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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수

은월이(7회) -<경칩> 제삿날 윤지영은 살을 깎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경칩 (음2.8/양3.5) 언땅을 비집고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이 싹을 틔웠다. 그들의 생명력으로, 날이 따뜻해지고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산짐승들도 완연 생기가 돌았다. 어느새 겨울잠을 끝낸 동물들도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은월당도 분주해졌다. 봄볕이 따사롭게 마당을 내리쬐었다. 대청마루에는 붉은 천이 곱게 펼쳐져 있었다. 영옥은 붉은 천에 금색실로 수를 놓고 있었다. 은월이는 마당을 항상 종종 걸음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전주댁을 눈으로 찾았다. “영옥아. 어머니가 보이 않는구나. 어디 아픈 거냐?” “볼일이 있다며 일찍 나가셨습니다.” “무슨 일?” “글쎄요….” 영옥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자주색 깃발을 들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은월 접장! 이 깃발에 수놓은 것 어때요.. 더보기
은월이(6회) - <우수>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6) 우수 (음1.14/양2.19) 겨울이 지나고 눈은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은 녹아서 물이 된다는 우수가 왔지만 아직 쌀쌀한 바람 끝자락마다 얼음바늘이 꽂혀 있었다. 은월당 마당에 아낙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김석진과 젊은 도인들이 후방을 책임질 아낙들 잔치를 거들고 있었다. 김석진은 묵묵히 화로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가마를 걸어야할 아궁이도 마당에 여러 개 만들었다. 영옥은 은월이 옆으로 다가 자신 있게 말을 했다. “연습 삼아 노상에 부엌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거 보세요, 무거운 가마솥 대신 쇠가죽으로 했습니다.” “잘했구나.” “지난 취회 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당에 펼쳐진 노상부엌을 보며, 은월은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 금객주는 달구지에 잔뜩 음식을 실고 왔다... 더보기
은월이(2회) -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2) 은월이 -자주 깃발은 함성이 되어 “영--영--옥--아!” 함성소리에 깜짝 놀란 은월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제바위에 김석진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포대를 감싸 안은 채 김석진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병풍에 둘러싸인 석바위 하나하나마다 부딪쳐 튕겨져 오르며 소용돌이 쳤다. 은월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허공으로 손을 내밀어 김석진을 잡아 보려고 했다. 소용없었다. 김석진의 우렁찬 소리는 다시 소용돌이처럼 은월이의 온몸을 감쌌다. “이놈들 듣거라. 이 땅은 수천 년 얼이 새겨진 곳이다. 감히, 왜놈들이 들어올 땅이 아니다!” 은월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어디선가 함성소리가 북소리에 실려 들려왔다. “와-와-. ” 김석진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내가 죽어도 개벽은 영원하다!” .. 더보기
은월이(1회) -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 갑신년(1894) 입춘 (음1월30일/양2월4일) 강경 포구는 하루 종일 배와 상인들로 북적여서 길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노랑나비가 새겨진 자주색 깃발이 휘날리는 배의 수를 세던 금객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한손에 장부를 움켜쥐고, 포구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시끌시끌한 포구의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야트막한 등성이에 올라서자 아스라이 펼쳐진 염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둑판처럼 가지런한 염전 한가운데쯤에 은월이가 보였다. 은월이는 소매를 걷어부치고, 치마도 동여맨채 소금을 자루에 담고 있었다. 금객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은월접장!” 은월이는 금객주가 온 줄도 모르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소금을 담고 있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뭐하고 있습니까? 화창한 봄날에....” “비가 올.. 더보기
은월이 - 연재를 시작하며 은월이 연재를 시작하며 의로운 세상을 세우는 길에는 패배란 없다... 소설 속에 노랑 나비수가 새겨진 자주 댕기는 개벽이 계속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노랑나비는 희망을 자주는 운명을 개척하며 계속전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갑오년 동학혁명은 비록 실패했지만, 의로운 세상을 세우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은 끝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처럼 끝이 없다고 패배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연산전투의 역사적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금티 전투에서 패배한 후 남하한 동학 민중들은 흐트러짐 없이 다시 연산에 집결하여 대일 항전을 전개한다. 그들은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육체적인 생명보다 더 소.. 더보기
피어라 꽃 - 머리말 연재를 시작하며 제가 ‘해남, 진도 지역’ 동학 소설을 쓴 것은 한 유골 때문입니다. 1995년 홋카이도 대학 강당 보관고에서 발견된 진도 동학군 지도자의 유골. 그 유골은 왜 일본으로 가게 됐는지, 채집해 간 사토 마사지로는 누구이고, 그는 왜 진도에서 유골을 채집했는지, 누구에게 전달했으며, 유골을 연구한 자는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낱낱이 파헤치고 싶었지요. 홋카이도 대학의 이노우에 교수가 유골 속에 들어 있던 첨부문서의 내용을 조사해 유골 채집자 사토라는 사람의 이력을 결국 찾아냈습니다. 그는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학교 제19회 졸업생이었지요. 삿포로 농학교는 식민학과 인류학 연구가 왕성했고, 조선 침탈을 위한 제국주의 전사들을 양성하던 곳이었지요. 사토는 러일전쟁 참전 후에 일제 통감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