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정이춘자 썸네일형 리스트형 12회 피어라 꽃 <해남진도제주> 이랴, 개벽 세상으로 가자 화원에 도착해서 말을 목장에 넣고 말총이는 감목관 거처부터 알아보았다. 관마청은 목장에서 5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말총이는 군두의 지시대로 말에게 풀을 먹이고 우물가에 있는 말똥을 치웠다. 한양으로 뽑혀 가는 말들이라 그 사이에 몸이 축나거나 병이 들까봐 군두는 말 관리를 철저하게 시켰다. 저녁 일을 마친 후 말총이는 목자들 몰래 군부를 찾아갔다. 그는 아버지가 준비해 준 말린 생선포와 술을 싼 보자기부터 내밀었다. “뭣이여? 이것이?” 군부의 입이 헤 벌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말총이가 입을 열었다. “옆집 사월이가 시방 관마청에서 대감마님 수종 들고 있는디라우. 사월이 어매가 지한테 눈물 바람을 함서 이 옷을 꼭 사월이한테 잔 갖다 주락 하요.” 말총이는 옷보따리를 보여주었다. “에미라고 딸을 시집.. 더보기 피어라 꽃(11회) - 코끝에 스미는 묵향 감목관이 왔다간 지 이레가 지났다. 점심참이 지났을 때였다. 군두가 정신없이 목장으로 올라왔다. 말총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감목관님이 연통도 없이 들이닥쳤다. 잠시만 앉아 계시라고 주안상 들이밀어 놓고 올라왔은께 금방 오실 것이다. 빨리 빨리 말똥 치우고, 털 솔질해라.”군두가 정신없이 다그치자 목자들도 허둥지둥 마굿간으로 달렸다. 말총이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사월이 집으로 달렸다. 말총이 말을 들은 사월이는 사색이 되었다. 말총이는 사월이를 앞세워 뒷산으로 달렸다. 허둥지둥 달리느라 사월이는 엎어지고, 자빠지며 짚신짝까지 벗어졌다. 말총이가 짚신짝을 집어 들고 재촉했다. 봄에 둘이 앉았던 자리를 찾아 기어들어 갔다. 그러나 그곳은 오솔길에서 너무 가까웠다. 말총이는 사월이의 손을 잡고 더 깊숙한 .. 더보기 피어라 꽃(10회) - 의신면 만길리 나치현에게 가다 사월이는 입은 옷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군두를 따라가며 어그적거리고 걷느라 자꾸 처졌다. 군두는 애가 타서 뒤를 돌아보다가도 사월이가 아랫배를 누르며 찡그리는 것을 보고는 기다려 주었다. 동네와 좀 떨어져 언덕 위에 서 있는 관마청까지 왔다. 대문을 들어서자 부엌 쪽이 부산했다. 군두는 사월이를 이끌어 중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월이는 가슴이 옥죄이는 것 같았다. 좁은 마당 가운데에 아담한 정원이 있고, 댓돌 위에 갖신이 한 켤레 있었다. 감목관의 신발인 듯하였다. 군두가 목을 가다듬더니 아뢰었다. 감목관이 안에서 앉은 채 문을 열었다. “수고했네. 그럼 가 보시게.” “그런데 이 아이가 달거리 중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할깝시오?” 감목관이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더보기 피어라 꽃(9회) 사월아 사월아 말총이는 잘 마른 마초를 새끼로 묶어 날랐다. 말총이는 새 저고리에 새 잠방이를 입었다. 사월이가 지어준 옷이다. 알맞춤한 길이였다. 몸에 맞는 새 옷을 입으니 구김살 없이 반듯한 얼굴과 몸이었다. 건초더미가 산처럼 쌓였다. 여름에 이렇게 준비해 놓지 않으면 말이 겨울내 먹을 수 없었다. 사월이가 텃밭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솔을 베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사월이를 건초 더미 뒤로 불렀다. 사월이가 입을 다문 채 배시시 웃으며 다가왔다.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허리가 길고 곧았다. 말총이는 사월이의 손을 서둘러 잡았다. 그들은 올 가을에 혼인할 것이었다. 부모님이 사윗감으로 한마치를 점찍자 사월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채 밥을 굶었다. 어머니는 동네 소문날까.. 더보기 피어라 꽃(7회) - 걷고 또 걷어가는 어세 모내기를 얼추 마무리한 후 하조도 선원들 일곱 명과 손행권 부자가 박중진의 집으로 모였다. 날이 부쩍 더워져서 방안에 들어앉기도 갑갑하여 마당 가 감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둘러앉았다. 박중진이 칡넝쿨을 째서 단단하게 엮은 두툼한 책을 가져왔다. 십 년째 이어 쓰는 치부책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총 야닯 동을 잡었어라우. 일곱 동을 한 마리에 두 푼 썩 받고 넘겠단 말이요. 일곱 동에 천사백 냥을 받었소야. 한 동은 우리 열다섯 맹이 세 두름썩 받었고, 남은 다섯 두름은 내가 진상품으로 바쳤고라이. 다들 애썼소.” 둘러앉은 사람들은 다들 머릿속으로 자신이 얼마를 받을 지 셈해 보느라 바빴다. “배랑 선주가 세 짓인게 사백이십 냥을 제하고, 나머지 구백팔십 냥을 열네 맹이 나누믄 한 사람 당 칠십 냥이 나오.. 더보기 피어라 꽃(8회) - 왜선을 몰아내다 옆집에서 옥동댁 시어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옥동양반이 재작년 겨울에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뒤 눈물이 마를 새 없던 노인네였다. 옥동양반은 배와 함께 수장되어 버렸는데 그 배에 대한 세금이 작년에 또 나왔다. 사망 신고하고 배도 잃어버렸다고 했지만 아전들이 서류를 고치지 않은 것이다. “선세 받어 갈라믄 내 아들 내놓고 받어 가그라아.” 노인네가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지난해에 세금을 받아 가던 아전들은 이번 세금은 이미 나온 것이라 어쩔 수 없으니 올해에만 내면 내년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약조하였다. 돌아가는 즉시 서류에서 배를 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옥동양반의 선세는 올해에도 나왔다. 달라진 것은 선세를 받으러 온 아전이 바뀐 것뿐이었다. 올해에도 하는 말은 똑같았다.. 더보기 피어라 꽃(6회) - 다들 보은 취회로 가세 조기를 다 떼어 담은 후 다시 그물을 내렸다. 어느덧 한밤중이다. 앞으로 두 달 간은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이 따로 없다. 법성포 박중양이 조기를 받으러 배를 타고 나왔다. 김유복도 함께 왔는데 그는 금방 손종인과 형님, 아우가 되었다. 박중진이 궁금하던 동학 소식을 박중양에게 물었다. 입도하지 않은 사람들도 한양 소식에 귀를 쫑긋 세웠다. 계사년(1893년) 2월에 한양 광화문 앞에서 동학의 주요 두목들이 상소를 올렸다. 묵묵부답이던 임금은 마지못해 ‘각귀안업(各歸安業)’하라는 비답을 내렸다. 이 일은 그렇잖아도 동학으로 쏠리던 민심의 흐름에 새로이 물꼬를 터준 셈이 되었다. 동학이 대단하다는 소문이 크게 돌아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날로 늘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두목들이 생각하기.. 더보기 피어라 꽃(5회) - 칠산바다 닻배 조기잡이 오늘은 박중진의 닻배 출어일이다. 한식날 지나 여섯물이었다. 한식날에 맞추어 떠나면 망종살까지 두 달여간 배에서 살며 조기를 잡았다. 날씨가 청명하면서도 바람이 적당히 불어 포구에 나온 사람들마다 얼굴이 환했다. 닻을 촘촘히 매단 닻그물부터 배에 실었다. 박중진의 아내가 겨우내 들기름을 먹인 면사로 짠 그물이었다. 그물 윗벼릿줄은 짚으로, 아래 벼리는 칡줄을 꼬아 만들었다. 선원은 선주 박중진을 포함해서 열네 명이었다. 선원 중에는 고군면 손행권 부자도 끼어 있었다. 각자 두 달 간 먹을 식량과 김치, 껴입을 옷에 우장, 앞치마, 손토시를 챙기니 짐이 커져 둥둥하니 한 짐씩 짊어지고 배에 올랐다. 배는 돛이 팽팽해져서 굽을 치는 말처럼 곧 달려 나갈 태세였다. 울긋불긋 깃발들도 바람을 가득 안고 부풀었다.. 더보기 피어라꽃(4회) - 진도 하조도에도 동학이 싹트고 다음 날 박중진과 손행권은 썰물에 맞추어 진도를 향해 출발했다. 손행권이 박중진을 보며 말했다. “나도 동학에 입도할라네. 내 펭생 이런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인자사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여.” 그들은 나봉익을 찾아가 만나보기로 했다. 며칠 후 박중진이 손행권과 함께 의신면 만길리 포구에 배를 대고 사람들에게 물어 나봉익의 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나봉익은 그물을 손질하느라 집에 있었다. 영광에서 최경선의 소개로 찾아 왔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봉익은 그들을 방으로 안내한 후 형님을 모시고 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있으니 나봉익이 재종형님이라는 나치현과 함께 들어왔다. 그는 자그마한 키에 수염이 단정했다. 맑은 눈빛이 부드럽고 차분하여 적은 나이는 아닐 것이라 짐작되었다. “.. 더보기 피어라 꽃(3회) - 하조도 뱃사람 박중진 하조도 뱃사람 박중진 박중진은 손행권과 함께 영광 법성포로 향했다. 모아 놓은 건어물을 넘기고, 그물을 짤 면사와 칡줄도 사야 했다. 손행권은 진도 고군 임성포 사람이다. 박중진과 손행권의 아내는 해남 삼촌면에서 함께 자란 동무였다. 아내들이 동향인지라 그들도 서로 친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번 법성포행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박중진은 항상 법성포 박중양과 어물 거래를 하였다. 그는 영광, 무장 등지에 물건을 넘기는 객주였다. 박중진은 그의 집에서 일하는 김유복을 통해 그들이 동학도인인 줄을 알고 있었다. 박중진이 박중양에게 은밀히 동학에 대해 물었다. 박중진에게 띄엄띄엄 동학을 전하던 박중양은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박중진을 위해 태인 대접주 최경선을 한 번 모셔오겠노라고 했다. 들물을 따..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