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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경상도편

경상도편 (7회) -호랑이가 보호하는 사람들



 (산속에서 만난 도치, 해월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20년 전에?”

 아낙이 기침을 내 뱉으며 애써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았다. 도치는 어머니와 해월을 번갈아 보다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임술년, 이십년 전에 탐관오리들한테 대들다가 대표로 지목되어 처형당하셨다고 합니다. 아버님 이름은 정나구이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웃 아저씨에게 부탁해 엄마와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해월은 도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낙을 일으켜 세웠다.

 “호랑이가 왜 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겠소이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제가 가서 약초를 구해 올 터이니 하늘에게 꼭 살아야 한다고 알리시오. 꼭이요.”

 도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해월을 골짜기가 끝나는 곳까지 배웅해 주었다. 해월은 도치의 정성 때문에 호랑이가 순순히 물러갔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먹이를 눈 

앞에 둔 맹수가 그냥 물러날 리가 없었다. 가끔 동행하는 제자들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호랑이의 흔적들을 보고는 해월이 가는 것을 맹수들도 알고 피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호랑이는 해월 때문에 물러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약초를 구해 온다고 했는데?)


어느 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날이 몹시 더웠다. 누룽지를 내 주었더니 시장기가 찾아들어도 이젠 먹을 것이 없었다. 해월은 재빠르게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 모서 마을로 향했다. 산자락에서 내려다 본 밭두렁에 콩과 고구마 줄기가 축 늘어져 있었다. 강한 햇살을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 올해도 풍작은 아닐 것이다.

모서면의 신광서의 집은 마을 뒤쪽, 산자락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다. 뒤란이 대나무 울타리로 덮여 있어서 산을 타고 내려 온 해월이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들어가기 쉬웠다. 집안에 들어 선 해월은 집안을 살폈다. 대낮이라 손님이라도 있다면 조심해야 했다. 오늘은 이곳 모서에서 최근 늘고 있는 도인들을 모아서 설법을 하고 포접을 할 계획이었다. 해월이 뻐꾸기 소리를 냈다.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신광서가 안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해월을 발견했다.

 

 “아, 스승님, 어서 오십시오. 오늘 내일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점심 요기도 못하셨지요? 얼른 점심상을 봐 오겠습니다.”

해월은 신광서의 안내대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에는 발이 쳐 있어 바람결에 따라 매미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왔다. 이내 보리밥에 풋고추 된장이 차려진 밥상이 들어왔다. 해월은 누룽지를 도치의 어머니에게 주고 오기를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다. 축 늘어진 도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희도 형편이 좋지 않아서 쌀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꽁보리밥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모임에는 아마도 열 명은 넘게 모일 것입니다.”

 신광서는 날마다 늘어나고 있는 도인들의 상황을 알려 주었다. 해월은 고요히 밥알을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모서, 모동에서만 해도 벌써 수백 명의 도인들이 생겨났다. 신광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접주를 임명해야 많은 수의 동학도를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럼 오늘 밤에는 새로운 접주들을 임명하도록 하겠소. 그동안 포접을 한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해 주시오.”

 키가 훤칠하게 큰 신광서는 긴 허리를 구부려 절을 올렸다.

 “해가 지면 저희 집 마당에 모이도록 연통을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신광서는 부리나케 대문을 빠져 나갔다. 해월은 보리밥을 꼭꼭 씹어 먹으면서 저녁시간까지 할 일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남의 이목을 피해야 하니 밖으로는 나갈 수 없고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 했다. 대나무를 쪄서 바구니를 짜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광서의 처에게 낫을 달라고 해서 대나무를 솎아 냈다. 이미 새순이 자라 대숲은 발을 디딜 수 없게 빽빽했다. 그는 연초록빛 대를 젖히고 갈색이 도는 오래된 대나무를 골라서 베어냈다. 타닥타닥 낫으로 대나무를 치는 소리가 울타리에 퍼져 나갔다. 신광서의 집에는 종들이 서너 명 있었다. 그들은 해월이 무엇을 하는지 바라보고만 있었다.

해월은 대나무를 허리춤에 닿는 길이로 잘랐다. 그리고 종들을 불러서 가늘게 자르라고 했다. 대나무를 잘게 쪼갠 것이 수북하게 마당에 쌓였다. 해월은 땀을 뻘뻘 흘리며 쪼갠 대나무를 매끄럽게 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로 세로를 엮어가며 바구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해월이 하는 대로 종들도 대나무 바구니를 엮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넓이를 이루면 통대로 틀을 만들어서 고정을 시켰다. 그러면 손잡이가 생기면서 대바구니가 완성이 되었다.

 “어디에서 이런 걸 배우셨습니까? 손재주를 타고 나셨나 봅니다. 저희들은 집 뒤에 대나무가 흔해도 베어서 바구니를 만들 생각은 못 했습니다. 새끼를 꼬아서 곡식을 담을만한 그릇을 만들긴 했습니다만.”

 늙은 종이 해월의 재주에 탄복을 하며 물었다. 해월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해가 지도록 계속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었다. 해월의 손끝에서 작고 큰 여남은 개의 바구니가 태어났다.

 “손님으로 오셔도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시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십니다. 새벽부터 화전을 일구셨다면서 낮잠도 안 주무시고 이렇게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늙은 종은 해월의 몸놀림이 신기해서 자꾸만 곁으로 다가와서 말을 시켰다. 해월은 그에게 숨을 들이 쉬고 내 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내 뿜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이오. 살아있다는 것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하늘의 기운은 어디에든지 쓸 수 있는 것이라오.”

 그러자 늙은 종은 허허로운 웃음을 흘리며 대답을 했다.

 “저 같은 종놈이 호흡을 제대로 해서 뭘 하겠습니까? 그냥 정신없이 일만 하면서도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고 사는데요. 호흡이 중한 게 아니라 먹을 것이 중하지 않나요? 먹을 것이 있어야 목숨을 연명할 수 있지요. 그깟 호흡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해월은 늙은 종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늙은 종은 해월이 왜 고개를 끄덕여 주는지 알 수 없었다. 해월의 말에 반대 의견을 내었는데도 고개를 끄덕이다니, 그는 해월을 점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종과 상전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상전이라고 좋은 밥을 먹고 종이라고 죽도록 일만하는 세상은 앞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는 모두가 귀중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올 터인데 그건 우리들 손으로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밟고 밟히는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행복이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군가 우리에게 가져다주겠습니까. 내가 내 삶에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우선 내가 하늘이 만드신 완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호흡이 중요하고 호흡을 잘해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룰 수 있는 힘도 얻게 됩니다.”

 “종도 상전도 없는 세상이 온다구요? 숨만 제대로 쉬어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요?”

 늙은 종은 이제 해월의 곁을 떠나가지 않고 대발을 엮어가며 질문에 질문을 이어갔다. 해월도 그와의 대화가 좋았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라도 하늘의 뜻, 스승의 뜻을 전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숨은 우리 몸에 맑은 공기를 들여보내 줍니다. 공기만 먹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더더욱 살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태어날 때 하늘에서 준 선천의 기운, 생명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데 또한 하늘이 내려준 먹거리를 먹어야 후천의 기운을 만들어 생명을 지탱할 수 있답니다.”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것을 왜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라 합니까?”

 해월은 늙은 종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다른 종들도 어느덧 해월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하늘기운을 받아들여 살아갑니다. 곡식이며 채소며 모두 햇빛을 받아 자라고 열매 맺지요. 우리가 밥이며 반찬을 먹을 때 그것에 담긴 하늘기운을 함께 먹어 스스로의 기운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러니 그 기운이 신선하면 우리의 몸도 신선해지고 그 기운이 탁하면 우리 몸도 탁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짐승을 잡아먹으면 안 됩니다. 짐승은 자기 목숨을 빼앗는 사람에게 원망심을 갖게 되는데 그 고기를 먹으면 그 원망심이 그대로 우리 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니 고기는 될 수 있으면 삼가고 항상 감사를 하며 좋은 뜻을 새기고 먹어야 하고 먹고 난 후에도 좋은 일에 힘을 써야 하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늙은 종이 해월에게 밭에서 따온 참외를 갖다 주며 물었다.

 “이 참외를 먹으면 하늘의 기운과 하늘의 뜻을 먹는 것이 되나요?”

 해월은 흠집도 없이 잘 익은 주먹 만한 참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이 참외를 따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크게 돌보지 않았는데 스스로 잘 커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 소중한 마음이라면 참외도 자신이 먹히는 게 기분 좋을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독한 생각을 하면 몸속에 들어가서도 독을 품어내게 되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먹힌다면 비록 식물이라 할지라도 고운 향기를 낸다고 합니다. 그 참외 속에는 몇 달 간의 햇빛과 비와 바람이 들어있으니 그걸 먹으면 하늘의 기운과 뜻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해월은 마당가에 앉아서 바구니 짜는 것을 돕고 있는 종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사람이 귀하고 천한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본래 사람이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지금 내가 비록 천한 신분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본모습은 아닙니다. 시대의 운으로 잠시 그런 역할을 할 뿐이지요. 그러니 자신을 천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 너 할 것 없이 사람, 생명 가진 것은 모두 귀하고 소중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귀하게 대접 하십시오. 그게 바로 동학의 개벽사상입니다.”

 나이가 든 종은 여전히 의심이 많았다.

 “남들이 저를 모두 천하게 여기는데 혼자 귀하게 여긴다고 제가 귀해지나요? 남들이 우리를 귀하게 여겨야 귀해지는 거 아닐까요?”

 해월은 짜고 있는 대바구니를 가리키며 대답을 했다.

 “저기 저 대나무는 울타리에 있을 때는 귀하지도 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울타리 노릇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대숲이 꽉 차면 솎아내서 아무렇게나 버려집니다. 불쏘시개가 되거나 지팡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바구니로 모습이 변하니 사람에게는 요긴한 물건이 됩니다. 사람은 물건과 달라서 그 쓰임을 스스로 정할 수 있으니 어찌 귀함과 천함을 정해져 있겠습니까? 귀함과 천함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귀천이 없는 세상이 진짜로 만들어지지요.”

 하오의 긴 그림자가 마당을 덮고 있었다. 종들은 여전히 해월과 더불어 바구니를 짜며 알 듯 모를 듯 해월의 설법에 빠져 들었다. 한쪽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나무를 자르던 젊은 종이 해월에게 물었다.

 “동학은 신분이 천한 사람도 입도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희들도 입도를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선생님께 입도를 하겠습니다.”

 해월은 바구니를 짜며 가만히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에게는 귀하고 천함이 없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하늘의 기운을 담고 있으니 모두 귀한 존재이지요. 동학도들은 만물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수련을 하고 그 기운을 다시 만물과 나누는 수련을 합니다.”

 종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해월의 말을 열심히 귀에 담았다. 해월은 스승을 보내고 난 후 거의 30여 년을 포덕을 하면서 지냈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사람들에게 하늘의 뜻을 알리는 것이 이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진실한 마음 하나로 입을 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해월의 뜻을 기꺼이 따라오게 되던 것이다.


산 그림자가 마당을 완전 덮어 버리자 해월은 대바구니 짜던 것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거의 대여섯 시간을 일을 한 것 같았다. 시간이 한 달음으로 사라지고 마당에 대바구니만 가득 들어찼다. 해월은 조용히 집을 빠져 나와서 냇가를 거닐며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오늘 밤에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도치 총각의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도도 생각해 보았다. 신광서의 집으로 돌아와 그에게 해수기침을 잡을 수 는 도라지와 꿀을 구해 달라고 했다. 신광서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도라지와 꿀을 구해 왔다. 낮에 참외를 준 노인에게 도라지를 잘게 잘라 꿀에 재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밤에 모서 지방에서만 백여 명이 넘는 도인들이 새롭게 모여들었다. 신광서네 종들도 모두 입도를 하겠다고 마당으로 나왔다. 입도식을 끝내고 해월은 새로 접주를 두 명 임명했다. 앞으로는 접주가 자기가 담당한 입도자들을 지도하게 될 것이다. 해월은 다음날 이른 새벽에 도라지꿀 항아리를 가지고 산을 넘어 도치네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폐에 좋은 뽕나무 껍질이며 구기자 뿌리 등 이것저것을 캐어 보따리에 넣었다. 도치는 너럭바위에 올라서서 그를 보자 반갑게 맞았다.

 “이제 오시는군요. 혹시 오시는 길에 호랑이를 보지 않았습니까? 어제 나온 호랑이가 다시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도치가 바위에서 내려와 자기가 만든 덫을 한 쪽으로 치웠다.

 

 “아니, 무얼 잡으려고 덫을 놓았소? 호랑이는 저렇게 작은 덫에 걸리지는 않을 듯한데. 발목이 걸리더라도 덫을 가지고 가 버리지 않겠소?”

 해월이 도치가 쳐 놓은 덫을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호랑이를 잡으려고 덫을 놓은 게 아니라 산토끼라도 몇 마리 잡아서 호랑이에게 바치려고요. 저를 잡아먹지 않고 살려 주었으니 저도 호랑이에게 무엇인가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도치는 말했다. 해월은 그제서야 도치의 뜻을 알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랬군요. 아버지가 그대를 위해 빌었던 소원이 있었을 것이요. 진실한 마음이면 하늘도 감응하게 마련이지요. 호랑이조차 총각을 보호해 주고 있으니 이제 어머니를 보살피고 귀한 몸을 좋은 일에 쓰도록 하시오. 이건 폐에 좋은 약초들이요. 잘 달여서 어머니께 마시게 하고, 이 도라지 꿀은 아침마다 정성들여 미지근한 물에 타서 한 사발씩 어머니에게 떠 넣어 드리세요. 호랑이에게 은혜를 갚고 싶으면 덫에 걸린 짐승들을 어제 그 자리에 갖다 놓으면 될 것이오.”

 “호랑이가 다시 나타날까요?”

도치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해월을 쳐다보았다. 해월은 도치를 향해 빙그레 미소지었다.

 “세상의 기운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오. 총각이 호랑이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착한 마음을 내었으니 그 지극한 마음이 호랑이를 움직이지 않겠소? 도치 총각의 정성을 호랑이가 알게 될 것이오.”


도치는 길게 휘파람을 불어 어디엔가라도 있을 호랑이에게 인사를 하고 해월을 앞세워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도치는 해월이 건네준 약초들을 씻어 작은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어 화덕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폈다. 도치 어머니는 방안에서 계속 잔기침을 해댔다.


 “누에를 쳐 본 적이 있소?”

툇마루에 앉아있던 해월이 도치에게 물었다. 잔가지를 화덕에 집어넣으며 불을 지피던 도치가 해월을 돌아보았다.

 “누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에 이 산속에다 뽕나무를 아주 많이 심어 놓았다오. 내가 산 아래 동네에 내려가서 누에를 구해 올테니 뽕나무 잎을 잔뜩 뜯어 놓으시오.”


 도치는 의아한 눈빛으로 해월을 바라보았다. 해월은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뽕잎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산 속에서 살아가려면 누에를 쳐야 할 것 같아서 미리 심어 놓은 뽕나무에 올 봄에는 오디도 잔뜩 달렸다. 해월은 초여름에 따서 담가 놓은 오디술이 바위 동굴에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몇 년이 지나면 약으로 쓸 수 있는 술이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길을 떠나는 해월에게 도치가 물었다.

 “스승님, 날마다 어디를 그렇게 가십니까? 오늘은 저도 데리고 가 주십시오.”

 도치는 해월을 바라보며 물었다. 해월은 고개를 저었다.

 “도치총각은 우선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시오. 때가 되면 함께 다닐 수 있을 것이오.”


해월은 집으로 가는 길에 예쁜 꽃이 핀 작은 풀들을 뿌리째로 뽑아 딸 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는 집 뒤의 산밭으로 가서 배추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해월은 애벌레를 잡아서 가까운 나무에 앉아 있는 메추라기들을 향해 던져 주었다. 메추리들은 해월을 두려워하지 않고 밭가로 모여 들었다. 잎사귀 썩은 것들이며 거름을 많이 해서인지 유난히 배추와 열무가 튼실하게 자라 올랐고, 벌레 또한 많이 들끓었다.

애벌레들을 나뭇가지 젓가락으로 잡아서 메추리들에게 던져 주며 한편으로는 하룻밤 사이에 자라난 잡초들도 뽑아냈다. 어느 새 햇살이 강하게 내비추자 해월은 냇가로 내려가서 멱을 감았다.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눈을 감고 긴 호흡을 내뿜으며 명상에 잠기었다.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천지간의 부산한 움직임이 들리는 듯 했다. 해월의 눈앞으로 재빠르게 산토끼가 덫에 걸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달려가는 도치, 산 속 깊이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호랑이가 긴 하품을 하며 일어난다.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산길로 들어서고 꿈틀거리는 잿빛 토끼를 한 입에 문다. 해월은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고 더욱 명상에 집중했다.

 

산중에 있으면 더욱더 영이 맑아졌다. 그는 말갛게 흘러내리는 냇물에 몸을 담그고 다시한번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사제 마을의 김현영의 집이 보였다. 김현영 삼형제가 모여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월은 물에 머리를 담그고 오늘은 사제 마을로 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에를 치는 도인들을 만나서 누에를 얻을 수 있으리라.

도치 모자가 굶어죽지 않고 겨울을 나려면 누에를 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었다. 약초를 캐고 산밭에서 나는 잡곡으로는 가을을 나기도 힘들 터. 병든 어미는 잘 먹어야 병도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속에 머리를 넣으니 정신이 더욱 맑아졌다. 해월은 물 속에서도 늘 하던 대로 쉬지 않고 주문을 외웠다.


도치는 해월이 가져다준 약초를 달여서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의 기침이 다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도치는 신이 나서 덫을 더 만들어 산속 여기저기에 놓았다. 토끼가 잡히기도 했고 산비둘기가 걸리기도 했다. 도치는 짐승들이 덫에 걸릴 때마다 곧바로 달려가 호랑이가 나타났던 산길에 놓아두었다.

다음 날 가보면 여지없이 짐승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호랑이가 나타나서 가져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짐승이 가져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도치는 해월이 나타나길 몹시 기다렸다. 그러나 초생달이 뜰 무렵 떠난 해월은 보름달이 되어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도치는 산고개를 넘어서 해월의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해월의 말을 더듬으며 찾아간 곳에 과연 외딴 집이 한 채 보였다. 산 아래 자리 잡은 움막주변에는 산밭이 일궈져 있었다. 산밭에는 온갖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오이와 무와 배추, 그리고 고구마와 수수와 기장, 옥수수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밭에는 잡초가 보이지 않았다. 해월의 집이 틀림없을 것이었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났다. 도치는 놀라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냇가에서 아낙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도치는 아낙에게 다가갔다.

 “혹시 해월선생님의 부인이신지요?”

김씨부인은 경계를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저 산 너머 사는 정도치입니다. 어르신에게 은혜를 입어서 무엇이든지 돕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어디 계신지요? 제가 우선 도울 일이 있을까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이불 빨래를 하던 아낙이 빙그레 웃으며 빨래를 짜서 널어 주겠느냐고  했다. 빨래가 커서 여자 혼자서는 짜기도 힘들어 보였다. 도치는 빨래를 짠 뒤 마당으로 가지고 가 빨랫줄에 널었다. 그리고 할 일이 더 있는지 살펴보았다. 움막은 낡았어도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도치는 마루를 닦고 이제 머리만 내밀고 있는 잡초들을 모두 뽑아냈다. 살림도구들은 아주 단촐했다.

 “이웃에 좋은 분이 살고 있으니 반갑네요.”

 아낙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웃이라고 해도 저 산 너머인 걸요. 한참이나 걸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얼마나 사셨나요?”

 아낙은 조용히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 있게 될지도 모르고요.”

도치는 해월의 집을 둘러보며 집 위에 망대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 올라가면 저 산 아래까지 한눈에 들어올 것이었다. 도치는 해월이 왜 그것을 만들었는지 짐작이 갔다. 아버지처럼 해월도 쫓기고 있는 것이다. 도치는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 오면서 해월의 집을 남의 눈에 띠게 자주 찾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행복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동학은 이미 상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데 동학의 우두머리가 그렇게 가까이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아버지도 정해생(1827)이었으니 연배도 같았다. 도치는 아버지를 만난 것만큼이나 벅찬 감동에 젖었다.


도치 어머니는 기력을 되찾으면서 해월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월에게는 남편이 못다 한 꿈을 이뤄낼 기운이 보였다. 해월의 깊은 눈빛에는 신중함과 배려심과 만물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었으며 조용한 강단이 엿보였다. 모자는 해월을 칭송하며 새벽에 마당 앞의 바위에 청수를 떠놓고 함께 심고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해월을 만난 이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밀려왔다. 아버지 같은 해월을 아주 가까이에서 자주 뵈었으면... 먼 발치에서라도 지켜보는 것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도치는 해월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로 자주 올라가 보고는 했다.

이 날도 해월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로 올라가는데 뭔가 석연치 않는 소리가 들렸다. 숲속에서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았다. 도치는 그것이 호랑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도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을 향해 달렸다. 이제 잡히면 호랑이는 자기를 다시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호랑이가 해월선사를 보호해주고 있구나.’

도치는 그제서야 자기가 살아난 것이 해월의 덕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도치는 더 이상 해월의 주변을 서성이지 않기로 했다. 해월은 뭔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도치가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었다. 맹수조차 보호를 해주고 있으니 어찌 가까이 할 수 있단 말인가? 도치는 해월이 다시 집에 나타나길 애타게 기다렸다. 해월이 나타나면 어떻게 수련을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뭇짐을 지고 집에 돌아오니 어린누에가 담긴 바구니가 도치네 마당에 놓여 있었다. 해월이 두고 간 것일까? 도치는 누에를 키우는 법을 잘 몰랐으나 어디로 달려가서라도 배울 참이었다. 정신없이 산속으로 들어가 뽕잎을 따서 누에 바구니에 넣어 주었다. 방 안에서 도치의 바지를 기우고 있던 어머니가 마당으로 나왔다. 누랬던 피부가 한 결 맑아졌고 기침을 하느라 구부정했던 등이 곧게 펴져 있었다. 

 “아이구. 누에가 웬 일이여? 선사님이 조용히 왔다가 가신 게로구나. 예전에 이웃에 누에를 치는 걸 많이 보았지.”

도치 모자는 그렇게 누에를 치기 시작했다. 도치는 뽕잎을 따느라 여름을 다 보냈다. 누에가 한 숨을 자고 나도록 해월은 도치네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찾아 들었다. 호랑이 때문에 해월의 움막 나들이를 자제하고 있던 도치는 큰마음을 내어 조심조심 해월의 집을 찾았다. 몇 켤레의 짚신이 놓여 있었다. 도치는 바위틈에 숨어서 움막 안을 살피었다. 나직나직한 남자들의 음성이 들렸다. 가끔씩 해월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부인이 부지런히 물그릇을 나르고 음식을 담아내었다.

 도치는 조심조심 바위 위로 올라가서 움막을 들여다보았다. 바위에서는 망대가 훤히 보였다. 망대에 네 사람이 둘러 앉아 있었다. 한결같이 심각한 표정으로 넷은 뭔가를 진지하게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은 남자들은 해월에게 간곡하게 무엇인가를 말 하는데 해월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남자들이 무슨 청을 하는데 해월의 허락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무엇인가 긴급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치는 그들의 이야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바위에 몸을 딱 붙이고서 계속 그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런데 숲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도치는 바짝 긴장했다. 그것은 분명 맹수의 그르렁 소리였다. 또다시 호랑이가 내려온다고 생각하니 가위에 눌려서 한 발짝도 내려갈 수가 없었다. 도치는 바위에 바짝 엎드렸다. 숲속에서 몇 개의 눈빛이 드글거리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떼로 몰려온 것 같았다. 사람이 여럿이니 호랑이도 떼로 덤벼들 생각일까? 아니, 호랑이는 해월선사를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다음주에는 해월의 포덕활동과 군위 처녀와 의성 총각의 로맨스가 이어집니다.)


삽입 그림 저작권 정보 : "여름의 대나무숲, by 권혜인" by Photo and Share CC, used under CC BY / Desaturated from orig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