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목관이 왔다간 지 이레가 지났다. 점심참이 지났을 때였다. 군두가 정신없이 목장으로 올라왔다. 말총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감목관님이 연통도 없이 들이닥쳤다. 잠시만 앉아 계시라고 주안상 들이밀어 놓고 올라왔은께 금방 오실 것이다. 빨리 빨리 말똥 치우고, 털 솔질해라.”
군두가 정신없이 다그치자 목자들도 허둥지둥 마굿간으로 달렸다. 말총이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사월이 집으로 달렸다. 말총이 말을 들은 사월이는 사색이 되었다. 말총이는 사월이를 앞세워 뒷산으로 달렸다. 허둥지둥 달리느라 사월이는 엎어지고, 자빠지며 짚신짝까지 벗어졌다. 말총이가 짚신짝을 집어 들고 재촉했다. 봄에 둘이 앉았던 자리를 찾아 기어들어 갔다. 그러나 그곳은 오솔길에서 너무 가까웠다. 말총이는 사월이의 손을 잡고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사월이의 손이 축축했다. 부들부들 떨었다. 커다란 바위 아래 참꽃나무 잎이 무성했다. 바위를 끼고 돌아가니 알맞춤한 자리가 있었다. 말총이는 사월이를 거기에 들어앉게 했다. 바위 밑에 쭈그려 앉은 사월이가 말총이를 올려다보았다.
“감목관 이 새끼가 분명히 니 보러 왔을 것이여. 이라고 연통 없이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는디 니 달거리 끝났을 것이다 하고 온 것이여.”
“어쩌까? 나 내뺀 거 알믄 감목관이 성나갖고 우리 엄니 아부지 죽여부리는 거 아니여?”
“감목관이 느그 엄매 죽이기 전에 내가 몬자 죽여 불 거여. 너는 여그 카만히 있어라이.”
사월이가 돌아서는 말총이의 옷자락을 잡았다. 옷자락을 잡은 그녀의 손이 벌벌 떨렸다.
“안돼야. 말총아. 잠깐만 생각 잔 해보자아. 다른 일로 온 거 아니까?”
“그랄 일이 없당게.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여야.”
“니가 가서 감목관 죽이믄 너도 죽을 것인디 나는 어쩌라고야. 나도 죽을 거여. 갈 거믄 같이 가.”
“안 돼야. 너는 살어야재 으째서 죽어야?”
“바보 멍충아. 너는 죽으러 감서 나는 여그 있으라고야? 어째서 내 속은 그르케 몰르냐아.”
사월이의 짓눌린 목소리에 울음이 담겼다. 사월이가 서 있는 말총이의 손을 더듬어 잡아당겼다. 사월이의 손이 얼음장처럼 찼다. 말총이는 맥이 풀렸다.
“그라믄 어찌케 하라고야.”
“니가 몬자 나를 가져부러. 애를 배드라도 니 애를 밸 것이여.”
사월이는 이를 사려물었다. 옷고름을 풀고 저고리를 벗었다. 소매가 안 빠지자 말총이에게 내밀었다. 말총이는 엉겁결에 사월이의 옷소매를 잡았다. 저고리를 벗은 후 앞가슴을 동여맨 치마끈을 풀었다.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치마를 바닥에 깐 후 속곳만 입은 채 누웠다. 젖꽃판 위에서 분홍색 작은 젖꼭지가 떨고 있었다. 사월이의 봉긋하고 하얀 가슴을 보자 말총이는 머리가 멍해졌다. 사월이가 말총이의 팔을 끌어당겼다. 말총이가 사월이의 가슴으로 엎어졌다.
“나는 니 색시여. 니는 내 낭군이고. 첫 몸을 준 사람한테 시집가야 헌다고 엄니가 그랬어야. 그란게 나는 니한테 첫몸 주고 니한테 시집 갈거여.”
말총이의 등을 꽉 껴안고 사월이는 연신 중얼거렸다.
사월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말총이는 멍하니 마굿간으로 들어섰다. 눈을 부릅뜬 군두와 마주쳤다. 말총이는 군두를 멍청히 바라보았다. 군두가 다짜고짜 채찍을 휘둘렀다.
“이 개새끼가 어서 처 자빠져 놀다가 인자 기어와? 빨리 솔질하고 말똥 안 치워? 빌어묵을 놈이 누구 신세를 망치려고.”
맞은 등짝이 싸아 하니 시원했다. 차라리 잘되었다 싶었다. 채찍에라도 맞아야 살 것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말똥을 치웠다. 한참 후에 나온 감목관은 마구간을 건성으로 한 번 휘 돌더니 말했다.
“전에 여기 어디에 목자 딸이 하나 산다 했지 않았느냐? 여기 오니 기억이 나는구나. 네가 관마청으로 데려오도록 하여라.”
“예. 예. 그랬습지요.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요. 지가 곧 델꼬 가겠습니다요.”
감목관이 돌아서자 허리를 굽신거리던 군두는 입을 삐죽였다. 자랄수록 눈이 가는 사월이를 온전하게 두길 천만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 사월이 어미가 사월이 만할 때의 일이었다. 한 군두가 사월이 어미를 차지했다가 감목관에게 찍혀 군두 자리에서 떨려나고 쫓겨났다. 사월이 어미는 군두에게서 놓여나 목자에게 시집갔다. 그녀의 남편이 된 목자는 반편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유순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에 대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람처럼 흐뭇해하며 사월이 어미를 아껴 주었다. 그 뒤 군두들은 감목관 눈치를 보느라 얼굴 반반한 목자 딸들은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 되었다.
연신 헛기침을 하며 관마청으로 가는 감목관의 뒤통수를 흘겨보다가 군두는 사월이의 집으로 갔다. 사월이는 다소곳이 따라나왔다. 사월이 어미가 따라오다 군두의 호통소리에 그 자리에 섰다. 어차피 목자 마누라나 딸들은 관노비나 마찬가지였다. 감목관이나 군두들이 부르면 꼼짝없이 따라나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이나 아버지가 시도 때도 없이 채찍에 맞아 피범벅이 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감목관은 사월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 날 화원목장으로 데리고 가 버렸다. 칠월 칠일이었다. 말총이는 칠석날 밤을 뜬 눈으로 샜다. 그날은 견우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날이었다.
말총이는 가슴 속에 벌집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잠도 잘 수 없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얼굴이 퀭해져서 눈빛만 번들거렸다. 낮에는 말을 돌보고, 농사일을 하느라 그래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깜깜한 밤이 되어 움막 안에 누우면 사월이의 모습만 눈에 밟혔다. 발가벗은 사월이가 감목관 밑에 깔려 능욕당하는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사월이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월이가 미친개에게 쫓겨 도망치고 있는데 자신은 무슨 일인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발밑을 보니 진흙구덩이였다. 몸부림을 치자 몸은 계속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턱을 지나 코밑까지 빠져 들어가는데 몸부림도 칠 수 없어 ‘아악!’ 하고 소리 질렀다. 아버지가 그의 몸을 흔들고 있었다. 코끝에서는 아직도 진흙 냄새가 생생하게 났다.
“말총아, 아가 말총아.”
“야? 아부지.”
말총이는 이마에 끈적하게 밴 식은땀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았다.
“말총아, 죽을 생각 하지 말고야 살 도리를 생각해라와. 지금 사월이를 니 맘 속에서 빼내는 참이냐? 아니믄 지달리는 것이냐?”
“나는 꼭 사월이 찾아갖고 내뺄 것이요. 아부지.”
“그라믄 어째 밥을 안 묵고, 잠을 못 자냐. 내 보기에는 니가 시방 사월이를 니 맴 속에서 죽이는 것으로배끼 안 보인다.”
‘아부지, 아부지가 내 속을 어뜨케 알 것이요? 나는 시방 속이 타서 뭉그래지고 있는디.’
말총이는 속으로만 대들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더니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말총아. 느그 엄니 이약을 해줄 것인게 새겨 들어라이.”
가슴에서 ‘쿵’ 소리가 났다. 아버지 입에서 ‘느그 엄니’라는 말이 처음 나온 순간이었다. 자상하게 옛날이야기를 해 주다가도 어머니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득한 눈빛으로 말총이 얼굴을 바라보다 먼 데 산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의 그 눈빛을 대할 때마다 말총이는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머리가 크면서부터 말총이는 어머니를 잊었다.
“사월이가 느그 엄니랑 팔자가 똑같은갑다. 내가 했대끼 너도 하믄 똑같은 팔자가 되것재.”
“아부지가 어뜨케 했는디라우?”
“똑 지금 너거치 했다. 미친 놈맨치로 밥도 안 묵고, 잠도 안 자고, 눈에 살기가 한나 차갖고 감목관 놈을 오기만 하믄 죽애 불라고 낫을 갈었지야. 군두 놈이 내 꼴을 앙께 감목관이 오기만 하믄 나를 마구간 뒤안에 있는 나무에다가 꽝꽝 묶어 부렀다. 군두도 죽애 불고 싶었재만은 군두 지가 허가니? 목자들 시캐서 묶응께 죽일라믄 다 죽애야쓴디 목자들은 차마 못 죽이것드라. 내 속 다 알고 즈그들도 속으로 피눈물 흘리는 사람도 여럿인디.”
“나 낳아 놓고 엄니를 뺏게 부렀는가비요?”
“그랬지야. 짐생만도 못한 그 감목관 놈, 젖 뽈아 묵는 핏댕이를 띠어 불고 애엄씨를 화원으로 델꼬 가부렀다. 낸중에 감목관 그놈이 베슬이 올라갖고 한양 감서 느그 엄니를 땡개불고 갔닥 하드라.”
“엄니는 그라믄 어뜨케 됐는디라우?”
말총이가 다급하게 물었다.
“내가 죄인이재. 나도 느그 엄니를 버려부렀은께. 느그 엄니가 뭔 죄냐. 그란디 나는 느그 엄니도 못 보것드라. 느그 엄니가 날 지달리고 있을 중 암시로도 옹졸한 속아지가 찾으러를 안 갔지야. 낸중에 들은께 관마청에서 종으로 멫 년을 더 있다가 시름시름 앓드니 죽어 부렀닥 허드라. 말도 못허고 속이 숯뎅이가 됐것재.”
“…….”
“내가 그때 니 엄니를 델러 갔어야 된디, 죽어서 내가 느그 엄니 얼굴을 어뜨케 볼 지 몰르것다. 너는 그라지 말어라. 니가 못나갖고 사월이가 당헌 것인께.”
“아부지. 이번에 군마 뽑아갈 때 나도 목자로 갈라요.”
“……?”
“화원서 묵을 때 사월이 델꼬 내뺄 것인게 그리 아쇼. 내일 나치현 접주님한테 갔다 올께라우. 살라믄 그분 도움을 받는 것빼끼 질이 없응께.”
“그래라. 살 도리를 찾을라믄 잘 묵고, 잘 자고 몸을 깡깡하게 해야쓸 것 아니냐. 믿을 것은 니 몸땡이 한나여.”
“알었소. 인자 그라께라우.”
말총이는 다시 나치현에게 갔다. 나치현이 서찰을 주고, 남리 전유희가 사는 동네를 가르쳐 주었다. 말총이는 돌아온 후 군부에게 애원하여 군마를 싣고 가는 배에 목자로 뽑혔다. 말총이는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정성껏 말을 돌보고 둔답의 나락도 포기가 쩍쩍 벌어지도록 거름을 주었다.
칠월 스무하루로 날이 잡히고 군마 선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백오십 마리의 군마를 뽑아간다고 하였다. 커다란 원형 목책 안으로 말을 몰아넣은 후 뱀처럼 좁게 만든 사장으로 한 마리씩 천천히 지나가게 하였다. 말총이의 말들도 불안한 눈길을 디룩거리며 좁은 목책 안에서 서성거렸다. 목책 너머로 호동이가 말총이에게 다가와 얼굴을 비볐다. 말총이가 가장 아끼는 호동이는 밝은 잿빛 털을 가졌다. 말총이는 호동이의 갈기를 쓸어주며 감목관을 노려보았다. 감목관은 붉은 도포를 입고 높다란 누각 위에 앉아 있었다. 간간히 부채로 말을 가리키며 뭐라 말하는 감목관의 몸피는 전에 봤던 때보다 작은 것 같았다. 늙은 염소처럼 성긴 수염이 매달려 있었다. 그 턱을 갈기고 싶었다. 호동이의 갈기를 주먹으로 그러쥐며 말총이는 이를 악물었다.
호동이가 말총이를 떠나 좁은 목책으로 들어섰다. 마의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걸어오는 말을 관찰하였다. 마지막에 말굽과 눈동자, 이빨을 점검한 후 ‘합’ 하면 그 말은 오른쪽 목책 안으로 들어가고, ‘불’하면 왼쪽으로 보내졌다.
호동이가 마의 앞에 멈춰 섰다.
“합!”
호동이가 군마로 뽑혔다. 잘된 일이었다. 키는 작지만 힘이 좋은 호동이를 타고 말총이는 도망칠 참이었다. 사월이가 탈 말로는 호동이의 연인 부용이를 점찍어 두었다. 밤색 털이 탐스러운 부용이는 사월이를 닮아 눈빛이 당차고 허리가 날씬하여 호동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암말이었다. 말총이는 호동이와 부용이에게 남몰래 맛좋은 풀을 더 주고, 틈틈이 타고 달려 체력을 길러 두었다. 잘 먹고, 실컷 달리면서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호동이와 부용이는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호동이의 뒤에 서 있던 부용이도 ‘합’이었다. 내일 진도를 떠나 화원에서 백오십 마리를 더 싣고 한양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무사히 말을 선별하고 나자 군두와 군부들도 한시름 놓고 경계를 늦추었다. 말총이의 아버지도 바빠졌다. 그는 가진 돈을 다 털어내 술병에 맑은 술을 채우고, 사월이 어머니는 틈틈이 사월이의 옷을 지었다.
말총이는 품속에 간직한 나치현의 서찰을 꺼내 보았다. 글자를 읽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 획 한 획 써내려 가던 나치현의 붓끝에서 말총이는 자신의 운명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글에는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아니었다. 힘을 가진 자들은 글을 갖고 있었다. 말총이는 글을 가지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서찰을 얼굴에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코끝에 스미는 묵향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세상 밖으로 나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배우리라, 글을 배워서 이제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헤쳐 나가리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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