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총이는 잘 마른 마초를 새끼로 묶어 날랐다. 말총이는 새 저고리에 새 잠방이를 입었다. 사월이가 지어준 옷이다. 알맞춤한 길이였다. 몸에 맞는 새 옷을 입으니 구김살 없이 반듯한 얼굴과 몸이었다. 건초더미가 산처럼 쌓였다. 여름에 이렇게 준비해 놓지 않으면 말이 겨울내 먹을 수 없었다. 사월이가 텃밭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솔을 베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사월이를 건초 더미 뒤로 불렀다. 사월이가 입을 다문 채 배시시 웃으며 다가왔다. 볼에 보조개가 깊게 파였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허리가 길고 곧았다. 말총이는 사월이의 손을 서둘러 잡았다. 그들은 올 가을에 혼인할 것이었다.
부모님이 사윗감으로 한마치를 점찍자 사월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채 밥을 굶었다. 어머니는 동네 소문날까 봐 쉬쉬하며 사월이를 설득했다. 그러나 사월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사흘 만에 부모님은 사월이에게 졌다.
“미친 년, 쌀밥 걷어차고 보리밥 차지할 년. 으이그, 이것도 지 복이재.”
사흘 만에 일어나 보리밥을 달게 먹는 사월이에게 어머니는 구시렁거렸다. 사월이는 어머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사월이는 그 길로 한마치를 찾아갔다. 사월이를 본 한마치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확고한 것을 알고는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더니 어깨가 축 처졌다. 그는 이제 다시는 그녀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 사월이는 가슴이 아팠다. 사월이는 하마터면 그의 이름을 부를 뻔했다. 혼인하자고만 하지 않았으면 한마치는 한없이 듬직하고 좋은 오빠였을 것이다. 사월이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그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질수록 미안함이 커졌다. 한마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한마치는 목장에서 보이지 않았다. 도망쳤다고 했다. 그 후부터 목자들에 대한 군두들의 감시가 부쩍 심해졌다.
말총이는 사월이에게 옷치사를 했다. 사월이가 자신을 위해 바느질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질 듯 기뻤다.
“내 몸 치수도 모름서 어뜨케 이로크롬 딱 맞게 잘 만들었다냐?”
“치수를 왜 몰라? 날마다 보는디? 새 옷 입은께 새 신랑 같다야.”
“나도 니한테 뭣이든지 해주고 싶은디 뭣을 해주끄나?”
“음…, 죽을 때까지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말어.”
“겨우 고것이여? 나는 죽고 나서도 그럴 것인디? 딴 거 말해 봐.”
“없어. 해주고 싶은 거는 많은디….”
“뭔디?”
“옷도 더 해주고 싶고, 밥이랑 국이랑 반찬도 해주고 싶고 그러재.”
“…….”
말총이는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말없이 사월이를 꼭 안아주었다. 평생 사월이만 알고, 그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건 하리라 마음먹었다. 사월이가 몸을 뒤채며 말총이의 겨드랑이를 찔렀다. 말총이가 픽 웃으며 놓아주자 사월이는 쏜살같이 석성 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칠월 초하루였다. 날씨가 푹푹 쪘다. 말들도 더위에 지쳐 살이 오르지 않았다. 감목관이 지력산 목장에 온다고 하였다. 한양으로 뽑아 보낼 말들을 선별하기 전에 말들의 상태가 어떤지 미리 보려는 것이었다. 감목관은 평시에는 해남반도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화원 목장에 상주하였다. 화원목장은 진도부에 속한 곳이었다. 감목관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군두는 군부를, 군부는 목자 다그치기를 복 날 개 잡듯 했다. 평소에는 잘 나와 보지도 않던 목장에 아침, 저녁으로 나와서 설쳐댔다. 말똥을 치워라, 갈기 솔질을 다시 해라, 건초 여분이 부족하다고 족치다 동작이 굼뜬 목자가 있으면 말채찍으로 갈겨대기 일쑤였다. 목자들은 뼈가 녹아나도록 일했지만 걸핏하면 매를 맞았다. 게다가 감목을 마치고 말 마리 수가 장부보다 많으면 감목관이 팔아서 착복하고, 죽거나 병이 들면 목자들이 책임져야 했다.
군마를 뽑아 한양으로 보내고 나면 간혹 목장에서 도망치는 말들이 있었다. 말들도 모자간이나 부부 간에는 그 정이 각별했다. 며칠 동안 눈물을 흘리며 찾다가 결국 탈출해 찾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도는 섬이었다. 탈출한 말은 해안가를 따라 빙빙 돌며 울부짖다 끝내 탈진해 쓰러져 죽는 것이다.
도망쳐 버린 말 때문에 태형, 장형을 당하면서도 목자들은 말을 원망할 수 없었다. 울다 울다 탈출하는 말의 심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목자들은 떠나는 말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극진하게 보살핌을 받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말이 목자 팔자 보다 나았다. 평생 목장에 갇혀 일만 하다 목장에서 죽어야 하는 목자 처지는 말만도 못했다.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되는 처지를 비관하다 도망치는 목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목장으로 자진해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가진 땅이 아예 없거나 세금 때문에 그나마 있던 땅까지 뺏긴 사람들이었다. 아전들 꼴 안 보고, 세금 없는 곳에서 살겠다며 목자 호적에 스스로 이름을 올렸다.
“이 말 말굽이 왜 이래. 병들었잖아. 누구 말이냐?”
군두의 목소리가 쨍하고 높아졌다. 사월이 아버지 말이었다.
“지 말이구만이라우.”
사월이 아버지가 벌벌 떨며 앞으로 나서자 군두의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사월이 아버지 등에서 인절미떡 치는 소리가 났다. ‘헉!’ 들이킨 숨을 뱉어내지도 못하고 그가 쓰러졌다. 한여름이라 베저고리 한 겹밖에 걸치지 않은 몸이었다. 채찍으로 맞은 자리에서 금방 핏물이 배어나왔다. 사월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을 새가 없었다. 군두가 뚜벅뚜벅 마굿간 구석으로 걸어갔다. 말총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벌써 며칠 째였다. 아버지의 말 한 마리가 며칠 째 열이 나면서 숨을 내쉴 때마다 ‘푸르르르’ 소리를 냈다. 풀을 안 먹고 시난고난 앓더니 오늘은 털이 한 옴큼씩 숭숭 빠졌다.
“뭐야? 엉치뼈가 하늘로 솟았잖아. 누구 말이냐?”
군두가 병든 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말총이의 아버지가 한 걸음 나섰다. 깡마른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군두의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말총이의 아버지도 푹 쓰러졌다.
“니 놈들보다 백배 중한 말들이다. 먹지도 말고, 자지도 말고 돌보란 말이다.”
말총이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부르쥐었다. 한마치의 형도 채찍을 맞았다. 우물 주변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우물 주변은 깨끗했다. 또 우물은 그들 목자군의 공동책임이기도 했다. 한마치가 도망친 것 때문에 그의 형을 때리려 일부러 구실을 잡아낸 것이었다. 그것은 한마치 형에게 군부로 승진할 것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mugwort in frost" by Jaanus Silla, used under CC BY
말총이가 부리나케 쑥을 뜯어왔다. 널따란 돌에 얹고는 주먹만한 돌로 쿵쿵 찧었다. 곧 생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채찍에 맞은 자리에 붙이자 이내 흐르던 피가 멎었다.
열흘 가까이 시달리고 나자 감목관이 왔다. 군두가 목자들을 얼마나 다그쳤을지 뻔히 아는 감목관은 그저 둘러보는 시늉만 하였다. 군두는 감목관의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이 말은 병이 들었는데 자신이 어떻게 고쳤는지, 저 암말 새끼 낳을 때 자신이 팔뚝까지 집어넣어 빼내어 망아지를 살렸다.’는 둥 자기 치사를 하느라 침이 말랐다. 감목관은 가끔 고개를 끄덕여주며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월이가 머리에 빨래함지를 이고 다가왔다. 개울에서 빨래를 해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목장 석성에 젖은 빨래를 걸쳐 말렸다. 개울물에 머리를 감았는지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이 칠흑같이 검었다. 더위에 발갛게 익은 볼이 터질 듯 고왔다. 저고리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이 가늘었다. 말들을 둘러보던 감목관의 눈이 순간 사월이의 얼굴에 꽂혔다. 군두는 입에 침을 튀기며 말을 하다가 대꾸가 없자 감목관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사월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빈 함지를 머리에 이고 돌아섰다. 곱게 땋은 머리가 가늘고 긴 허리까지 닿았다. 한 손에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탐스러운 머리채였다.
“누구냐?”
감목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월이의 뒤태를 뚫어질 듯 보았다. 군두는 감목관의 의도를 잽싸게 알아차렸다.
“예. 우리 목자 딸입니다요. 제가 오늘 밤에 선처할깝쇼?”
감목관은 ‘크음!’ 헛기침을 하고는 군두에게 말했다.
“군두가 고생을 많이 했구나. 말들이 기름지고 마구간 청소도 잘 해놓고. 내 올라가면 자네에 대해 특별하게 선처하겠네.”
군두는 연신 허리를 조아렸다. 감목관은 아랫동네에 있는 관마청으로 돌아갔다. 군두가 사월이의 집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사월이 아버지가 웃통을 벗은 채 서 있었다. 흉측한 등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열흘 전에 채찍을 맞아 핏자국이 맺힌 자리에 검붉게 딱지가 앉았다.
“일전에 채찍은 미안하게 되었네. 나도 일 욕심이 많아서 그러지 자네가 미워서 그러겠나. 그건 그렇고 자네는 이제 팔자 피었네. 자네 딸 사월이 있잖은가? 감목관님이 맘에 든 모양이여. 제일 존 옷으로 입혀서 얼른 델꼬 나오게.”
“야우? 갑자기 그것이 뭔 소리싱가라우? 감목관님이 언제 지 딸을 봤다고 그라요?”
“아까 여기 돌 때 잠깐 보신 모양이네. 자네가 복이 있을라고 그 잠시 잠깐 동안에 자네 딸이 눈에 띈 것이네. 어서 들어가서 데리고 나와.”
군두가 등을 밀자 사월이 아버지는 할 수 없이 거적문을 들치고 들어갔다. 안에 있던 사월이의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밖의 말을 다 들은 모양이었다. 사월이가 눈에 눈물이 가득차서는 제 어미를 향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였다. 사월이의 어머니가 방구석에서 놀고 있던 사월이 동생을 쫓아냈다. 그녀는 사월이 아버지에게 귓속말로 군두를 좀 멀리 데려가 기다리라 했다. 어머니가 사월이에게 물었다.
“아가, 은제 감목관이 너를 봤다냐?”
“아까 빨래 널고 있는 디서.”
사월이는 눈을 흡뜬 채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잔뜩 짓눌린 목소리였다.
“그렇게도 싫으냐? 여그 살어봤자 목자 각시나 될 것인디 그라냐?”
“나 말총이랑 혼인할 거여. 나는 말총이 아니믄 죽어 불거여.”
사월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고리섶을 움켜쥔 사월이는 올무에 걸린 노루처럼 떨었다. 어쩌자고 그때 빨래를 널러 갔는지 후회막급이었다. 한사코 밖으로 다니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이런 일을 당할까 봐 그렇게 단속했던 것이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인자사 지랄허고 자빠졌네. 더러운 팔자가 목자 각시도 못될 팔자였는갑다.”
“안 해. 나는 말총이 아니믄 못 살어. 나 죽는 꼴 안 볼라믄 어서 어뜨케 해봐.”
지금 믿을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사월이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어머니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옷고름으로 사월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니년 땜에 내가 딱 환장을 허것다. 아이고, 그래. 감목관 놈이 너를 본처 삼것냐? 꽃 같을 때는 좋다고 달라들어도 금방 내땡개 불것재. 알었다. 그라믄 이라고 하자. 너 지금 몸엣것 하냐?”
“아니. 끝났는디.”
“내가 마침 시작했은게 되얐다. 이것도 니 복이재. 뭔 말인지 알것지야?”
사월이는 살았다 싶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머니가 속곳 속에서 개짐을 꺼내 주자 사월이가 그것을 찼다. 사월이네는 새것으로 갈아댄 후 밖으로 나갔다. 사월이네는 군두에게 다가가 사월이 아버지를 저만치 가라고 한 후 말했다.
“우리 딸이 엊저녁부터 몸엣것이 있구마이라우. 지 복이 조랑복이라 그란디 으짤 것이요? 군두님이랑 감목관님한테 지송하구마요.”
“거짓말 아니여?”
군두는 사월이네의 얼굴을 뜯어보더니 말했다.
“오매오매. 딸이 감목관님 은혜를 입으믄 우리는 팔자가 필 것인디 뭣한다고 거짓말을 하것소? 애두루와 죽것구마는. 정 그라고 의심 나믄 들어와서 직접 봐보쇼.”
사월이네가 돌아서 군두를 이끌며 말했다.
“알었다. 어찌 됐건 감목관님이 직접 알아서 하실 것인게 나는 델꼬 가야쓰것다. 이리 나오락 해라.”
“알었구마이라우. 쪼깨만 지달리시요야.”
사월이네가 움막 안으로 들어가 사월이에게 말했다.
“인자 니한테 매였은게 알어서 잘 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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