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보은 집회
1.
광화문 상소에 소두로 참여한 덕산 도인 박광호를 잡아들이라는 조정의 칙령을 받아들고 면천 군수 조관재는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앞으로 동비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 그 지역 수령을 문책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하기사 덕산 수령이나 예산 현감에 비하면 본인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두 박광호와 봉소 박인호가 속해 있는 덕산 수령과 봉소 박덕칠 관할 지역인 예산 현감은 회합 내내 한숨만 쉬었다. 조관재는 이창구가 봉소 명단에서 빠지는 바람에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동학 내에서의 이창구 위치는 박인호나 박덕칠과 같으면 같았지 못하지는 않다고 했다. 오히려 이창구의 접의 세력이 더 커지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박인호나 박덕칠보다 나을 거라고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조정이 다시금 동학의 발호에 강경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한 지금 이창구가 도인들을 몰고 다니며 소란을 피울 경우 자신의 수령직이 날라 갈 터였다.
조관재는 일과를 마친 후 퇴청하는 길에 아전을 앞세우고 틀못 장터로 향했다. 포목점에 들러 이창구에게 조정의 방침을 넌지시 전달할 생각이었다. 이창구의 심기를 건드릴 이유는 없었다. 동학접장들 중에 이창구만큼 자신을 극진히 예우하는 이는 없었다. 가족들의 생일은 물론이려니와 명절 심지어 백중까지도 챙겼다.
장이 파할 무렵인지라 장터는 한산했다. 포목점 앞에 이르렀으나 이창구는 보이질 않았다. 짐짓 모른 체하고 아전을 앞세워 포목점을 지나 어물전을 거쳐 우시장까지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보았다. 난데없는 사또의 출현에 시장 상인들은 모두들 웬일인가 하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관재는 다시 포목점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도씨 부인만 가게를 지킬 뿐 이창구는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도씨 부인은 남편이 순섬이를 데리고 삼례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편중삼으로부터 전해 듣고 전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 마디가 잘려나간 왼쪽 검지를 보았다. 포목을 정리할 때마다 눈에 밟히는 검지였다. 쓴 내가 목구멍에서 올라왔다. 날이 궂기라도 하면 검지가 쑤시면서 속도 타들어갔다. 자신의 인생도 손가락처럼 한 마디가 잘려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섬이란 여인이 말하자면 그녀의 인생 마디를 잘라낸 칼날이었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온 몸을 휘감았다. 아들이 방어막이 될 수는 있으나 아들을 통해 남편의 사랑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한 여인으로서 남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가장 깊은 곳까지 연결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학에 입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간다면 남편의 마음도 더 이상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까지 동학에 입도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만약의 경우엔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이 될 수도 있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었다. 순섬이를 소실로 인정해 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다! 그녀가 없어져야 한다! 그녀만 없으면 내 사랑이 돌아올 것을! 도씨 부인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순섬이 생각에 골똘했다.
“어험!”
조관재는 헛기침을 하며 포목점 안으로 들어섰다.
“이보우.”
“…….”
“어허, 이보시우.”
생각에 잠겼던 도씨 부인은 아전이 재차 부르는 소리에 그제서야 깜짝 놀라 일어서며 손님을 맞았다.
“아, 네, 어서…, 아이구, 사또 나리 아니십니까? 어쩐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조관재는 뒷짐을 지고 내외를 하고 섰는데, 도씨 부인은 마치 속마음을 들킨 듯 안절부절이었다. 다시 아전이 나섰다.
“바깥어른은 어디 갔소?”
“예,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덕산에 갔는데요. 들어오세요.”
도씨 부인은 포목들을 주섬주섬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아니오. 바깥어른에게 관아로 방문하라 전해주시오.”
“죄송하지만 어인 일로…?”
조관재가 눈짓을 하자 아전이 도씨 부인을 포목점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조정에서 함부로 날뛰는 동비들을 잡아들이라는 엄명이 내렸소. 사또께서 주인양반의 협조를 구하고자 들른 참이오. 어험.”
조관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전도 사또를 따라 나섰다. 이번에는 도씨 부인이 포목점을 나서는 아전을 붙들어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포목점에서도 가장 값나가는 짙은 남색 비단과 엷은 청색 비단을 끊어 보자기에 싸서는 그의 손에 들려 주었다.
“일본 산 비단으로 양반가 규수들이 탐내는 포목이예요. 얼마 되진 않지만 사또 마님 수놓는데 쓰시라고 전해주세요.”
아전은 어쩌지 못하고 조관재를 쳐다보았다. 조관재는 힐끗 쳐다보고는 모르는 척 먼산을 바라보았다. 아전은 보자기를 받아들었다. 도씨 부인은 사또를 향해 절을 꾸벅 했다. 사또는 웃음이 번지는 얼굴 표정을 관리하느라 힘을 주며 가던 걸음을 앞서 나갔다.
도씨 부인은 사또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마음도 좀 편안해졌다. 동학 도인들에 대한 관의 탄압이 심해지면 남편의 활동이 느슨해질 테고 그렇게 되면 순섬이와의 관계도 소원해질 터였다. 이번 기회에 동학을 적당히 하든가 중단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덕산에서 돌아온 이창구는 아내로부터 면천 군수가 다녀간 소식을 듣고 큰 근심에 휩싸였다. 그는 관아로 바로 들어갈까 하다가 차일피일 미루었다. 최근 들어 내포 수령들이 서로 연락망을 강화하여 그물질을 하듯 동학 도인들을 잡아들이고 탄압을 강화하고 있었다. 면천 수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도인들이 조금이라도 무리를 지을 양이면 갖은 구실을 대어 잡아다가 문초했다. 이창구는 면천 수령에게 구실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애를 써 왔다.
2.
조관재가 다녀간 지 한 달이 지난 3월 10일, 수운 대선생 제사가 있어, 이창구는 박덕칠, 박인호와 함께 청산 포전리 김연국의 집으로 갔다. 초가로 된 본채와 사랑채가 있는 자그마한 집이다. 앞마당은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어 정겨웠다. 해월을 비롯한 동학 지도자들이 모두 와 있었다. 동학 도인들은 광화문전 상소 이후 조정의 탄압이 가속화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논의한 끝에 ‘수운 대선생 신원’보다는 ‘척왜양창의’ ‘보국안민’을 앞세워 보은 장내에서 대규모 민회를 열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바로 해월 선생 명의의 통문을 각 접에 발송했다.
“…각 포 도인들은 기한에 맞추어 일제히 모이라. 하나는 도를 지키고 스승님을 받들자는 데 있으며, 하나는 나라를 바로 도와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계책을 마련하자는 데 있다.”
해월을 비롯한 동학 지도부는 바로 보은 장내로 자리를 옮겨 민회 준비를 했다. 그들은 보은 관아 밖에 다음과 같은 방문을 붙였다.
“…우리들 수만 명은 힘을 모아 죽기를 맹세하고 왜양을 타파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니 합하께서도 뜻을 모아 협력하여 충의한 선비들을 모아 국가를 보존할 것을 간절히 바란다.”
순섬은 보은의 민회 참석을 위해 내포 도인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마침 태안 최장수 도인이 함께하니 가는 길이 수월했다. 장내리 입구에 들어서자 빳빳하게 풀 먹인 누런 광목에 ‘척왜양창의’ ‘보국안민’이라고 쓰여진 깃발이 대나무 끝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춘삼월 바람에 나부꼈다. 순섬의 가슴도 깃발처럼 요동쳤다. 과부 아닌 과부로서 홀대받으며 살아온 세월! 깃발이 펄럭일 때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들이 부서져서 하늘 높은 곳으로 사라졌다. 이미 장내리 너른 들판은 도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걸어오는 자, 수레를 타고 오는 자, 말을 타고 오는 자들로 장내 일대는 일찍이 보지 못한 대규모 인파로 북적거렸다. 대도소 출입은 접주 표식을 가진 이라야 겨우 허락되었고, 산 아래 바람막이 돌담을 쌓은 안쪽에서는 수십 개의 멍석마다 도인들이 앉아서 주문 외는 소리가 마치 산이 무너져 내리듯 하였다. 보은 장내는 충청, 전라, 경상 등 삼남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이면서, 해월 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포덕한 동학 마을이 길목마다 자리를 잡고 있어서 관군이 혹 움직인다면 미리 그 기미를 알려 올 수 있는 자리였다.
“쌀 사시오.”
“엿 사시오.”
“마님, 밥 주발 사 가세유. 요긴하게 쓰실 거예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장사치가 따르는 법. 보은으로 향하는 길목마다에는 조선의 장사치란 장사치는 다 몰려든 듯이 큰 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그릇장수 할머니가 순섬의 손을 잡더니 한 손에 쥘 만한 작은 주발을 내밀었다. 맑은 흰빛이 우러나는 작은 백자였다.
“이거, 청수 그릇이유. 하나 사 가세유.”
“이렇게 작은 청수 그릇도 있어요? 아담하기도 하네요.”
최장수는 그것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어디든 가지고 다녀도 짐되지 않을 만큼 작았다.
“도인님, 청수는 집에서만 모시는 게 아니잖유. 어딜 가시든, 때마다 청수를 모셔야 하잖아유. 지니고 다니시려면 이렇게 작아야 해유.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에도 요긴할 거예유.”
그릇장수 할머니는 매달리다시피 순섬의 옆에 착 달라붙어 뒤뚱거리며 따라왔다. 순섬은 초입부터 콧물을 질질 흘리며 따라온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 없는 청수 잔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최장수에게 선물했다.
“여기가 개벽 세상 맞지?”
순섬이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최장수를 보며 살짝 웃었다. 갑자기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네, 맞아요.”
최장수가 순섬이를 보고 해맑게 웃었다. 순섬이는 평소 그녀의 맑음을 좋아했다. 최장수는 태안포 소속으로 태안 도인들은 며칠 뒤 오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녀의 가족은 면천 도인들과 함께 먼저 나섰다. 함께 온 태안 방갈리 도인 문장로는 그녀의 시아버지요 문구석은 남편이었다. 그녀는 시아버지보다 먼저 입도한 사실로 내포 도인들 사이에서 줄곧 회자되었다. 그녀의 연원은 최형순으로 조상 성묘를 위해 경주를 오가던 중 해월 선생을 만나 동학에 입도하였다. 내포 동학의 서막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최장수만을 암암리에 입도시킨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다행히 얼마 안 있어 박덕칠 도인이 삿갓을 쓰고 목에 염주를 걸고 태안 방갈리 포덕에 나서는 바람에 시아버지 문장로와 남편 문구석은 입도를 하게 되었다.
“최 접장은 어떻게 오게 되었나?”
순섬은 꽤나 궁금했다.
“궁금하시죠? 남편이 처음 보은에 가자고 할 때만 해도 전 엄두가 안 나서 못가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본인 소원이니 한 번만 들어달라고 하더군요. 너무 송구스러워서 두 말 않고 따라 나섰지요. 그이는 앞으로 새 세상이 온다면서 유학이 주장하는 삼종지도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어요. 정말이지 꿈같아요. 여자와 남자가 한데 모여 나라와 백성을 얘기하다니요! 여자는 집안 일만 하는 줄 알았거든요.”
최장수는 마치 순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주절주절 얘기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나더니 고개를 돌려 연단 쪽을 쳐다보았다. 순섬이도 고개를 돌렸다. 대접주들이 나와 있었다. 이창구와 박덕칠, 박인호도 있었다. 순섬은 이창구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커 보였다. 대접주 한 사람이 연단에 올라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왜(倭)와 서양이라는 적이 마음속에 들어와 큰 혼란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진실로 오늘날 나라의 도읍지를 살펴보면 마침내 오랑캐들의 소굴이 되어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임진왜란의 원수와 병인양요의 수치를 어찌 차마 말할 수가 있으며, 어찌 차마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비록 힘없 백성이지만, 이제 수운 대선생과 해월 선생님으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았으니, 어찌 귀하고 천한 것을 가리겠으며, 어찌 충성하고 효도하는 데에 반상을 가려 뒤에 서겠습니까?”
우레와 같은 단하의 함성이 땅을 채우고 하늘까지 솟구쳐 올라 연설이 중단되었다. 단상에 선 이는 집회를 시작하면서 보은 관아에 통고한 격문을 소개하고 있었다. 함성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연설이 계속되었다.
“옛말에 이르기를 ‘큰 집이 장차 기울어지면 하나의 기둥으로는 지탱할 수 없고, 큰 풍랑이 장차 일어나면 하나의 조각배로 맞서기 어렵다.’ 하였으니, 우리 동도들은 오늘 이후 함께 죽기를 맹세하여 왜와 서양을 제거하고 격파하여 한울님과 스승님께서 세우신 보국안민의 큰 뜻과 열성조께서 보우하신 이 나라의 큰 은혜에 보답하는 의리를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일어서는 우리 동학도가 어찌 사학에 물들었다 할 것이며, 수운 대선생께서 어리석은 우리를 깨우쳐 큰 배움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어진 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려 그 근원에 이르게 하셨으니, 마땅히 신원하는 것은 물론 나라의 큰 스승으로 모셔야 할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왜양을 물리치자’고 연호했다. 냇가 돌을 주어다가 임시로 쌓아 올린 석루 곳곳에서 덕의포, 예포, 청산포, 창의포 등의 수많은 깃발이 연호에 응답이라도 하듯 나부꼈다.
<이제 연재를 끝마칩니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으신 분은 조만간 출판될 책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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