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삼례취회(1892년)
임진년(1892년) 가을에 혼례를 올린 새신랑 유석훈은 서엽이와 함께 하는 나날이 좋았다. 밖에서 일이 있어도 빨리 집에만 가고 싶었다. 서엽이와 동학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 좋아 겨울이 와도 추운 줄 몰랐다. 날마다 얼굴에 웃음을 달고 사는 그에게 삼례에서 열리는 교조 신원을 위한 모임 참여하라는 경통이 왔다. 새신랑 유석훈은 그 소식도 좋았다. 이제 사람들은 동학 세상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뚫고 있다. 거기에 자신이 할 몫이 있다. 지난번 공주 모임 때는 광양까지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 하는 일이고 보니 충청도 인근의 도인들 중심으로 참여자를 제한한 거라 했다. 이번 대회에 광양 동학 도인들은 다 가는 거다. 서둘러야 한다.
“여보, 이번 삼례 모임에는 광양 도인들도 많이 참여허껀깨 행장을 잘 챙기주소.”
“농사일도 다 끝나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겠네요. 여자들도 그런 데 가는 사람 있으면 나도 한번 따라가 보고 잡소”
“나도 우리 이삔 각시를 델꼬 가고 잡소만 거그 가는 것이 보통 고생이 아니라서….”
“당신도 조심하셔요.”
어제 저녁부터 바쁘게 몰아챈 덕분에 사람들이 마당에 꽉 찼다. 유석훈은 그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단단한 사람이라 목소리도 차분했다.
“심고. 한울님! 여기 광양 도인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모레 아침 일찍 삼례로 가려 합니다. 수운 대선생의 원을 풀고 동학 세상을 만들러 갑니다. 또 남의 나라에 와서 조선 백성들의 피를 말리는 양인들, 왜인들이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는 뜻을 분명히 하려 합니다. 한울님 우리 동학 도인들을 보호하소서. 심고”
심고를 마치고 유석훈 접주는 사람들을 향해 짧지만 단호하게 말을 했다.
“여러분! 인자 동학 도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공주서는 충청도 도인들이 모여서 충청 감사에게 수운 대선생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고, 척왜양하고, 동학 도인들을 대상으로 가렴주구를 일삼는 지방관들의 불법 행위를 금지해 달라고 요구했답니다. 거그서 한참 만에 나온 충청감사의 답이 앞의 두 가지는 임금님이 허시는 일이니 자기가 이러타 저러타 못 허고 동학 도인들에 대한 지방관들의 불법행위와 탄압은 못하도록 하것다는 약조를 했답니다. 인자 우리 전라도 차례라 전라도 동학 도인들이 삼례에서 다 모이기로 했습니다. 우리도 다 같이 삼례로 가갖고 동학을 핑계 삼아서 우리를 못살게 구는 관리들을 꼼짝 못허게 헙시다. 글고 이참에 수운 대선생의 신원으로 동학을 인정받읍시다. 또 남의 나라에서 제나라보다 더 설쳐대고 우리를 못살게 구는 왜놈들의 기도 좀 꺾어 놓읍시다. 그리해서 사람이면 모두가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봅시다. 우리는 모레 아침 일찍 출발허겄습니다. 여기 옆에 선 이 사람이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세세허니 일러드릴 것입니다.”
유석훈에 이어 양계환 접주가 말을 이었다.
“동짓달 초하루 날에 다 모인다고 헌깨 서둘러야것습니다. 광양서 삼례까지는 아침에 일찍허니 나서갖고 안 쉬고 걸으면 나흘 뒤 저녁밥 묵을 때쯤이먼 삼례에 도착허꺼그만요. 삼례 도착헐 때까지는 한데 잠도 여러 날 자야 허꺼네요. 모임에 참석허고 결과가 좋으먼 그날 저녁부터 바로 내리 오껀디 일이 잘 안 풀리서 그 다음 날로 밀차지먼 한데서 또 여러 밤을 더 자야 할랑가도 모를 일이그만요. 시방 여그서는 우리 일이 이틀이 걸릴지 사흘이 걸릴지 확실허니 알 수가 없습니다. 긍깨 열흘 이상 걸린다 생각하고 거기에 맞차서 옷이랑 주먹밥도 넉넉허니 챙기야겄습니다. 떡도 좋고 고구마 삶아 말린 것도 좋습니다. 뭐이던 간에 식량이 될 만헌 것이먼 조금씩이라도 이녁이 묵을 걸 챙기야 헙니다. 인자 날도 추버징깨 옷도 단단허니 챙기고 여벌 짚신도 마련허이다~! 다들 돌아가시서 단단허니 대비해 갖고 내일 아침에 일찍허니 마을 앞길에 모이서 함께 삼례로 떠납시다~!”
다음날 아직 어둑어둑한데도 마을 앞은 사람들이 잔치 마당에 몰려온 것처럼 많이 모였다. 좀 살 만한 집은 솜을 두둑이 놓아 누빈 옷을 단단히 챙겨 입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명의 홑겹 옷을 두 겹씩 겹쳐 입었다. 허리춤에는 짚신 서너 켤레를 달아 달랑거리고 등짝에 괴나리봇짐을 하나씩 챙겨 지고는 시끌벅적 웃고 떠들었다.
광양 사람들은 삼례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공주 소식을 들은 터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 걸은 지 한 식경이 더 지나자 다들 뱃속이 출출했다. 앞에 가는 유석훈 접주는 밥 먹는 것도 잊었는지 밥 때에 관한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참다 참다 안됐는지 옆에서 양계환 접주가 말을 꺼냈다.
“유석훈 접주, 때가 돼서 사람들 배고푼디 간단허니라도 요구를 좀 허고 가야 쓰것그마.”
“아~! 그네이~! 나가 언능 삼례 갈 생각만 허다 봉깨 밥 때도 잊어 부렀네.”
“그럼 여그서 젝제금 챙기 온 걸로 요구를 헙시다~! 없는 사람들은 좀 더 가져온 사람들이 갈라 묵기도 허고. 무단허니 마을 옆을 지날 직애 사람들헌티 묵을 것을 부탁허거나 손을 대서 민폐를 끼치는 일이 안 생기게 다들 각별허니 조심헙시다이~!”
선 채로 유석훈은 아내가 준비해 준 주먹밥 한 덩이를 들어내어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있나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직은 다들 먹을 것을 챙겨 왔는지 빈손은 안 보였다.
길가 한쪽으로 자리 잡은 패에서 복돌이가 촐랑댔다.
“야, 너네 주먹밥에는 뭐 들었어? 나는 장만 쪼깨 발랐는디 니 것은 색깔이 다르다야. 쪼깐만 띠어 줘 봐. 내 것하고 바꿔 먹게.”
윤약이가 주먹밥 한 귀퉁이를 떼어주며 대꾸했다.
“히히, 언제 본겨? 니 없을 때 언능 묵어 불라고 했는디 니가 봐 부렀어. 아놔 묵어라”
주먹밥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것도 여러 질이었다. 보리만 있어서 뭉쳐지지가 않고 흩어져 버리는 밥, 그저 소금만 쪼깨 발라 간작즈럼한 밥, 김 가루가 붙어 있는 밥, 멸따구가 붙어 있는 밥……. 젊은 축들은 서로 바꿔 먹고 나눠 먹고 볼따구가 미어지게 밥을 입 속에 털어 넣고는 또 무슨 장난말로 웃음이 터지는지 밥알이 튀어나오곤 했다.
사람들은 밥을 먹자마자 바로 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걸었다. 밥도 먹었겄다 걷기만 하는 것이 심심했다. 인적이 없는 길을 걸을 때쯤에 젊은 축들이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주문 노래를 하자는 것이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주문을 노래하듯이 가락을 붙여서 함께 목청껏 부르면 힘이 나고 걷는 것도 재미났다. 신바람이 더 나는 축들은 몸을 들썩이다가 대열 옆으로 삐져나와 춤사위를 덩실덩실 한바탕 풀어 놓고 다시 자신의 대열로 들어갔다.
신바람 나게 며칠을 걸어서 삼례 근방으로 들어섰다. 삼례역으로 가자면 조금 더 가야 했다. 앞서가던 유석훈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시방 삼례에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비좁응깨 우리는 이쯤에서 자리를 잡고 밤을 샌 담에 내일 아침 일찍허니 삼례역으로 들어갑시다.”
사람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논으로 들어섰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은 바짝 말라 있었다. 논 가장자리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볏짚가리가 쌓여 있었다. 다들 볏짚가리를 가져다 풀어헤쳐 깔고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남은 짚단을 나눠서 이불삼아 같이 덮고 잠을 청했다. 십일월에 접어든 날씨는 추웠다. 턱이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굴비를 꿰어 놓은 것처럼 일렬로 몸을 서로에게 밀착하여 붙이고 같이 짚덤불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사람들은 아직 안 자는지 짚덤불 속에서도 두런두런 말소리가 났다.
복돌이였다.
“언 놈 코고는 소리가 화포 소리만 혀.”
윤약이는 복돌이가 웃자고 하는 말을 차분히 받았다.
“그런께, 이 추운디서 참말로 잘 자네.”
둘의 말에 성삼이가 끼어들며 꿈꾸듯 말하였다.
“참말로 동학 세상이 오면 부자덜이 가난한 우리덜을 도와서 우리도 땅을 가지게 될까? 글고 그 땅에서 두레로 농사지어 다 같이 나눠먹게 될까?”
“그렇게만 되면 참말로 좋제. 아니 생각만 해도 오지게 좋은 그런 일은 냅두더라도 나라에서 세금만 덜 뜯어가도 살 만 하제.”
“맞어. 왜놈덜한테 절대로 쌀을 넘기면 안 되는디 웬수놈의 세금 낼라먼 가실걷이를 하나마나 그 좋은 쌀이고 콩이고 다 넘겨야 되니. 뭔놈의 세상 꼬라지가 이리 돌아가는지. 그 바람에 쌀값이 자꼬 올라가 지주들만 존일이제. 웬수 중에 젤로 큰 도적놈이 왜놈들이여.”
“그걸 알면서도 가실에 곡석을 넘기게 만드는 게 세금 아니당가. 땅주인 양반놈들은 세금도 덜 내고 배 뚜디리고 살다가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쌀은 봄 되면 비싸게 팔아 자꼬 부자가 된당께. 나도 이번 봄 넘기기가 수월찮을 성 싶네. 아무래도 논다랑지 하나는 또 없어질 성 싶당께. 개 같은 세상이여. 후유.”
“긍깨 빨리 동학 세상이 와야 써. 다같이 한울님인게 양반 상놈 없이 서로 존중하고 귀히 여기고 유무상자하여 서로 돕고 살면 그것이 천국이고 한울세상이제.”
“그러먼 세금도 좀 덜어지까?
“양반 상놈이 없어지면 세금도 좀 공평히 내겄제.”
“동학세상이 오기만 하면 우리는 살아서 천국을 누리는 거네~이!. 양반상놈도 따로 없고 세금도 낼 만큼만 내고, 마누래 자석들이랑 배부르면 그것이 천국이제.”
평상시에는 누구를 만나기만 하면 입이 쉴 새가 없는 복돌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윤약이와 성삼이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그저 듣고만 있더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따 듣기만 해도 좋다.”
“아까는 겁나게 춥더만 인자 이리 따닥따닥 붙어서 짚덤불 덮고 오래 있은께 안 춥네. 화포총 쏘대끼 코고는 놈이 이유가 있었구마. 우리가 이래 붙어서 누운께 이 한디서도 잘 만 허네.”
복돌이 이야기를 끝으로 잔사설이 잦아들고 사람들은 한데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각자 챙겨온 먹을거리를 꺼내 놓고 서로 나눠 먹었다. 입안에 오래 담아 입김으로 데워서 씹어 삼켰다. 그래도 꿀맛이었다. 요기를 끝낸 사람들은 짚단을 처음대로 다 가지런히 하여 묶었다. 그리고 짚가리를 쌓았다. 사람들이 많아 그 일은 언제 시작했냐는 듯이 금방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 논은 사람들을 하루 저녁 따듯하게 품어주고는 그 자리에 어제 모습 그대로 있었다.
삼례역으로 옮겨오니 사람들의 행렬이 끝이 안 보였다. 전라도 각처에서 모여든 도인들의 위세에 관보다도 놀란 것은 동학 도인 자신들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우리 도인이라는 사실에 감격하여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통성명 하는 일로 보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모두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답답해할 때쯤 의송소에 다녀온 유석훈 접주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일 동짓달 초이틀 날에 전라감사 이경직에게 소장을 올린다고 허네요. 소장 내용은 충청도하고 똑같이 ‘수운 대선생 신원과 동학 도인에 대한 수탈 중지, 그리고 무단히 나라의 부가 왜놈 양놈들한테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요. 시방 여그는 전주, 익산, 여산, 고부, 나주, 광주, 화순, 장흥, 남원, 임실, 곡성, 보성, 구례, 순천, 광양 등 전라도 대부분 지역과 그밖에 수원 등 각지에서 온 동학 도인 수천 명이 모있다고 허는디 시방도 계속 사람들이 모이 들고 있씅깨 학실허니 얼마나 되는가는 모르것다네요.”
“아무래도 내일 소장 올리고 나먼 그 결과까지 보고 가야 허껀깨 오늘 저녁도 어제 저녁에 밤을 샌 논으로 가야 헐랑갑소. 다들 그리 알고 준비들 허이다~이!”
다음 날 삼례에 모인 사람들은 전라좌도 류태홍, 전라우도 전봉준을 대표로 하여 소장을 써서 이경직 감사에게 보냈다. 전라감사 이경직은 이미 공주 일을 알고 있었던지라 충청감사와 똑같이 소장을 처리하였다. 지방 관원들에게 동학 도인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감결(공문)을 내려 보내겠으니 한시바삐 동학 도인들은 해산하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이 감결이 허울뿐인 거라 흩어져야 하느냐, 확실한 답을 얻을 때까지 버텨야 하느냐 등등으로 말들이 돌았으나, 이번에도 도소에서는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 다음 소식을 전하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동학을 받아들이고부터 관원만 보면 피해 다니며 살던 사람들이었다. 공주 모임의 소식을 전해 듣고 삼례로 모이라 하였을 때 한편으로 신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원의 탄압을 더 심하게 받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데 삼례에 와서 동학 도인을 무단히 수탈하지 말라는 감결을 도내 각 군현에 내려 보낸다는 소리를 다시 들으니 용기백배하였다.
어떤 술수가 있던지 간에 우선은 감사 나리가 동학 도인들을 거론하며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는 것을 직접 보고 겪으니 궁벽진 시골 고을에서 보고 듣는 것과는 천양지차의 감이 있었다. 그 깊은 감격을 안고 밤길을 타고 광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추워도 추운 줄을 몰랐다.
다음 주 목요일(7월 9일)에 7장 보은 원평취회(1893년)가 연재됩니다.
2015/06/25 - [소설/유이혜경] - 섬진강은 흐른다(7회) - 5장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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