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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정이춘자

피어라꽃(4회) - 진도 하조도에도 동학이 싹트고



다음 날 박중진과 손행권은 썰물에 맞추어 진도를 향해 출발했다. 손행권이 박중진을 보며 말했다.

나도 동학에 입도할라네. 내 펭생 이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인자사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여.”

그들은 나봉익을 찾아가 만나보기로 했다.

며칠 후 박중진이 손행권과 함께 의신면 만길리 포구에 배를 대고 사람들에게 물어 나봉익의 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나봉익은 그물을 손질하느라 집에 있었다. 영광에서 최경선의 소개로 찾아 왔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봉익은 그들을 방으로 안내한 후 형님을 모시고 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나봉익이 재종형님이라는 나치현과 함께 들어왔다. 그는 자그마한 키에 수염이 단정했다. 맑은 눈빛이 부드럽고 차분하여 적은 나이는 아닐 것이라 짐작되었다.

봉익이 자네는 동학 한 지가 멫 년 됐담서 이 존 것을 자네 혼자만 알고 있었는가? 그라고 아깝등가?”

손행권이 나봉익을 향해 농을 던지자 나봉익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도 역시 농으로 답했다.

내가 도가 아직 덜 터졌는갑소. 관상을 딱 보믄 동학을 할 사람인지 아닌지 알어야 쓸 것인디 말이요.”

도를 알었으믄 빨리빨리 터야재. 열심히 안 한 티가 나구마.”

지가 이 동상한테 동학을 갈쳤응게 다 지 불찰이구만이라우.”

나치현이 웃으며 고개를 숙여 사죄하니 모두의 눈길이 나치현을 향했다.

아이고, 뭔 소리를 그리 하시요? 친하다고 잡도리 하는 거재라우. 섬놈들이 원래 이래라우.”

자세를 바로잡으며 박중진이 나치현에게 물었다.

시상에 재종 동상한테 동학 전할라고 이 먼 데 섬까지 이사를 오셌소?”

. 동학도 전하고, 봉익이랑 고기 잡으러 다녀봉게 어장도 좋고 해서 왔지라우. 또 여그가 영산포랑 물질도 좋아갔고 서너 시진이믄 간께라우.”

그라재라이. 진도가 참말로 땅이 걸어서 농사 잘되고, 바다는 바다대로 어물이 많고, 좋은 데여라우. 일 년 농사 지스믄 삼 년 묵은다고 보배 진 자에 진도 아니요.”

좋은 데믄 뭐하것소? 땅도 걸고 바다도 건께로 뜯어갈 것도 많애갖고 아조 어세에, 공물에, 진상까지, 죽것소. 요번 가을에 으짤라고 민어가 씨알 큰 놈들이 엥기길래 다 공물로 내고 아부지 지사상에 올릴라고 딱 시 마리 냉게 놨는디 염병할 호장이 어뜨케 알고 메칠 뒤에 오드니 뒤져갖고 가부요. 내가 그때를 생각하믄 속에서 천불이 나요.”

나봉익의 말대로 진도에는 왕족의 둔토가 많아 그들의 출입이 잦았다. 세도가들이 오면 지방관은 그들을 모시느라 진땀을 뺐다.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하루아침에 벼슬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까딱하면 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조세로서의 공물 진상은 없어졌지만 지방관들은 여전히 진상품을 구해 바치는 게 관례였다. 지방관들은 다시 아전들을 시켜 진상품을 걷어오게 하고, 아전들은 또 중간에서 착복을 하였다. 지방관들은 녹봉을 받지만 육방 이하 아전들은 녹봉이 따로 없었다. 조세 걷을 때 아문세를 백성들의 조세에 붙여 봉급으로 삼았던 것이다.

해월 선상님이 머지않아 후천개벽이 온다고 그라든디 분명히 동학도 힘으로 올 것이요. 동학도들이 모태농게 참말로 후천개벽 시상입디다. 유무상자(有無相資)라고 있는 자, 없는 자가 서로 한 식구 같이 먹고 쓰고라우, 재물이 있는 자는 재물을 내고, 기술이 있는 자는 기술로 서로 도우니 참말로 동학 시상이 오기만 하믄 거그가 개벽 시상이것습디다.”

나치현은 임진년(1892) 동짓달에 삼례 취회에 참가하였다. 그 한 달 전 임진년 시월 20일경에 공주 취회가 먼저 열렸다. 충청감사에게 (교조) 수운 대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신원하여 줄 것을 요구하고, 더불어 동학도에 대한 금단을 중지해 달라는 의송단자는 손천민이 작성하였다. 천여 명의 동학도인들이 물러서지 않고 버티자 차일피일하던 공주감사는 동학 금단을 빙자하여 양민을 침학하는 일을 금지하라는 감결을 각처에 시달했다. 동학의 금압을 푸는 일은 조정에서 할 일이라는 단서가 붙었으나, 동학이 관을 상대로 양보를 얻어 낸 그 소식은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

충청감사 조병식의 감결이 나온 사흘 후 해월 최시형은 삼례 집회를 결정하고 또 다시 통유문을 각지에 보냈다. 삼례는 전라도에서도 교통의 요지였다. 이번에는 더 많은 수천 명의 동학도인들이 집결하였다. 서병학이 소장을 작성하였고, 전봉준과 유태홍이 자원하여 소장을 고정(告呈)하였다. 동짓달 추위에 동학 도인들이 곧 흩어지고 말 것이라며 전라감사 이경식이 시일을 끌었지만 단호한 동학도들의 태도에 결국 이 감사도 동짓달 열하루날 감결을 내렸다.

나봉익이 구기자물과 감태를 내왔다.

감결에 어뜬 말이 써져 있었드라요?”

사도난정의 죄목이라 감사 직권으로 (교조) 신원은 불가하재마는 동학도라는 이유만으로 침학하는 일이 있으믄 앞으로 엄단하것다는 것이었재라우.”

나치현이 옹골지게 말을 하자 일행은 무릎을 치며 탄성을 자아냈다.

듣기만 해도 시원하구만이라우.”

관이란 별세상 사람이요, 명령하기만 할 뿐 좀체로 백성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법은 없는 족속들이었다. 그런데 관찰사로부터 잇따라 동학 금압을 중지시키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니 꿈만 같은 것이 이곳 아랫녘 아랫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박중진과 손행권은 한 달 후 영광 박중양의 집에서 입도식을 봉행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박중양이 사람을 보냈고, 최경선이 김유복과 함께 말을 타고 왔다. 의관을 갖춘 최경선이 작은 상을 북쪽을 향하여 놓았다. 박중진 일행이 가져온 쌀과 건어물을 상에 놓고 향을 피웠다. 각자 한울님께 네 번 절한 후에 최경선으로부터 초학주문을 받았다. 초학주문 위천주고아정영세불망만사의(爲天主 顧我情 永世不忘 萬事宜)’를 한 번 씩 외우고 입도식을 마쳤다.

날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 주문을 외십시오. 이 주문의 뜻은 한울님께서 저의 마음을 돌리어 모든 일의 올바름을 잊지 않게 하소서입니다. 한 달 후에 다시 오시면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드리겠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날부터 박중진은 매사에 심고하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을 시작하건 먼저 심고를 하여 한울님께 고했다. 심고는 마음만 모으면 되었다. 나중에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심고가 저절로 되어 천천히 걷고, 무엇이든지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박중진이 달라진 걸 처음으로 눈치 챈 건 딸 순녀였다. 순녀가 아버지에게 무엇 때문이냐고 묻자 박중진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동학의 도를 전했다. 모든 사람이 한울이니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같은 한울이라 말하고, 최경선에게 들었던 말을 전해주었다.

새벽마다 박중진은 청수를 모시고 동쪽을 향해 꿇어앉아 정성스럽게 주문을 외웠다. 박중진의 아내와 순녀도 주문을 외웠다. 박중진이 주문의 뜻을 풀이해 주었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 한울님, 원컨대 지금 여기 내리소서. 한울님을 내 안에 모셔 조화가 이루어지고 영원토록 잊지 않아 만사가 깨달아지리이다.’

동학을 한 후로 마음이 평온하고 근심 걱정이 없어진 것을 느끼며 이런 기분을 가리켜 최경선이 동학하는 즐거움이라 말하였나 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박중진과 손행권은 해남 처가에도 동학을 전했다.

동학은 나라에서 금했지만 가족, 친척, 친지를 통해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전파되었다. 부인들은 해월 선생의 내수도문을 베껴 주문처럼 읽었다.

 

부모님께 효를 극진히 하오며 남편을 극진히 공경하오며 내 자식과 며느리를 극진히 사랑하오며, 하인을 내 자식과 같이 여기며, 육축이라도 다 아끼며 나무라도 생 순을 꺾지 말며, 부모님 분노하시거든 성품을 거슬리지 말고 웃고 어린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한울님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것이 곧 한울님 치는 것이오니 천지를 모르고 일행 아이를 치면 그 아이가 곧 죽을 것이니 부디 집안에 큰 소리를 내지 말고 화순하기만 힘쓰옵소서. 이같이 한울님을 공경하고 효성하오면 한울님이 좋아 하시고 복을 주시나니 부디 한울님을 극진히 공경 하옵소서.’

 

동학도인이 된 이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한울로 섬기고, 아내들은 내수도문대로 행하자 가정이 화목해졌다.

그러다보니 도인들끼리 사돈을 맺는 사례가 늘어났다. 딸을 출가시키기로는 동학 도인의 집안이 최고였고, 며느리를 맞기로도 동학 도인 집안의 자식이 맞춤이었다. 박중진과 손행권도 내년 가을걷이를 끝내면 서로 사돈 맺기로 약조했다. 박중진의 딸 순녀와 손행권의 아들 종인이었다. 순녀의 어머니가 자란 산림리와 종인의 어머니가 자란 평활리는 서로 빤히 바라다 보이는 옆마을이었다. 순녀도 내심 종인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라 부모님들 간에 사주단자가 오고가자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서로 눈길이 마주치면 가슴이 콩닥거렸다.

손종인도 아버지의 심부름을 올 때마다 일부러 사랑마루에서 미적거리며 안채 쪽을 힐끔거렸다. 그러다 순녀와 마주치면 또 불에 덴 듯이 놀라 눈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박중진은 아이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2015/05/15 - [소설/정이춘자] - 피어라 꽃(4)-정이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