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차 오르는 희망, 동학의 뜻은 넓게넓게 퍼져라
“우리 도인 중에 유선이 어머니라고 계십니다. 남편은 제물포로 떠난 지 몇 해 됐는데 지난해 다녀간 뒤로 올 초부터는 소식이 끊겼답니다. 아이는 갓 돌을 지난 계집아이와 네 살, 일곱 살 사내아이까지 셋입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먹을 게 없어 젖이 안 나오니까 우리 도인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봄 동학에 입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 세상을 뜰 것 같습니다. 의원 말이 이레를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데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희 어머니에게 그 유선이 어머니가 이걸 주셨습니다.”
칠성이가 가슴팍에서 명주천을 꺼내들더니, 손바닥위에 펼쳐보였다. 거기엔 하얀 버선 두 짝이 놓여있었다. 칠성은 둥그렇게 둘러앉은 방 가운데 버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자기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도인들이 큰 도움을 주셨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바느질이라 버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경전이 간행된다고 하니 기쁜 마음에 할 수 있는 게 바느질뿐이라고 버선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보름전에 만들었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아이들을 두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 이 버선을 꼭 전달해 달라고 했답니다.”
칠성이의 눈 가에 눈물이 촉촉이 고였다. 칠성이 말에 접장들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들었다.
“서방님, 잠시 말씀 좀 나누시지요.”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서다. 상현 아내의 목소리가 진중했다.
“서방님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음. 유선이네 말이에요.”
상현의 안사람이 뜸을 들였다. 상현이가 안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유선이 어머니 장례를 치른 지 이제 한 달. 그동안 아이들을 살갑게 챙겨 온 아내다. 혹 ‘아이들을 내치자’고 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닥쳐왔다. 혼인하고 여태 아이가 없어 혹여나 유선이와 아이들이 버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을 우리가 키우는 건 어떨까 해서요. 서방님도 아이들을 좋아하고, 유선이는 제자이니, 제자는 자식과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유선이 아버지 소식도 없고. 이제 아이들을 우리가 거두는 것이 좋을 듯한데, 서방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갑작스런 아내의 말에 상현이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아내의 속도 모르고 혼자 딴생각을 품은 것이 민망할 뿐이었다. 아이들의 처지가 딱해 ‘어찌해야 하나’ 하고 생각만 했을 뿐, 자식으로 거두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부인, 아직… 생각을 좀 더 해 보는 것이….”
상현이가 주저했다.
“서방님, 갑작스레 말씀을 드려 놀라셨지요. 한꺼번에 자식을 셋이나 둔다는 것이. 저는 유선이 어머님의 버선 얘기가 정말 가슴을 에였어요. 회합 때도 도인들에게 입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늘 말하던 사람입니다. 동학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고 했지요. 저승 가서 극락 가면 무엇 하냐고 이승을 극락으로 만드는 동학이 으뜸이라고 했었지요. 가난한 이들을 서로 도와주는 동학이 극락이라고 하더군요. 동경대전이 간행된다고 하니까 그 솜씨 좋은 바느질로 우리 도인들 돕겠다고 하더이다. 그렇게 갔는데, 사람을 살리는 게 동학이잖아요. 아이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연통이 안 되고 갑자기 어머니까지 저리 되셨는데…. 유선이가 너무 애처롭기도 하지만, 영특하고 또 심성이 고운 아이 아닙니까?”
상현 아내의 눈빛은 간절했다.
그때 밖에서 찾는 목소리가 있었다.
“흐흠. 자네 있는가?”
칠성이의 목소리다.
“이 시각에 형님이 무슨 일로 오셨지?”
상현이 내외가 마당으로 나가니 칠성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형님 무슨 일 이길래 이 시각에 찾으셨습니까?”
“그게….”
칠성이는 말을 못하고 주저했다.
“아주버님, 안으로 드시지요. 아이들은 자고 있습니다”
상현 내외와, 칠성이가 방에 앉았다. 칠성이 표정이 침울했다.
“방금 연통이 왔다. 제물포에 사람을 보내 수소문해 보았는데...”
칠성이가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유선이 아버지를 찾긴 찾았는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전갈이 왔다.”
칠성이와 아내가 놀라 ‘헉’하고 짧은 탄성을 지었다. 혹여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이들이 아비마저 잃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예에? 언제요? 아니 기별이 없었잖습니까! 저 어린 것들을 놔두고….”
상현이가 되물었다.
“자꾸 피를 토했다고 한단다. 몸이 앙상해지다가 일이 끊겼는데... 며칠째 소식이 없어 같이 일하던 사람이 가 봤더니, 이미 죽어 있었다는구나.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하더구만…. 달포가 조금 안 됐다고 하니….”
칠성이가 이어 말했다.
“어미나 아비나 왜 이리 허망하게 간답니까! 아이들은 어쩌라고요.”
상현이가 안타까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칠성이의 한숨도 이어졌다. 상현 안사람은 옷고름 끝을 눈가로 가져갔다.
“이제 아이들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셋이나 되니 한집에 맡아 키우라고 할 수도 없고….”
칠성이의 말에 상현 아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아주버님, 아이들을 다른 집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부모도 없는데 형제자매가 따로 산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혹한 것 같습니다. 저희가 거둘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잘 키워낼 자신은 없지만 유선이 어머니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칠성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셋을 다 키울 수 있겠소?”
“서방님만 허락해 주신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두 사람이 상현이를 바라보았다.
상현이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칠성이가 집을 나선 후 상현이가 안사람과 함께 어머니 방으로 다가가 인기척을 했다.
“들어오너라”
상현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 셋은 차례로 누워 자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 자는갑네요.”
상현이가 아이들을 보며 자리에 앉았다.
“유선이는 계속 잠을 못 이루다 조금 전에야 잠이 들었다. 방금 칠성이가 왔다간 것 같던데….”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물었다.
“연통이 왔는데, 유선이 아버지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상현이의 말에 두 사람의 눈길이 아이들로 옮겨졌다.
“저, 어머님. 그래서 말인데….”
상현이가 뜸을 들였다.
“어여 말을 해 보거라. 어려워하지 말고….”
어머니가 내외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아이들을 우리가 거둘까 합니다. 혼인한 지 한 해가 지났는데 아직도 태기가 없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엽기도 하고. 그냥 아이들이 좋습니다. 어머니 생각은 어떠신지요?”
상현 안사람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했다. 상현이도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면 참 장하구나. 내가 며느리는 참 잘 얻었어. 너의 나이 아직 젊고 젊어 태기는 언제든 올 것이다. 내 그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는 너의 마음씨가 정말 곱구나. 유선이 어머니의 마음이 우리 며늘아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듯하구나. 사람을 아끼고 하늘처럼 여긴다는 말씀이 너를 두고 한 말인가 싶다. 나도 열심히 거들어 주마. 장하다. 우리 며느리, 장하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상현 아내도 고개를 들어 시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시어머니의 눈매엔 기쁨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상현 안사람도 시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꼬옥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상현이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동경대전 간행의 역사(役事)가 시작됐다. 목천 김은경 접장의 광 절반은 도인들이 정성스레 모은 물건들로 빼곡했다. 품목과 종류에 따라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으로, 온갖 먹을 것들은 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차례차례 정리돼 있었다. 또 값이 후한 것과 박한 것도 나눠 놓았다. 품목장부도 만들어 놓아 누가 무엇을 언제 가져왔는지도 꼼꼼하게 기록됐다.
목천 도인들은 물품들이 모일 때마다 병천장과 청주장으로 내다 팔았다. 김은경 접장의 집에서 조그만 산 하나만 건너면 청주요, 두어 식경만 걸어가면 병천장이다. 내다 팔아 남은 이문은 처음 희사한 도인들의 품목 옆에 빼곡히 기록됐다.
첫 각수 작업을 앞두고 도인들이 모였다. 한겨울이라 도인들이 말을 할 때마다 허연 입김들이 새어 나왔다. 목천과 천안, 직산, 전의현 등 인근 도인들도 일부 모였다. 판각 작업이 정말 시작된다니 가슴이 떨렸다. 몇 개월 전부터 돈이나 짚신, 버선 등 정성들을 모아 왔는데, 눈앞에서 동경대전 간행이 시작된다니 도인들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김은경이 도인들을 둘러보았다. 경전준비에 온힘을 받쳐온 그다. 그가 입을 열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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