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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정이춘자

피어라 꽃(10회) - 의신면 만길리 나치현에게 가다



사월이는 입은 옷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군두를 따라가며 어그적거리고 걷느라 자꾸 처졌다. 군두는 애가 타서 뒤를 돌아보다가도 사월이가 아랫배를 누르며 찡그리는 것을 보고는 기다려 주었다. 동네와 좀 떨어져 언덕 위에 서 있는 관마청까지 왔다. 대문을 들어서자 부엌 쪽이 부산했다. 군두는 사월이를 이끌어 중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월이는 가슴이 옥죄이는 것 같았다. 좁은 마당 가운데에 아담한 정원이 있고, 댓돌 위에 갖신이 한 켤레 있었다. 감목관의 신발인 듯하였다. 군두가 목을 가다듬더니 아뢰었다.

감목관이 안에서 앉은 채 문을 열었다.

수고했네. 그럼 가 보시게.”

그런데 이 아이가 달거리 중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할깝시오?”

감목관이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하였다. 군두와 사월이는 목을 움츠리고 기다렸다. 사월이는 어찌나 다리가 떨리고 가슴이 쿵닥거리는지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랫배를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그냥 데려다 주어라.”

군두는 안채에서 나오자마자 사월이에게 혼자 가라고 하고는 휭하니 가 버렸다. 사월이는 누가 볼까 봐 고개를 숙인 채 관마청 마당을 나왔다. 들판으로 나오자 주위를 살펴보고는 날듯이 걸었다.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용궁에 갔다가 살아나온 토끼 심정이 이럴 것이었다.

쉬지 않고 날듯이 걸어 말목장 석성 가까이 이르렀다. 갑자기 말총이가 나타났다. 사월이는 깜짝 놀랐다. 말총이는 내내 사월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듯 사월이를 보더니 휙 돌아서 앞장섰다.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던 사월이도 부리나케 뒤를 따랐다. 관마청에서 말목장까지는 십리 가까운 거리였다. 어느새 석양 노을이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말총이를 따라 걷느라 사월이는 숨이 찼다. 마구간까지 오자 사위가 어두워졌다. 말총이가 마구간 뒤쪽으로 돌아갔다. 사월이도 따라갔다. 마초 쌓아놓은 옆에 말총이가 털썩 주저앉았다. 사월이도 옆에 앉았다.

숨을 돌리느라 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거친 숨소리만 둘 사이에 가득 찼다. 사월이 이마에 땀이 흘렀다. 저고리 섶도 촉촉했다. 사월이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말총이가 힐끗 보더니 부채를 가져와 부쳐 주었다. 짚으로 만든 부채라 무겁고 컸다. 말총이 얼굴에도 땀이 흘렀다. 사월이가 말없이 부채를 빼앗아 옆에 두었다. 말총이가 부채를 다시 집으려 하자 사월이가 도리질을 하였다. 말총이 입술이 퉁퉁 붓고 핏물이 배어 있었다.

안 더워. 참을 만해. 근디 어뜨케 알었어?”

사월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니 가는 거 보고 다 알었재.”

…….”

내가 숨이 맥혀 딱 죽는 줄 알었다. 여그에 주먹만한 거이 얹혀갖고 숨이 안 쉬어지고.”

말총이가 주먹을 쥐어 명치를 치면서 다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이 사이로 피가 흘렀다. 급하게 들이켜는 숨을 따라 그의 어깨가 떨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너 군두 따라서 가는 거 보고나 오늘감목관 죽여 불고나도 죽어불락 했다.”

…….”

저지르기 전에 느그 엄니한테 말하고 갈라고낫 들고 느그 집 간게느그 엄니가 놀래갖고 갈쳐주드라. 쪼까 지달려 보라고. 그래서 낫 들고 관마청 보인 데서 있었던 거여. 밤까지 너 안 나오믄 쳐들어가서 감목관 죽여 불라고.”

말총이가 공중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시퍼런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사월이는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는 말총이의 옆얼굴을 보며 가슴이 철렁하였다.

니가 그랄 줄은 몰랐는디.”

그라믄 으짤 줄 알었가니야?”

몰라. 그냥나는 내 일인 줄만 알었재.”

나랑 혼인하자 했는디 너는 니 일인 줄만 알었다고?”

말총이의 목소리에 노여움이 묻어났다. 자신이 말총이의 색시임을, 말총이는 자신을 빼앗기면 목숨까지도 버릴 것임을 사월이는 몰랐다. 사월이는 그 생각을 못한 자신이 한심하였다. 말총이와 얽힌 동아줄은 이제 풀지도 못하고, 풀리지도 않을 것이었다.

다음 달에 감목관이 오믄 나를 또 부르까? 감목관이 나 같은 것은 잊어 부렀으믄 좋것다.”

그라믄 좋것재마는 그랄 리가 없어. 그 전에 내뺄 준비를 해야재. 요새는 군부들이 한밤중에도 목자들을 소집해갖고 점검을 항게 내빼기도 애럽고, 동학도인들 만나러 가기도 애럽고.”

…….”

내가 낮에라도 의신을 갔다 와야 쓰것다. 군두한테 맞어 디지드라도 우리가 살 방도는 거그밖에 없응게. 마치 성이 쩌번에 동학 이야기할 때 나치현 접주님이 거그 사신다고 했어. 성도 그분이 도와줬을 것이여. 마치 성이 시방 여그 있었으믄 우리를 도와줄 것인디.”

한마치의 말을 하자 사월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말총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으쨋든 니가 맘 깡깡하니 묵고 나를 믿어야 된다이. 으짜다가 이쁜 색시를 둬 갖고 내가 이 고상을 항가 몰르것다.”

내가 이쁜게 지도 좋아함시로.”

사월이가 입이 뾰루퉁해져 응석부리듯 말하자 말총이가 픽 웃었다. 사월이가 가만히 말총이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말총이에게서 마른 풀 냄새가 났다. 사월이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좋은 냄새였다. 그들은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초하루라 달이 없어 다행이었다. 숨이 막힐 듯 더운 밤공기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비가 올 모양이었다.

다음 날은 새벽부터 비가 왔다. 말총이는 아침 일찍 말들에게 여물을 넉넉히 주고 마구간을 단속했다. 비가 그쳐야 감목관이 떠날 테지만 머뭇거릴 때가 아니었다. 말총이는 말을 타고 몰래 목장을 나섰다. 동쪽으로 임회면을 지나 바닷가까지 곧장 가면 의신면 만길리였다. 동학에 아직 입도하지 못했지만 사정을 말하고 부탁해 볼 참이었다. 목장 안에도 동학도인들이 있을 것 같았지만 말총이는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한마치가 동학에 입도해 밤마실 다닐 때 바짝 따라 붙어서 진즉 자신도 입도할 걸 하며 후회했다. 한마치는 어쩐 일인지 말만 꺼내고는 더 이상 동학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말총이의 마음을 아는지 세 살 먹은 수말 호동이는 쉬지 않고 잘 달려주었다. 한 번도 와보지 않았지만 바다가 보이는 걸로 보아 다 온 것 같았다. 동네 초입에서 만난 중늙은이에게 나치현 접주의 집을 물었다. 나치현은 다행히 집에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인자하게 생긴 모습에 말총이는 안심하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말총이는 무릎을 털썩 꿇고 조아렸다.

지를 조까 도와주시요. 은혜는 잊지 않을게라우.”

젊은이. 좀 천천히, 자세히 이야기를 해야 내가 뭘 도울지 알지.”

나치현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어려 있었다. 웃으며 말할 때에도 그는 목소리가 작았다.

, 지는 서말총이구마이라우. 저짝 마목장에서 목자로 일하는디유, 한마치 성님한테 접주님 이약을 들었어라우. 감목관이 지 색시를 욕심내갖고 델꼬 갈락항게 내빼야 쓰것는디 지 주관으로는 이 섬을 나갈 방도가 없응께 접주님한테 왔어라우. 지가 지금 여그 온 것만으로도 다리 빼닥 한나는 내놔야 되구만이라우. 지를 쪼까 살려주시요. 색시 뺏기믄 감목관 죽여 불고 지도 죽어 불 거구마요."

말총이는 이 말을 하고는 어제 일이 생각나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엊저녁에 감목관을 죽여 부렀으믄 오늘 지가 이 자리에 없을 것인디 한울님이 도와서 색시를 아직 안 뺏겨구마이라우. 언제 또 그놈이 올지 몰른디 사내가 되갖고 멍청하게 있으믄 안 되지라우.”

한마치? 자네가 말총이라고? 허허.”

나치현은 한마치 이름을 듣더니 말총이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한마치 성님도 접주님이 주선해 주셌지라우? 마치 성님은 내뺄 일도 없었는디 가부러 갖고 그 뒤로 감시만 심해져 부렀단게요. 지도 쪼까 해주시요.”

알었네. 내가 알아볼라믄 못해도 보름은 걸릴 것인게 보름 후에 자네가 색시를 델꼬 나오게. 그라믄 내가 배로 빠져나가게 해 줌세. 어디 생각해 논 데는 있는가?”

생각해 논 데는 없구마이라우. 그냥 아무데서나 안 앵키고 살 수만 있으믄 좋것구만이라우.”

알었네.”

그라믄 샌님만 믿으께라우. 그라고, 동학에 입도하고 자운디 지도 된당가요?”

암은. 되고 말고. 심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는 마음속으로 자꼬 한울님한테 말을 허소. 한울님, 지가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어보고.”

알것구만이라우. 고맙고 또 고맙구만요.”

말총이는 여러 번 고개를 주억거려 절을 하고는 그 길로 돌아왔다. 비는 그쳐 있었다. 다행히 목장에서는 그가 나갔다 온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비 온 뒤끝이라 군두들은 목장에 나오지도 않은 것 같았다. 우물가로 가서 땀에 젖은 호동이에게 물을 먹였다. 말총이가 호동이의 땀을 닦아주고 있을 때 아버지가 다가왔다. 감목관은 비 그친 후 낮에 돌아갔다고 아버지가 알려주었다. 아버지가 젖은 바위에 앉았다.

말총아, 아부지한테 할 말 있지야.”

말총이는 아버지와 좀 떨어진 돌에 앉았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 지 어제부터 오늘까지 아득히 긴 세월이 흐른 것 같았다.

아부지, 어지께 일은 들으셌소?”

아까 사월이 아부지가 갈챠 주드라.”

사월이 델꼬 내빼야 쓰것어라우. 언제고 감목관이 또 올 것인디 지달리고 있것소? 보름 후에 갈라고라우.”

안 앵키고 갈 수 있것냐?”

걱정 마시쇼. 마치 성 빼내 준 분한테 지도 갔다 왔구만이라우.”

아버지는 말없이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옆 얼굴을 보니 길고 무표정한 게 말을 닮았다. 아버지는 어느새 귀밑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아부지, 인자 가믄 아부지 언제 만날지 모르것소.”

말총이는 사월이와 자신의 일만 생각하느라 혼자 남을 아버지 걱정을 한 번도 안한 것이 죄스러웠다.

언제고 만날 날이 있것재. 나는 여그 있을 것인게.”

떠나는 말총이에게 아버지는 언제고 만나러 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영영 떠나리라 했는데 아버지가 있는 이상 영원히 떠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잽힐 것 같으믄 오지 말고, 오 년이고 십 년이고 지나믄 감목관도, 군두들도 다 배낄 거 아니냐? 너 한 번 더 볼 때까지는 내가 으짜든지 안 죽고 살어 있을텡게, 그때 되믄 군부나 목자들이야 니 펜 들어주것재. 아부지도 있는디.”

한없이 느리고 단조로웠던 아버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언제고 꼭 다시 올께라우. 그라고 의신면 만길리 나치현이라는 분한테 소식을 꼭 전할게라우. 키가 쪼깐해갖고 수염이 얌잔하게 난 분입디다. 목소리가 아부지 같이 나직나직하고라우. 그분이 약조하기를 있을 데를 알어봐갖고, 내보내 준닥 했어라우.”

그리 되고, 니가 몸만 성할 것 같으믄 하늘이 보내 준 은인이시것다.”

아부지. 지는 걱정 마시고라우. 잘 잡숫고 몸 성히 계시시요이. 지가 찾아왔을 때 꼭 살어 지셔야 하요이.”

 

말총이는 사월이에게 보름 후, 보름달이 뜨면 도망칠 것이니 준비를 하라 했다. 사월이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사월이 어머니는 삶은 보리쌀과 나물만 섞어 짓던 밥에 쌀을 한 숟가락씩 얹었다. 쌀밥이 흩어지지 않게 보리밥과 조심조심 섞어 사월이에게 떠 주었다. 남편과 아들에게 남은 보리밥을 퍼 주고 나면 솥바닥에는 나물만 남았다. 어머니는 보리쌀이 드문드문 묻어 있는 나물밥을 바가지에 담아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새 아들은 제 밥을 다 먹고 누나의 흰 쌀밥을 보며 침을 삼켰다. 사월이가 밥을 동생에게 덜어 주었다.

으이고. 허천 빙 난 새끼.”

사월이네가 아들의 등짝을 후려쳤다. 그래도 사월이 동생은 쌀 섞인 보리밥이 입에서 살살 녹았다.



사진 출처와 저작권 : "Sunset" by Sunny_mjx, used under CC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