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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 꿈(10회) - 개항(1) 4장 개항 조지서 일을 하는 동이 아버지 한순구는 구월산 자락 아래에서 평생 종이를 만들며 보냈다. 종이 만드는 일은 워낙 품이 많이 들고 힘이 드는 일이었다. 산에서 초군들이 닥나무를 캐 가지고 오면 그 다음 일은 조지서 일꾼들 차지였다. “아흔아홉 번의 손길이 가야하는 거여, 정성이 부족하면 좋은 종이가 안 나온다.” 귀에 더깨가 앉도록 들은 말이었다. 조지서에서 만든 종이는 중국에 보내는 진상품이었고 그들도 조선의 종이를 제일로 여겨 황제와 벼슬아치들만 쓰는 귀한 물건으로 알았다. 보얗게 마름질된 책 한권을 묶기 위해 조지서 일꾼들의 몸은 휘어지고 손바닥은 갈라져 거칠어졌다. 한순구는 아들을 조지서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종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보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었다.. 더보기
피어라 꽃(10회) - 의신면 만길리 나치현에게 가다 사월이는 입은 옷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군두를 따라가며 어그적거리고 걷느라 자꾸 처졌다. 군두는 애가 타서 뒤를 돌아보다가도 사월이가 아랫배를 누르며 찡그리는 것을 보고는 기다려 주었다. 동네와 좀 떨어져 언덕 위에 서 있는 관마청까지 왔다. 대문을 들어서자 부엌 쪽이 부산했다. 군두는 사월이를 이끌어 중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월이는 가슴이 옥죄이는 것 같았다. 좁은 마당 가운데에 아담한 정원이 있고, 댓돌 위에 갖신이 한 켤레 있었다. 감목관의 신발인 듯하였다. 군두가 목을 가다듬더니 아뢰었다. 감목관이 안에서 앉은 채 문을 열었다. “수고했네. 그럼 가 보시게.” “그런데 이 아이가 달거리 중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할깝시오?” 감목관이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더보기
꿈이 있더냐(9회) - 벅차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넓게 퍼져라 “자, 모두 모인 것 같습니다.” 김용희가 방안의 사람들을 지긋이 쳐다보고 나직이 말했다. 해가 질 무렵이지만, 초를 켜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방안에는 김용희와 김은경, 김성지, 김화성, 황성도, 이희인 같은 양반 출신 도인들과 원씨 등이 같이 앉아 있다. 인근에서 행세깨나 하는 양반들이었다. 향교나 서원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세도에 따라 앉는 자리까지 정해지는 것이 향교와 서원에서의 양반 세계다. 하지만 김용희의 집에 모인 이들은 둥그렇게 자리를 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마음을 모아서 ‘심고’.” 김용희의 말에 따라 모두 눈을 감고 양반다리를 한 채 손을 모았다. “오늘 여기 대선생의 뜻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직은 대선생의 뜻을 잘 모릅니다. 이 땅에서 양반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