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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유이혜경

섬진강은 흐른다(9회) - 7장 보은 원평 취회(1893년)

7장 보은 원평 취회(1893년)

석평 마을을 감싸고 있는 뒷산에는 산죽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봄날의 기운은 산죽 색깔을 어느새 싱그러운 초록으로 다 바꿔 놓았다. 빽빽하다 못해 무성하다는 느낌을 주는 산죽 사이로 띄엄띄엄 소나무들이 서 있다. 검게 갈라진 등걸을 휘어 올려 우뚝 선 소나무가 장관이다. 연하디 연한 잎사귀를 달고 봄바람에 한들거리는 대나무들 보란듯이 소나무는 진한 검초록의 뾰족한 솔 잎새를 대나무 군락을 훨씬 넘긴 높이에 펼치고 있다. 마치 대장 군사가 병졸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모양마냥 기운도 당당하게 우뚝 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섰다.

그 앞에 석평 마을 집들이 자리를 잡았다. 유석훈 접주 집은 석평뜰에서 바라보면 높고 그들먹한 터에 자리를 잡았다. 사랑방에는 동네 청년들이 다 모였다. 다른 동네 청년 얼굴도 보였다. 재 너머 옥룡에서 넘어온 서윤약, 서형약 형제도 있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간혹 들르던 형제 도인이었다. 장난끼 많은 동생 서윤약이 제법 무게 잡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유석훈 접주, 뭔 일이 있소?”

유석훈 접주는 방안에 모인 젊은 청년들을 향해 입을 떼었다.

“저번에도 이약했제마는 시방 나라 안팎의 정세가 엄청 빠르게 변허고 있소. 우리 조선만 임금이니 양반이니 허고 관리들이 백성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날뛰고 있지다. 시방 우리나라에 들어와 갖고 우리를 뜯어 묵을라고 환장을 허고 있는 왜놈들만 허더라도 몰라보게 배낐당깨요. 누던지 능력만 되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한몫 잡아 크게 출세한다고 저놈들이 시방 이 조선 바닥을 휘젓고 댕기는 거는 여러분들도 소문 들어서 잘 알고 있것지다이~!”

조두환이 나서면서 말했다.

“몸서리 낭깨 그 개놈의 새끼들 이약은 쎄도 대지 마이다~!”

다시 유석훈이 말을 이었다.

“시방 이 나라 꼴을 보먼 참말로 한심허당깨요. 민씨 일파들이 권력을 잡고 베슬자리들을 폴아 묵을라고 눈이 삘그래 농깨 돈으로 베슬 사 갖고 내리 온 놈들이 본전 챙기것다고 오살나개도 많이 뜯어 가는 거 아니것능가요. 무엇보담도 우리 동학 도인들에 대해서는 동학이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다 하여 무단히 잡아 가두고, 또 매질을 함서 돈을 뜯어가는 것이 비일비재 허요. 그래서 지난해 공주에서 충청 감사에게, 글고 삼례에서는 전라 감사에게 의송을 넣어서 수운 대선생 누명을 풀어주라 하였소. 또 억울하니 갇힌 도인들은 풀어 주라 하였소. 그 결과로 감사가 각 군현에 감결을 내린 일은 다 알고 있지다. 글고 올초에는 드디어 한양에서 임금님께 직접 상소를 안 올렸소. 임금님도 그때 그 자리에서는 모다 돌아가 허는 일 열심히 허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했다는디 그것이 말만 그러치 바로 그 담날로 법헌 어른이랑 그때 앞장선 대접주덜 잡으러 눈에 불을키고 들쑤셨단 거 아니요. 허니 우리 동학이 나라의 인정을 확실히 받는다는 거는 여전히 언감생심인 것도 잘 알 것이요.”

“유접주. 그거이사 어지깨 오늘 져끄는 일도 아닌디 뭔 사설이 이리 기요?”

“허허. 나가 말이 좀 질어졌능갑소. 암튼 인자는 우리가 다시 일어서야 쓰겄소. 우리가 공주로 삼례로 몰려가서 의송을 넣고 어쩌고 하는 사이에 동학 도인들 사이에도 말씀들이 크게 돌았소. 우리 동학 도인들이 내 한 몸 잘되자고 동학에 입도한 것이 아닌 이상, 수운 대선생 신원도 신원이제만 그와 함께 이 허물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워야만 우리 도도 살고 도인들도 맘놓고 동학 세상을 만들 수 있겄다 하는 이약이요.”

“근게 그 일을 허는디, 어쩌코롬 하자는 말인가 그말을 허란께.”

“서양에서는 민회라는 것이 있어 갖고 나라 안팎의 모든 살림을 백성들의 의견을 모아서 헌다고 허더만요. 우리도 장차는 그런 민회를 만들어야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요새 많당깨요.”

골똘히 듣고 있던 서형약이 고개를 갸웃하며 유석훈 접주의 말 사이로 파고들며 질문을 했다.

“저도 쪼까 듣기로는 서양의 그 민회라는 거는 임금님도 따로 없고,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이 돼서 나라 살림을 이러고저러고 헌다는디 그게 가당한 말이다요? 또 왜국도 청나라도 황제국인데 그런 제도를 따른다는 게 어째 앞뒤가 맞아지는지 잘 모르것소.”

“잔 들어보소. 저 유럽이라는 땅에 큰 나라인 불국(프랑스), 덕국(독일), 그라고 또 다른 아메리카라는 대륙에 미국이라는 나라에는 따로 임금이 없고 백성들이 뽑은 대표가 나라 살림을 맡아서 헌다고 헙디다. 조선처럼 엄연히 수백 년 된 왕실이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도 나라 일은 왕이 마음대로 못 허고 국민이 뽑은 대표랑 의논을 해서 나라 살림을 헌다고 허더랑깨요. 요새 우리나라에 들어와 갖고 즈그 나라마냥 설치는 청인, 왜인들도 시방은 이 제도를 따라 갈라고 애를 쓴다고 헌단디요. 그래야 서양맨키로 국력이 쎄지고 맥없이 전쟁에서 지고 허는 일이 없게 된다면서요. 근디 서양 나라 놈덜의 존 제도를 배와서 즈그들 나라에서만 즈그들끼리 잘 살먼 좋을껀디 우리나라를 뺏아 묵을라고 눈에 불을 쓰고 설치고 댕기고 있씅깨 보통 일이 아니지다~이!”

이번에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의협심이 강한 한진유가 끼어 들어 질문하였다.

“서학이라는 거시 사람은 모다 하나님 자석이라 공평해야 한다고 함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허라고 헌다더마는 어찌 가난한 나라를 뺏아 묵을라고 설친당가요?”

“즈그 나라에서 난 것만 묵고 살아도 즈그들 배는 찰꺼시요마는 사람 욕심이라는 거시 끝이 없씅깨 옆 나라를 침략해서 제멋대로 빼뜨라다가 제 놈들만 배지 부르게 살자는 수작인 거것지다~이! 긍깨 똥구녕까지 욕심덩거리만 빵빵허니 찬 놈들헌티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당허기만 허먼 절대로 안 된당깨요.”

옆에서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서윤약이 유석훈의 말을 무질렀다.

“우리가 시방 그걸 몰라서 당허는 거는 아닌디, 민횐가 뭔가 허는 것도 그대로 되기만 허면야 좋체마는, 말이 쉽지 지대로 허자면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오. 이참에는 뭔가 뾰쪽헌 수가 있어서 우리를 부른 것이다요?”

무지르는 말인데도 유석훈은 오히려 반겼다.

“맞소. 그래서 이번에는 법헌 어른이 계시는 법소에서 큰 결정을 했소. 돌아오는 수운 대선생 기념일인 삼월 열흘 날을 기해 동학 도인들이 다 들고 일어나기로 했답니다. 지난해 십일월 삼례 가서 동학 도인들이 수천 명이 모인 거 본 사람덜이 여그 많이 있소만, 인자 충청도 전라도 따로 모일 것이 아니라, 아예 전국 도인들을 모다 모타가꼬 본격적으로다가 척왜양을 요구하자는 것이지요.”

“그거 참말로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그만요.”

유석훈은 거기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을 보고 부탁하였다.

“박흥서 접주님께서 이번 보은 취회에 대해 말씀해 주시이다!”

박흥서 접주가 방안에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하였다.

“우리의 요구 조건은 지난해 공주와 삼례 모임, 그리고 올해 광화문 복합상소 때와 똑같소. 첫째, 수운 대선생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 주어서 우리 동학을 당당하게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둘째,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백성들만 파먹고 사는 탐관오리들을 징치하는 것이고, 셋째, 욕심이 끝이 없어 남의 나라에까지 들어와 조선 백성들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되놈, 양놈, 왜놈들을 다 몰아내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오.”

여기까지 말하고도 무엇이 미진했던지, 가슴에 복받치는 것이 있던지 박흥서 접주는 침을 한번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껏 보고 젺어서 다들 알겄제만 이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요. 이 일은 이루어질 때까지, 앞으로 우리가 목숨을 걸더라도 기필코 해내야 하는 일이요. 돌아오는 수운 대선생 기념일인 삼월 열흘 날 보은 장내리에 조선의 모든 동학 도인들이 모이자고 경통이 내려왔소. 여기 있는 젊은 도인들이 이번에는 앞장을 서야 할 것이요. 나라를 살리는 일에 남녀노소가 따로 있겠소만 젊은이들이 힘을 내야 그 젊은 기운이 몰아가는 힘에 온 나라가 펄펄 끓을 것이오.”

항상 박흥서 접주 옆에서 일을 말끔하게 처리하곤 하는 유석훈 접주가 오늘도 단정한 자세로 앉아 듣더니 이제 자기 차례라는 듯이 말을 붙였다.

“삼월 열흘날까지 보은으로 갈라먼 준비를 쎈찮허니 해서는 안 될것입니다. 지난 번 삼례 때보다 거리도 상구 더 멀고 거그서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전딜라먼 솔찮허니 비용이 들꺼그만요. 도인들 중에 형편이 어려븐 사람은 밥술이라도 뜨는 도인들께서 유무상자해서 보은 갈 경비를 챙길 수 있게 서로 도와야 허꺼그만요. 우리는 보은으로 당도하기 전에 원평으로 먼저 모이갖고 거그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랑 항꾼에 보은으로 올라가게 될거그만요. 갈 길이 멀고 어려븐께 이번 일은 여그 모인 사람들이 몬춤 앞장서야겄습니다.”

웃음 많은 서윤약이 선선히 나섰다.

“우리 동네는 저허고 성이 맡아야 쓰것소~이! 형편 되는 대로 곡식도 좀 걷고 옷가지 짚신도 넉넉하게 준비해야것그만요. 이번에는 어떤 주먹밥이 인기가 있쓸랑고~! 하하. 삼례 때도 영판 재미나고 오지던디~. 이참에는 전국 도인들이 다 모인당깨 얼매나 오지고 신명나는 판이 벌어질랑가 모르것소~이!”

며칠 뒤 보은을 바라고 출발한 광양접 사람들은 아쉽게도 원평에 머물게 됐다. 보은에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사람들이 모여 들어 뒤늦은 사람들은 원평에 따로 모여 보은과 행동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원평의 도소에 도착한 유석훈은 남원 류태홍 접주를 찾았다. 류태홍 접주는 원평 너른 들판 가운데를 흐르는 원평천을 지나 원평장터에 전라좌도 대표들이 모여 있다며 석훈을 그쪽으로 데려갔다. 스무 명도 넘을 성 싶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옆에서 류태홍 접주가 한 사람을 가리켰다.

“저 양반이 김개남 대접주요. 우리 전라좌도 사람들을 이끌고 있소.”

김개남 접주는 키가 컸다. 얼굴에 광대뼈가 도드라진 것이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보였다. 입술은 두껍고 눈빛은 강했다. 석훈은 김개남 대접주를 보자마자 이 썩어빠진 나라에 확실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봤는데도 믿음이 생겼다. 저이라면 따라서 일을 도모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김개남 대접주는 임실, 장수, 남원 접주들에게 경통을 받았는지 가볍게 확인했다. 접주들은 그랬노라고 답했다. 그쪽 선을 타고 구례, 하동, 광양, 순천, 고흥까지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이번에는 조선 팔도로 경통이 야무지게 전해졌는지 보은 장내리가 거사일이 되기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는 접주도 있었다. 김개남 대접주는 그 말에 동의하는지 머리를 끄덕이더니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다들 먼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라. 제가 김개남이올시다. 이번에는 꼭 우리의 소원을 이뤄야겠지라. 그러자면 우리가 여기서 좀 머물러야 쓰겄소. 다들 준비는 잘 하고 오셨지라? 각자 소개를 하고 자기 포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자랑 좀 해보실라요.”

김개남 대접주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임실 접주인 한흥교가 나섰다.

“김개남 대접주의 말씀이 옳구만요. 저는 임실 접주 한흥굡니다. 우리 임실 도인들도 이번에는 단단히 작정을 하고 야무지게 준비하여 나섯써라. 우리 포가 오백 여남은 명 될게요.”

뒤이어 장수 대접주 황내문이 말하였다.

“제가 장수 접주 황내문이올시다. 보아하니 내가 좀 나이든 축에 속하겄구만요. 앞으로 우리 모두 힘을 합해 좋은 동학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우리 포는 준비를 야무지게 하느라고 참여하라는 경통을 받은 날부터 바로 대비하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겄소. 특히 우리 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폐가 되는 일을 하여서는 안 되것써서 저희 도인들도 형편 닿는 대로 유무상자하여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라왔소. 우리 포도 오백 명은 넘을 성 싶소. 그러니 김개남 대접주는 우리 포 염려는 붙들어 매고 저쪽 관군 동향이나 잘 살펴보구려.”

황내문 접주의 과시하는 듯한 언사를 듣고 빙긋이 웃는 사람이 있었다. 멀리 광양에서 올라온 유석훈 접주였다. 그가 말을 텄다.

“광양 봉강 접주 유석훈입니다. 우리는 남쪽 멀리서부터 오니라 엄청 심이 들었그만요. 우리 포 사람들은 길이 멀어서 많이 오지는 못했는디 광양 도인들은 이백 명이 조금 넘습니다. 우리 도인들은 여기 올 여비를 챙기니라 소도 폴고 논을 폰 사람들도 있그만요. 긍깨 우리 광양 사람들 열정도 여그 모인 접장님들 못지 않을 것인깨 그 정성을 제대로 알아 주시야 허꺼그만요.”

줄줄이 늘어놓는 접주들의 보고가 장황했다.

김개남 대접주가 챙기는 사람들 숫자만 해도 어림잡아 수천은 넘을 성 싶었다. 원평에 모인 도인들이 그럭저럭 2만은 넘어 보였고, 보은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김개남, 전봉준, 손화중 등은 원평을 근거로 삼아 보은의 소식을 들으며 사람들을 챙겼고, 몇몇 대표격을 뽑아 보은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 사람을 보냈다. 원평에 도착한 다음날로 유석훈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김개남도 직접 보은으로 향했다. 거기 일행에 유석훈은 양계환 접주와 또 다른 지역에서 온 접주 여남은 명과 함께 보은으로 향했다.

원평들을 메운 사람도 많았지만, 보은은 그야말로 사람결에 땅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원평에 모인 도인의 곱에 곱은 되어 보였고, 이렇게 동학 도인들이 보은으로 몰려들자 동학 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보은으로 밀려들었다. 그들 중에는 탐관오리가 날뛰어 못 살겠다고 일어섰던 임오년 거사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매서운 관의 눈길을 피해 숨어 살면서 때를 기다린 사람들이었다. 보은에는 왜놈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는 것에 분통을 터트리며 그들을 내쫓을 방도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농사를 지어도 쌀 한 톨 남지 않고, 장사를 하여도 돈 한 푼 남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장내리로 달려 왔다. 또 모진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어디든 피해야 할 것인데 차라리 보은 길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 여기고 앞장선 자도 있었다. 그렇게 보은 장내리에는 조선 땅에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것처럼 힘든 사람들이 보은취회에 희망을 걸고 발길을 재촉한 사람들이 많았다.

동학 접주들은 알았다. 저렇게 몰려오는 아픈 백성을 안아야 할 사람은 나라님이지만 조정은 이미 그럴 뜻도 힘도 없음을. 이 나라의 헐벗고 상처 입은 백성을 품에 안을 수 있는 동학이어야 하고 자신들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보은에서 유독 유무상자 정신을 강조하였다. 보은 장내리에서부터 이 나라의 아픈 백성 모두를 동학의 접포 조직 안으로 묶어 세울 때 새로운 한울 세상이 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들은 바빴다. 그리하여 보은 대 집회를 계기로 동학 조직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김개남 대접주도 원평에서나 보은에서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각 지역의 접주들을 동학 접포 조직으로 바로 세우고 그들과 동학 경전 이야기들을 나누느라고 날밤을 새웠다. 김개남 대접주가 유석훈 접주, 양계환 접주에게 이태 전 자신의 집에 머물고 간 법헌 최시형 이야기를 들려 준 것도 그리 바쁜 날 중의 하루였다.

다음 주 목요일(7월 16일) 8장 법헌 최시형 편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