에서 아홉 척, 관매도에서 일곱 척의 배가 떴다. 배 안 여기저기에서 콧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 아들 종인과 함께 닻배에 타게 된 손행권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이, 넋 놓고들 있지 말고 풍장소리나 허세.”
선원 김씨가 얼른 쇠를 잡아 가락을 이끌었다.
“채잰채잰 챈챈”
목청이 좋아 으레 소리를 맡아 하는 임씨가 풍장소리를 매겼다.
돈 실러 가자 돈 실러 가자
칠산 바다로 돈 실러 가자
풍장 소리가 시작되자 다들 기분을 추스르고 박자에 몸을 실었다. 고개로 박자를 맞추더니 궁둥이까지 들썩들썩 흔들었다.
이 그물 실어 돈하고 사면
우리 배 배 임자 어깨춤 추고
배 임자 마누라 궁치춤 춘다
재잰잰잰 잰잰
쇠 치는 이가 첫 노래는 양성으로 치고, 두 번째 노래는 왼손으로 꽹과리의 안을 대어 내는 소리인 음성(陰聲)을 내자 노래 분위기와 딱 맞는 장단이 나왔다. 박중진이 일어서서 수건을 머리에 쓰고 엉덩이를 씰룩씰룩거리며 마누라 궁치춤을 흉내 내자 와그르르 웃음이 터졌다.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뱃전에 닿을 듯 따라오던 갈매기가 저만치 멀어졌다.
풍장소리에 어깨춤을 추며 진도 체도 옆을 지나갈 때쯤 선원들도 고향 생각을 떨어냈다. 손종인은 아버지 옆에서 노를 저었다. 손종인은 처음으로 조기잡이 닻배를 타는지라 가슴이 뛰었다. 닻배를 가져야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몇 년 간 박중진에게 조기잡이 기술을 배운 후에 닻배를 장만하는 것이 꿈이었다. 순녀와 결혼하면 그녀가 짠 닻그물을 싣고 자신은 조기를 잡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번 조기잡이에서 번 돈으로 집칸을 늘린다고 하였다. 종인과 순녀가 거처할 집이었다. 종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배는 벽파진을 지나고 있었다. 해남 옥동항이 지척으로 보였다.
한낮이 되었다. 썰물로 바뀌어 물살을 거슬러 가느라 허리가 휘고, 노 젓는 어깨가 불뚝불뚝 솟았다. 새벽밥 먹고 출발했는지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밥 짓는 화장이 일어나 점심 채비를 서둘렀다. 넓죽한 돌로 아궁이 바닥을 하고 네모난 돌 세 개를 세워 화덕을 만들었다. 화덕 두 개를 만들어 솥을 얹은 다음 장작을 지폈다. 밥과 국이 끓으면서 곧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다들 입에 침이 고였다. 꼭 필요한 노군들을 제외한 장정들이 화덕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았다. 된장국에 보리와 고구마를 섞은 밥이었다. 간간이 쌀도 보이는 게 선주가 인심으로 한 주먹 넣은 모양이었다.
“이르케 툭 터진 바다 우에서 밥을 묵은께로 참 신선이 따로 없구마이.”
“더런 놈의 땅 우에서 살지 말고 조세도 없고, 관아 서리도 없는 바다 우에서 잠도 자고 밥도 묵고 살었으믄 좋것네.”
“새끼도 까고이.”
“배 우에서 하는 맛이 출렁출렁 진짜란디?”
“배 우에서 배를 타믄 출렁출렁 고것은 누구 배를 탄 것이까?”
진도 태생 아니랄까 봐 아무렇게나 말을 해도 타령이요, 사설이다. 밥을 먹은 노군들이 교대를 해 주었다.
“이러구러 하다봉게 칠산 바다가 쩌그구나. 신소리 떫은 소리 고만 하고 일어나세.”
박중진이 중모리 장단에 맞추어 소리를 하며 일어났다. 화장은 밥 먹은 그릇을 바닷물에 부시어 담았다.
열 시진을 가니 드디어 칠산 꼭대기가 보였다.
“법성포 건너펜 구수산에 철쭉꽃 떨어지고 살구꽃 피먼 참조구 알 슬 때가 된 거여.”
조기는 제가 태어났던 바다에 와서 알을 낳는 습성이 있어 제주 남서쪽 바다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칠산 바다로 돌아왔다. 철쭉꽃이 지는 이맘때쯤이면 백여 리 폭의 칠산 바다는 조기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들물에 조기를 잡아야 했으므로 박중진 일행은 서둘러 이른 저녁을 지어 먹고 조기 탐색에 나섰다. 속을 비운 대나무 장대를 바닷속 깊이 집어넣고 구멍에 귀를 대면 조기가 부레를 신축시켜 낸다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름 논 개구리 떼 소리 같기도 한 구-구 하는 높고 큰 소리 때문에 조기를 ‘염불파어’라고도 했다. 대나무 장대로 조기를 찾는 기술은 진도 사람들만 아는 것이라 흑산도에서부터 조기를 따라온 신안 사람들도 와서 구경했다.
옮겨 가며 조기 울음소리를 찾다가 어장을 할 자리를 잡으면 닻을 내렸다. 뱃머리를 서쪽으로 돌렸다. 좌현에 조류가 닿게 한 후 우현 뱃전에 그물을 내려놓고 들물에 올라오는 조기가 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다들 말이 없었다.
서쪽으로 내려앉던 해는 바닷속으로 꼴깍 자맥질하더니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고는 꼬르르 잠겨 버렸다. 구름은 붉은빛이 차츰 보랏빛으로, 검은빛으로 바뀌다가 그마저 어둠이 덮어 버리고 바다는 검게 번들거렸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한기가 몰려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선원들은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옷 위에 두툼한 앞치를 두른 후 박중진의 신호를 기다렸다.
바닷속을 응시하던 박중진이 순간 오른손을 들었다. 선원들은 조용하면서도 민첩한 동작으로 후닥닥 우현 뱃전에 붙어 섰다. 그들은 옆구리를 뱃전에 바짝 붙인 후 그물을 움켜잡았다. 거친 숨소리 속으로 팽팽한 긴장을 일시에 깨뜨리는 소리가 터졌다.
“재잰잰잰”
그물을 당길 때 쓰는 짧고 강한 가락이었다.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우리네 그물은 어야 술비야
삼천발이요 어야 술비야
놈으네 그물은 어야 술비야
오백발이다. 어야 술비야.”
그물 당기기는 여럿이 손이 맞아야 했다. 풍장소리에 맞추어 그물을 당기니 그물이 쭉쭉 올라온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었다. 한 시진은 더 당겨야 하고, 중간에 쉴 수도 없다. 그물코에 머리가 걸린 조기가 물 밖으로 나오면서 파닥거렸다. 조기가 많이 걸린 성 싶으면 당기는 어깨에 절로 힘이 간다. 그물을 반 넘어 올리니 허리는 뻣뻣해져 오고 등짝에는 땀이 비 오듯 했다. 이마에서 콧등을 타고 턱 밑으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눈에 땀이 들어가 따끔따끔 하지만 손으로 훔칠 수도 없었다. 머리를 흔들어 땀을 털어냈다. 그물 당기는 팔이 천근만근이 된 듯 감각이 사라졌다. 후렴 소리가 점점 악 쓰는 소리로 변해 가자 상쇠가 가락을 조금 늦추어 주었다.
“어야 술비야 어야 술비야
그물코가 어야 술비야
삼천이믄 어야 술비야
걸릴 날이 어야 술비야
있드란다 어야 술비야.”
그물 끝이 다가오는지 당기는 게 좀 수월해졌다. 끝을 향해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드디어 칡넝쿨로 꼰 줄과 닻이 걸려 나왔다. 끝이었다. 그물을 모두 갑판에 들이고 선원들은 철푸덕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느 새 꽹과리 소리도 멈추었다. 하지만 잠시도 숨 돌릴 틈이 없다. 조기를 떼어 내고 들물에 다시 한 번 그물을 내려야 했다. 모두들 그물을 차곡차곡 개어 가며 조기를 떼어 내느라 여념이 없다. 종인이 속도를 내지 못하자 어른들이 바짝 다가앉아 그물의 양을 줄여 주었다. 조심하느라 하는데도 종인은 조기 머리를 떼어 버리고 배창자를 터뜨릴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조구가 뭔 죄냐? 효수시키지 말어라.”
그물에 걸린 조기를 조심스레 빼 보려 하지만 여전히 그 모양이다.
“조구만도 못한 놈 소리 들어 봤냐? 뭔 소린지 알고나 들었냐?”
“아니라우. 그냥 ‘새대가리’ 허대끼 멍충하단 말인 중 알었는디 뭔 뜻이 있다요?”
“철모르는 놈이다 그 말이여. 조구는 때 되믄 여지없이 오는디 사람 새끼는 갈쳐야 알재 뭣을 안다냐?”
“첨부터 잘하믄 우리 같은 사람이 어뜨케 큰소리 치고 산고? 거 젊은이. 앉어서 할랑게 죽것재? 뒤로 빠져서 쪼까 쉬어.”
손행권과 함께 온 진도 본섬 출신 노군이 손종인을 위해 한 소리를 해 주었다.
“젊어 농게 장딴지가 실팍해갖고, 저 봐라, 저는 앙근다고 앙겄어도 엉거주춤하니 다 앙거지질 안 해. 그랑게 더 뻗치재. 우리 봐봐. 늙은이들은 고개가 물팍 속으로 들어가 부러.”
“젊은 거 같이 좋은 것이 어딨다냐? 아야, 너는 뭣할라고 꼬박꼬박 나이를 처묵어 부렀냐?”
안씨가 유난히 말라 옆에서 보면 세운 다리밖에 보이지 않는 김씨를 어깨로 밀쳐대며 농을 던지자 김씨의 대거리가 즉각 터져 나온다.
“이놈아, 묵을 것이 없어 배고파 디지것는디 나이라고 사양하것냐? 곱절로 줘도 묵어 불 판이다.”
※ 삽입 그림 출처 : "여유가 넘치는 바닷가" by 데이빗두, used under CC BY 2.0/ Added color tone and cropped from orig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