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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경상도편

경상도편(6회)-정나구의 아들 도치를 만나다

 (임술민란 때 상주에서 농민들을 조직하여 저항했던 정나구는 참수되었다. 정나구는 거사 전 처자식에도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아내와 아들 도치를 멀리 산 속으로 떠나 보냈는데...) (해월과 최맹순, 해월과 도치의 만남이 이어지고...)

1871년 영양에서 자칭 수운의 제자라고 하는 이필재의 거사가 있었다. 이필재는 끈질긴 설득으로 해월을 움직여 그의 동학조직을 이용해 부패한 영양군수를 처치했지만 문경에서 다음 거사를 준비하다가 잡혀 처형되었다. 해월은 발 빠르게 도피했지만 양아들 준이와 동생의 남편인 임익서는 잡혀 처형되고 말았다. 손 씨 부인과 딸들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필재 거사 이후 해월을 찾는 관아의 눈길은 집요했다. 해월은 강원도 깊은 산속에 숨어 살았다. 수많은 도인들이 희생되었다. 해월은 남은 도인들과 함께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정진, 또 정진... 깊은 수행을 하며 동학조직을 재건할 궁리를 했다. 한 동안 바깥출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관아의 추적이 뜸해지자 그는 다시 보따리를 매고 포접에 나섰다. 강원도 뿐 아니라 충청도, 경상도 상주 지역까지 꽤 많은 도인들이 생겨났다.


해월은 새벽이면 어김없이 심고와 명상으로 혼을 말갛게 걸러냈다. 그리고 그 맑은 기운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동학사상의 핵심을 설법해 나갔다. 이필재 사건 이후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흐르고 제자들은 부인의 도움 없이 수많은 도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스승을 안타깝게 여겨 갑술(1874)년,  11살짜리 딸을 데리고 혼자 사는 김 씨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했다. 해월의 초라한 입성은 깨끗해졌고 홀쭉하게 패인 볼에도 살이 올랐다. 먹성, 입성을 챙기니 해월은 안정감을 찾아서 교세를 더욱더 확장해 갔다.


김 씨와 두 아이 덕기, 윤을 낳고 단양 솔봉 아래에서 사는 십 년 가까운 세월동안은 이필재 사건 이후 가장 평온한 나날이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목천에서, 경주에서 수운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을 만들었다. 경전 탓인지 동학도의 숫자가 급히 불어나자 충청감사 심상훈은 다시 해월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해월은 이제 서서히 때가 다가옴을 느꼈다. 그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단양 송두둑을 떠나 상주 윗왕실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해월의 거처는 마당에서 멀리 동구 밖까지 내다 볼 수 있고, 마을 뒤켠으로는 사방이 산이어서 쫓긴다고 해도 도망할 곳은 항상 열려 있어야 했다. 앞 쪽으로는 제자들이 살아서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은 낮에 제자의 집에 머물러 있다가 날이 어두워 동네사람들 시선이 잦아들 무렵 해월을 찾았다. 골짜기를 따라 냇물이 흐르고 산자락이 깊어져 화전을 일구기에는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해월은 그 즈음에 예천의 소야에 사는 최맹순을 찾아 갔다. 윗왕실에서 북쪽으로 문경을 지나 그만큼 더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소야가 있었다. 최맹순은 일찌기 강원도에서 내려와서 전국을 돌며 항아리장수도 하고 지필묵 장사도 했다. 심지가 굳고 총명하며 틀림없는 언행으로 양반들의 신뢰를 얻어 상당한 재물을 모아 가세를 키웠다고 했다. 틈나는 대로 서책을 가까이 해 장사하는 사람 같지 않게 학식도 높다고 했다. 전국을 돌면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세상소식에 밝았다. 그는 경주에서 시작된 동학이 이미 강원도와 충청도 전라도에 세력을 넓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동학도들의 언행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세속의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조용하면서도 지혜롭고 서로 돕는 따듯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망나니도 동학도가 되면 달라진다는 말을 듣고 동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차였다. 해월이 그를 찾아온다는 기별을 받았다. 그는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서 한 나절을 서성이며 해월을 기다렸다.


 “제가 먼저 찾아뵈려고 했는데 이렇게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시는 길이 험했을 터인데요.”

해월이 소야 입구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에 당도했을 때 최맹순은 땅바닥에 큰 절을 한 뒤 해월을 집으로 반가이 안내했다. 체격은 작았지만 근골이 야무진 사람이었다.

 

 “도인을 만나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인가 봅니다. 전국을 돌아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 조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잘 아신다고요?”

자리에 앉은 해월이 최맹순에게 한양의 소식을 물었다. 최맹순은 듣던 대로 점잖고 신중했다.

  

 “선생님도 이미 들으셨겠지만 조선은 바람 앞에 등불입니다. 외세가 조선을 집어 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큰일 입니다. 조정에는 통째로 우리나라를 먹잇감으로 넘기려는 자들이 숱하다고 들었습니다. 왕과 왕비는 백성과 나라의 앞날 보다 오로지 자리 보존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답니다. 나라가 없어질 판인데 왕권에만 매달리고 있다니...”


최맹순은 말을 멈추고 있다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라를 지킬 사람은 백성들밖에 없습니다. 이제 조정에는 믿을 만한 힘이 없어요. 돌아다니며 많은 동학도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이 하신 말씀들을 많이 들었지요. 저는 놀라운 마음으로 그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동학에서 미래를 열어갈 힘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난국을 헤쳐 나갈 길을 열어 주십시오.”


 “일찍이 동학을 창도하신 스승 수운께서는 일본을 가장 경계하라 하셨소. 조정은 앞으로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요. 백성을 소중히 여기고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조정과 백성이 한 몸이 되어야 외적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지만 구중궁궐에서 권력놀이에 빠져 있으면 백성도 잃고 나라도 잃게 될 것이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백성들을 일깨우는 것, 그들을 조직하는 것이오. 우리 안의 한울을 일깨워 손잡고 개벽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당신과 내게 달렸소.”  


해월은 최맹순에게 예천 주변에서 포덕활동을 많이 하라 당부하고 포덕의 욧점들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최맹순은 기쁘게 자기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해월에게 최맹순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신뢰를 주었고 최맹순에게 해월은 앞길을 밝혀주는 든든한 등불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을 주었다. 영민한 최맹순은 해월이 떠난 뒤 적극적으로 포덕을 펼쳤다.


최맹순은 예천을 비롯해 문경, 김산, 성주 등으로 동학을 세력을 확장시켜 갔다. 해월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이 백 번 걸음을 해야 할 일들을 지역의 토호세력들이 맡아서 단걸음으로 해 내고 있었다. 최맹순은 관동포의 제일 접주가 되었다. 1) 참으로 귀한 인연이었다.






주1) 학초전 해 1편 193쪽.

학초전은 학초 박학래(1864~ ?)가 기록한 일기를 후손 박종두가 원본과 함께 해를 달아 펴낸 것으로 동학 당시 경상도 북부의 동학 이야기들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5. 식즉천(食卽天)이니 (1884~  )


여름 아침의 찬란한 햇살이 숲속으로 고루 퍼져 들어왔다. 해월은 동녘에서 떠오르는 태양빛이 눈이 부셔서 반쯤이나 눈을 감고 냇가에서 세수를 했다. 윗왕실마을의 옆구리로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길게 흘렀다. 한여름이건만 냇물은 냉기가 돌아서 새벽노동에 지친 몸이 물에 닿자 기운이 바짝 들었다. 해월은 오싹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온몸을 차가운 물로 씻어 냈다.

 뽕나무잎새에 맺힌 이슬이 햇빛에 사라지고 산속 깊숙이 내려앉았던 물안개들도 스멀스멀 공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해월은 물기운들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모양새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늘 보던 것이라도 낮게 내려앉았던 습기들이 햇볕을 받아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은 늘 경이로웠다. 그것뿐이랴. 태양은 구름에 가렸어도 구름 사이로 빛줄기를 쏘아주고 그 틈에도 농작물은 열매를 키웠다. 


해월은 새벽부터 수수밭에 김을 매느라 땀을 흘린 탓인지 배가 몹시도 고팠다. 그는 두 손으로 냇물을 한 움큼 쥐고서 입으로 가져갔다. 빈속에 물이 들어가니 온 몸으로 시원한 기운이 퍼졌다. 새떼들이 나무 위에서 아우성을 치고 풀숲에서는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아내가 눈에 띄지 않자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보리쌀에 감자를 깎아 넣고 죽을 앉혔다. 갈무리해 둔 말린 나물 중에 쉽게 풀어지는 것으로 한 움큼 죽솥에 집어넣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죽이 끓는 동안 텃밭으로 가서 상추를 뽑고 풋고추 몇 개와 오이를 따서 흐르는 냇물에 씻었다.


마당 앞에 있는 작은 바위에다 상을 차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불렀다. 아내는 동이 트자마자 산 속으로 다니며 뜯은 산나물을 골짜기에서 씻고 있었다. 가을 겨울이 되면 먹을 반찬이 귀해지니까 봄  여름에는 나물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갈무리 해두어야 했다. 김 씨가 데리고 들어온 딸 연화는 단양 송두둑을 떠나기 전에 김연국과 부부의 인연을 맺어 근처에 살림을 차렸고 김 씨가 낳은 아들 덕기와 윤이는 이제 열 살, 일곱 살이 되었다. 한참 까불고 놀 나이지만 집안에 드나드는 숱한 손님들이 풍기는 엄숙함과 그들을 둘러싼 긴장감에 아이들은 일찌감치 철이 들어갔다. 오빠 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일곱 살짜리 윤이 집 뒤에 자기가 만든 텃밭에서 뜯어왔다며 돌나물을 한 주먹 씻어 주먹에 쥐고 왔다.  


해월은 가만히 앉은 채로 도인들이 가져온 곡식을 받아 밥을 해먹을 수는 없다며 꼭 죽을 끓이라고 했다. 죽은 밥 할 때보다 곡식을 절반만 넣어도 되었다. 죽을 끓일 때 말린 나물 불린 것을 한 움큼 넣으면 산의 향기도 나고 배도 든든했다.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하늘에 잘 먹겠다는 심고를 드리고 숟가락을 들었다. 윤이 뜯어온 돌나물도 여름이지만 질기지 않아 장을 끼얹으니 먹을 만했다. 


산 속에 있으면 더욱더 생명과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무를 태워서 재가 되면 그 재가 거름이 되어서 곡식과 상추 오이 고추를 키워 냈다. 그리고 그 걸 먹고 사람들이 힘을 쓰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들을 먹고 여자들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관의 지목이 심해진 요즈음이지만 하루하루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기적처럼 전개되었다. 오늘도 이 음식을 먹고 어느 마을로 가서 누구를 만나게 될까. 조심조심 비밀리에 다녀도 그가 마을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이웃과 친척들을 애써 불러 모아 주었다. 평생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가르침에 듣는 이들은 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 


그는 나물을 넣어 끓인 보리감자 죽을 달게 먹고 아내가 챙겨준 바랑을 들고 집을 떠났다. 백두대간을 타는 남편을 위해서 아내는 물을 담은 호리병과 어제 저녁 따로 밥을 해 만든 누룽지 뭉치와 소금 한 주먹을 작은 주머니에 넣어 바랑에 넣어주었다. 산길은 매우 가파르고 풀숲이 짙어서 걷기가 힘들었다. 며칠 만에 걷는 걸음인데 날씨가 더우니 어느 새 풀들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그가 산자락 하나를 넘었을 때 아주 가까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맹수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였는데 아무래도 사냥감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앞을 바라보았다. 풀숲에서 대낮인데도 관솔불처럼 빛을 품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 호랑이였다. 그는 숨을 멈추었다. 많은 시간 산길을 타면서 호랑이 자취를 수차례 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으나 호랑이가 노리고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건너편의 젊은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젊은이를 살려야 했다. 그는 약초를 캐고 있다가 호랑이를 발견했는지 한 손에 풀뿌리를 쥔 채로 몸이 얼어붙어 있었다.


해월은 심호흡을 하고 젊은이 옆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몸집을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두 팔을 벌리며 입으로는 나지막한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호랑이시여, 이 청년은 아직 어리니 잡아드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잡아가시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그가 팔을 뻗어 젊은이의 손을 잡자 호랑이는 불을 품었던 눈길을 거두며 슬며시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는 계속 주문을 외웠다. 온 몸에 땀이 흘렀다.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 덤빌 것 같았다. 해월은 젊은이를 잡은 손을 놓고 호리병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새 젊은이는 기절을 했는지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해월은 젊은이에게 다가가 물에 소금을 타서 입술에 축여 주었다. 축 늘어졌던 젊은이가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꿈벅였다.

 

 “호랑이는 사라졌소. 그런데 이렇게 깊은 산속에 혼자 왜 무슨 일이오?”

그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아파서 약초를 캐러 들어왔습니다. 더덕을 보아 둔 게 있어서 그걸 캐려다가 그만 호랑이를 맞닥뜨렸네요. 그런데 호랑이가 어떻게 사라졌나요? 선생님이 제 손을 잡아 주신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는 젊은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소나무에 기대어 앉게 하고 바랑에서 누룽지를 꺼내어 부드러운 쪽을 뜯어내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젊은이는 우물우물 누룽지를 씹어 삼키더니 한결 나아졌는지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다. 그 동안 해월은 젊은이가 떨어뜨린 호미를 주워 주변의 더덕을 뿌리가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캐내었다.


 “누구신데 그리 쉽게 호랑이를 물리치십니까?”

젊은이는 해월을 바라보며 경외의 눈빛을 보냈다.

 “온 마음으로 하늘에 기원을 했을 뿐이오. 이 사람은 젊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게 어떠냐고 호랑이에게도 부탁을 했다오. 그 부탁을 하늘과 호랑이가 들어주었을 뿐이오.”

 그는 담담하게 젊은이에게 대답했다.

 “저는 저 아래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만, 지금 어디로 가십니까?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젊은이는 해월의 바지춤을 잡으며 데려가 달라고 애원을 했다. 해월은 고개를 저었다.

 “보살펴야 하는 어머니가 계시다고 하지 않았소? 어머니와 저 동네에 머물면서도 할 일이 있을 거요. 산 속에 들어올 때는 호랑이를 단단히 조심 하고...”

해월을 주섬주섬 바랑을 챙겨 어깨에 걸었다. 시무룩하게 있던 젊은이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어르신, 그럼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살다보면 또 만날 날이 오겠지요. 서두를 게 뭐 있겠소?  나는 산 너머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아가고 있으니 때가 되면 또 만나게 될 거요.”

 “이 길로 곧장 가면 어르신의 집이 나오나요? 제가 어떻게 생명을 살려준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 지금 저와 함께 제 집으로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남자는 그냥 물러설 기미가 아니었다. 해월은 옆에 있던 칡넝쿨에서 잎사귀를 따서 누룽지를 여러 겹 싼 뒤 흙을 잘 털어낸 더덕과 함께 젊은이에게 내밀었다.


 “어머니는 어디가 편찮으시오?”

젊은이는 해월이 내민 누룽지와 더덕을 바랑에 넣어 가슴팍에 안았다. 그리고는 막무가내로  해월의 손을 이끌고 자기 집을 향해 걸었다.

 “숨이 차고 기침을 자주 하십니다. 돈이 없어서 의원한테 진맥도 못 받아보고 그냥 집에 누워 계십니다.”

 

해월은 젊은이를 따라 산자락 아래 오두막으로 갔다. 낯빛이 창백한 아낙이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젊은이가 바랑에서 더덕과 누룽지를 꺼내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제가 호랑이를 만나서 죽을 뻔 했는데 이 어르신이 호랑이를 쫓아 주었습니다.”

 아낙은 고맙다는 눈빛을 담아 해월에게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를 건넸지만 그것마저 몹시 힘들어 보였다. 해월은 아낙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십시오. 그리고 하늘에다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전하십시오. 그러면 하늘이 기운이 내려줄 것입니다.”

아낙의 손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해월은 아낙에게 약초와 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젊은이와의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닌 듯싶었다. 해월은 남자에게 물었다. 상투를 틀지 않은 더벅머리라 산 속에서는 아주 젊은이로 보았는데 차분히 앉아 보니 남자는 꽤 나이가 들은 것 같았다.


 “이름은 무엇이며 몇 살이나 되었소?”

 “도치라고 합니다. 서른두 살입니다. 어릴 땐 상주에 살았는데 20년 전 임술년에 아버지가 우리를 이곳으로 떠밀다시피 보내셨지요. 반드시 뒤 따라 오겠다고 약속하셨던 아버지는 끝내 못 들어오시고 아버지 기다리며 한 해 두 해 보내다가 총각신세도 못 면하고...”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