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서 옥동댁 시어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옥동양반이 재작년 겨울에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뒤 눈물이 마를 새 없던 노인네였다. 옥동양반은 배와 함께 수장되어 버렸는데 그 배에 대한 세금이 작년에 또 나왔다. 사망 신고하고 배도 잃어버렸다고 했지만 아전들이 서류를 고치지 않은 것이다.
“선세 받어 갈라믄 내 아들 내놓고 받어 가그라아.”
노인네가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지난해에 세금을 받아 가던 아전들은 이번 세금은 이미 나온 것이라 어쩔 수 없으니 올해에만 내면 내년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약조하였다. 돌아가는 즉시 서류에서 배를 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옥동양반의 선세는 올해에도 나왔다. 달라진 것은 선세를 받으러 온 아전이 바뀐 것뿐이었다. 올해에도 하는 말은 똑같았다. 내년에는 꼭 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선세를 낼 때마다 아들 생각에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노인의 집까지 그들이 온 것이다. 그 집까지 뒤지는 모양이었다. 노인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노인은 바닥에 발을 뻗고 앉아 땅을 치며 사설을 하였다. 땅바닥을 얼마나 쳤는지 손바닥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멋할라고 살었으까. 생떼 같은 내 자석을 행이라도 보까 하고 이날까지 살었드니 아이고 내 팔자야. 이지경을 당할라고 내가 내가 살었으까. 아이고 내 새끼야. 이 에미 좀 데꼬가재 이꼴저꼴 다 봄스로 징그러서 못살것네. 아이고 내 자석아.”
애간장을 끊어내는 그 소리에 박중진네 가족은 망연자실하니 말을 잃었다. 그 며느리가 어머니를 달래는 소리가 났다.
포졸들이 한바탕 섬들을 훑고 지나 간 후 동임 이 씨가 통보하였다. 이제부터는 포구를 들어올 때 뿐 아니라 나갈 때도 세를 걷겠다는 것이었다. 이 씨에게 말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 씨뿐이었다. 어민들은 이 씨에게 따지고,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뭔가 못 먹을 것을 먹은 건지, 이 씨의 눈빛은 점점 흉포해져 갔다.
민어철이었다. 며칠 후 박중진과 하조도 어민들은 약속한 대로 함께 포구를 나섰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서 있는 이 씨의 손바닥에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 냥씩 떨군 후였다. 선원 대여섯 명씩 태운 배가 네 척이었다. 서쪽으로 관매도를 지나 거차도 어근에서 멈추어 장대를 물 속 깊이 꽂고, 고기 소리가 나는지 들었다. 괠괠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왜선들이 동력선으로 그물을 끌고 다니며 어족 씨를 말린다더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일행은 기를 흔들어 서쪽으로 더 가기로 했다. 서남쪽으로 맹골도가 아스라히 보이는 곳에 당도하자 노젓는 팔이 뻑적지근했다.
“싸게 싸게 더 가세.”
“아이고, 맹골도가 아직도 뵈이네. 얼렁 내빼야재.”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노를 저었다. 맹골도에서는 윤선도 후손이라는 윤씨가 임금이었다. 맹골도는 윤선도 집안 소유의 섬이었기 때문에 땅에서 나는 수확뿐 아니라 바다에서 잡는 것도 아귀같이 소작을 매겨 떼어 간다고 했다. 조도 사람들은 맹골도 근처에서 고기 잡을 염을 내지 못했다. 윤씨네 종들에게 들켰다가 맹골도 소작인이 아니라며 고기를 다 뺏겼을 뿐 아니라 두들겨 맞기까지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거차도 쪽으로 틀어 올라가니 고기가 좀 있었다. 각자 자리를 잡고 그물을 내렸다. 멀리 가지 않고 서로의 배가 보이는 곳에서 고기를 잡았다. 고기를 잡는 동안은 마음이 평화로웠다. 적게 잡히면 잡히는 대로, 많이 잡히면 잡히는 대로 배를 곯지만 않으면 세상살이가 괜찮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저녁노을이 졌다. 노을은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해를 쫓아 왔건만 해는 끝내 잡히지 않고 붉은 치맛자락만 펼쳐둔 채 물 속에 몸을 담궈 버렸다. 노꾼 김 씨가 먼 데 노을을 보느라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자 임씨가 말했다.
“해 빠징 거 첨 봉가. 넋을 빼고 앉었네이.”
“그랑게 말이여. 맨날 봐도 첨 본 거 맨치로 정신이 나가부네.”
그때였다. 아득한 바다 저 멀리서 통 통 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중진은 노을을 보던 눈길을 들어 소리나는 쪽을 살폈다. 일어서서 살펴보아도 망망대해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자 바다는 시시각각 어두워졌다. 그 때였다. 서거차도 쪽에서 어선 한 척이 나오더니 맨 동쪽에 있던 하조도 유토리의 김씨 배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배 모양이 날렵하게 긴 게 왜선 같았다.
“왜놈 밴갑서야. 어째서 밑에서 안 오고 섬 쪽에서 온다냐?”
“오매, 저 놈들이 뭣할라고 우리 쪽으로 가차이 온다냐?”
노꾼 김 씨가 걱정스럽게 말하는 동안에도 왜선은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중진이 고물 쪽으로 가서 키를 잡았다. 키를 놀려 김 씨의 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물 쪽에 있던 임 씨가 다른 배들을 향해 깃발을 급히 흔들었다. 서쪽에 있던 두 척의 배에서도 깃발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임 씨가 짓눌린 음성으로 말했다.
“뭔 일 나것는디, 싸게 가세야.”
서쪽에 있던 두 척의 배도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왜선은 이제 김 씨의 배에 바투 다가서 있었다.
박중진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왜선의 남쪽으로 갔다. 육골 배들은 중진의 배가 오른쪽으로 트는 것을 보고는 왼쪽으로 틀어 왜선의 북쪽으로 나아갔다. 배 세 척이 왜선을 에워싸려 하는 것이었다. 허리가 휘어져라 노를 저었지만 조류를 거스르기가 힘들었다. 명량수로 다음으로 조류가 급하다는 곳이 맹골수로였다. 맹골도 바깥쪽이라 수로보다는 덜했지만 보름사리의 썰물 물살은 엄청난 힘으로 배를 남서쪽으로 밀어대었다. 박중진의 배가 먼저 당도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왜선은 중선 정도 되는 큰 배였다. 김 씨의 배가 마구 출렁이고 있었다.
“어이, 김씨. 괜찮애? 뭔 일이여?”
박중진이 소리쳤다. 하지만 왜선의 발동기 소리에 묻혀 못 듣는 것 같았다. 김 씨 배의 선원들은 모두 우현 쪽에서 왜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선에서 서너 명이 밧줄을 들고 있었다. 이물을 김씨 배의 우현에 대더니 밧줄을 김 씨의 배에 던졌다. 밧줄 끝에는 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왜선은 김 씨 배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였다. 왜놈 서넛이 김 씨 배로 옮겨 탔다. 번쩍 하는 것을 보니 일본도를 휘두르는 모양이었다.
박중진의 옆에 있던 안 씨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그놈들인디? 이물이 시컴해 갖고 내가 흑산도에서 본 그 배여.”
박중진은 배를 김 씨 배에 바짝 댔다. 김 씨와 어민들은 노를 들어 왜놈들에게 휘두르고 있었다. 박중진의 배에 탔던 노꾼 김씨가 유토리 김 씨의 뱃전에 선 왜놈의 뒤통수를 노로 쳤다. 왜놈은 김 씨의 배 안으로 고꾸라졌다. 임씨는 장대로 왜놈의 등을 푹 쑤셨다. 왜놈 두 명이 바다로 고꾸라지자 배 안에는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한 명은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박중진이 김 씨의 배로 옮겨 타 몽둥이를 들고 왜놈에게 다가갔다. 마지막 왜놈은 일본도를 치켜들고 있었다. 김 씨 배의 노꾼 한 명이 왜놈의 발아래 쓰러져 있었다. 다른 노꾼들도 피투성이가 되어 뱃전 아래에 주저앉아 있었고, 유토리 김 씨는 저고리가 피에 흠뻑 젖었다. 왜인은 돛대를 등에 지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박중진이 몽둥이를 내밀며 왜인의 오른쪽으로 발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합세할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순간 왜인이 박중진의 정수리를 향하여 칼을 휘둘렀다. 박중진은 잽싸게 몸을 숙이며 몽둥이로 칼을 비껴 막았다. 왜인은 다시 번개같이 칼을 들어 박중진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렀다. 임 씨가 한 발 빨랐다. 중진이 옆으로 구르는 순간 임 씨의 장대가 왜인의 가슴을 찔렀다. 왜인의 복부를 겨누어 찔렀는데 그가 몸을 숙여 가슴이 찔렸던 것이다. 왜인이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임씨는 다시 배를 찔렀다. 뱃전에 서서 연거푸 왜인의 배를 찌르자 잠시 후 왜인이 바닥에서 이리저리 구르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박중진의 배에 탔던 노꾼 셋까지 김씨의 배로 와 왜인 둘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뒤늦게 온 육골 배 선원들은 김씨 배 부상자들의 상처를 묶었다.
“저놈들 다 죽여 부러.”
육골 배 선원들이 왜선에서 던진 밧줄을 잡아 당겼다. 육골 배가 왜선에 닿았다. 선원들이 왜선에 옮겨 타려 하자 왜인들이 놀라 밧줄을 끊었다. 왜선은 뱃머리를 돌리더니 동력을 최대로 올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형님, 우리 저놈들을 쫓아가서 아작을 내 부께라우.”
육골 박 씨가 이를 빠드득 갈았지만 너무 늦었다. 설사 쫓아간들 동력선을 따를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팔뚝이나 다리를 베였지만, 유토리 서 씨는 옆구리를 찔려 피가 멎지 않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옆구리가 결리는지 ‘흡’ 하고 숨을 멈추곤 하였다. 박중진의 노꾼 둘과 육골 노꾼 둘이 김 씨 배로 옮겨 타 노를 저었다.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하조도로 향했다.
육골 포구에 닿자 읍구 동임 최 씨가 어슬렁어슬렁 나왔다. 어세를 받으려는 것이었다. 주막에서 술을 마시던 수군 세 명도 불콰해진 얼굴로 거만하게 나왔다. 그들은 어민들이 고기를 챙겨 올라올 길목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중진이 먼저 배를 대고 김 씨 배 쪽으로 갔다. 육골 박 씨가 핏발이 선 눈으로 수군들을 흘겨보았다. 고기를 꺼내지 않고 김 씨 배로 달려가 부상자를 부축하여 나오자 동임 최 씨가 놀라 달려 내려왔다.
“뭔 일이당가? 이것이 뭔 일이여? 누구랑 쌈했어?”
“아, 씰 데 없는 소리 말고 시신 옮겨야 됭게 대발이나 갖고 오쇼.”
대발 가져오라는 소리는 들은 척도 않고 동임 최 씨가 시신에게로 갔다.
“오메, 유토리 서씨구마.”
서 씨는 끝내 돌아오는 배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서 씨의 시신을 모래미 사장에 내려놓자 수군들이 건들거리며 내려왔다. 수졸 한 명은 벌써 군교에게 알리러 바닷가를 끼고 달려가고 있었다.
“살변이여? 여럿 죽어나것구마.”
“누가 죽였어? 너냐?”
수군 한 명이 씩씩거리며 노려보는 육골 박씨의 얼굴을 가리켰다. 박씨가 참지 못하고 수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수군은 술에 취한데다 키가 작아 발끝이 땅에서 들려 대롱대롱했다.
“느그들은 밥 처묵고 하는 일이 뭐여. 바다 지키라고 여그 있는 거 아녀? 그란디 어째서 왜놈들이 우리 코앞에서 어장함서 수적질까지 한디 그냥 놔 두냐?”
박중진과 일행들이 놀라 박 씨의 손아귀에서 대롱거리고 있는 수군을 잡아 뺐다. 군교가 금방 올 텐데 이런 모습을 보면 능멸죄로 곤장감이었다. 육골 선원들이 뒤에서 박 씨를 잡고 놓아주지 않자 박 씨는 발길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내가 틀린 소리 했냐? 이 도적놈들. 왜놈들이 고기 뺏을라고 사람까지 죽인디 느그들은 뭐했냐고? 술처먹고 개팽 뜯을라고 나온거 아녀? 나 저 도적놈 한나 죽이고 나도 죽어불라요.”
수군은 박씨에게서 놓여나자마자 박 씨 뺨을 때리고 발로 찼다.
“이 새끼가 뒈질라고 환장을 했나? 너 오늘 지사날 받은 중 알어라.”
수군이 손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박 씨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자 박 씨를 잡고 있던 선원들이 일제히 손을 풀었다. 박 씨가 주먹으로 멱살을 잡은 수군의 머리를 내리쳤다. 망치 같은 주먹에 맞아 수군이 푹 주저앉았다. 이번에는 선원들도 참지 않았다.
“오늘 이 수군놈들도 괴기밥으로 줘 붑시다.”
발로 차고, 모래밭에 굴려가며 자근자근 밟았다. 다른 수군 두 명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더니 꽁지가 빠지라고 줄행랑을 쳐 버렸다.
육골 사람이 가져온 대나무 발에 시신을 넣어 묶었다. 시신을 지게에 지고, 부상자들을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가는 동안에도 수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동임 최 씨도 머쓱하니 서 있다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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