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썸네일형 리스트형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장흥편) 1~12회 / 명금혜정 제1장 갑오년의 아침 이인한은 마을 앞 연못에 서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1894년, 갑오년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들판 너머로 짙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차가운 갯바람이 불어왔다. 그의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였다. 그는 하늘님께 심고를 드리고 두 손으로 목검을 잡고 재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내리쳤다. 챙하는 소리가 연못을 흔들었다. 느티나무 고목의 잔가지들이 연못 속에서 미세하게 떨었다. 잔바람에 물살이 파르르 밀렸다. 이태 전에 이웃마을 송촌리 이순홍(李順洪) 도인에게 입도식을 한 후로 그는 날마다 연못 가에서 수련을 했다. 그는 두 입술을 꼭 다물고 날카로운 눈으로 들판 너머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미 입도한 도인들의 발걸음이 저 바다 너머 섬마을의 골목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썰물이 되면 바.. 더보기 님, 모심(강원도편) 1~14회 / 김현옥 장일순과의 대담(1988년 5월) 치악산은 얼마 전에 연둣빛 등허리를 드러내더니 신록이 나날이 짙은 윤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꽃샘추위 뒤끝에 다사로운 봄 햇살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환한 이팝나무가 꽃잎을 터트리자, 덩달아 찔레나무와 아카시아나무도 꽃향기를 내뿜었다. 나무는 겨우내 향기로운 잎과 꽃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눈감고 가만히 숨을 들이쉬면 꽃향기가 맡아졌다. ‘이런 날엔 봄맞이 소풍이 제격인데….’ 유청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중요한 취재가 있는 날이다. 문화부장에게서 원주의 장일순이라는 분이 서울 인사동 갤러리 ‘그림마당 민’에서 서화전을 개최한다고 취재해 오라는 엄명을 받아 놓은 터였다. 장일순?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처음에 유청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장..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 Part 2(7회~12회) 섬진강은 흐른다 Part 1(1회~6회)에 이어서 제5장 봄날 뜻이 통한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라도 석훈은 임봉춘의 집을 찾았지만 구례까지 친구 집을 쥐방구리 드나들 듯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석훈은 봉춘의 집에 드나들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갸름한 얼굴에 입술이 붉은 서엽이 때문이었다. 봉춘이 동생 임서엽이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봉강에서 달덕이재를 넘어 구례까지 산길을 달리고 섬진강을 건너는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성불사를 지나 백운산 줄기로 이어진 높은 산을 넘을 때도 힘든 줄 모르고 달음박질로 산을 탔다. 그런데 봉춘의 집에 자주 들르는 사람은 자기만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은근히 자주 왔다. 석훈이 다섯 번 오면 계환과 두환이 중에 누군가를 한 번은 마주쳤다. 친구들은 봉춘과 시간을 보내면서 ..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 Part 1(1회~6회) 광양의 엄마 집으로 돌아온 숙정은 며칠간 아무 일도 안 하고 잠만 잤다. 엄마는 숙정의 몸이 안 좋아 보인다고 날마다 특별한 건강식을 만들어 먹이려고 하셨다. 집에 더 있자 해도 엄마에게 못할 일이었다. 한국에 아는 친구들은 몇 없고 그나마 그 친구들도 다 가정을 꾸리고 있어 마땅히 기댈 언덕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한 친구가 숙정에게 권했다. “한겨레 휴센터라는 게 생겼는데, 거기 프로그램이 좋아. 이번 여름에는 공주 마곡사에서 한다더라. 프로그램에 참가해 본 사람들이 좋다고 추천하던데 거기 한번 가 봐. 말 그대로 힐링이 된다던데….” 2013년 8월 초 가장 무더운 여름날 숙정은 3박 4일을 마곡사에 있었다. 그리고 명상 프로그램을 따라 하면서 가슴 답답함이 조금 가시는 듯하였다. 도인 체조도 좋았..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매 Part 2(7회 ~ 13회) 해월의 딸, 용담할매 Part 1 몰아보기 → Part 1에 이어서… 윤은 손 씨 큰어머니에게 괜스레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들어 젊은 어머니가 오게 될 모양이라는 걱정의 뜻을 비추어보았으나 이미 쇠잔할 대로 쇠잔해진 큰어머니는 다만 감사할 뿐이라며 윤이 어른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새어머니는 젊고 시원시원했다. 손 소사가 큰댁을 어머니처럼, 윤을 동생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집안 살림을 규모 있게 꾸려내는 것을 보고 주변사람들은 모두 한 걱정을 덜게 되었다. 윤이는 집안일을 도우며 짬짬이 다시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언문으로 된 책은 쉽게 읽고 쓸 수 있어서 집을 드나드는 아저씨들에게 책을 구해 달라 부탁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저녁에는 언니 같은 손 소사에..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매 Part 1(1회 ~ 6회) 해월의 딸-용담할매 더보기 작품 [님, 모심] -14회 영월에서 49일 기도 (김현옥) 영월에서 49일 기도 다음 날 장봉애 아버지 장필생은 양양옥 관아 뜰에 놓인 형틀에 묶여 곤장 십여 대를 맞고서야 결국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어머니가 면회가 허락되었을 때는 엉덩이 살이 짓물러지고 터져서 양양옥 멍석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었다. 그녀는 옷 한 벌과 돈 30냥을 가져다 속전으로 바쳤다. 어머니가 딸 시집 밑천으로 모아 둔 돈이었다. 그러나 관아에서는 아버지를 내보내지 않았다. 어머니와 그녀는 날마다 감자며 조밥 등을 해 왔다. 잘 먹어야 장독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웃집에서 빌린 돈으로 곡식을 샀다. 집에 있는 그녀 동생들은 굶어서 누리끼리한 얼굴로 물배만 커져 있었다. “저…. 남편을 언제쯤 내보내 주시는 겁니까?” 장봉애 어머니가 옥을 지키는 포졸 눈치를 살피며 조심..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13회) - 인질이 된 처녀들 (출세에 밝은 박정빈은 인질을 고문한 뒤 옥졸에게 내어 주는데...) 아침이 밝았을 때 문이 열리더니 두 남자는 거동 못 하는 손 씨를 끌어내어 밖에 대어놓은 소달구지에 태웠다. 매서운 북풍이 몰아쳤다. “아저씨, 산모 몸에 찬바람이 들어가면 안 될 터이니 우리가 모두 달구지에 탈 테요.” 윤이 동희를 먼저 태우고 달구지에 올라타더니 손 씨에게 가마니를 덮어주고 그 옆에 누워 한기를 막아주었다. “태희야 너도 얼른 올라와서 그 쪽으로 누워.” 나이는 비슷한데 윤이 머리 쓰는 것이나 당차기가 보통은 넘었다. “아저씨, 어디로 가는 거지요?” “가보면 알 거요.” 키가 크고 더 젊은 총각이 퉁명스레 말했다. 앞으로 모진 고초를 겪게 될 것을 저 여자들이 짐작이나 할까? 그의 표정에 딱하다는 빛이 언뜻 스쳐갔..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 12회> 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 10장 휘날리는 동학농민혁명의 깃발(1894년) 그날은 양계환이 논농사를 챙기려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침 댓바람에 유석훈이 찾아왔다. 봉강서 월포까지는 한나절은 부지런히 걸어야 할 길인데 새벽 일찍부터 길을 나선 모양이다. 그만큼 급한 전갈이 있는 거였다. 유 접주 표정이 심각했다. 사랑채에 들어서 자리를 잡자마자 그는 품에서 종이 문서를 꺼내면서 말했다. “양 접주. 우리가 말하던 일이 예상헌 거보다 빨리 왔구마. 전라도 무장에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접주가 기포(起包)했다고 연락이 왔네. 이거이 포고문이여. 언능 읽어봐.” “엉? 그럼 전국에서 기포한단 말이여? 어디 보자.” 그렇게 물어보면서 전해 받은 포고문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 나라에는 부채가 쌓여 있는데도 갚으려는 생각은 아니하고 교만.. 더보기 내포에 부는 바람 (12회) - 보은집회 제6장 보은 집회 1. 광화문 상소에 소두로 참여한 덕산 도인 박광호를 잡아들이라는 조정의 칙령을 받아들고 면천 군수 조관재는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앞으로 동비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 그 지역 수령을 문책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하기사 덕산 수령이나 예산 현감에 비하면 본인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두 박광호와 봉소 박인호가 속해 있는 덕산 수령과 봉소 박덕칠 관할 지역인 예산 현감은 회합 내내 한숨만 쉬었다. 조관재는 이창구가 봉소 명단에서 빠지는 바람에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동학 내에서의 이창구 위치는 박인호나 박덕칠과 같으면 같았지 못하지는 않다고 했다. 오히려 이창구의 접의 세력이 더 커지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박인호나 박덕칠보다 나을 거라고 .. 더보기 이전 1 2 3 4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