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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진

피어라 꽃(5회) - 칠산바다 닻배 조기잡이 오늘은 박중진의 닻배 출어일이다. 한식날 지나 여섯물이었다. 한식날에 맞추어 떠나면 망종살까지 두 달여간 배에서 살며 조기를 잡았다. 날씨가 청명하면서도 바람이 적당히 불어 포구에 나온 사람들마다 얼굴이 환했다. 닻을 촘촘히 매단 닻그물부터 배에 실었다. 박중진의 아내가 겨우내 들기름을 먹인 면사로 짠 그물이었다. 그물 윗벼릿줄은 짚으로, 아래 벼리는 칡줄을 꼬아 만들었다. 선원은 선주 박중진을 포함해서 열네 명이었다. 선원 중에는 고군면 손행권 부자도 끼어 있었다. 각자 두 달 간 먹을 식량과 김치, 껴입을 옷에 우장, 앞치마, 손토시를 챙기니 짐이 커져 둥둥하니 한 짐씩 짊어지고 배에 올랐다. 배는 돛이 팽팽해져서 굽을 치는 말처럼 곧 달려 나갈 태세였다. 울긋불긋 깃발들도 바람을 가득 안고 부풀었다.. 더보기
피어라꽃(4회) - 진도 하조도에도 동학이 싹트고 다음 날 박중진과 손행권은 썰물에 맞추어 진도를 향해 출발했다. 손행권이 박중진을 보며 말했다. “나도 동학에 입도할라네. 내 펭생 이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인자사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여.” 그들은 나봉익을 찾아가 만나보기로 했다. 며칠 후 박중진이 손행권과 함께 의신면 만길리 포구에 배를 대고 사람들에게 물어 나봉익의 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나봉익은 그물을 손질하느라 집에 있었다. 영광에서 최경선의 소개로 찾아 왔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봉익은 그들을 방으로 안내한 후 형님을 모시고 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나봉익이 재종형님이라는 나치현과 함께 들어왔다. 그는 자그마한 키에 수염이 단정했다. 맑은 눈빛이 부드럽고 차분하여 적은 나이는 아닐 것이라 짐작되었다. “.. 더보기
피어라 꽃(3회) - 하조도 뱃사람 박중진 하조도 뱃사람 박중진 박중진은 손행권과 함께 영광 법성포로 향했다. 모아 놓은 건어물을 넘기고, 그물을 짤 면사와 칡줄도 사야 했다. 손행권은 진도 고군 임성포 사람이다. 박중진과 손행권의 아내는 해남 삼촌면에서 함께 자란 동무였다. 아내들이 동향인지라 그들도 서로 친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번 법성포행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박중진은 항상 법성포 박중양과 어물 거래를 하였다. 그는 영광, 무장 등지에 물건을 넘기는 객주였다. 박중진은 그의 집에서 일하는 김유복을 통해 그들이 동학도인인 줄을 알고 있었다. 박중진이 박중양에게 은밀히 동학에 대해 물었다. 박중진에게 띄엄띄엄 동학을 전하던 박중양은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박중진을 위해 태인 대접주 최경선을 한 번 모셔오겠노라고 했다. 들물을 따.. 더보기
피어라 꽃 - 머리말 연재를 시작하며 제가 ‘해남, 진도 지역’ 동학 소설을 쓴 것은 한 유골 때문입니다. 1995년 홋카이도 대학 강당 보관고에서 발견된 진도 동학군 지도자의 유골. 그 유골은 왜 일본으로 가게 됐는지, 채집해 간 사토 마사지로는 누구이고, 그는 왜 진도에서 유골을 채집했는지, 누구에게 전달했으며, 유골을 연구한 자는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낱낱이 파헤치고 싶었지요. 홋카이도 대학의 이노우에 교수가 유골 속에 들어 있던 첨부문서의 내용을 조사해 유골 채집자 사토라는 사람의 이력을 결국 찾아냈습니다. 그는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학교 제19회 졸업생이었지요. 삿포로 농학교는 식민학과 인류학 연구가 왕성했고, 조선 침탈을 위한 제국주의 전사들을 양성하던 곳이었지요. 사토는 러일전쟁 참전 후에 일제 통감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