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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정이춘자

피어라 꽃(7회) - 걷고 또 걷어가는 어세

 

모내기를 얼추 마무리한 후 하조도 선원들 일곱 명과 손행권 부자가 박중진의 집으로 모였다. 날이 부쩍 더워져서 방안에 들어앉기도 갑갑하여 마당 가 감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둘러앉았다. 박중진이 칡넝쿨을 째서 단단하게 엮은 두툼한 책을 가져왔다. 십 년째 이어 쓰는 치부책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총 야닯 동을 잡었어라우. 일곱 동을 한 마리에 두 푼 썩 받고 넘겠단 말이요. 일곱 동에 천사백 냥을 받었소야. 한 동은 우리 열다섯 맹이 세 두름썩 받었고, 남은 다섯 두름은 내가 진상품으로 바쳤고라이. 다들 애썼소.”

둘러앉은 사람들은 다들 머릿속으로 자신이 얼마를 받을 지 셈해 보느라 바빴다.

배랑 선주가 세 짓인게 사백이십 냥을 제하고, 나머지 구백팔십 냥을 열네 맹이 나누믄 한 사람 당 칠십 냥이 나오요안.”

박중진이 미리 칠십 냥씩 빼어 삼베 주머니에 담아 놓은 것을 주자 다들 하나씩 받아 안았다.

선주가 내야 될 세금은 어뜨케 다 치렀는가? 자네 차지도 좀 되아야 할 것인디.”

영광에다 어장 통과세 예순 냥, 전라감영세가 오십냥, 진도부에 서른닷 냥, 조도현에 스물닷 냥, 진도 아문세 서른 냥, 본관 지세가 열 냥 해서 이백열 냥을 나라에다 바쳤구마이라우.”

뭔 놈의 세금이 그라고 많은고. 작년보다 더 낸 모냥인디?”

야우, 작년에는 모다 해서 백팔십 냥이었는디 이번에는 뭐시 어짜고 저짜고 함서 더 내락해서 언성이 높아졌는디, 잽해갈 거 같은게 야들 에미가 그냥 내놔 부렀소.”

박중진에게 물었던 임씨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하조도 관방에도 입다심을 하였는지 물었다. 임씨는 육골 출신이었는데 하조도 남쪽 육골에는 마을을 지나 바닷가 야산 중턱에 수군 관방이 있었다. 진도 남도진성 만호가 다스리는 이곳 하조도 관방에도 수군 장교 하나와 군졸 칠팔 명이 번갈아가며 번을 섰다. 하조도 관방 관할 지역이 하의도까지인데 하의도까지는 순찰도 가지 않고 육골 앞바다에서만 소맹선을 타고 건들거리며 주민들의 그물을 훑어내었다. 하의도 근처 우리 해역에서 일본배가 득실거리고 고기를 다 잡아가도 모르쇠였다. 육골, 읍구 주민은 군포를 내지 않고 군졸을 먹여 살리는 것으로 대신하는 군보 역을 섰는데 관방 수졸들 뒤치다꺼리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번 부임한 만호 때부터는 면제된 군포까지 걷어갔다.

관방에도 조기 한 두름 내놓기는 했는디 언제 와서 더 훑어갈 지는 모르것소.”

노꾼 김씨도 읍구 출신이라 새삼 분이 나는 모양이었다.

에팬네들이 호맹이로 긁어 모탠 반지락까정 다 삼칠제니 이팔제니 함서 뺏어가니 못 살것소. 바다 한가운데서 만나믄 쥐도 새도 몰르게 괴기밥을 맹글어불 것인디.”

수군이 아니라 수적들이여. 우리 육골 사람들은 관방 좀 지발 없어졌으믄 좋것닥 하요.”

그때 보은서 일본놈들 어장 넘어오는 거 잔 막어달라고 했는디 그것은 하고 있당가? 내가 요 메칠 흑산도 쪽에서 민어를 잡었는디 이 씨부랄 왜놈들이 거그까장 와서 어장을 하드란 말이시. 그 놈들 배는 동력선이라 그 시끄런 소리가 온 천지에 등천을 한디 나라에서는 뭣을 헌당가?”

보은 취회 끝나고 법성포에서는 세금 과다하게 걷지 마라는 통문이 돌았닥 합디다마는.”

성님은 왜놈배를 보기만 했으니 천만다행인 줄 아쇼. 어뜬 사람은 추자도 근방에서 일본놈 배를 만났는디 잡은 거 몽창 뺏기고 죽을 뻔하다 내뺐닥 합디다. 그라고 소안도에서는 볕에다 말려둔 어물을 왜놈들이 싹 다 걷어가 부렀닥하요.”

노꾼 김 씨가 한 손으로는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들은 적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왜놈들 맞닥뜨리믄 큰일이구마이. 어야, 우리 민어 잡으러 갈 때는 연통 해 갖고 같이 가세야. 아무리 못해도 메칠은 바다에 있을 것인디 혼자 있다가 만나믄 먼 베락이것는가?”

그랍시다. 빌어묵을 종자들, 우리도 여럿이믄 무서울 것 없어라우?”

그들이 막 엉덩이를 털고 일어설 때 대문 밖이 소란스럽더니 동임 이 씨가 숨차게 들어서며 닻배 선주 박중진을 찾았다.

닻배 선주들 다 모태락 하네. 지금 당장 어류포 선창가에 곰보네로 가게. 호방 와서 지달리고 있을 것이네. 아매도 세금을 더 걷을 모냥잉게.”

뭐시여라? 세금이라믄 작년보다 삼십 냥이나 더 냈는디 뭣을 더 뜯은다요?”

내가 알것는가? 나는 시킨 일이나 하고 댕긴디. 얼렁 창리 가야 됭게 나는 가네. 곰보네서 보세.”

시킨 일이나 하고 댕김서 본관지세는 열 냥썩이나 받소?”

노꾼 김 씨가 불뚝 성질대로 바삐 대문께로 내닫는 이 씨 뒤통수에 대고 내질렀다.

관청 일 하는 사람한테 에먼 소리 하믄 뭔 죈지 알어? 내가 잘해중께 만만히 보는 모양인디 딴 섬에서는 호방이나 한가지로 대접을 받어. 오늘은 그냥 간디 한 번만 그 주둥아리 더 놀리믄 옥에 처 넣어 블랑게. 그라고 본관지세는 나 혼자 묵가니?”

이 씨는 표독스러운 눈길로 내쏘아 부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니 나갔다. 평소와 다른 그의 서슬에 일행은 멍하니 서 있었다.

얼마나 더 뜯어낼라고 저로코롬 설레발을 치까?”

임 씨가 중얼거리자 다들 불안한 표정이었다. 손에 쥔 칠십 냥을 누가 빼앗기라도 할까 봐 얼른 바지춤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박중진은 고개를 넘어 곰보네 주막으로 갔다. 포졸들이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시시덕거렸다. 진도부 호방과 이서들은 방에서 술상을 받은 참이었다. 언제부터 마셨는지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좀 있으니 육골, 신전 마을 선주들까지 여덟 명이 다 모였다. 이 씨가 호방에게 다 모였다고 하자 그들이 나왔다. 호방이 기둥을 잡고 서서 비틀거리며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말했다.

어세를 걷으러 왔느니라. 새로 오신 부사님이 조구를 잡은 양대로 다시 걷으라는 명이다, 꺼억. 조구 한 동에 스무 냥 썩 내도록 해라. 알았느냐?”

선주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한 동에 스무 냥이면 박중진이 더 내야 할 세는 백사십 냥이었다. 박중진이 기가 막혀 물었다.

그물 길이로 세를 내는 것은 대대로 나라에서 정한 것인디 어째서 부사님이 새 법을 맹글었다요? 곱으로 내라는 말 아니요?”

호방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듣더니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라 법대로 하다 봉게 세가 부족해서 더 걷는 것이다. 부사님이 새로 맹글었다니? 부족할 때는 그라고 하라고 엄연히 내려온 명이여. 돈을 더 번 놈이 많이 내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니냐? 그라믄 멫 동을 잡든지 상관없이 싹 똑같이 더 낼라냐?”

똑같이 내잔 것이 아니라 어째 더 걷느냐 그 말이요?”

나라에서 그란단디 너는 내기 싫다 그것이냐? 말 많은 것들은 매가 약이라. 여봐라. 저놈을 묶어라.”

포졸들이 달려들어 박중진의 팔을 잡으려 하자 박중진이 거칠게 팔을 빼는 서슬에 포졸이 쓰러졌다.

저놈 잡아라. 나랏일을 방해한 놈은 사형도 싸다. 이놈!”

호방이 길길이 날뛰며 소리 지르자 주춤했던 포졸들이 다시 달려들어 박중진을 에워쌌다. 술취한 아전들까지 마당으로 내려서고, 포졸들이 박중진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이때 혹 무슨 일이 있을까 하여 뒤따라왔던 김 씨가 마당으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포졸 두 명을 때려눕혔다. 포졸들이 오히려 뒤로 밀리자 이번에는 하조도 선주들까지 가세하였다. 호방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허겁지겁 신발을 꿰어 신고 도망쳤다.

저 오살할 것들이 언제고 다시 올 것인디 말이여."

선창에서 도망치는 관선을 바라보던 신전리 선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판사판이재라우. 배를 뒤집어서 괴기밥을 만들어 불 것인디 그랬어라우. 나중에 닥달하믄 그놈들은 여그 온 적도 없다고 입을 맞춰불믄 되재라우.”

선주들은 심란한 얼굴로 헤어졌다.

 

그 후 호방 무리가 상조도, 나배도, 관매도를 돌며 조세를 더 걷어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흉흉했다. 버티는 선주는 그 자리에서 몽둥이로 때려 진도로 잡아가고, 집집마다 뒤져 말려 놓은 고기까지 훑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임 이 씨가 박중진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의 뒤에는 아전 서너 명과 포졸 20여 명이 떼를 지어 몰려 있었다. 이번에는 모이라는 통기도 하지 않고 직접 돌며 징수하는 모양이었다.

마당에서 그물을 고치고 있던 박중진이 일어서자 아전이 말했다.

전에 말했던 조세를 받으러 왔응게 당장 내놓아라.”

그때 포졸들 중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포졸 한 명이 박중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놈 땜시 우리가 그날 부사한테 깨지고, 군교한테 디졌당께.”

포졸들이 마당으로 뛰어 들어와 박중진을 향해 막무가내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박중진이 몽둥이에 맞아 이마에서 피가 주르르 흘렀다. 박중진이 뒤로 물러나 지게 작대기를 집어 들었으나 뒤에서 내리치는 몽둥이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포졸 여럿이 달려들어 쓰러진 박중진의 등을 몽둥이찜질 하였다. 순녀가 달려나왔다.

오메, 아부지.”

순녀가 널브러지다시피 한 아버지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소동 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해남댁이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 나왔다.

이놈들아. 나도 죽여!”

포졸의 몽둥이가 해남댁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해남댁은 그 자리에 푹 고꾸라졌다. 순녀의 어린 동생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포졸이 몽둥이로 위협하자 입을 벌린 채 오들오들 떨었다. 한쪽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아전이 박중진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세금을 내라. 안 그러면 니 딸년도 잡어갈 텡께. 저 년도 묶어.”

포졸들이 박중진에게서 순녀를 잡아떼어 두 손을 뒤로 잡아 당겼다. 순녀는 팔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다.

아이고, 순녀야. 이놈들. 그 손 놔라.”

해남댁이 일어서지도 못하고 소리를 지르자 박중진이 아전에게 손짓을 했다. 그것을 본 아전이 옆구리를 찔벅이자 포졸들이 순녀의 손을 놓았다.

박중진은 순녀의 부축을 받으며 돈꾸러미를 가지러 방으로 갔다. 박중진의 뒤통수에 대고 아전이 소리쳤다.

진상품도 더 걷어야 쓰것응게 조구도 있는 대로 내 놔. 여봐라. 너희들이 직접 찾아 걷어라.”

포졸들이 흩어져 장독대, 뒤란, 부엌, 곳간까지 뒤졌다. 장독대 뚜껑을 놓쳤는지, 내팽개치는지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해남댁의 몸이 움찔하였다.

겉보리 오가리 어디 있는가 찾어서 조구 싹 다 꺼내.”

그들은 작정을 하고 온 듯 마당에 그물을 펼쳐 놓고 말린 생선을 거두어 담았다. 뒤안 시렁에 매달아 둔 문어 다리를 찢어 질겅거리며 히히덕거렸다. 광에 들어갔던 포졸들은 김을 한 톳씩 허리춤에 숨겼는지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박중진이 건네는 엽전 꾸러미를 받더니 아전이 집을 나섰다. 포졸들도 서둘러 뒤짐질을 그만 두고 따라 나갔다. 그들의 발걸음은 선주 집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산자락에 움막을 짓고 사는 땅쇠네 집에서도 고함소리가 났다. 통나무배 한 척도 없이 남편은 남의 배를 타고, 아내와 딸들은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해초를 뜯어 먹고 사는 집이었다. 그들이 한 집 한 집 옮겨갈 때마다 고함 소리, 비명 소리,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진도 말목장에 한양에서 민씨들이 유람 왔다고 하더니 그들에게 바리바리 싸 보낼 작정인 모양이었다.

 

2015/06/10 - [소설/정이춘자] - 해남 진도 동학(6회) - 다들 보은 취회로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