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나섰지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준기는 슬슬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상처를 차근차근 살피면 살필수록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무엇보다 환자의 마음이 문제였다.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커녕 얼른 죽게 놔두라며 걸핏하면 욕설을 내뱉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몸도 마음도 거칠어진 상태였다. 준기는 그것을 살려달라는 비명으로 알아들었다.
자신 없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환자의 몸보다 마음을 더 살폈다. 연화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다. 쉽게 호전되지는 않았으나 환자의 얼굴이며 몸이 하루가 다르게 깨끗해졌다. 준기와 연화가 한결같이 정성을 기울이자 환자는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원망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두 사람의 손길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자 병세가 나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 살지는 못했다. 병의 뿌리가 이미 골수까지 자리잡고 있었다. 병들어 죽어 가던 노인은 이승에다 고단한 몸을 부리고 떠나기 전, 준수를 쳐다보며 어눌하지만 희미하게 말을 했다.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을 본 준기가 얼른 환자의 입에 귀를 가져갔다.
“고……. 고맙소.”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는 모습을 보인 환자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환자의 하얀 옷 위에도 준기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약을 들고 들어오던 연화도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날 한약방 사람들은 눈 덮인 하얀 산 중턱에 노인을 묻고 돌아왔다.
며칠 후 김자명이 자기 방으로 준기를 불렀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그 방에는 갖가지 의학서며 처음 보는 약 항아리와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수고 많았네. 어려운 환자를 맡아서 몸 고생과 맘고생이 심했겠지. 그동안 환자를 돌보며 깨달은 점이 있는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고 나니 더 잘 보살피지 못해 송구할 뿐입니다. 제가 얼마나 환자의 몸과 마음을 헤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잘 치료할 수는 없었는지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고 간 사람은 빨리 잊게.”
“예.”
“한학에 조예가 있는 사촌을 부를 것이니 연화와 함께 이 방에 있는 의학서를 공부하도록 하게.”
이 년쯤 지나자 집에 있는 책들을 모두 읽게 되었다. 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한학자의 조언을 들으며 연화와 더불어 묻고 답하며 읽다 보니 그 행간의 내용까지도 앎과 생각이 미쳤다. 임상의 경험과 책에서 읽은 것이 가로 세로 교직되며 치료법에 체계가 잡히고 자신감이 생겼다.
김자명은 환자가 오면 우선 준기에게 초진을 하게 하였고 반 년 후에는 아예 진료를 맡기고 뒤에서 살피기만 했다. 조금 떨어진 뒷방에서 연화는 부녀자들의 병을 맡았다.
준기의 눈이 늘 연화를 향하고 있고 연화의 마음이 준기에게 있다는 것을 안 김자명은 좋은 날을 잡아 딸의 혼례를 올리도록 주선했고 마을 사람들의 떠들썩한 축하 속에서 잔치를 벌였다. 세상의 시름을 잊을 정도로 한가하고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강계 북천루 근처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전도자로부터 동학을 전해 받았다는 사람들을 만났다. 마을에 있는 천마산에서 그들과 수행을 함께한 후 준기는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검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새벽안개가 막 걷히는 아침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무렵 호숫가 근방에서 준기는 아이들과 함께 칼춤을 추고 뜀박질도 하였다. 서로 맞절을 하고 심고를 하면 아이들은 해를 향하여 앉고는 으레 눈을 감았다. 처음에는 꼼지락거리고 몸을 비틀던 아이들이 어느새 서너 살 위의 형들을 흉내 내면서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준기가 만들어 준 나무칼을 가지고 마음껏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과 칼놀이를 하는 아이도 있었고 그저 칼을 들고 한참씩 뛰어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놀다 서서히 지칠 무렵이 되면 준기는 아이들 앞에서 칼춤을 추었다. 관심을 가지고 앞에 앉아 유심히 보며 따라 하는 아이도 있었고 친구와 계속 칼놀이를 하며 뛰어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연화의 조카인 정삼은 유난히 호기심이 많아 제 키 만한 큰 나무칼을 들고 준기를 따라 한 동작 두 동작 춤을 추곤 했다.
무자년(1888)이 지나고 기축년(1889)에도 삼남 지방에 대흉작이 들고 관서 지방과 의주에 수재까지 발생하자 도적떼가 먼저 일어났다.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굶주림과 우환이 겹치면서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그 와중에 민비의 척족 권문에 10만 냥을 상납해야 대과에 급제할 수 있다는 말이 떠돌고, 왕실 연등놀이에 80만 냥을 낭비하고 외채로 지불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장연에 한약방을 하는 지인이 연로하여 하는 일을 그만 접겠다고 하네. 쓸만한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이 와서 자네를 추천했네. 이제 직접 한약방을 차릴 때도 되었으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게."
준기는그 해 봄 장인의 권유로 황해도 장연에 한약방을 열었다. 끊이지 않고 사람이 드나들자 그만큼 의원의 수도 늘어나 유명한 의원들이 이곳에 다 모인다는 소문이 났다. 연화는 여자들의 병을 고치느라 바쁜 중에도 틈틈이 집안 일을 하는 사람들을 다독이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넉넉히 베풀었다. 한약방에는 남자들만 아니라 의술을 배우려는 여자들도 모였다. 연화는 일찌감치 아버지 제자들 틈에서 의술을 깨우친 터라 여자에게도 부지런히 배워서 세상일에 나서라고 부추겼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들과 세상 이야기를 나누던 준기는 병을 없애는 지름길이 세상을 바꾸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들리는 것은 가난한 이의 한숨이고 보이는 것은 억울한 자의 분노와 눈물이었다. 틈틈이 말을 몰고 활쏘기에 몰두하는 그에게 무예를 연마하겠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집 근처 뒷산에 막사를 세우면서 산포수들과 훈련을 하느라 한약방을 비우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다음 호는 책에서 계속됩니다.이어지는 줄거리는....)
장연지방에 한약방을 연 준기는 반신불수가 되어 찾아온 김구의 아버지 순영를 치료하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되고 과거에 실패한 김구는 오응선을 만나 동학에 입도한다. 그에게 상민들이 몰려들어 김구는 ‘아기접주’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남쪽에 있는 동학의 2대 교주 해월의 도소에서 통지문이 올라오자 김구는 황해도 동학도인들과 함께 해월을 만나고 일본이 경복궁을 침공했다는 소식에 준기는 동학군을 조직하고 황해도 마을끼리 내응하여 지도부를 소집한다.
등소를 올렸으나 동학을 허용할 수 없다는 황해도 감사의 말을 들은 황해도 동학군은 준기의 지휘 아래 강령현으로 쳐들어가 무기를 탈취하고 해주성을 쳐들어가는데…….
갑오년에 과연 준기와 동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들의 이야기는 책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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