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1회) - 임최소현 제1장 무릎에 닿는 봄추위가 뼈 속까지 시리다 날은 화창하고 맑았다. 하지만 입춘을 조금 넘긴 날의 아침 공기는 아직 차갑고 매서웠다. 우마차 여러 대가 동시에 지날 수 있을 만큼 넓은 육조 거리에 우뚝 선 광화문은 마치 칼을 찬 장수처럼 고압적이고 위풍당당하다. 어설픈 잡인들은 결코 이 문을 통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날 선 공기를 가로지르며, 흰 두루마기를 갖춰 입고 말총갓을 눌러쓴 헌헌장부 아홉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들어 왔다. 그들은 임금이 계시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쪽을 향해 긴장된 발걸음을 옮겼다. 맨 앞에 선 선비의 손에는 붉은 보자기로 싼, 상소문을 올린 상이 들려 있었다. 광화문 뒤로는 늠름하게 높이 솟은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헌부 정문 앞과 그 맞은편에는..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2회 해월 피체지 답사 해월 피체지 답사 기사는 예상했던 대로 반응이 뜨거웠다. 며칠 뒤에 유청은 기사가 난 신문을 들고 장일순 선생을 찾아갔다. 그 며칠 동안 장일순의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취재기자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학구열로 장일순의 말을 들어 보고 싶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녀는 오랜만에 어린애 같은 설렘을 느꼈다. 유청이 찾아가자 장일순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선생의 부모님과 형제가 직접 지었다는 아담한 기와집은 정원이 넓었다. 키 큰 측백나무 옆에는 쥐똥나무와 단풍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정원 곳곳에는 산죽나무, 백일홍나무가 서 있었다. 초여름인데도 마당에는 질경이, 민들레, 괭이밥, 토끼풀 등이 납작 엎드린 채 꽃을 피우고 있다가 가끔씩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렸다. 자갈 틈 사이에 끼.. 더보기 해월의 딸 용담할미 -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상남자, 상여자가 거기 있었다20세기 중반 넷째 딸로 태어나 살면서 가정과 사회에 만연한 여성 차별의 심각성에 분노했다. 1999년부터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한국의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과 열심히 싸웠다. 엄청난 남성들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차별을 당연시하는 한국남성들의 '찌질함'이 일제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 후 많은 국민이 성씨와 족보를 조작하는 등 남성 중심의 '양반 흉내 놀이'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을 치르는 동안 내게, 한국/조선의 남자들은 오로지 계몽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동학을 알게 되고, 동학농민혁명을 만나게 되었다. 일제 강점이라는 큰 산 너머에는 수백만의 입도자가 있었고 수십만의 혁명군이 움직였다는 동학의 물결이 있.. 더보기 이전 1 ··· 52 53 54 55 56 57 58 ··· 6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