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언니들의 "여성동학다큐소설"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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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학언니들'이라니?
A '동학하는 언니들'이기도 하고, '동학을 사랑하는 언니들'이기도 하고, 지금여기에서 당장하는 일로 놓고 말하자면 '동학소설쓰는 언니들'이지! 모두 14명이야.
Q 그러니까, 왜 갑자기 언니들이며, 동학이냐고?
A '동학' 알아? 동학? 사실, 동학이라면 교과서에도 나오니 아는 것도 같고,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아는 게 별로 없어. '동학언니들'도 '동학'이라고 하면 전봉준, 황토현 정도 아는 게 전부였던 사람들이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학이 우리에게로 왔어. 마치 태몽을 꾸듯이. 그렇게 우리에게로 온 동학을 만나 얼굴을 부비며 서로의 진면목을 알아가다 보니, 하이고, 우리 동학이 지난 150년 동안 너무도 천덕꾸러기로, 잊혀지고, 왜곡되고, 얻어터지고, 난도질 당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그걸 붙들고 울고불고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거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 동학을 제대로 알려야겠다. 동학의 역사에 깃들어 있는 수십만 동학군들의 성령을 제대로 살려 모시는 굿 한판을 벌여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Q '언니' 얘기는 언제 나와?
A 그러자면,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물어보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네 사람이 되고.... 어느덧 열네다서여섯 사람이 모이게 됐어. 죄다 여자들! 열네 명은 소설을 쓰고, 두 명은 뒷바라지하는 사람들이 됐어. 아니, 사실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셈이지. 어느날 갑자기 '동학' 얘기를 입에 달고 다니는 부인을 보며 걱정어린 눈초리를 보내던 남편들이 '외조'하기 시작하고, 으쌰 으쌰 응원하는 아이들, 동료들.... 첨엔 모두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던 사람들이, 우리가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모두들 "열씨미, 열씨미, 열씨미"라고 하게 된 거지. 거기에 동학 선생님 박맹수 원광대학교 교수. 그리고 답사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지역의 여러 사람들, 후손들, 학자들, 동학하는 사람들, 천도교인들.... 그들이 모두 '동학언니들'일지도 몰라. 암튼, 직접 소설 집필에 참여한 동학언니들은 중고등학교 교사도 있고, 시민운동가, 명상지도사, 스토리텔링 강사, 자유기고가 등등이야.
Q 그래서?
A 소설을 쓰기로 했다니까!
Q 소설? ㅎㅎㅎ! 그렇게 뚝딱?
A 무모하지. 지금까지 소설을 읽을 줄만 알았지, 소설 쓰기의 '소' 자도 손대 보지 않았던 언니들이었거든. 첨엔 소스라치게 놀라고, 아니라고 발뺌하고, 도망치려 하고... 했지. 그치만, 결국 이제는 돌아와 '동학' 앞에선 내 언니 같은 언니들이 되고 말았지. 질문에서 하나 고칠 게 있는데, "뚝딱!"은 아니었지.
Q 그래서, 어쨌든, 소설을 썼다?
A 썼지. 아니,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 소설을 만들었지. 아니, 이것도 아냐! 소설이 우리에게로 왔어!
Q '우리에게로 왔다'.. 그 얘긴 좀 있다 듣기로 하고, 소설이면 소설이지, 여성, 동학, 다큐는 뭐지?
A 우선은 현 시점에서 동학을 새롭게, 제대로 이야기하기에는 여성성의 시각이 최우선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선 거야. '동학언니'들이 여성이어서도 그렇지만, '여성성'이 꼭 생물학적인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란 얘깆, 다음은 동학, 그건 더 말할 필요가 없겠고, 다큐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쓰는 소설이 역사적 팩트를 기반으로 한다는 거야. 물론 어려움이 많았지. 소설을 본격적으로 써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동학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어. 그러니 당연히 처음엔 이 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
Q 우리에게 왔다는 말은?
A 당연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곡절과 시련이 뒤따랐으며, 숱한 시험에 들기도 했지. 기도하고, 수련하고, 걷고, 싸우고, 또 기도하고, 미친듯이 자료를 찾고, 사람들을 만나고,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허위허위 동네 한 바퀴를 하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소설을 쓰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했지.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그렇게 열네 명의 작가 아닌 작가들은 팔자에도 없는 무당처럼 내림굿을 하듯 그렇게 소설을 써 나갔어. 그게 어찌, 내가, 우리가 '썼다'고 '했다'고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어?
A 내 얘기를 좀 하고 싶어. 처음엔, 소설 쓰는 것을 많이 망설였지. 난 특히, 집단 창작이라는 것이 걸렸어. 초보자 여러 명이 함께 소설을 쓴다는 게.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어. 태극무늬를 한 노랑나비가 파난 제비꽃 위에 앉아 있고, 나는 그 나비를 따라가고... 마침 나는 꿈 분석 요령을 터득한 바가 있어서 그 꿈을 해석해 보니, 내 가슴에 창작의 열망이 웅크리고 있다는 거였어. 그리고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그러고 나서도 소설팀 합류를 망설이고 있는데 다시 꿈을 꾸었어. 이번에는 희 무명바지저고리를 입은 딴따라 각설이가 웃으며 춤추며 나에게로 와서는 내 팔에다가 어떤 무명 천 쪼가리를 척 붙이고 가는 거야. 나는 그 각설이가 동학군임을 금방 알 수 있었어. 그 담날로 동학언니들에 합류했어.(임)
A 난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교사가 된 후에는 그 마음을 감추고 살아야했지. 내가 가진 열정이 충분히 억누를 수 있을 정도여서도 했지만,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에 넘치는 게 책이니까. 무엇보다 "책 쓴 사람 다 총 쏴서 죽여버리고 싶다."고 얘기하는 학생들 틈에 끼어서 살다 보니, 이 책많은 세상에 내 책까지 보태는 건 아니다 싶었어. '선생 노릇이나 똑바로 잘하자.' 했지. 그러다 사실은 누군가의 대타로 동학언니들에 합류하게 됐는데, 합류하고 해남, 진도 일대의 동학을 공부하다 보니, 이게 장난이 아닌 거라. 그때부터 매달리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세월호 사건을 만나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엔, 오히려 그 사건이 더 큰 동력을 제공해 주고 있지. (춘)
Q 이야기들이 신비주의로 빠지는 거 아뇨?
A 결단코! never! 우리 소설은 '다큐' 소설이야.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팩트를 중심에 두고 출발했지. 그렇지만 우리가 주목한 팩트는 이미 알려진, 남성 중심의, 거대하면서도 '일반적인 흐름 위'에 놓인 팩트들이 아니었어. 역사의 기록 한줄. 혹은 기록은 영영 사라져 버리고 오직 '이름'만 남아 있는 동학군, 나아가 이름조차도 남기지 못한 동학군과 그의 가족과, 그 주변 사람들 이야기야. 그러니, 그걸 어쩌것어. 그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소서!'하고 기도하듯 매달렸지. 그러다 보면 어느날은 동학군들이 우리에게 와서 자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거야. 우리는 그걸 받아 쓴 셈이야. 동학군들을 눈으로 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본질은 마찬가지지.
Q 음... 그럴듯 하기도 한데?
A 우리가 쓰고 싶었던, 알리고 싶었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 동학 이야기는 전라도 동학도 아니고, 죽창 들고 일본군들 앞에서 무참히 쓰러져 버리는 무모한 이야기도 아니었어. 우리 동학언니들은 두 갑자 갑오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던 그해로부터 120주년이 되는 새해 첫날을 경주 용담정에서 맞이했어. 동학의 시원을 찾아간 거지.
Q 동학의 시원이라면, 고부 만석보나, 정읍 황토현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A 아니라고! 아니야! 역사의 동학이 꼬이기 시작한 건, 지금 그런 식의 '몰상식'이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야.
Q 아, 알았으니까 울지 말고, (다독다독) 차분히 말씀해 주세요....!!
A 동학은 1860년 4월 5일,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도하고, 수운 선생이 순도(1864)한 이후에는 해월 최시형 선생이 도를 이어 받아서,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를 다니면서 두루 포덕을 한 끝에 드디어 전라도 땅에서도 포덕을 시작하였지. 그때 경기도를 거쳐서 황해도나 그 북쪽 지역으로도 동학이 퍼져 나가서, 드디어 전국에 동학이 '만연'하게 된 거야!
Q 동학은 1894년에 크게 일어났던 게 아닌가요?
A 아니지. 그보다 훨씬 전에 동학은 전국적인 동학이 되어 있었지. 우리가 아는 전봉준 동학농민혁명 당시 젊은 지도자들은 188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입도한 축이고, 그들을 포덕한 손화중, 김덕명 등 선배들은 그보다 4, 5년씩은 앞서지. 아무튼 1880년대 말, 1890년대 초에는 민중들이 그야말로 겉잡을 수 없이 동학으로 몰려들 왔어.
Q 무슨 일이 있었나?
A 무슨 일이긴. 우리가 아는 조병갑 만석보 사건처럼 백성들이 이 양반 한테 뺏기고, 저 사또한테 얻어맞고, 병들어 죽고, 굶어죽고, 매맞아죽고 ... 이렇게 저렇게 해서 살 수가 없는 판에, 미국놈, 중국놈, 일본놈, 러시아놈, 영국놈 누구랄 것도 없이, 조선 반도를 마치 지들 돼지저금통처럼 생각하면서 이리 저리 찢어 발겨서 동전을 빼 가려고 드는 판국이 그때 판국이야.
Q 삼정문란, 서세동점, 그런 얘긴 나도 좀 알지.
A 그런데, 어느날 나타난 동학하는 사람들이, 동학에 입도하는 그날부터 양반이 상민에게도 공대를 하고, 맞절을 하며, 남편이 부인에게 공대를 하고 맞절을 하며, '아이놈' '애새끼'라고 두들겨 패고 욕하는 걸로 이름 부르는 걸 대신하던 아이들도 '한울님'이라고 대접을 하니, 하이고, 이게 꿈이냐 생시냐, 여기가 바로 지상천국이구나 하고 동학으로 동학으로 몰려들어 온 거지. 게다가 당시 동학은 유무상자라고 해서, 어떻게든 주위에 굶어 죽는 사람, 고칠 수 있는 병에 허무하게 죽는 사람 없이 하는 데도 다들 발벗고 나섰거든. 그러니, 살길은 오직 동학이다! 하는 입소문이 나고, 또 동학에 들어와 보니, 실제로 그렇거든.
Q 그런 얘기도 어디서 쫌 들어 본 것도 같군.
A 그렇게 동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까, 당시의 패악무도한 관피아, 정피아들은 아하, 나라에서 금하는 동학하는 놈들을 족쳐서 돈을 더 뜯어낼 수 있겠다 했지. 그래서, 동학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편으로, 동학한다고 맞고, 돈 뺏기는 사람들도 늘어났지. 그래서, 한 성질 하는 동학도들 중심으로 '하, 이거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 거냐? 이게 모두 수운 선생이 '좌도난정(오늘날 말로 하면 '종북좌파'쯤이 되지)'이라는 억울한 죄목으로 잡혀서 돌아가시고, 동학을 금지하는 국법 때문이니, 수운 선생에 대해서 재심을 청구하고, '국법 개정 투쟁'을 벌여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Q 계속해!
A 그게 행동으로 옮겨진 게 '교조신원운동'이고, 그게 1892년에서 1893년까지 진행이 되지. 그런데,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면서 보니까, 조선의 조정(오늘날의 청와대와 국회를 합친 만큼의 세력)이 동학도들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 줄 능력도 없고(무주공산이니,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거야), 무엇보다 조선정부를 난도질 하는 외세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학의 합법화란 것도 요원한 거야.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 백성들은 다 죽게 생겼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들고 일어난 게 동학농민혁명이야. 고부, 조병갑, 만석보 이런 건 단지 하나의 과정과, 단편적인 사건에 불과해.
Q 계속해! 계속해!
A 사실 동학은 처음 창도될 때부터 보국안민과 후천개벽이라는 양대 목표를 원대하게 세우고 있었어. 그러면서도 '원대함'에 매달려 현실과 일상생활을 도외시하는 '기복신앙'으로 달려간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곧 한울"이요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 "며느리도 한울님이다" "아이도 한울님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고, 물건까지 공경하라"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이니, 생명을 존중하라" "벽을 향하여 제사 지내지 말고, 나를 향하여 제사 지내라. 한울님도 내 안에 계시고, 조상님의 성령도 내(우리)가 모시고 있다" 하는 말씀들을 하시고, 실천하는 도성덕립(도통)하는 도학이요, 민중의 학문이요, 오래된 미래의 종교였지.
Q 재미있긴 한데, 우리 얘기가 '여성동학다큐소설' 얘기에서 좀 멀어진 거 아니오?
A 멀어진 건 아니지. 그렇게 원대한 이상과, 또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개벽적인 삶을 바탕으로 전개된 것이 바로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인데,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은 너무 덜 알려지기도 했고, 또 '전라도' '전봉준'으로만 알고 있는 게 문제라는 거지.
Q 그래서?
A 동학은 살아 있는 역사고, 이야기고, 지금도 흐르는 물길이야!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아니, 해야만 했지. 그래서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소설로 써 내게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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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힘들었다는 얘기는 했는데, 암튼, 결과적으로 성공은 했어...요?
A 급하기는. 그렇게 해서, 지난해, 그러니까 2014년, 갑오년 1월 1일부터 경주 용담정에 모여서, 동학 수련을 시작했지. 그리고, 동학 언니들의 영원한 오빠, 박맹수 교수님을 모시고, 동학의 역사와 의미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어. 아, 참으로 감동이었어. 일주일 동안 계속된 강의와 수련 내내, 울고, 웃고, 까무러치고, 가슴 벅찬 희망에 부풀고.... 모두들 동학의 그 거대한 심연, 혹은 밤하늘에 쏟아질 듯 빛나는 은하수의 별들만큼이나 아름답고, 그래서 서러운 동학 이야기들에 몸이 달았지.
Q 용담정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A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156년전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좋고. 실제로 우리가 보게 될 소설은, 열네 명의 작가(처음엔 15명)가 각 지역별로 한 지역씩 맡아서, 그 지역의 중심 인물 혹은 중심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하고, 자료도 찾고, 사람도 만나고, 상상도 하고, 한달에 한번씩 모여서 밤새워 가면서, 그동안 보고 듣고 만나고 한 이야기들을 함께하기도 하고....
Q 그렇게?
A 또 있어. 박맹수 교수님을 따라서 전국 방방곡곡의 동학 사적지들을 찾아다니면서 현장 조사를 하기도 했지.
Q 결국은 '동학역사소설'을 썼다는 얘기?
A 그렇게 쉽게 말하면 섭하지! 우린, 행간을 따라가며 온몸으로 소설을 썼어! 실제 인물이 90% 넘는 작품도 있고, 가공인물이 훨씬 더 많은 작품도 있지만, 우리가 '다큐'소설이라고 말하는 건, 이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리얼리티'에 입각한, 지향하는 소설이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 '리얼리티' '역사적 사실'이라는 게,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는, 실은 잘못 알고 있는 그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 버린 역사, 우리가 놓쳐 버린 역사, 우리가 폄하하고 외면한 역사, 여성, 어린이, 우리 사상, 생명, 평화, 더불어 삶, 아름다운 삶....그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동학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버지의 딸과 아들, 아들의 딸과 그 딸의 딸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어!
Q 글쎄, 그래서, 뭐가 달라질까?
A 우린 세상이 달라지라고 소설을 쓴 건 아니야! 우리 소설 때문에 세상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는 달라지고 있는 세상, 앞으로 달라지게 될 세상 이야기를, 그 원인을, 그 이유를, 그 방향을, 그 필연성을 전하는 역할을 할 뿐인 거야. 뭐랄까, 신내림한 무당이 조상령의 말을 후손들에게 전하듯... 뭐 그런...
Q 동학 얘기하다가 무당 얘기?
A 그게 그거야. 큰 귀신이냐, 작은 귀신이냐 하는 차이지. 한울님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귀신, 그래서 크다작다 말도 못하는 귀신, 나나 당신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무나, 풀이나, 돌멩이 하나까지 다 포함하고, 깃들인 분이니까. 그리고, 동학이란, 그 한울님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한 동학의 역사라는 건, 그 한울님이 '일하는 모습'이니까.
Q 근데, 문득 드는 생각인데, 꼭 이걸 했어야 했나?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A 그렇지. 아마도 동학언니들도 소설을 쓰는 내내 그 질문에 시달렸을 거야. 그러나 우리는 그 유혹의 질문의 답을 찾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동학은 지나간 이야기,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야. 다만, 묻혀지고, 잊혀지고, 왜곡되고, 버려져 있던 동학을 다시 찾고, 살려 내고, 보듬어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보고, 듣고, 말하고, 써 나가는 게 지금 우리들의 일인 거지.
A ... 내 얘기를 보태지. 나는 전라남도 해남, 진도, 제주편을 맡아서 그 동네 이야기를 쓰게 됐지. 언니는 좀 늦게 합류를 해서 부지런히 현장탐방을 시작했지. 학교 선생님이셔서, 낮에는 아이들 가르치고, 밤마다 공부하고, 주말을 이용해서 인터뷰와 답사.. 4월 12일에는 진도에서 향토사학자 박주언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남편 차를 타고 팽목항으로 달려가 하조도로 넘어가 박중진 대접주의 후손도 인터뷰하고.... 그런데 며칠 후, 4월 16일, 그 일이 벌어졌지. 가슴이 미어지고 손이 떨려서 당연히 소설은 거들떠 볼 수도 없었지. 날마다 촛불을 들고 해남 읍내를 누비고, 서울광장까지 가서 노란 물결에 동참하고... 그런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야. 지금 소설을 쓰는 것이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 사람들을 위하는 거라고. 아니, 그 얘기가 주변에서 들려온 건지, 내 안에서 들려온 건지, 지금은 모호하기도 해. 그렇지만, 소설에 더 깊이 매달릴수록, 그 말은 확신이 되어서 나를 묶어 세워 주었지. 동학은 우리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우리 소설은 역사소설이 아니고, 현대소설이야! (춘)
Q 구체적으로 어떤 소설들이 있나?
A 모두 14명의 작가가 14권을 펴내게 되는데, 각자가 스스로 정한 이야기틀에 각자가 만난 동학 사람들을 모셔왔지. 각도별로 1~3편, 충청도는 4편이 돼. 오늘날은 북한땅인 황해도 편도 있고, 또 만주를 중심으로 한 동학 소설도 있지.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동학은 1894년에 반짝하고 만 사건이 아니라, 1860년에 창도된 이래로 시간적으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150여년의 역사, 공간적으로는 한반도 전역을 넘어 만주지역까지 펼쳐지는 거대한 대하역사야!
Q 작가들마다, 소설을 쓰면서, 또는 쓰고 난 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텐데....
A1 쓰다 보니, 나는 이 일이 국가의 카르마(Karma)를 푸는 작업이라고 생각됐어요. 최근 한 영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우리가 조상님과 연결되어 있고, 조상님들의 한과 고통의 에너지는 후손들에게로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리고,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상식이었는데,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그걸 망각한 채, 오직 지금 여기에서의 성공에만 매달려 왔다는 게, 그런 업들이 뭉쳐서 지금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든가, 행복지수가 꼴지라든가 하는 상황으로 드러나고 있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동학소설은 우리 사회 '행복 증진 프로젝트'라고 할 수도 있어요.(서)
A2 소설을 쓰면서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조상들을 알게 돼서 행복했어요. 수운, 해월 선생, 장일순 선생님 그리고 수많은 동학의 선열들.... 초기에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부채감이랄까, 책임감에 시달렸는데,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초월하게 됐어요. 동학사상이 우리들 모두의 마음에 좀더 다가오는 계기가 되고, 내 존재가 다른 존재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된다면, 내 삶에도, 그리고 우리들이 멋진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분명 보탬이 될 거라고 믿어요.(현)
A3 이소사라는 '여동학(접주)'의 거룩한 삶을 알게 된 것이 저에게는 큰 보람이고, 자랑이고, 그걸 좀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조선 시대 말기에 여자라는 제약을 당당히 걷어 내고 멋지게 사회적 삶에 뛰어들고, 또 영적인 세계와 접신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이소사는 어쩌면 특별해 보이지만, 또 어쩌면 가장 전형적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또 하나 제가 과제로 삼은 것은 동학농민혁명이 1894년, 한반도라는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3.1운동이나 그 이후의 만주 중심의 무장 독립투쟁으로도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명)
A4 우선 저는 소설가가 아니면서도 소설 쓰기에 도전했다는 사실이, 저 스스로 대견스럽습니다. 제 소설을 읽으면서 좀 불편한 부분이 생기면 오히려, "이정도라면 나도 한 번 써 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목표입니다. 그러한 자극과 확장이 '여성동학다큐소설' 프로젝트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거든요.(웃음) (용)
A5 제 소설을 통해서 동학은 '인류 역사의 보물'이라는 점이 재확인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특히 동학의 생명 존중 사상은 이 시대에 긴급히 요청되는, 생명 살림, 지구 살림의 해법입니다. 또 하나, 이 소설을 쓰면서 황해도를 비롯한 북한 지역의 동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큰 소득이었어요. 동학 소설을 들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도보 순례를 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만주나 일본, 나아가 전세계에 이 이야기를 확산시키고, 연대하는 후속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요. (흥)
A6 저는 동학에서 인상 깊은 것이 유무상자(有無相資) 정신입니다. 동학은 평등사상, 인간존중 사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나누는 정신입니다. 요즘은 너무도 뛰어난 사람이 많고, 내세울 거 자랑할 거 많은 사람들이 가득한데, 좀 부족해도 부족하지 않고, 풍족해도 부족한 사람들에게 서로가 도움이 된다는, 그렇게 하자는 동학의 마음을 알리고 싶어요. 덧붙이자면, 제 소설에는 목천 세성산에서 돌아가신 분들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우리 지역 분들만이라도 그분들 이야기를 알고,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A7 저는, 소설을 마치고 나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시간에 또 왜 그렇게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의 부모들 생각이 났을까요?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는 점에 일치점이 있지 않을까 해요. 오로지 생명이 절대선이라는 걸, 소설을 쓰면서 더욱 절실히 느꼈어요. 그리고, 꼭 하고 싶은 얘기는,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소설 한 편을 쓴 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여한이 없다고 할까. 이제부터의 삶은 제게는 축복이고 덤이에요. 그래서 더욱 이제부터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탬이 되게 살려고 해요.(경)
A8 이번에 소설 쓰기에 참여하면서,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참여키로 한 게, 어렸을 적의 꿈을 되살리게 되면서였어요. 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그래서 참여를 결정했어요. 그런데,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아이쿠, 내가 잘못 들어왔구나, 동학의 사랑 이야기가 만만치가 않구나, 했어요. 그러나 그때는 이미 빠지고 싶지 않게 됐죠. 그것 말고도, 내가 왜 이번 소설을 쓰게 됐을까를 설명하는 이유들은 너무도 많아요. 박맹수 교수님의 눈물일 수도 있고, 고은광순 선생님이 매일 아침 청수를 모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주문소리가 귓가에 울려서일수도 있고, 지금도 공주 우금치 근처에서 동학 영령들의 절규가 나를 불러서일 수도 있고... 아무튼, 나는 지금의 이런 고민과 느낌들을 그대로 시민들과 나누고 싶어요. 이게 나로서는 '동학 하기'에 참여하는 길이니까요. (미)
A9 저의 소설은 특별히 동학의 북접통령이던 손병희를 매개로 해서, 동학의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점을 다룹니다. 그 시기 살아남은 자로서의 손병희의 고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오류들을 다루고 싶었어요. 그분들이 모두 지금의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분들이라는 점, 그러므로 그 고뇌는 지금 우리에게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자본주의에 포획당한 근대를 살아가는 한반도의 현대인들...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자락에 깔고, 손병희 선생의 셋째 부인이자 비서였던 주옥경 여사와 가상인물인 위안부 순이를 통해 가장 약자인 여성이 이새의, 미래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현)
A10 역사 속의 동학군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분들이 아닌 지역의 지도자들 모두가 시대의 영웅이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 너무도 평범한 분이었어요. 자상하거나 무뚝뚝하거나 한 아버지요, 남편이요, 자식들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이 돌아가시는 장면에 이르러서 너무도 서럽고 애통했어요. 저는 특히 20년 전에 발굴되어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동학농민군 유골이라는 실제 사건의 이면을 그려 내는 것이어서, 나름 부담감이 더 컸습니다. 동학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역사라는 점이 잘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춘)
A11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 거대한 역사가 그동안 수면 아래서 자기 존재를 알리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또 죄송스러웠어요. 동학이라고 하면 치열한 전투만 생각하는 세태와 의식 구조는 어쩌면 전적인 무지보다 더 해로운 생각일 거예요. 준비 과정에서 온 나라 민초들이 참여했고, 존재감이 없던 우리 여성들이 역사의 당당한 주역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준)
A12 동학 언니들을 모아 가는 과정에 중간에 참여했다가 빠지는 사례가 대여섯 차례 있었어요. 그런데, 묘하게 하루이틀 사이로 새로운 사람이 충원이 됐어요. 하늘이, 동학의 영령들이 급하신 모양이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토록 자기 이야기를 들려 주기를 원하시는 게 아닌가... 일을 벌이면서 닥쳐올 문제들에 대한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하늘이시여, 당신 일이니 알아서 다 되게 해 주세요! 하는 뻔뻔한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심고하고, 청수도 모시고... 동학언니들끼리 얘기를 해 보면, 처음엔 물론 (자기를 동학 소설 작가로 끌어들인 것에 대해) 원망하고, 분노하고, 애원하던 분들이 결국 대부분 "동학 소설을 쓰게 되어 감사하다. 운명인 것 같다. 너무 행복하다"라는 말씀들을 하게 되는 순간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어요. 내가 쓰는 건 충북 청산 편인데, 해월 선생, 그 딸인 최윤, 그리고 그 딸의 아들(해월 손자)인 정순철 이렇게 3대에 걸친 이야긴데,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역사 드라마고, 휴먼 다큐고, 세계적인 스토리텔링의 소재가 돼요. 개인적으론 이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참으로 영광이고, 소설을 쓰면서 나는 최윤이 되고, 최윤은 내가 되어 가는 걸 느꼈어요.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던 인물이나 이야기는 꿈에서 그 인물이 나타나 자기 얘길 하고 가는 체험도 했어요.최윤의 딸 순열의 기록은 역사 기록에 단 한 차례 '이름'만 나올 뿐이어서 소설 과정에서 생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내 꿈에 어느날 이마가 동그란 여자 아기가 내 앞에 오똑하게 서 있었어요. 꿈속에서 사람들이 내 딸이라고 하는데, 그닥 정이 가지 않아 저쪽에 가서 아줌마들이랑 자라 했는데 아기는 도리질을 해요. 해서 안고 이쪽저쪽 젖을 물리는데, 어찌나 세게 빨아대는지... 그래서 '순열'이도 내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박맹수 교수님, 나카츠카 교수님, 이노우에 교수님 등 동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애써 오신 분들의 노고의 성과에 큰 도움을 받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광)
Q 여성동학다큐소설이라더니, 정말 전부 여자일세!
A 여성들이 동학을 이야기한다는 건, 남성들이 동학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확실히 달라. 물론 '여성'은 처음엔 '남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여성이야. 그러나 그것이 동학을 관통하는 순간, 그 여성은 남성과 여성을 아우르는 여성,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여성, 살림이스트(-ist)로서의 여성이야. 확실히 '여성동학'이야말로 동학다운 동학, 본질적이면서 '살아 있는', 그래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동학,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 주는 동학이라고 생각해. 우리 소설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성취하려고 하는 거지. 궁극적으로는 '소설'이라는 것도 하나의 형식이고 도구라고 할 수 있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그리고 세상이 아름답게, 그러기 위해서 정의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그런 세상을 꿈꾸고, 또 꿈꿀 뿐만 아니라 그곳을 향해 힘껏 노저어 가는 것, 홀로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여성동학다큐소설'을 하는 의미야. 그것이 '동학농민혁명' 이야기로 형상화/가시화된 거지.
Q 흠, 암튼, 큰일을 하긴 했네. 그런데, 크라우드 펀딩 얘기는 뭐지?
A 사실, 처음엔 '출판'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고 이 일에 뛰어 들었어. 그냥, 소설을 써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공감하고 확산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막상 소설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보니, '출판'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닥쳐오더군. 첨엔, 여기저기 출판사들을 찾아다녔지. 다들, '좋은 일 했다'며 칭찬은 하는데, ㅎㅎ, 출판은 다들 꺼려 하더군. 소설은 안 팔린다는 거지. 게다가 동학소설이라니. 게다가 '아마추어' 무엇보다 열네권이나 되는 소설을, 그것도 자기들 눈으로 보기에는 그 얘기가 그 얘기 같다나 뭐라나...
Q 실망이 컸겠군.
A 실망이라니. 잠시 곤란하기는 했지만, 반드시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바뀐 적이 없지. 사실, 소설 쓰기 과정에서 부닥쳤던 어려움에 비하면, 그런 문제(출판사)는 문제도 아니었지. 그리고, 바람이 간절하면, 동학군의 성령이 반드시 길을 열어주었던 경험도 있었고.
Q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
A 크라우드 펀딩은 사실 처음에 생각을 했지. 우린 이 일이 우리들만이 '하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게 크라우드 펀딩이야. 최첨단이라고 할 '소셜/크라우드 펀딩'이라는 건 기술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알음알음으로 해서 채택하게 된 거지만, 그 전에도 널리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서 이 일이 진행되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왔지. 현실적으로, 소설책을 발간하는 비용을 후원 받는다는 목적도 있고.
Q 크라우드 펀딩으로 '함께하는' 거라고?
A 우린 처음에 '0'으로부터 출발했지. 그곳에서 서서히 동학을 배우고, 주문을 읽으며 동학을 체험하고 동학 속으로 들어갔고, 박맹수 교수를 따라 동학의 길을 걸었지. 그 구비구비마다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어. 이미 150여 년 전에 돌아가신 분, 120년 전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에서 돌아가신 분, 일제시대에 돌아가신 분도 있었지만, 지금도 거기 그곳에 살아 있는 후손들, 후학들, 지역사람들, 향토사학자들, 할아버지 할머니들, 활동가들, 학자들, 공무원들 등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 그들의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 소설에는 이미 반영되었지. 검은 글자에 담긴 이야기/사람도 있지만, 글자와 글자 사이의 그 여백에 담겨 있는 사람/이야기도 많아. 이제 그 이야기들이 종이 위에 인쇄되고, 서점을 통해, 인터넷 공간을 통해 좀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 바로 크라우드 펀딩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Q 특이한 방식이지?
A 어쩌면, 이 일, 여성동학다큐소설은 이렇게 특이한 방식으로 해 나가는 게 이 시대에 가장 제격인지도 모르지. 이렇게 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거지.
Q 어떻게 참여하는 거지?
A 크라우드 펀딩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돼! '동학언니들'이나 '모시는사람들'로 직접 연락을 해도 되고.
Q 참여하면?
A 소설책이 나오게 되면, 참여한 부분에 비례해서 책을 드릴 예정. 이건 기본이고, 그 밖에 '동학소설제작'에 함께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거야.
Q 의무?
A 이건 어쩌면 권리일지도 모르지만, 동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라든지, 동학언니들/모시는사람들이 마련하는 프로그램에 열씨미 참여하는 것! 그 밖에도 많을 거야.
Q 권리?
A 이게 오히려 의무일지도 모르겠네. 동학 이야기들을 더 많이 찾아서 제보하는 것, 그리고 후속 작업을 기획하고 참여하는 것, 또, 동학 세상을 향한 길에 함께하는 것 등등...
Q 소설책은 언제 나오나?
A 5월~7월 기간 동안은 인터넷에 연재를 계속할 거야. 일부분이겠지만, 그 연재 과정을 통해 예비 독자들과 소통하고, 작품의 최종 마무리를 하게 돼. 책으로 나오는 건 8월 중순부터 한달 사이에.
Q 분량은?
A 소설 한권이 300쪽 내외, 원고지 1000매~1200매, 14권 전부 합치면 1만5천매가 훌쩍 넘어.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합치면 1천명이 훨씬 넘지. 물론 각 소설이 연결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Q 다른 계획은?
A 이제 시작이야. 우리 작업이 한 고비를 넘기면, 그다음으로 이 열네 권의 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다음 일들이 있을 거야. 15번째 그리고 그 이후의 소설들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동학의 현장들을 독자들과 함께 가는 프로그램, 사람들의 마을에서 동학 마당을 펼치는 일도 해 볼 수 있지... 그 모든 일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는 분들, 그리고 후에 동학소설을 사서 보게 될 독자들이 함께하는 일들이 될 거야.
Q 끝으로 동학언니들 소개를 좀더 자세히...
A 다들, 아름다운 언니들이지.
(1) 고은광순 - 지금은 한의사, 명상운동가, 몇년 전에 '호주제폐지운동'에 앞장섰던 여성운동가. 그리고, 동학언니들의 맏언니로, 이 모든 일을 주모한 우리 시대의 동학대장.
(2) 김미경 - 스토리텔링 지도사
(3) 김정미서 - 명상지도사, 통통 튀는 천진난만한 해맑은 오드리 '해퍼'. 의리와 평등을 중시, 한마디로 뒷통수 치지 않기. 명상지도사로 즐겁게 살다가, 웃으며 죽고 싶은....
(4) 김현옥 - 선생님(교사), 되고 싶은 국어 선생이 되었는데, 어느날 '정답 찾는 교사'가 되어 있었다. 시인이 되려고 한다.
(5) 명금혜정 - 선생님(교사)
(6) 박이용운 - 명상지도사
(7) 박석흥선 - 선생님(교사)
(8) 변김경혜 - 인권, 시민활동가
(9) 유이혜경 - 선생님, 교사
(10) 이장상미 - 인권, 시민활동가
(11) 임소현 - 시민활동가
(12) 정춘자 - 선생님(교사)
(13) 최김은희 - 인권, 시민활동가
(14) 한박준혜 - 인권 시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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