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백두산 이야기
병인년(1866년)이 되었다. 백사길이 경주를 떠나 온 지도 거의 두 해. 그가 머무는 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민란을 주도하기 위해 은밀히 거사를 문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돈벌 궁리를 하여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백사길은 물이 흐르듯 변함없는 표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맞았다.
준기에게 침놓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였다. 말귀가 밝은 준기가 가르쳐주는 대로 제법 잘 하게 되었을 때 백사길은 자신의 몸에 침을 놓게 하였다. 행여 준기가 자신의 재기만 믿고 자만할까 보아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눈물을 쏙 뺄 만큼 혼쭐을 내는 일도 있었다.
“정신을 어디에 놓고 있는 것이냐!. 순간의 판단이 목숨을 가르게 되는 것이다. 항상 아무 것도 모르는 무의 상태라고 생각하고 겸손해야 한다. 의술은 하늘의 기운을 빌려 사람의 몸을 낫게 하는 것이다. 마음공부부터 단단히 해야 하는 것이야.”
약초가 되는 것들을 거두느라 여름내 온 산을 헤매어 얼굴이 새까매지고 눈 쌓인 산길에 하루살이를 채취하거나 마른 버섯을 캐느라 눈밭에 뒹굴기도 수십 번 하였다. 공연한 것을 시작하였나 하는 마음이 들어 마음이 뒤숭숭할 때면 산 중턱에 바위에 앉아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다 내려오기도 수없이 하였다.
백사길의 도움 없이도 웬만큼 의술을 펼칠 수 있게 된 날이 되자 백사길은 준기에게 자신의 침통을 물려주었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해진 작은 나무 침통을 물려주던 날 준기가 절을 하자 백사길도 허리를 굽혀 제자에게 절을 했다.
“사람이 아픈 것은 곧 한울님이 아프신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한울님을 섬기는 것이다. 아픈 곳이 똑같더라도 하는 일이나 먹는 습관에 따라 다른 처방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실력을 믿고 자만하는 순간 마음이 탁해져 환자에게 나쁜 기운이 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백사길은 준기가 그렇게도 궁금해 하던 칼춤 이야기를 해 주었다. 스승인 수운이 칼춤으로 오해를 받아 더욱 핍박을 받았다고 생각한 백사길은 좀처럼 칼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잊지 않고 춤사위를 기억하려고 동산에 나가 막대기를 들고 춤을 추었을 뿐 결코 스승처럼 목검을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픈 기억이었다. 칼춤은 동학 도인 사이에서 은밀하게 감춰졌고 행여 그 흔적이 남을세라 지우려고 노력한 비밀스러운 것이었다.
“나무칼을 들고 춤을 춘 것도 수련의 일종인가요?”
“수련이란 내 몸의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마음 그대로를 회복하는 공부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수련을 하여 한울님의 마음과 한울님의 기운에 다가가면 몸이 떨리면서 하늘의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이를 강령이라 하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강한 기운에 이끌리며 몸이 저절로 솟구치게 된다. 수운 선생은 이러한 공부의 과정을 21자 주문으로 정리하여 이것을 욈으로써 강령 체험을 할 수 있게 하였는데, 그 기운을 검을 통해 나타낸 것이 칼춤이지.”
“칼춤도 춤이라면 다른 춤을 출 때처럼 신명이 우러날까요?”
“한울님의 기운이 드러나는 게 신명이라면 칼춤은 당연코 신명의 소산이요, 나아가 신명을 불러내는 몸짓이 되지. 말하자면 칼춤은 한울님으로부터 오는 기운을 받아 표현하는 것이야. 춤사위의 움직임과 칼의 힘이 어우러져 후천개벽을 향한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지.”
“칼춤을 출 때 칼 노래를 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수운 선생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칼춤과 칼노래로 우리를 단련시켰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는 보국안민의 마음으로 짐작했었지.”
원래는 나무칼을 사용하였다는 말을 듣고 준기는 가지고 있는 연장으로 한나절 쓱쓱 나무를 다듬어 백사길과 자신의 목검을 만들어 냈다. 알 수 없는 신명이 준기의 가슴을 휘돌고 있었다. 목검을 받아든 백사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오래도록 심고를 드렸다. 준기는 백사길이 부르는 노래와 춤사위를 하나하나 눈에 담고 마음에 새겼다.
마을에는 어디고 배나무가 흔하였다. 봄바람이 불면 짧은 꼭대기 눈에서 다섯 갈래의 하얀 꽃이 피어 주변을 환하게 하고 한가위 무렵이면 열매가 익어 녹색을 띤 갈색 껍질 안에 달디 단 속살을 품었다. 배나무와 함께 버드나무가 흐드러진 동산에서 백사길과 준기는 칼춤을 추었다.
두 손바닥 위에 목검을 올려 가슴 앞에서 한 일 자로 만든 백사길은 그 상태 그대로 머리 위로 정성스럽게 들어 올렸다. 마치 하늘을 향해 심고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잠시 머무는 듯하다가 칼을 오른손으로 옮겨 잡고 검의 부리가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오른쪽 방향으로 천천히 반원을 만들어 내렸다.
마치 활짝 피어 흐드러진 벚꽃이 바람에 흔들려 하늘하늘 떨어져 내려오듯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움직임이 깊은 정적을 만들어 내어 준기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있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오른쪽 팔꿈치를 살짝 뒤로 당기면서 왼손을 반듯하게 펴서 손등을 왼쪽 눈썹 앞에까지 가져와 살짝 닿을 듯이 멈추었다. 왼발 아래쪽을 향해 비스듬히 내리던 칼 부리를 다시 들어 올려 하늘을 향하니 힘차고 강한 기운이 하늘 속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백사길은 왼쪽 엄지 발끝을 살짝 들고 들어 올린 칼을 어깨 높이까지 반듯하게 평행을 만들다가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여느 춤이라기보다는 의식이나 무술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두 사람은 달이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까지 칼춤을 추었다. 촉촉한 비를 맞아 이파리와 줄기가 움쑥움쑥 커 가듯이 열여덟 살의 호기심은 백사길의 가르침으로 촘촘히 채워져 세상을 향하여 만개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 문화현 인근에 사는 조덕삼은 자기가 수족처럼 부리는 마름 강서방을 데리고 양반의 팔자 걸음으로 자기가 위임받은 농토를 여기저기 돌아보고 있었다. 농삿일을 주관하고 소출을 따져 상민들이 부담할 몫을 결정하고 거두어 들여 양반인 지주에게 상납하는 것이 모두 소작관리인인 그의 몫이었다. 그 과정에서 농간을 부려 남 부럽지 않게 재물도 장만해 놓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허허로운 땅 위에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들일을 마무리하던 마을 사람들이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조덕삼의 입이 한껏 벙그러지다가 마지막은 삐쭉쭈름하게 옆으로 머물렀다.
‘흥, 양반이 별 건가? 요즘은 돈 없으면 양반도 내 앞에서 딱 저런 꼬락서니지.’
며칠 전에 자기 집에 찾아왔던 동네 양반 오진수가 떠올랐다. 누추한 행색이었으나 선비의 체모는 잃지 않은 오진수는 자기 집 하인들이 품을 팔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느라 찾아왔다. 한양에서 높은 벼슬아치의 이권에 휘말려 몰락했다는 소문이 도는 오진수는 아들이 병약하여 병수발을 하느라 곤궁한 처지였다.
이리저리 잇속을 따져보던 조덕삼은 한참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나서야 오진수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의 여식이 총명하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니 자기 아들 운길과 엮어 볼 욕심이 났던 것이다.
며칠 뒤에는 조덕삼이 보낸 집사가 오진수의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조덕삼의 아들 운길과 오진수의 딸 수연이 연분을 맺게 된다는 소문이 동네 사람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열여섯 살 수연은 조덕삼이 보낸 사람들이 올 때마다 기겁하며 방으로 숨기 바빴다. 수연을 안쓰럽게 생각하던 수연의 유모가 조용히 그집 사정을 알아보았다.
“아가씨, 제 친정 조카가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다리를 놓아 넌지시 물어보았답니다.”
“뭐라고 얘기하던가요?”
“그 어른 성격이 깐깐하기가 보통이 아닌가 봐요. 그래도 그 집 아드님은 부친과 같은 성격은 아니래요. 그런데…….”
“왜요? 무슨 말이 있나요?”
“글쎄, 좋아하는 처자가 있었는데 형편이 어려워 마을을 떠났대요. 둘의 사이를 집의 어른들은 모른다나 봐요. 처자네 땅이 모두 그 집 소유로 넘어가서 먹고 살 길이 없어 살던 집을 떠난 거래요. 일하는 사람 말로는 그 도령이 지금 병이 나서 앓아 누워있답니다.”
수연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며 하얘지는 것을 보고 유모의 얼굴도 덩달아 흐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수연은 밥도 잘 안 먹고 틈만 나면 강가에 가자고 하여 말없이 앉아 있다가 오곤 하여 불안한 생각이 들던 차였다. 유모는 얘기 끝에 자기 조카에게 들은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아가씨, 옆 마을 문화현에 웬 용한 사람이 있다 합니다. 주로 곤궁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준다는데 거기에 다녀온 사람들 말이 그분이 천하에 이인이라는 거예요. 아픈 사람만이 아니라 걱정이 있거나 어려운 문제가 생겨 물으러 가면 좋은 말씀을 잘 해 준다지 뭡니까? 한데….”
“한데…?”
“그 어른이 실은 동학인가 하는, 나라에서 금지하는 도술을 하다가 유배를 와 있는 분이라….”
그날 밤 날이 새도록 뒤척인 수연은아침이 되자 유모에게 그 집을 찾아가자고 졸랐다. 그 사람의 말이라도 들어보아야 마음이 편해지겠다고 했다. 잠이 안 오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수연의 말에 유모는 조카를 통해 그 의원의 사는 곳을 알아보았다.
동이가 일찌감치 백사길의 허락을 받고 칼춤을 그리기로 한 날이었다. 동이는 저녁 식사를 마친 백사길과 함께 동산으로 갔다. 동이가 한참 그림 그리느라 몰두하고 있는데 옆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났다.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구나.”
야무지게 생긴 젊은 처녀의 목소리는 낭랑했다. 옆에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늙수그레한 여인이 서 있었다. 동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얼른 그림을 덮었다. 웬일인지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저기 계시는 분이 함자 백, 사 자 길 자 쓰시는 분이니?”
“네.”
동이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함께 온 유모라는 사람은 근처에서 좀 떨어져서 섰다. 백사길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처녀가 일어났다. 동이도 눈치껏 근처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
“초면에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되어 송구합니다. 찾아뵙고 여쭐 일이 있어 왔습니다.”
“그럼 여기에 앉아 얘기 합시다. 앉으시오.”
살짝 돌아앉은 처녀의 둥글고 단정한 이마가 고집이 있어 보였다. 열 대여섯이나 먹었을까, 어린 나이에도 차분한 눈매가 기품이 있었다.
“선생님에 대한 말씀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는 오수연이라고 합니다. 대대로 사족인 집안의 여식이오나 이제는 가세가 몰락하여 사는 것은 상민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치 않는 집안 자제와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 같소.”
백사길은 입술을 깨물고 앉아 있는 수연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얼굴에 수심은 가득하나 고운 눈매에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이 맑았다.
“동네에 졸부가 된 상민이 있사온대, 재산을 앞세워 저를 데려 가려 합니다. 부모님은 그분의 농간을 막아낼 길이 없어 보입니다.”
“상민이라는 신분이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까?”
“신분이라는 허울은 이미 벗어 버린 지 오랩니다. 하오나 저도 여자 된 몸이고 보니, 진실한 사람을 만나 인륜지대사를 치르고 싶은 생각만은 버릴 수 없습니다. 저는 진실하지 않은 이 세상이 두렵습니다. 저에게 새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선생님이 공부하신다는 그 도학을 저 또한 받아들일 것입니다.”
백사길의 입가에 헛헛한 웃음이 배어나왔다. 유배 온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찾아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면 동학을 인정하겠다는 처자가 나타난 것이다.
“새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 내가 믿는 그 도학이 처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바르지 못한 세상이 두려워하여 막는 것이라면 한번 믿어 볼 만한 구석이 있는 것이라고 되짚어 생각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렇게 되는 것인가?”
백사길이 호탕하게 웃는 것을 바라보던 동이는 스승과 처자 사이의 얘기가 길어지자 궁금하여 귀를 쫑긋했다. 한식경이나 되었을까, 한결 표정이 밝아진 처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생각에 세상을 버리려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젠 새롭게 깨우쳐야 할 세상이 있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아직은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지만 더 공부해서 깨우쳐 보겠습니다.”
수연이 돌아가고 난 후 다시 칼춤을 추는 백사길 옆에서 그림을 그리던 동이는 이번에는 수연의 동그란 눈과 볼우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듯이 울먹울먹한 얼굴에 입술을 살짝 치켜 올려 주니 돌아 갈 때의 모습이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2015/06/11 - [소설/박석흥선] - 동이의 꿈(6회) - 홍경래의 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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