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순섬이는 집안일을 끝낸 후 방으로 들어왔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땀을 식힐까 하여 뒤꼍으로 난 문을 열어 놓고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곰방대는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혼사가 깨지고 나서 외로움을 달래라며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었다. 장독대에는 진한 진분홍빛 맨드라미가 한창이었다. 꽃 모양새가 영락없이 닭 벼슬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임금을 지켜낸 장군의 영혼이 환생한 꽃이라고 아버지가 말했었다. 그 옆에는 백일간이나 피어 있다가 진다는 백일홍이 연분홍 낯을 한창 드러내고 있었다. 매미 역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줄기차게 울어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년이 흘렀건만 곰방대를 입술에 갔다 댈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갑자기 순섬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따라 순섬이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맥없이 시작한 흐느낌은 잦아들기는 커녕 점점 커져만 갔다. 매미는 순섬이의 흐느끼는 소리를 집어 삼킬 듯 거세게 울어 댔다. 얼마 안 있으면 꽃도 매미도 떠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집도 조만간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순섬아….”
홍주댁은 장독대를 쓸다가 눈물을 삼키고 있는 딸을 보았다. 우는 딸을 보고도 달랠 염도 내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고만 섰다. 자기를 쳐다보는 어머니의 시선에 순섬이는 계면쩍게 울음을 그치었다.
“순섬아, 오라비가 누구를 데려온다는 거냐?”
“올케가 없으니 하는 말인데, 오라비 말이다. 그동안은 술하고 노름에 빠지더니만 이제는 소 장사 한답시고 허구헌 날 장터를 돌아다니던데 어떤지를 모르겄다.”
홍주댁은 아들이 데려온다는 사람들 또한 아들과 매일반으로 건달이지 싶어 아침부터 심사가 뒤틀려 있었다. 손님이 온다는 말을 듣고 며느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순섬이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장터 사람들이래요.”
순섬은 어머니의 투정을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얼른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오라버니는 땅거미가 질 때쯤 올 거라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들어올 시간이었다. 순섬이 역시 누굴까 궁금했으나 자세하게 묻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손님을 좀처럼 집에 들이지 않는 오라버니이건만 어제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다. 일전 한 푼 없는 오라버니가 저녁상에 내놓으라면서 민어를 사 온 것을 보면 보통 손님들은 아닌 듯싶었다.
갑자기 마당이 시끌벅적했다.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 부엌으로 달려갔다. 예상치 않은 숫자였다. 푹 끓여 뿌옇게 우러난 민어탕에 물을 잔뜩 붓고 나니 멀건 국물이 되어 버렸다. 좀 전의 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굴렀으나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간이라도 맞춰야겠다 싶어서 소금을 넣는데 오라버니 김순직이 싱글벙글 부엌으로 들어왔다.
“오라버니, 이 일을 어째요. 민어탕이 멀겋게 돼 버렸어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괜찮다. 맛으로 먹는 거 아니니 염려하지 마라. 장터 사람들이 말린 박대하고 서대를 가져왔거든. 조금 있다가 내가 알아서 가져다 먹을 테니 방에 들어가 있거라.”
김순직은 성큼성큼 부엌을 나갔다. 순섬은 상을 대략 차려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날도 더운데다가 탕까지 끓이느라 불을 지폈으니 옷이 다 젖어 버렸다. 모기가 한창이었지만 그녀는 방문을 열어 놓고 불도 붙이지 않은 곰방대를 배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담배도 아꼈다. 얼마 전 오라버니가 생애 처음으로 사 준 성냥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흐릿한 등잔불 주위로 크고 작은 나방들이 몰려들었다. 큰 나방들이 등잔불에 부딪칠 때마다 툭툭 소리가 났다. 사랑방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순섬이는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방을 나와 마당에 웅성거리고 섰다. 오라버니가 상을 마당에 내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 잠시 침묵했다. 이어 그들은 마치 시제를 지내듯 절을 네 번 하고, 초학주문이라면서 ‘위천주 고아정 영세불망 만사의(爲天主 顧我情 永世不忘 萬事宜)’를 한 번 읊었다.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이었다. 일이 다 끝났는지 사람들이 웃고 떠들었다. 어둠에 가려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 웃음소리는 순섬이를 편안하게 했다.
그때 뒤꼍을 향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차 순섬이 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오라버니 발자국 소리는 아니었다. 누굴까? 손님들은 마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웃고 떠들고 있는데? 방문을 닫을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서 발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키가 큰 남자였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가 순섬이 방 앞에 멈추어 섰을 때 순섬은 심장이 멎는 듯 했다. 그 사람이었다. 혼사 날 면포 사이로 보았던 이창구였다. 멎은 듯하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잘 계셨소? 저 이창구입니다.”
“…….”
“민어탕이 맛있습디다.”
“…….”
“십사 년이 지난 이제야 혼사가 깨진 것에 대해 사과드리게 되오. 집안 어른들 간의 일인지라 내 이러구저러구 할 위치가 아니었소. 그러나 본의 아니게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붙잡아 놓았으니 미안하오.”
“…….”
“힘들었겠지요. 나 역시 힘들었소.”
이창구는 말끝을 흐렸다. 순섬이는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허연 외줄기 연기가 천정을 향해 올라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어느새 매미는 울음을 거두었다. 댓잎들도 잠잠했다. 어디선가 모기 한마리가 날아와 윙윙거리고 지나갔다.
“얼마 전 당신 오라버니를 통해 당신의 최근 소식을 들었소. 고생한다고 들었소.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으나 힘 닿는 데까지 당신을 도우리다.”
“돕다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탓입니다.”
순섬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자신을 도울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애정어린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까닭 모를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담뱃불이 꺼져 갔다.
“나는 이미 결혼한 몸이오. 당신은 아직까지도 혼인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소. 한 세상 살다 가면서 누군가에게 큰 빚을 지고 싶지 않소. 앞으로 내가 그대를 보살피리다. 당신을 잊은 날이 없었다고 말하면 나의 허물이 용서가 되겠소?”
이창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 마당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나자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가 등을 보이자 순섬은 고개를 들어 멍하니 그의 뒤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힘들었다’ ‘잊은 날이 없었다’라는 이창구의 말이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세차게 들려왔다. 그녀 역시 그랬다.
14년 전 혼사가 깨지고 나서 순섬은 집 뒤에 있는 아미산을 즐겨 찾았다. 자신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반상제도와 과부재가 금지 제도가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순섬은 사람들이 자신을 과부라고 쑥덕거릴 때마다 절망스러웠다. 그런 그녀의 삶에 아미산을 오르는 일은 큰 위안이었다. 아미산 꼭대기에 이르면 큰 소나무에 가린 떡갈나무가 살아 보겠다고 제 몸집을 줄여 소나무 사이를 뚫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일부 가지가 부러져 나간 나무들조차 새순을 올리며 의연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삶이라는 것이 절망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반상제도나 과부 재가 금지 제도는 양반들의 헛된 욕망의 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양반 상놈을 가려 자신들의 편익을 도모하려는 양반 남성들이 부리는 횡포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자 순섬이는 밑바닥 삶을 살아도 편안했다.
양반 가문의 오라버니가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더니 어느날부터 투전판에 끼어들어 얼마 안 되는 논답을 팔아먹고 소 장사를 한다고 장터를 오고 갈 때 그녀는 담담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가세가 기울어 어린 조카들이 배고픔을 달래려 잔디 띠를 뜯어 먹을 때도 그들의 눈망울이 비록 그녀를 가슴 아프게 했지만 살다 보면 방편이 생기겠지 했다. 그래도 삶은 고통이었다. 흉년이 드는 해에는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순섬은 한여름이면 담배 잎을 땄다. 담배 잎에서 나온 진액이 머리카락에 엉겨 붙어 빗질을 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속으로 삼킬 때 그녀의 가슴은 도려내는 듯이 아파왔다. 그 느낌은 밭에서 돌아와 서둘러 마주한 거친 시래기 죽 앞에서도 불쑥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힘들 때는 이창구가 생각났다. 그를 잊은 적이 없었다.
손님들이 가고 나자마자 김순직이 순섬이 방으로 건너왔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라버니, 무슨 일이예요? 절을 하고 주문을 외시던데? 그리고 오신 분들은 누구세요?”
순섬은 이창구가 다녀갔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입에서만 맴돌 뿐, 그러다 보니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장터 사람들인데 오늘 동학 입도식을 했어. 사실 이창구 나으리도 오셨어.”
“동학이라고요? 사람들이 사술이라고 하던데?”
순섬이는 일부러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창구에 대한 얘기를 비껴갔다.
“사술이란 말은 반상제도를 통해 이익을 보려는 양반들의 말이야. 동학하는 사람들은 반상 차별이나 과부재가금지를 없애야 한다고 하지. 그렇다면 너도 동학이 사술이라고 생각하느냐?”
순직이는 조금 전 동생 순섬이가 이창구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모른 체했다.
“그러게요. 그렇지만 조심하세요.”
“동학은 연원이라는 게 있어. 말하자면 동학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를 연원이라 하고, 가르침을 받는 이를 연비라 하지. 이창구 나으리가 너의 연원이 되고 싶다고 하더구나.”
“예?”
“너를 입도시키고 싶어 하셔. 너야말로 동학이 필요한 사람이야. 동학은 여자의 재가를 허용하는데다가 재가녀의 자식이라고 차별하지 않거든.”
“천주학과 비슷하네요?”
“그렇잖아도 이창구 나으리가 좀 전 입도식 때 박인호라는 분에게 동학이 서학과 비슷한 거냐고 물었어. 근데 그 분 말이 운즉일(運則一)이고 도즉동(道則同)이며 이즉비(理則非)라 하시드라구. 운은 하나요 도는 동일한데 이치가 다르다는 거야. 아직은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고,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면 알려주마. 네가 동학에 들어오면 직접 알아볼 수 있으니 더 좋고….”
김순직은 말을 마치고 난 후 순섬이에게 슬며시 책 한 권을 건넸다.
“이창구 나으리가 이 책을 너에게 주라고 하셨어. 동학 경전인데 이창구 나으리가 직접 몇날 며칠을 필사하셨대. 유학의 논어나 맹자 같은 책이라고 보면 돼.”
순섬은 이창구가 손수 필사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그 책에 눈길을 던졌다. 표지에는 동경대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순섬은 오라버니가 방을 나서자마자 그 책을 펼쳤다. 어떤 내용이기에 나에게 선물했을까?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운 덕에 읽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밤을 새워 읽었다. 논어나 맹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마음을 맑게 해주었다. 책을 거의 읽어갈 즈음 동이 트고 있었다. 두 글귀가 순섬의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消除濁氣 兒養淑氣 他人細過 勿論我心 我心小慧 以施於人
흐린 기운을 쓸어버리고 맑은 기운을 어린 아기 기르듯 하라. 남의 적은 허물을 내 마음에 논란하지 말고, 나의 적은 지혜를 사람에게 베풀라.
순섬은 혼인에 실패한 후의 지난 세월이 흐린 기운에 쌓여 있었음을 알았다. 아미산에 오르면 마음이 맑아지다가도 내려오면 금방 흐려지기 마련이었다. 이제 맑은 기운으로 흐린 기운을 쓸어버리고 싶었다. 동경대전 글귀 하나하나가 순섬에게는 그야말로 천어(天語)였다. 그 말씀대로 살고 싶었다. 불현듯 밝고 찬란한 광선이 순섬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가슴은 빈 허공이 되었다. 그곳에서 이창구의 얼굴이 둥그렇게 떠올랐다. 이창구가 보고 싶었다. 온 몸이 시리도록 그가 그리웠다. 그를 만나 동학에 입도하리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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