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광양민란(1889년)
의형제를 맺은 양계환과 유석훈은 금세 십년지기 친구가 됐다. 의형제라서가 아니라, 어쩐 일인지 속생각까지 찰떡궁합이었다. 그 합으로 세상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았다.
추수가 끝난 어느 날 계환은 석훈의 집을 찾았다. 그날따라 석훈은 유독 반가워하며 계환의 손을 잡아 방으로 끌었다. 방에는 낯모르는 젊은이가 있었다. 젊은이는 단단해 보였다. 계환이 들어서자마자 눈을 빛내며 수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지는 조두환이요.”
엉겁결에 수인사를 받으면서 양계환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석훈 쪽을 살폈다. 눈길이 마주친 석훈은 웃으면서 청년을 소개했다.
“계환이, 이 친구는 여그 봉강 사는 조두환이구마. 좋은 친군게 잘 사귀어 보소.”
그때서야 계환이도 얼굴 표정이 누그러지며 말을 텄다.
“반갑소. 나가 지난여름에 석훈이 목숨을 살리고 의형제를 맺은 사람이오. 월포 사는 양계환이요.”
“나도 그 이야긴 들었소. 글고 석훈이랑 이런저런 존 얘기도 많이 나눈담서요. 나도 나이가 석훈이랑 같은게 우리 서로 말 틉시다.”
“거 좋소. 두환이 친구, 우리 잘 지내 봅시다.”
양계환이 손을 쑥 내밀었다. 그 손을 잡은 채로 조두환은 눈빛을 반짝이며 빠르게 말을 내놓았다.
“실은 오늘 급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 친구 집에 들렀소. 지비들 광양 관아 털린 이약 들었소?”
석훈은 두환의 말에 놀라 앉으려고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며 물었다.
“뭐? 광양 관아가 털리다니 그거이 뭔 소리단가?”
양계환도 눈이 화등잔만해지면서 두환이 입만 주시했다.
“시방 읍내는 난리가 났구마. 그동안에 김두현 현감이 엥간허니 뜯어갔어야 말이제.”
“아따! 뭔 소린지 궁금해 죽겄구만. 찬찬허니 제대로 이약 좀 해 보소.”
석훈의 재촉에 두환이 말을 풀었다.
“시방 자세한 이약은 다 헐 틈이 없고, 우리 아재 말씀으로는 광양 현아 백지홍 이방이 사람이 괜찮다고 헙디다. 이번 난리는 이방이 앞장을 서고 나중에 백성들을 끌어 들이서 일을 벌맀다 허더만요. 근디 일이 잘못 돼 부렀는가 시방 나주 목사 김규식이 안핵사로 와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있다요. 울 아재도 거그 찡기 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나와 갖고 우리 집에 숨었는디 앞일이 어찌 될랑가 나도 모르겄소.”
“글먼 시방 지비 집에 숨어 기신단 말이요?”
“아먼. 시방 우리 아부지는 아재가 계속 우리 집에 있으면 우리 집도 위험하고 아재도 위험헝깨 피해야 쓰껀디 어째야 쓰까 허고 걱정이 태산이라다. 그래서 뭔 좋은 수가 없으까 허고 석훈이 친구헌티 의논이나 해 보자고 나왔그마요.”
“피할 곳이라….”
두환의 말을 듣고 계환이 혼잣말을 내놓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저 혼자 들떠서 말했다.
“아! 존 디가 있소! 구례가 좋겄소! 울 집 땅을 일궈 먹는 집인디. 그 집이라면 안전허겄소. 나도 몇 번 가 봤는디 그 집 아재가 나를 잘 알고 뭐보다 신실한 사람잉깨 나랑 같이 가먼 잘해 주꺼요.”
그 말에 두환의 얼굴이 환해졌다.
“글먼 언능 가 보세.”
그때 석훈이 나섰다.
“이런 일일수록 사람이 단촐해야지. 네 사람이 다 항꾼에 돌아다니다가는 넘들 눈에 들키기 십상이제. 긍깨 자네 집 아재만 계환이 친구를 따라가면 어쩌겄는가?”
“석훈이 자네 말이 맞것구마. 글먼 지비가 울 아재 좀 잘 모시고 가소. 이따가 날이 잔 어둑해지면 성불사 뒷산 길로 올라가시라 헐랑깨 지비가 거그서 지달리다 이~!”
말을 마치기가 바쁘게 두환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석훈과 계환은 한참이나 광양 관아에서 벌어졌다는 난리를 두고 갑론을박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석훈이 어머님께서 차려 주신 밥상을 물리고 양계환이 길을 나선 것은 해가 서산에서 한 발쯤 남았을 무렵이었다. 발걸음을 바삐 하였는데도 성불사 뒷산 길에 당도하니 해가 산을 꼴깍 넘어갔다. 계환은 떡갈나무 뒷편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서 두환네 아재를 기다렸다. 갈빛 마른 잎이 바람에 몇 잎씩 날렸다. 서편 하늘을 붉게 물들였던 노을이 점차 그 빛을 잃고 컴컴해진다 싶을 무렵에 발소리가 들렸다. 이즈음에 성불사 뒷산 길로 급하게 올라올 사람은 두환이의 아재뿐이다 싶어 일어나서 산길로 나갔다.
“두환이 아재 되시는가요?”
“그러네. 내가 조삼도구만.”
“예, 지가 양계환이라다. 아재를 구례로 모실라는디 괜찮컷능가요?”
“어려븐 일인디 날 도와준당께 고맙네. 지금 나는 어디가 됐건 여서 언능 달아나야 헝깨 자네가 가잔 대로 갈라네.”
“글먼 언능 가입시다.”
양계환과 조삼도는 부지런히 산길을 탔다. 다행히도 보름이 이틀 뒤인지라 달이 밝았다. 한참이나 오르니 달덕이재가 나왔다. 두 사람은 달덕이재 근처에서 작은 바위 하나씩을 차지하고 걸터앉았다. 계환이 물었다.
“근디 아재는 어쩌다가 난리에 뛰 들었당가요?”
“두환이헌티 들었네만 자네 집맹키로 부잣집은 우리들 겉은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모를 것이네. 여그서 나가 그 이약을 다 헐라먼 오늘 밤을 꼬빡 새도 다 못 허꺼그마.”
“아재, 그래도 좀 들리주이다! 밤길 가는 것도 심심헌디.”
“글먼 그러세. 인자 어차피 피신허는 몸이라 사람 노릇 허기도 어려운 판에, 나가 한맺힌 이약을 해 볼랑깨 난중에라도 자네 겉은 젊은이들이 기회가 오면 저 그악한 놈들 등쌀에 시달리지 않고 우리 겉은 백성들이 좀 편히 묵고 살게나 해 주시게.”
“가난 구제라는 것은 나랏님도 못 허는디 우리가 어찌 헌당가요?”
“젊은 사람이 그거이 뭔 소리여? 암튼 간에 이야기나 들어 보게.”
광양 현감 김두현은 욕심이 사나웠다. 광양은 농사지을 땅은 좁은 데 바다가 가까이 있어 온갖 명목으로 세미와 세전을 걷어 갔다. 그 바람에 광양 사람들 소원이 하루라도 편하게 뜨신 밥 한번 입에 넣어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 부임한 김두현은 자리에 앉은 그날부터 관속들을 산지 사방으로 내보내 온 고을 사람들에게 산비탈 골짝 속까지 밭을 일궈 곡식을 심으라 독려하였다. 그렇게 봄에 산밭을 일굴 때는 세전을 면해 준다고 해 놓고선 바로 그해 가을에 세전을 물리는 통에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동네마다 일었다. 날이면 날마다 관아 한쪽에는 세전을 내지 못해서 사람들이 잡혀 오고, 또 다른 한쪽에선 은밀하게 관아 사람들을 붙잡고 협상하는 사람들이 늘어 갔다.
조삼도 역시 산밭을 일궜다. 땅이 얼어 곡괭이로 찍어도 땅에서 오히려 곡괭이가 튀어 버리는 한겨울부터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산 아래쪽을 온 식구가 매달려 죽을힘을 다해 파고 또 팠다. 그리고 산밭에서 나오는 돌로는 돌담을 쌓았다. 장맛비에 산밭 흙이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물길도 큼직하게 내고, 돌담 쌓기에도 온갖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만든 밭에 조삼도는 콩과 고구마를 심었다. 그 밭에 처음으로 심은 작물은 잘 자랐다. 가을걷이를 하고 보니 콩이 세 말, 고구마가 작은 방 윗목에 놓은 두대통에 가득 찼다. 두대통은 여름 농한기 때 미리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서 만들어 두었다. 그때는 이만큼이나 고구마가 나올까 했는데 두대통에 한가득 들어찼다. 삼도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인자 세미 내고도 우리 새끼들을 굶기지 않고 고구마 밥은 먹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름도 다 못 셀 만큼 온갖 명목의 세전을 달라는 대로 다 냈다. 가을 농사가 비교적 잘 되었는데도 집에는 나락이 몇 톨 남지 않았다. 그래도 올해는 콩과 고구마가 있으니 어찌 버티겠구나 싶어서 내심 든든했다. 그러나 그것은 삼도의 착각이었다. 고구마 밥이라도 먹기 시작한 평화로운 며칠이 지나자 마을의 오가작통제 통주 김서방과 관아 호방이 들이닥쳤다.
“이리 오너라.”
삼도가 급히 방문을 열고 내려오자마자 호방의 호통이 이어지고 그 옆에서 김서방은 안절부절못했다.
“조삼도, 자네는 어찌하여 제대로 세전도 내지 않고 이러고 있는가?”
“뭔 세전이랑가요? 저는 관에서 내라는 대로 한 푼도 빶지 않고 다 냈는디요?”
“이 사람, 안 되겄구마. 관아로 가서 볼기짝이라도 맞아야 정신을 차릴랑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김서방이 조삼도와 눈빛이 마주치자 그때서야 풀죽은 소리로 말을 냈다.
“글쎄, 삼도 저 산밭 안 있는가? 그 밭 세전이 빠졌다고 그러네만….”
그 말을 들은 삼도는 눈이 휙 돌아갔다.
“그거이 뭔 소리여? 지난 번 봄철에 세전 없이 산밭을 일구어 먹으라고 한 이가 누구였소?”
“뭔 소리여? 나라 땅을 일궈 곡식을 걷었으면 세전을 내는 거야 당연지사지. 이러코롬 관에서 찾아댕기게끔 하는 버릇은 어디서 배워 먹은겨?”
“아니, 호방 나으리. 분명히 산밭을 일구면 그것은 세전은 면제해준다 안 하였소? 그 말 듣고 우리 식구들이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피똥을 지릴 정도로 심들게 일해서 밭 맹글어 농사 지어논께 인자 와서 세전을 내라니 그것이 나라법이요?”
“정 따지고 싶걸랑 관아로 내일 나오게. 근디 관아로 올 때는 세전은 꼭 챙겨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네.”
어제 저녁 김두현 현감은 한양으로 올릴 세미, 세전 운반선 대책을 궁리하느라고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잠을 설친 김두현 현감은 아침에도 몸이 개운치 않아 뭉기적거리고 있는데 관아가 시끄러웠다.
“밖에 무슨 일이냐?”
“이방 백지홍입니다. 사또께서 얼른 나오셔야겠습니다.”
현감이 이방의 재촉을 받고서야 동헌으로 나왔더니 동헌 뜰에 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현감이 등장하자 이방과 호방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호방이 아뢰었다.
“사또! 지는 어제 봉강으로 빠진 세전을 챙기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세전 내는 것이 억울하다고 사또께 아뢸 것이 있다 하옵니다.”
“저런! 고얀 놈을 봤나? 목숨을 부지한 것을 보면 농사는 지었을 터, 그런데 세전 내는 것이 억울해? 무엇이 그리 억울하단 말이냐?”
잠자코 엎드려 있던 조삼도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사또! 지난봄에 분명히 산밭을 일구면 그 해는 세전을 안 내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세전을 내라 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조삼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감은 호방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물었다.
“호방! 그 땅이 산밭이더냐? 묵전을 일군 밭이더냐?”
“예. 제가 보기엔 묵전을 다시 일군 좋은 밭이더이다.”
호방은 싱긋 웃기까지 하였다. 사또는 호방의 말을 듣자마자 호령하였다.
“저놈은 좋은 밭에서 수확을 하고도 세전을 떼어먹으려 산밭 운운하는 숭악한 놈이다. 저놈은 데려다가 혼쭐을 내주어라.”
조삼도는 그날 곤장 열 대를 맞고 옥에 갇히었다. 그 다음 날로 조삼도의 아내가 돈을 꾸어 호방 집에 가져다주고 나서야 그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해 겨울 조삼도의 식구들은 고구마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그 무렵 광양 현감 김두현은 속내가 복잡했다. 한양에 올려 보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세미, 세전에 자신의 곳간까지 채우려니 아무리 닦달을 하여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수족이 되어도 부족할 판인 이방 백지홍이 어느 날인가부터 이상했다. 자신과 호방이 매기는 세수에 맞장구를 칠 때도 있지만 어깃장을 놓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세수 매기는 것을 제대로 따지자면 이방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이방의 말대로 해선 자신의 곳간을 채우기는커녕 광양 관아 곳간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방도 그 사정을 모르진 않을 텐데 그가 왜 가끔씩 딴죽을 걸고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방 백지홍은 광양의 향리들과 백성들이 은근히 싸고도는 눈치였다. 김두현 현감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이방을 가만두자니 자신의 재산을 늘릴 수가 없고, 이방을 제재하자니 광양 사람들이 어찌 나올까 두려웠다. 이방의 속내에 뭔가 있는데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백 이방이 조용히 동헌 내아로 찾아왔다.
“사또, 이방 백지홍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누워 있던 현감이 몸을 일으켰다.
“어서 들게.”
백지홍은 사또 방으로 들어갔다. 살찐 몸을 일으킨 현감은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일인가? 할 말이 있으면 동헌에서 할 것이지. 쯧쯧.”
사또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방이 뭔가 결심한 듯 얼굴을 들고 차분한 목소리로 사또에게 아뢰었다.
“사또, 저 백지홍과 우리 향리들은 오로지 나라와 현감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또께서도 잘 아실 것이옵니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고을 좌수께서는 별 일도 없으면서 백성들에게 세전을 마구 뜯어내고 있다는 말이 자주 들리옵니다.”
“그건 무슨 소린가?”
사또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느슨하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사또께옵서도 요즘 한양에 올려 보낼 세미, 세전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옵니다. 게다가 우리 관아 살림도 제대로 꾸려가기가 어려운 실정인데 김경문 좌수까지도 양반입네 하면서 백성들에게 세미, 세전을 함부로 걷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광양현이 세전을 걷기가 더 팍팍한 실정입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사….”
백 이방은 침을 꼴깍 삼키고 현감의 얼굴을 보더니 결심한 듯 말을 내었다.
“이번에 좌수를 바꾸면 어떨까 합니다.”
백 이방의 말을 듣는 현감 얼굴빛이 바뀌었다. 현감은 곧바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바로 앉았다.
“무슨 소리? 지금도 광양 향반들 기세가 만만찮은데 현감이 좌수를 바꾸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줄 아는가? 안 될 일이네.”
현감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이방은 얼굴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백 이방은 물러서지 않고 그 말을 또 내어놓았다.
“사또.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지금 우리 향리들의 형편도 좀 살펴주십시오. 우리들 형편이 전 같지 않고 식솔들도 먹을 것이 없는 날이 많사옵니다.”
“그거사, 자네들이 세전을 제대로 걷지 못한 탓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좌수 자리를 바꾸자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하는 이유는 대체 뭔가?”
“사또, 아시는 대로 양반은 세전을 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반 백성들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넉넉한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양반들은 크고 작은 집안 행사에 쓰일 물품을 백성들에게서 뜯어 갑니다. 백성들은 나라 세전도 못 낼 판에 유향소에 필요한 비용을 때마다 대느라고 죽을 맛입니다. 그러니 이참에 좌수 자리를 저희에게 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도 백성들이 내어주는 세전이 아니면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저희 사정과 백성들의 사정을 헤아려 저희에게 좌수 자리를 내어 주십시오.”
“어허. 그것은 안 될 말이네. 자네들에게 좌수 자리가 넘어가면 이 고을 향반들이 가만있을 성 싶은가? 한양 땅으로 상소가 빗발치는 날이면 자네나 나나 이 자리에 붙어 있지 못할 것이네.”
“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안 된다고 하였네. 두 번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내지 말게. 어허, 참.”
어깨를 굽히고 물러가는데도 백지홍의 뒷모습에선 찬바람이 불었다. 김두현 현감은 입맛이 썼다.
백 이방의 속내는 분명했다. 향리들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지는 합법적인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모신 현감들은 향리들이 호기 부릴 정도는 아니어도 밥술은 들고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이번 김두현 현감은 아니었다. 물론 한양에서 올리라는 조세가 날로 늘어 가는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김두현 현감은 자신이 드러내놓고 챙기지 않으면 이 벼슬자리도 유지하기가 힘든지라 챙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늘 협상을 걸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좌수 자리만 향리들에게 넘겨주면 향리들이 알아서 챙겨주겠다는데도 김두현 현감은 딱 잘라서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현감은 이 지역 향반들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분란이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도 벌이기 싫다는 거였다. 백 이방은 이제 백성들과 손잡고 김두현 현감에게 맞서 보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일은 신속하게 진행했다.
그날 저녁 이방 집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방 집은 네 칸 초가였다. 제법 굵은 기둥을 받친 주춧돌이 단단해 보였다. 높직이 놓인 댓돌에 짚신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댓돌에 얹혀진 짚신보다 토방에 이리저리 흩어진 것이 곱절은 많아 보였다.
사람들이 방안으로 모여들자 이방은 모인 사람들을 다 둘러보고 고개를 반듯이 하였다.
“우리 고을은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오히려 백성들 살기가 좋은 곳이오. 그런데 요즘은 한양에서 올려 보내라는 조세도 만만찮고 또 광양 땅을 밟기만 하면 한 살림 장만해 가려는 관리들만 내려오는 바람에 고을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관아에서 일하는 우리 향리들도 살기 어려운 것이 백성들과 마찬가지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살길을 찾아보자고 이리 모이자 했소.”
그때 눈이 부리부리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것이 힘깨나 쓰겠다 싶은 박창규가 나섰다.
“글먼, 무슨 좋은 수가 있소?”
백 이방은 모인 사람들을 다시 찬찬히 살피며 한 사람 한 사람 눈길을 맞추었다.
“여러분들은 조세에 원한이 많지요. 우리가 저 지독한 김두현 현감을 쫓아내 버리고 새 현감을 맞으면 새 현감도 여기 광양에서는 함부로 하진 못할 것이오. 그런께 일을 벌려 봅시다. 관아에서는 우리가 이미 다 준비를 하였소. 밖에서 밀고 들어오면 우리가 바로 함께할 것이오.”
이번에도 성질 급한 박창규가 앞장을 섰다.
“좋소, 우리도 굶어죽게 생겼은게 현감 쫓아내고 관아 창고나 좀 털어봅시다.”
그때 조삼도가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관아를 턴다는 것은 난리를 일으킨다는 것인디 그래도 될랑가 모르겄소. 나는 무섭소만.”
그때 옆에 앉은 사람이 말을 받았다.
“참, 그 양반 겁 많기는. 관아에서 이방, 호방, 병방 관속들이 다 우리가 들어오기만 하면 바로 함께 헌다는디 뭣이 걱정이오.”
여러 사람의 말을 들은 이방이 마무리를 지었다.
“좋소. 거사는 내일 오후 해질 무렵인 신시면 좋겠소. 그래야 여러분들 얼굴도 잘 안 드러나고, 현감도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내쫓기가 수월할 것이오.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모아 오면 좋겠소.”
양계환과 조삼도 두 사람은 광양 난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밤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어느덧 구례 남쪽 구만촌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섬진강 나루에 당도하였다. 밤이라 뱃사람이 없었다. 두 사람은 물이 깊지 않은 상류 쪽으로 올라가 걸어서 강을 건너기로 하였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물에 들어섰다.
“아재, 물이 많이 차분디 괘않컸소?”
“나야 괘않네만 자네가 나 땜세 고생이 많구만.”
그러고 한참을 건너니 발에 감각이 없어지고 얼얼했다. 강 중간쯤에 이르자 물은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금세 물이 얕아져서 다행이었다. 두 사람은 달빛에 의지하여 길을 줄인 끝에 토지가 한없이 펼쳐져 구만촌이라 부르는 동네에 이르렀다. 그때부터는 계환이 훨훨 날았다. 한달음에 달려 동네 갓집 제법 넓은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아저씨, 계세요?”
방문이 열리면서 덩치 큰 남자가 나왔다. 그는 밤중이라 얼굴이 잘 안 보이는지 말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서더니 반가운 소리로 알은체를 하였다.
“계환이 도련님이 아니요. 이 밤중에 웬일이요? 그나저나 추운디 어서 방으로 들어갑시다.”
방으로 들어선 덩치 큰 남자는 얼른 호롱불 심지에 불을 붙였다. 어둡던 방안이 좀 환해졌다. 방 안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이리저리 궁굴면서 자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한쪽으로 밀어 올리고 손님을 자리에 앉게 했다. 그때서야 양계환은 덩치 큰 남자에게 조삼도를 소개하였다.
“아저씨, 여기 계신 어른은 제 친한 친구 아재 되는디요, 갑자기 뭔 일이 생기서 여그 좀 계시야 쓰것는디, 그래도 될란가 모르것그만요?”
“그거이사 우리 도련님 부탁인디 당연히 그래야지라.”
조삼도는 얼굴이 환해지면서 인사를 했다.
“지는 봉강 사는 조삼도구만요. 이렇게 폐를 끼치게 돼서 송구하구만요.”
“지는 여서 우리 도련님 댁 농사를 짓는 양또치구만요.”
인사를 마치고 나서야 두 사람의 옷이 젖은 것을 눈치 챈 양또치는 안방으로 건너가더니 바지 두 벌을 가지고 왔다. 그 사이에 아이들 둘이 일어났다. 손님 말소리를 듣고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양또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여그 도련님이랑 아저씨께 인사하고 느그 둘은 나랑 같이 엄마 옆에 가서 자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더니 양또치 손을 잡았다. 양또치는 아이들 손을 끌고 방문을 나가면서 말했다.
“여까지 오시니라 피곤허껀디 언능 주무시시오~이!”
양계환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호롱불을 입으로 훅 불어서 껐다. 그리고 자리에 몸을 뉘였다. 옆에 누운 조삼도는 잠이 오지 않는지 몸을 몇 번이나 뒤척였다.
“어이, 계환이, 잔가?”
“아니요. 지도 어찌 잠이 안 오는그만요. 아재! 잠도 안 온디 아까 광양 난리 이약이나 잔 이어 보시이다.”
“그러세.”
양계환의 청에 조삼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하고 그날 벌어진 일을 술술 풀어냈다.
그날은 광양 장날이었다. 장터엔 사람들이 북적였다. 지난번에 이방 집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조삼도는 장터에서 국밥 한 그릇을 말아 먹고 이리저리 구경을 했다. 해가 설핏해지자 박창규가 하얀 깃발을 들었다. 신호였다. 장터에서 가까운 광양 관아 동헌 쪽으로 잰걸음을 걷는 사람들 수가 제법 많았다. 광양 관아 동헌으로 통하는 문은 열려 있었다. 동헌 문앞에서 무리를 제대로 지은 사람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동헌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박창규가 앞으로 쑥 나서며 외쳤다.
“사또 나오시오.”
박창규의 외침에도 사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모두 큰 소리로 외쳤다.
“김두현 현감 나오시오.”
“사또 나오시오.”
“안 나오면 우리가 찾으러 가겠소.”
그 시각에 동헌 내아에 있던 사또는 갑자기 동헌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옆에 있던 병방을 불렀다.
“병방, 저것이 뭔 소리요?”
“사또님을 찾는 백성들이 많이 몰려왔습니다.”
그때 밖에서 이방이 사또를 찾았다.
“사또, 어서 동헌으로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김두현은 방문을 열어젖히면서 물었다.
“이방, 이것이 뭔 일이요? 내가 나가면 일이 해결되겄소?”
“그것은 나가 보셔야 알 것 같습니다. 일단 나가셔야 합니다.”
광양 사또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허둥지둥 동헌으로 내달았다. 그 뒤를 이방과 호방이 뒤따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동헌 의자에 사또가 앉자 박창규가 앞으로 나섰다.
“사또, 우리는 지금 이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사또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실 것으로 믿고 말씀을 올립니다.”
그 말에 사또는 덜덜 떨면서도 짐짓 위엄을 갖춘 양, 말을 똑바로 하려고 애를 썼다.
“너희들은 들어라. 청이 있으면 소장을 써서 내면 된다. 이렇게 떼 지어서 오는 것은 무엄한 짓이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악다구니를 썼다.
“뭐라고, 사또 시방 당신이 살고 싶소? 죽고 싶소?”
“우리 청을 안 듣는단 말이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사나운지라 사또는 얼른 꼬리를 내렸다.
“어허,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떠들지 말고, 너희들의 청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말하여라.”
무리 중에서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박창규가 앞으로 쑥 나서더니 가슴팍에서 두루마기 종이를 꺼내들고 읽어 내려갔다.
“사또는 잘 들으시오. 첫째, 양전세, 균역세는 나라에서 정해준 것만 정확하게 법대로 받아 가시오. 둘째, 공납에서 방납인을 없애 주시오. 우리 지역 특산물을 우리가 알아서 바치게 해 주시오. 중간에서 방납인이 뜯어가는 돈이 너무 많아 우리들이 살 수가 없소. 공납은 이 관아에다 우리 특산물을 직접 바치게 해 주시오. 셋째, 좌수를 우리 손으로 뽑게 해 주시오. 넷째, 지금껏 내지 못한 세미, 세전을 더는 독촉하지 않는다고 약조를 하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감이 세금 대신 걷어간 우리 땅문서를 돌려주시오.”
초판에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친 것을 보고 덜덜 떨던 사또 김두현은 박창규가 읽어 내려가는 소장을 듣고 이제는 화가 뻗치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였다. 그는 백지홍 이방의 청을 대번에 잘라버렸듯이 이번에도 그리하였다.
“너희 무도한 놈들은 들으라. 너희의 소장 중 하나도 들어줄 것이 없다. 조세는 이 나라의 백성이면 누구나 내야 하는 법, 그 법을 어긴 자는 국법으로 처벌하는 것도 당연한 법. 오늘 너희들은 모두 옥에 가두어야 할 일이지만 광양 감옥이 좁은 것이 한이다. 또 좌수 선임을 너희들 손에 넘기라는 것은 이 나라의 반상의 법도를 뒤집어엎자는 소린데 그것 또한 극악무도한 말이다.”
이번에는 동헌 뜰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키는 작아도 얼굴빛이 단단한 사람이 나섰다.
“사또, 통촉하옵소서. 우리도 이 나라의 백성이오. 우리도 묵고는 살아야 이 나라의 백성 노릇을 하옵니다. 지금 이대로는 살 수 없습니다. 오늘 저희의 청을 들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 사람의 말끝에 사람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다.
“사또 우리의 청을 들어 주소서.”
사또는 급하게 이방, 호방, 병방을 가까이로 불렀다.
“저들을 다 잡아 가두시오.”
그러자 이방 백지홍이 말하였다.
“우리 관아에 향리들과 병사들보다 저들의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지금은 사또 신변이 위험하오니 일단 저들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약조를 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병방 생각은 어떠시오?”
“이방 생각이 옳은 듯하옵니다. 오늘은 우선 이 난국을 피하고 훗날을 기약하십시오.”
“에끼 이보시오. 나라 조세를 탕감해 주라는데 그것을 이놈들과 약조한 날엔 곧 이 나라 조정에서 내 목숨을 걷어갈 것이오. 또 광양 향반들의 권리인 좌수 자리를 저들의 손에 넘기는 날엔 이 몸이 조선 양반들의 화살에 맞아 언제 죽는지도 모르고 죽을 것이요. 그런데 오늘 하루 편하자고 그런 죽음의 약조를 하라니, 나는 이 자리에서 죽으면 죽었지 그것은 못하오.”
“그럼 저들을 어찌 처리할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저들을 해산시켜 보시오.”
이방, 병방, 호방은 동헌 뜰로 내려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척 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동헌 뜰은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준비해 온 횃불을 피워 올렸다. 박창규가 다시 나섰다.
“사또, 우리는 사또의 처분을 오랫동안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십시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시요.”
“세전을 탕감해 주시요”
“우리 집 문서를 돌려주시요.”
그러자 사또는 마지막 안간힘까지 내었는지 제법 큰소리로 호령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너희들 청은 들어 줄 수 없는 것뿐이다. 너희들이 오늘 이렇게 관아로 몰려와 행패를 부린 것도 큰 죄다. 그렇지만 너희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물러가면 오늘의 죄는 묻지 않을 것이다. 바로 물러가라.”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때였다. 박창규가 동헌 대청마루로 뛰어 올랐다.
“사또의 말을 믿지 마시오. 오늘 사또가 우리의 청을 하나도 들어줄 수가 없다 하였소. 우리가 여기서 물러나 흩어지면 오늘의 죄는 묻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오. 지난겨울 우리더러 산밭을 개간하라고 독촉할 때 개간한 땅은 전세를 면제해 주겠노라 약속하였소. 하지만 사또는 그 약속을 헌신짝 팽개치듯 하였소. 그런 사또를 우리가 믿을 수 있겠소?”
“옳소! 차라리 사또를 내쫓읍시다.”
“사또를 동헌 밖으로 끌어내라.”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김두현 현감은 새파랗게 질렸다. 아래 관속들을 불렀으나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박창규를 비롯한 몇 사람이 현감 옆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살집이 좋은 현감을 의자에서 들어올렸다. 현감의 양 겨드랑이를 잡아끌고 동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동헌 문앞으로 현감을 내던져 버렸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현감의 얼굴에서 피가 났다. 현감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리를 절뚝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현감을 전송하는 관속은 없었다.
조정에서는 급하게 나주 목사 김규식을 안핵사로 임명하여 광양현으로 파견하였다. 안핵사는 박창규를 비롯하여 난리에 깊이 관여한 백성들을 잡아들여 효수하였다.
하지만 관속들에 대한 처분은 달랐다. 이방 백지홍을 비롯하여 호방, 병방 등은 난리에 깊이 개입한 관속인데도 원악도로 유배 보내는 것으로 그쳤다.
다음 주 목요일(6월 11일)에는 3장 청혼 편이 연재됩니다.
2015/05/28 - [소설/유이혜경] - 섬진강은 흐른다(5) 1장 의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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