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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박석흥선

동이의 꿈(6회) - 홍경래의 난(3)

 

절 뒷산에 벌레 소리가 쓰람쓰람 깊어지면서 보현사에 가을이 찾아왔다.  툇마루에 앉아 운보 어머니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던 삼촌스님이 겨우내 쓸 땔감 준비를 하느라 절 뒷마당에서 장작을 쪼개고 있는 운보를 불렀다.

“운보야, 내가 어머니하고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황해도에 있는 절에 가려는 참이다. 패엽사라는 절인데 그곳도 여기처럼 아주 오래되고 유서 깊은 절이지.”

운보는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말없이 삼촌스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곳에 너를 데려갈 생각이다. 한번 세상 구경도 할 겸 같이 가면 어떻겠니?”

“저는 괜찮지만 어머니는 어떻게 하구요?”

세상 구경이 하고 싶기는 한데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운보는 슬그머니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어머니는 이미 마음을 정하였는지 웃으며 허락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스님이 함께 가시는데 이 에미가 무슨 걱정이 있겠니? 이제껏 보현사에만 있었으니 한 번 바람도 쐴 겸 잘 다녀와라. 이곳은 아무 걱정할 것 없다.”

“어머니가 허락하신다면 스님과 함께 다녀올게요. 어머니, 그동안 건강하게 잘 계셔야 해요.”

이틀 후 스님과 운보는 간단한 행장을 차리고 절 문을 나섰다. 수없이 마을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났다. 고향 마을을 지나면서도 일부러라도 그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않았다. 황해도 구월산은 소문대로 명산이었다. 계곡이 많은 구월산에 골골마다 가을이 머물러 산천을  물들이고 하늘의 조화가 올올이 장엄하게 펼쳐졌다. 그저 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졌다.  

패엽사에 머문 지 사흘째 되는 날 절 입구의 넓은 공터에서 풍물패를 만났다. 채재쟁챈챈 어디선가 뒷골을 짜릿하게 울리는 쨍한 풍물 소리가 그를 불렀다. 점심 공양 후에 잠시 쉬다가 막 절 마당에 나서려던 참이었다. 벌떡 일어나 나가 보니 굿패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판놀음을 하고 있었다. 그 굿패 기량이 그동안 보던 풍물패와는 차원이 달랐다. 운보는 그 기예와 가락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멍석말이, 기와 밟기, 고사리꺾기등의 기예와 놀이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며칠 전 눈인사를 나눈 스님이 옆에서 굿판을 보고 있어 운보가 말을 건넸다.

“절 마당에서 굿패들이 판놀음을 벌이나 봅니다.”

“이 마을에는 걸립패가 조직되어 있지요. 수시로 이곳에 머물기도 하며 판놀음을 합니다.”

상쇠를 비롯하여 꽹과리잽이, 징잽이, 장구쟁이가 더그레를 입고 색띠를 띠었고 종이로 나비모양을 낸 벙거지를 썼다. 버꾸잽이는 상쇠와 같은 차림새로 긴 채가 달린 벙거지를 썼다. 버꾸잽이들이 쌍줄로 나와서 한 줄이 앉으면 한 줄이 서고 교대로 앉았다 섰다 했다.

돌림버꾸가 시작되어 자진가락을 치던 버꾸잽이들은 안으로 돌고 나머지 쇠꾼(농악대)들은 밖으로 옆걸음질해 돌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꽹과리를 든 쇠꾼 하나가 빙빙 도는 대열에서 빠져 나오더니 바로 뒤에서 보고 있던 운보에게 악기를 맡기고 쌩하니 어디론가 급하게 사라졌다.

“아이구, 아까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하더니만 그예 소식이 왔나봅니다.”

“스님이 잘 아는 사람입니까?”

“예, 모두가 이곳에 머물면서 마을 행사에 참여하는지라 늘 얼굴을 보고 지내는 사이지요.”

지휘를 하던 상쇠가 꽹과리 소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눈치를 보이자 운보는 자기도 모르게 아직도 스르릉 울고 있는 꽹과리를 슬며시 왼쪽 검지손가락에 걸었다. 재쟁재쟁재쟁 가만가만 슬몃슬몃 꽹과리에 호흡을 맞춰보며 말을 걸어보았다. 만져본 지 오래되어 이제는 아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꽹과리가 슬며시 기대오며 말을 받아주기 시작했다.

운보는 채쟁챙 채쟁챙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꽹과리도 반갑다는 듯이 채재쟁 채재쟁 마음 한 자락을 열었다. 어느새 쇠꾼 속으로 들어간 운보는 적당히 앞 사람과 보조를 맞추며 꽹과리가 이끄는 대로 가락을 잡히고 들썩들썩 발로 땅을 밀어대며 신명에 취해 분위기를 맞추었다. 한바탕 놀고 나니 온몸에 비 오듯 땀이 흐르며 몸과 마음이 뻥 뚫린 듯 개운해졌다. 금세 한 마당이 끝나서 모두들 운보 옆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뒷간에 있다가 뒤늦게 나타난 쇠꾼은 놀란 표정으로 운보를 보며 넋을 빼고 있었다. 상쇠가 먼저 앞에 나서며 물었다.

“시방 어디 패에 계시는 분인가요?”

“아,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쇠전을 만져보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판에 끼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오랜만에 만져 보신다는 그 말씀은?”

“제가 어렸을 때 동네 어른을 졸라 몇 번 쇠전을 만져본 일이 있습니다.”

“아니, 그럼 정식으로 선생을 잡아 두고 배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네, 제가 주제넘게 끼어들었나 봅니다.”

모두들 모여들어 신기한 사람 보듯 운보를 바라보니 스님이 그제야 웃으며 이야기 틈에 끼어든다.

“매일 판을 잡고 노는 사람처럼 능숙해서 우리 패들이 이렇게 놀라는 거 아닙니까?”

“전에는 뵌 적이 없는 분인데 여기엔 어떻게 오셨는지…….”

“삼촌 되시는 스님과 함께 며칠 전에 묘향산에서 왔습니다.”

이제 마흔 정도 갓 넘겨 보이는 상쇠는 무슨 말인가 더 할 듯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스님이 한 번 더 나섰다.

“하하, 마침 쇠전 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패에 넣어주고 싶은가 봅니다.”

“어디 제가 그럴 깜냥이나 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원래부터 이 패에서 함께 지내며 놀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허허.”

절 걸립패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관여하였던 스님은 모든 상황을 다 꿰고 있어 시원시원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밖에서 돌아온 삼촌스님은 벌써 소문을 들었는지 운보를 보자마자 그 얘기부터 꺼냈다. 오늘 하루 종일 온통 꽹과리 생각뿐이었던 운보가 머뭇거리며 말을 했다.

“스님, 여기 걸립패에서 저를 판에 넣어 준다니 이곳에서 쇠전을 만지며 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제가 모셔 오구요.”

삼촌스님은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잘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보현사에서 사형으로 모시는 스님이 진즉부터 도운에게 운보의 사주를 얘기한 적이 있었다.

“너는 소리로 많은 사람들의 시름을 풀어줘야 할 사람이라고 사형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으시니 너를 여기에 보낸 것이 아니겠느냐?”

“예? 능인스님께서요?”

“그래, 어머니는 내가 절에 연락해서 모셔 오도록 하마. 나는 능인스님이 시키신 일이 있어 금강산 유점사로 가야한다. 잘 지내고 있다가 서신을 보낼 테니 우리는 다음에 만나기로 하자”

“스님…….”

이렇게 갑자기 스님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삼촌스님을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산 세월이 벌써 팔 년이 훌쩍 넘었다.

“다음에 너의 재주가 좋은 곳에 쓰일 때가 있을 것이다. 너의 신명나는 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들에게 위안을 줄 것이야.”

스님이 운보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운보의 얼굴을 쉴 새 없이 적셨다. 언제 이렇게 마음속에 많은 눈물을 담고 살았을까. 정주성에서 칠재아재의 두툼한 손에 어린 손을 잡히고서 신나게 꽹과리를 두드렸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각났다. 낮이면 관군과 대치하느라 맘을 졸이다가도 밤이면 횃불을 켜고 모여앉아 울고 웃으며 서로를 위로하던 사람들.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곧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 많던 사람들은 이제 다 어디로 갔을까. 성안에서 식량이 떨어질 무렵 자기 몫을 덜어 주고 말없이 자리를 피하던 어른들, 그 선량한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이 오지 못하고 왜 그렇게 스러져야 했는가. 세상에서 버림받았던 그 사람들이 하늘나라에서는 좀 편하게 쉬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새삼스럽게 아비의 채취가 그리워 운보는 울었다.

다음 날 스님은 금강산 유점사로 간다며 떠났다. 훗날 기별을 넣을 터이니 찾아오라고 했다. 운보는 스님을 구월산 아랫마을까지 바래다주고도 헤어지는 아쉬움에 몇 번을 뒤돌아보았다.

 

구월산에서 여섯 번째로 맞는 가을 무렵에 스님에게서 금강산 유점사에 오라는 기별이 왔다. 그 사이 어머니가 만행하는 스님과 함께 운보에게 왔고 구월산 아랫마을에서 사는 공양주 보살의 딸과 혼례도 치렀다.

볼우물이 유난히 귀엽고 자그마한 처녀는 운보가 마을 행사로 당굿이나 두레굿을 끝내고 돌아온 날이면 맛있는 것을 따로 챙겨 주기도 하고, 굿패들이 모여 연습을 하는 날이면 멀찌감치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하염없이 풍물소리를 듣기도 했다. 운보어머니는 운보의 마음을 떠보더니 싫은 내색이 없는 것을 보고 그 처녀 집에 사람을 보내 말을 넣었다. 운보가 혼례를 치르는 날, 황해도에 내로라하는 잽이들이 모여 들었다. 풍악이 날아갈 듯 하늘로 울려 퍼지던 봄, 운보는 순옥을 색시로 맞아 가슴에 품었다.

운보가 몇 명으로 단출하게 패를 꾸려 금강산으로 떠나던 날이었다. 딸 송이의 손을 잡은 순옥은 한 손으로는 불룩하게 솟아오른 배를 안고 환하게 웃으며 배웅을 하였다. 운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송이에게 눈을 맞추며 앙증스런 손에 몇 번이고 입맞춤을 하여 주었다.

“송이야, 뱃속의 동생도 잘 돌보고 할머니와 엄마랑 잘 있어라.”

“아버지는 언제 오시나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여, 아버지도 송이 보고 싶어 오래는 못 있어.”

어머니는 떠나는 행사가 너무 길어 날이 새게 생겼다며 먼 길에 어서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 며느리와 손녀가 생긴 어머니는 운보를 떠나보내면서도 예전처럼 서운한 낯빛이 아니었다. 운보가 결혼하여 새 식구를 맞이하는 날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기뻐하였고 송이가 태어나던 날에는 무슨 일이 생겼나 놀랄 정도로 오래도록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식구가 없던 집에 아기가 생기니 너무 좋아 눈물이 난다고 했다. 

추수하는 때라 지나가는 마을마다 두레굿을 쳐 주고 복을 축원하는 마당 밟기를 했다. 궁벽한 마을일수록 판놀음을 크게 벌여 마을 사람들과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벼슬아치들의 가렴주구에 납작 지붕이 곧 허물어 가는 집에서도 농악소리가 나면 내남없이 흥겨워했다. 가난한 마을일수록 마음 씀씀이가 더 정겨웠다. 곤궁한 살림에도 나물이며 소박한 먹을거리를 추렴해 냈다. 혼사나 마을에 경사가 있는 곳에서는 며칠씩 묵어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

 

금강산 유점사에는 첫눈이 내릴 무렵 도착하였다. 스님은 편지로 금강산 오는 길에 마을들을 고루 들르면서 오라고 당부를 했다. 시절이 힘들수록 보살피는 눈길 하나에 힘이 나는 거라며 주름진 민초들 마음을 보듬고 살리는 풍류를 하라고 했다.

유점사에 가까워질수록 몸은 물먹은 솜처럼 노곤하였으나 다섯 명 잽이들 얼굴은 점점 보름달처럼 훤해졌다. 이 세상에서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하루 종일 땅에 납작 엎드려 공을 들이고 하늘을 우러르고 사는 백성들이었다. 그들이 하늘이고 보살이었다.

금강산은 봉우리마다 기묘하고 빼어남이 과연 명산으로 꼽을만하였다. 봉우리마다 성스러운 기운이 서려 있고 신선이 살아 봉래산으로 부르기도 했다는데 바위마다 곳곳에 불상을 새겨 놓은 모습이며 아름지기 나무들로 겨울이어도 풍광이 좋았다. 유점사는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크고 웅장한 절이었다. 여섯 해 만에 운보는 잽이들과 함께 도운스님과 상봉을 하였다.

“그동안 어머니 모시고 잘 지냈느냐?”

“예, 평안하게 잘 지내십니다.”

“이제는 애 아빠가 되었지 뭡니까? 둘째 소식도 있구요.”

같이 간 북잡이가 거드니 스님이 만면에 가득 웃음을 띠고 반색을 한다.

“어이구, 그거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립니다.”

도운스님은 좌중에 서로를 소개하고 절 구경을 시켜 주었다. 신라 초기에 창건했다는 절에는 느릅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까마귀가 쪼는 곳을 파서 만들었다는 오탁수라는 샘물을 권하며 스님은 예전처럼 자상하게 이 절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석가모니가 입적하신 뒤 인도에는 살아생전에 부처를 못 뵌 것을 애통히 여긴 사람들이 많았다지. 정성들여 금을 모아 53구의 불상을 만들어 바다에 띄웠단다. 인연이 있는 땅에 갈 것을 발원하였는데 그것이 신라의 포구에 닿았단다. 마을의 군수가 나가 보니 불상들은 없어지고 바닷가의 나뭇잎이 모두 금강산을 행해 뻗어 있더라는 거야. 하얀 개가 앞장을 서기에 따라갔더니 큰 느티나무 아래 연못 가장자리에 53불이 그대로 와 있었다지. 임금께 소식을 올려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유점사라 이름을 지었다는구나.”

 

며칠 후 쨍하게 하늘이 푸르고 맑은 날이었다. 백천교 일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부처님 점안식을 하는 날이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꽹과리 가락으로 법고 놀이가 시작 되었다. 잠시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고 모두들 한마음으로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귀한 것이 생명이며 인간이라. 인간의 지극한 정성이 또한 으뜸 귀한 것이 아니겠는가. 운보는 모두들 좋은 세상을 품게 되기를 정성스럽게 기원하며 박수 소리에 법고 놀이를 마쳤다.

운보는 아까부터 사람들 틈에서 삿갓을 쓴 한 사람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삿갓을 써서 얼굴은 자세히 볼 수가 없으나 풍모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이 김삿갓이란 분이여.”

“그렇게 시를 잘 짓는다지? 양반들을 놀려먹는 통에 내로라하는 사람들도 아주 곤욕을 치른다는구먼.”

“그래도 그 시 하나 받으려고 싫은 내색도 못하고 줄을 선다는데?”

눈이 마주친 운보는 병연을 어디서 본 듯한 생각이 들어 눈을 떼지 못했다. 병연도 운보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만났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운보는 고향인 가산 마을이며 정주성, 보현사와 패엽사를 차례대로 떠올려 보았다.

병연도 고향인 양주와 어렸을 때 살았던 곡산, 영월 그리고 홍경래 난 때 봉기군에게 항복하여 모반대역죄로 죽었다는 할아버지 생각까지 나서 정주성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아니고 할아버지와 관계된 곳일 터……. 영월 관풍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고 난 후 시를 지어 마음껏 조롱한 선천부사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얼마나 지옥 같은 충격 속에서 헤매었던가.

한참 머릿속으로 이곳저곳을 더듬어 생각하던 병연은 먼저 한 손으로 삿갓을 슬쩍 들어 올리며 운보와 인사를 했다. 그러나 두 사람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길게 얘기할 틈이 없었다. 

운보와 병연은 그대로 서로를 바라본 채 눈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다. 억압과 분노로 생긴 싸움터에서 마주했던 관군과 봉기군. 그들의 후손으로 태어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던 두 사람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스쳐가듯 한 번 만났다.

(다음 호에 계속)

 

2015/06/04 - [소설/박석흥선] - 동이의 꿈(5회) - 홍경래의 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