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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꿈이 있더냐(12회) - 3장 탄생, 비밀과 기쁨 며칠 뒤 김은경은 아들과 함께 인근의 흑성산(黑城山)을 찾았다. 동경대전을 간행하는 작업을 하느라 꼬박 반년 이상을 쉼없이 보낸 것 같았다. 날이 차 입을 열때마다 허연 입김이 선명했다. 산을 오르느라 등허리에 땀도 흘렀다. 정상에 오르니 천안과 목천이 한눈에 들어왔다. 흑성산의 옛 이름은 검은성(儉銀城)이다. 지관들은 오래전부터 검은성을 한양의 외청룡이라며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길지형국이라고 말했다. 인근 승적골은 오목(덜목, 제목, 칙목, 사리목, 돌목) 사이에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라고들 했다. 그래서 피난처라는 얘기도 있었다. 이제 동경대전 간행이 목전이다. 김은경은 하루하루가 조급했다.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도인들의 열망이 모여진 숙원이 이제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더보기
경상도편 (8회) - 이하백아 왜 왔나? 홍조동아 왜 죽였나? (상주에도 동학도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해월은 멀리 문경의 소야까지 포덕. 군위처녀 운매와 의성총각 이하백의 만남은... ) 숨이 멈출 것 같았지만 꼼짝도 못하고 바위에 붙어 있었다. 호랑이떼도 망대에 있는 사람들처럼 좀체 돌아갈 줄 몰랐다. 도치는 죽을 맛이었다. 일어설 수도 없고 달려갈 수도 없고 그대로 바위에 붙어 있어야 하다니,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달려들 것 같아서 몸이 덜덜 떨렸다. 이윽고 한낮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긴 산 그림자가 들녘을 삼켜 버리자 이야기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도치는 긴장해서 호랑이 떼를 바라보았다. 몸을 숨기고 눈빛만 번득이고 있던 호랑이 떼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 상주에도 도인들이 모래알처럼 많아졌습니다.” 얼굴이 ..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12회) -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않았다 손병희는 남접의 장군 전봉준과 첫 대면을 하는 순간 ‘늑대의 상이로다.’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불의와 불평등을 한시도 참지 못하며 그래서 절대 권위에 길들여지지 않고 투쟁하는 인간. 전봉준에게서 영원한 자유를 꿈꾸며 결코 길들일 수 없는 야성을 느꼈다. 반면 전봉준은 손병희에게서 카리스마 넘치는 호랑이상을 느꼈다. 충의에 몸을 던지는 인간, 굳센 의지와 용맹으로 휘하의 사람들을 서늘하게 만드는 위용을 가진 인간….남접과 북접을 각각 대표하는 장수가 한 자리에 만나 서로를 탐색하는 듯 묘한 긴장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모두 하늘님을 마음으로 모시는 동도이며 ‘보국안민’, ‘척양척왜’의 깃발 높이 들고 비장한 각오로 나선 장수들 아니던가. 서로의 거친 손을 따뜻하게 마주잡았다.“저보다 6살 .. 더보기
님, 모심(13회) - 남대천 물고기의 주인 남대천 물고기의 주인 장봉애는 양양 오대산 자락에서 부모님을 비롯하여 일곱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다. 그곳의 물은 오대산 가마소 계곡과 두로봉에서 발원하여 법수치리 계곡, 남대천을 지나 동해안으로 흘러갔다. 양양 사람들은 남대천을 모천, 즉 어머니 강으로 불렀다. 황어, 은어, 연어 떼가 시기별로 산란하기 위해 바다에서 돌아오는 풍족한 강이었다. 그러나 강에 고기가 많아도 그녀 가족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남대천을 비롯하여 양양에 있는 하천들은 다 관아에서 관리하여 물고기도 마음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산간 지방처럼 풀뿌리를 캐고, 한 뙈기 밭농사에 온 가족이 매달려 살았다. 그녀는 장녀로 태어났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들 때문에 어머니 젖은 늘 말라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린 동생.. 더보기
경상도편 (7회) -호랑이가 보호하는 사람들 (산속에서 만난 도치, 해월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하고...)“20년 전에?” 아낙이 기침을 내 뱉으며 애써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았다. 도치는 어머니와 해월을 번갈아 보다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임술년, 이십년 전에 탐관오리들한테 대들다가 대표로 지목되어 처형당하셨다고 합니다. 아버님 이름은 정나구이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웃 아저씨에게 부탁해 엄마와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해월은 도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낙을 일으켜 세웠다. “호랑이가 왜 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겠소이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제가 가서 약초를 구해 올 터이니 하늘에게 꼭 살아야 한다고 알리시오. 꼭이요.” 도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해월을 골짜기가 끝나는 곳까지 배웅해 주었다. 해월은 도치의 .. 더보기
비구름을 삼킨 하늘(12회)-3장 1892년 공주 3장 1892년 공주 해월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강시원이 걱정스런 얼굴로 해월을 보았다. 해월 앞에 앉아 있던 서장옥, 서병학, 윤상오는 숨을 죽이고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접장들께서는 법헌의 고민을 모르셔서 이러십니까? 20년 전 이필제와 함께 도모했던 영해 거사의 실패로 조직이 풍비박산이 나고 관의 탄압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에도 법헌께서는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셨고, 사가의 많은 분들이 붙잡혀서 고초를 겪고 또 죽은 이는 얼마입니까? 그 고초 끝에 이제 도의 운수가 안정되어 충청도와 전라도에까지 도인들이 없는 데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세는 관에 맞서 싸워서가 아니라 정성 들이고, 공경을 다하였기에 이룩한 것입니다. 이제 세력이 수십 ..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 (12회) - 청산은 붉게 물들고 어거지로 시집가다 (일본군은 "민나 고로시-모조리 죽여라!"는 명령을 받고 조선에 쳐들어왔다. 앞으로의 정복에 방해가 되는 동학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동학지휘부가 있던 청산과 보은은 이 잡듯이 뒤지며 문서를 수집하고 수차례 방화를 저질렀다.)- 일본군의 작전-모조리 살육하라! 9월 18일 총력 기포가 결정되고 이 소식은 빠르게 옥천, 영동, 보은, 황간, 충주, 괴산, 청주, 청안, 덕산, 목천, 서산, 공주, 당진, 안면도, 염천, 태안, 양지, 여주, 양근, 수원, 안성, 음죽, 원주, 홍천, 횡성으로 전달되었다. 20만 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동학당을 모조리 잡아 없애기 위한 병력을 따로 파견하는 일이 당장 급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천황의 인가하에 이미 살육진압경험이 있는 야마구치현 히코시마(彦島) 수비병 1.. 더보기
섬진강은 흐른다(11회) 9장 동학의 꿈 9장 동학의 꿈 광양 도인들은 원평 너른 들판을 관통하는 원평천 왼편으로 자리를 잡았다. 원평장터에 마련된 도소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물가 언덕 쪽으로 돌담을 쌓고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지내고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룬 보은 장내리를 보고 온 유석훈과 양계환도 저녁밥을 먹은 후 사람들에게 보은 다녀온 이야기를 하느라고 소란스러웠다. 그때 김개남 대접주가 들어왔다. “유석훈 접주, 양계환 접주, 우리 이야기 좀 나눌께라?” “예. 뭔 일이시당가요?”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짬 날 때 광양 접주님들이랑 동학 이야기를 좀 하고 잡소.” 유석훈은 놀란 얼굴을 펴면서 대답했다. “김개남 대접주를 뵙는 것만 해도 영광인디 동학 말씀을 나누어 주신다먼 참말로 좋지다.” 유석훈은 김개남 대접주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더보기
동이의 꿈(12회) - 개항(3) 호기롭게 나섰지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준기는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상처를 차근차근 살피면 살필수록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무엇보다 환자의 마음이 문제였다.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커녕 얼른 죽게 놔두라며 걸핏하면 욕설을 내뱉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몸도 마음도 거칠어진 상태였다. 준기는 그것을 살려달라는 비명으로 알아들었다. 자신 없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환자의 몸보다 마음을 더 살폈다. 연화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다. 쉽게 호전되지는 않았으나 환자의 얼굴이며 몸이 하루가 다르게 깨끗해졌다. 준기와 연화가 한결같이 정성을 기울이자 환자는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원망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두 사람의 손길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자 병세가 나아지는 듯했다... 더보기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12회 - 비와 구름을 몰고 온 여인 “꽝! 꽈아아앙!” 흐린 하늘로 포 소리가 울려 퍼진다. 탐진강가에서 장녕성을 향해 서 있던 도인들이 함성을 지른다. 이미 전날 벽사역에서 승리를 맛본 도인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하룻밤 사이에 여름 장맛비처럼 불어난 도인들의 숫자를 눈으로 헤아려 보며 이소사는 말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최신동이 행렬의 맨 앞에서 나팔을 불었다. 나팔소리가 고요하던 장안으로 울려 퍼지며 성 주변의 사람들을 깨웠다. 도인들은 일제히 장녕성을 향해 전진했다. 가파른 산자락을 타고 올라야 하는 남문 공략은 이방언 대접주가 맡았고, 탐진강 줄기에서 올라오는 동문을 향하는 동학군은 이인한 대접주가 지휘하고 있었다. 삼단 같은 검은 머리에 홍조를 띤 볼, 형형한 눈빛의 젊은 여인, 이소사가 이끄는 농민군은 북문을 치기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