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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고은광순

해월의 딸 용담할미(5회) - 어머니, 큰어머니, 새어머니 (열 살이 된 윤이 아버지 해월의 첫 부인 손씨를 만나는 장면) 2. 어머니, 큰어머니, 새어머니 (1886~ ) -큰어머니 손씨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라니? 아이들은 눈이 둥그레져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방으로 올라선 김 씨가 손 씨에게 큰절을 하자 손 씨는 맞절을 했다. 손 씨는 수시로 쿨럭거리며 타구에 가래를 뱉는 것이 건강이 안 좋은 듯했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고, 오랜만에 만난 두 여인네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 어린 것들 데리고 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은가?” “저야 힘들기는 해도 아이들이랑 사느라고 적적할 틈도 없지요. 형님은 혼자 얼마나 적적하시겠어요? 몸도 불편하신데. 제가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게 자네 ..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4회) - 속이 깊은 아이 윤 (관의 추적을 피해 떠도는 삶속에서도 성장하는 아이들. 아버지의 첫째 부인을 만나게 되고...) 송두둑은 해월이 입도 후 가장 오래, 가장 평화롭게 살았던 곳이었다. 꺼져 가는 동학의 불꽃을 살려낼 수 있었던 고마운 동네였다. 그러나 수상한 눈길이 잦아진 이상, 이제는 더 이상 미련을 둘 곳이 못 되었다. 해월은 바로 보따리를 챙겨 송두둑의 집을 사위가 된 연국에게 부탁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혼자 집을 떠났다. 전라도 익산의 사자암으로 들어간 해월은 수 개월간 암자에 머물며 관가의 경계를 피했다. 초겨울에는 손병희 등과 충청도 공주의 가섭사에서 기도를 하며 이제는 손수 일일이 챙길 수 없게 커져 버린 각처의 도인들을 지도하고 연락 체제에 대해 궁리해 보았다. 송두둑 가족의 피신에 대해서는 얼마 전 제자들에..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3회) - 김연국이 사위가 되고... (이필제난 이후 고난을 겪는 해월가족, 둘째 아내를 얻고 김연국을 사위로 맞게 되는데...) 관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해월은 깊은 절망을 안고 소백산 골짜기를 탔다. 굶주림에 지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비몽사몽간에 높은 절벽에 서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품었으나, 고비원주(高飛遠走), 높은 뜻을 펼치고 멀리까지 도를 펴라는 스승님의 말씀이 마지막 한 걸음을 멈춰 세웠다. 스승의 인도가 있었던가, 한울님의 감응이 있었던가. 영월 직곡리 박용걸의 집에 겨우 의탁하게 되어, 몸을 추스르며 49일 기도를 드렸다. 수운 스승이 살아 계실 때 49일 기도를 여러 차례 했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기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통곡이 터져나왔다. 자기의 과오로 희생된 도인들을 생각하며, 어린 나이에 참수를 앞..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2회) - 평생제자 김연국을 만나게 된 사연 (이필제의 난의 여파로 피신하면서 해월은 첫째 부인 손씨와 헤어져 서로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되고 둘째 부인 김씨와 살게 되는데...) 이곳 단양 도솔봉 아래 사는 날부터 연화는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아갔다. 어린 동생들, 솔봉이와 윤이도 생겨났다. 이젠 스무 살의 과년한 처녀가 된 연화는 11살, 14살 터울의 솔봉과 윤에겐 어머니 같은 누이요 언니가 되었다. 김 씨도 연화와 둘이 살 때엔 이런 행복이 다시 오리라 생각지 못했다. 새로 만난 남편은 한없이 어질고 부지런했으며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점잖았다. 남편에게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묻고 말씀을 듣는 표정들은 더 없이 부드럽고 온화했다.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한층 평화로운 미소가 감돌았다. 손님 뒤치다꺼리가 많아도 하나도 ..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 -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상남자, 상여자가 거기 있었다20세기 중반 넷째 딸로 태어나 살면서 가정과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의 심각성에 분노했다. 1999년부터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한국의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과 열심히 싸웠다. 엄청난 남성들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차별을 당연시하는 한국남성들의 '찌질함'이 일제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 후 많은 국민이 성씨와 족보를 조작하는 등 남성 중심의 '양반 흉내 놀이'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을 치르는 동안 내게, 한국/조선의 남자들은 오로지 계몽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동학을 알게 되고, 동학농민혁명을 만나게 되었다. 일제 강점이라는 큰 산 너머에는 수백만의 입도자가 있었고 수십만의 혁명군이 움직였다는 동학의 물결이 있..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1회) - 어마 돌나물이 신기하네 해월의 딸-용담할매1. 어마, 돌나물이 신기하네  여섯 살 윤이겨우내 휘몰아치던 칼바람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더니 북쪽의 흰봉산과 도솔봉에 더 많은 햇살이 머무르고 높은 하늘에서 새소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집 뒤의 삿갓봉에서는 다다다다닥 부지런한 딱따구리가 새 집을 장만하는 모양이다.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연두색으로 변해가고 지난 가을부터 가지 위에 쌀알만 하게 달려있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봉오리의 노랑 빛이 진해지더니 개나리가 피었고 분홍빛이 진해지더니 진달래가 폈다.날씨가 따듯해지자 윤이는 부쩍 밖에 나와 노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김 씨는 마당 한쪽의 흙을 손가락으로 헤치며 윤에게 와서 보라고 했다. 김 씨가 흙을 헤친 곳에는 연두색 싹이 뾰족이 드러났다.“아아...”윤이는 그 뿐. 입을 벌리고는 .. 더보기
동학과 혁명을 공부하면서...(인터뷰) Q. 동학과 혁명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동학의 동이 서에 대칭되는 동일뿐 아니라 빛, 광명, 생명을 뜻한다는 것. 해월이 38년을 도망 다니면서 조직사업을 한 것은 무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이루려고 했다는 것. 동학에 입도한 사람들의 숫자는 인구 1/3~1/4가 될 정도로 엄청난 숫자였다는 것. 혁명 직전 그들은 2년여에 걸쳐 합법적 통로를 통해 정부에 하소연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것. 그러나 모두 무시당했다는 것. 남접과 북접이 대립관계에 있지 않았으며 4월 이후 충청권에서도 계속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 적과 싸우더라도 생명을 빼앗지는 말라는 등 동학농민군의 4대 명의, 12개조 기율에 대해서는 일본 지식인들조차 탄복했다는 것. 고부군수 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