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유이혜경

섬진강은 흐른다(10회) 8장 법헌 최시형



8장 법헌 최시형

 

 

법헌 최시형이 김개남 대접주 집에 들른 것은 신묘년(1891년) 유월이었다.

며칠 전에 김개남은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뭔 생각이 났던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이번에는 법헌 어른께서 우리 집에서 묵어 가실지도 모르것소.”

“예? 그분께서 우리집에 묵다니요?”

“이번에는 내가 이 지역의 중요한 일을 맡아야 할 성 싶소. 그리 되면 여러 일을 짚어 주시려고 우리 집으로 오실 게요.”

“그러면 어찌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음석이랑, 옷이랑 ...... 아주 바쁘겄네요. 석이네랑, 염이네랑 부지런히 해야겄구만요.”

“당신이 내 옆에서 잘 거들어 주니 고맙소. 우선 그 어른 여름 옷이 몇 벌 필요할 게요. 내 해보다 조금 작게 지으면 될 게요.”

부부간에 그리 말을 나누고 난 후 임실댁은 입에 단 내가 날 정도로 바빴다. 며칠 새 옷도 마무리 했고 그 어른 잡수실 기본 찬도 갖추었다. 난생 처음 말로만 듣던 최법헌 선생을 뵙는다 생각하니 바쁜 줄도 몰랐다.

“임실댁, 그 어른은 어찌 생기셨을꼬.”

“그 어른은 저그 충청도 어디서 며느리가 베 짜는 집에 잠시 들렀는데 그 시아부지 되는 사람이 나오니께 저 베 짜는 며느리가 한울인게 잘 모시라고 말씀하셨다던디 참말로 그러셨을까?”

“그 말이 맞을 성 싶어. 우리 동네 남정네들 달라진 것 보먼. 동학에 입도하기 전에는 우리집 남편도 나한테 말을 함부로 했제. 그란디 동학에 입도한 뒤부터 사람이 싹 달라졌어. 그래도 가끔 옛날 버릇이 튀어나오드니. 그라먼 나는 웃음시롱 여자도 한울이람서 이것이 한울 모시는 것이요? 하고 대들먼 그짝에서 웃어부러.”

“하하하”

“동학이 우리 여자들한테 젤로 좋은 것이여. 근디 임실 댁네로 동학 최고 어른이 오신당께 참말로 좋구마.”

“그 어른 모시는 분은 어찌 생기셨을까? 여자 동학 도인들도 같이 오시먼 좋겄구만. 우리도 만나보게.”

이리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하는 일이라 힘든 것을 모르고 재미났다.

남자 옷을 여섯 벌이나 지어 임실댁 스스로 뿌듯해하던 날에 최법헌 어른이 집에 오셨다. 그 어른은 중간 정도의 남자 키에 단단해 보였다. 눈이 형형하여 범접하기 어려웠고 괜히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쭈뼛거려졌다. 하지만 그 어른이 말씀을 하시자 대번에 그 따뜻함이 사람 마음을 풀리게 하였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어른은 김개남 부부와 그 집의 아들과 딸에게도 맞절을 하였다. 그리고 심고를 하였다.

“심고 한울님! 김개남 접장 집에 왔습니다. 김개남 접장은 호남의 동학을 크게 키울 사람입니다. 그가 맡은 육임의 소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심고.”

“우리 다같이 주문을 외웁시다.”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법헌 선생과 함께 외우는 주문 삼십 번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동이라 넋을 놓고 있는데 법헌 선생께서는 웃으시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저는 아랫방으로 갈 터이니 그 방으로 짚단 좀 가져다주시지요.”

짚단을 가져다 드리니 익숙한 동작으로 손을 잽싸게 놀려 짚신을 삼았다. 그러면서도 법헌 어른을 처음으로 뵙고 놀라서 방으로 따라오는 아이들과 머슴들에게 자상하게 동학 말씀을 나누어 주었다.

“백술이와 분녜, 그리고 두치, 막쇠라고 했지요. 여러분들은 모두 나와 같은 한울님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은 한울님이지요.”

“어르신, 백술이는 주인 집 아들이고 지는 머슴인데 우리 두 사람도 똑같은 한울님인가요?”

“맞아요. 두 사람 다 똑같은 한울님 맞아요. 하지만 생긴 모습은 다르지요. 여러분을 태어나게 한 부모 얼굴도 신분도 다르지요. 하지만 두 사람 다 존귀한 한울님이에요.”

“히히, 그라먼 우리를 못살게 구는 썩은 관리들하고 왜놈들도 한울님들인가요?”

“맞아요. 그 사람들도 한울님 맞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존귀한 한울님인 줄 모르고 존귀한 한울님인 조선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요. 그러니 우리가 한울님 공부를 많이 해서 그 사람들을 깨우쳐주어야 해요.”

“우린 힘도 없는데 맨날 사람들을 잡으러 오고 못살게 구는 사람들을 어떻게 깨우쳐 주어요?”

최시형은 뭔 그런 일이 있냐는 듯 따지고 드는 아이들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 사람들 안에도 한울님이 다 있어요. 그러니 그 사람들 안에 한울님이 커지도록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그 사람들이 달라지겠지요. 우리가 지극정성으로 한울님을 모시고 그 사람들 안에 한울님이 자리를 잘 잡게 되면 새 세상이 오지요.”

“정말 한울님을 모시기만 하면 새 세상이 와요?”

“그래요. 또 하나 지킬 것이 있어요.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여요. 그래서 항상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내 마음 속의 한울님도 좋아하고 세상 만물인 한울님도 키울 수 있어요. 내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내 안의 한울님과 다른 사람 몸의 한울님을 괴롭히지 않고 존중할 수 있어요.”

“맞아요. 어르신, 양반들과 못된 관리들은 자기들은 일 안 하고 농사도 안 지으면서 우리 식구들이 애쓰고 농사지어 놓으면 가실에 다 뺏어가부러요. 그 양반들은 일도 안 하고 사니까 우리를 괴롭히는 거네요.”

“벌써 그 이치를 알아버렸네요. 몸 부려 일 안하고 그저 자신 한 몸이나 자기 족속들 몸만 편하게 살려고 하면 다른 귀한 한울님들 몸을 괴롭히면서 뺏어가려고만 하게 되지요. 그래서 탐관오리가 생기고, 왜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쌀을 뺏어가지요. 우리가 그런 욕심 사나운 사람들을 깨우쳐 주려면 더 부지런히 일해야 해요.”

“에이, 오늘도 일 많이 했구먼요.”

“주문 외우면서 하면 힘든 일도 쉬워져요. 그럼 우리 짚신을 같이 삼아볼까요?”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노래하듯이 주문을 외우는 아이들의 볼은 발그레하고 입가에는 환하고 부드러운 햇살같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히히히 어르신, 이래 주문을 외우면서 짚신을 삼으니께 하나도 안 힘들고 재미나요. 딴 일 할 때도 주문 외움서 해야겄네요.”

“그래요. 그러면 좋지요.”

최시형은 호남 지방에 동학 교세를 확장하느라고 바빴다. 김개남 집에서 머문 열흘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멀리서부터 동학에 입도하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가까이 임실부터 남원, 곡성, 구례, 하동, 진주 그리고 순천, 광양에서도 어찌 기별이 닿았는지 찾아들 왔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염원했다. 조선 땅에 부는 새 바람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렀다. 전라도 사람들 분위기는 거셌다. 이곳은 아이들부터도 탐관오리 이름을 부르고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개벽 세상에 맞닿아 있었다. 최시형은 고민했다. 본래 동학 세상은 이들의 염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개벽세상 평등세상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들의 염원을 감싸 안고 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하지만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이필제가 중심이 되어 벌였던 영해거사로 입은 도인들의 피해는 너무 컸다. 그동안 이만큼 동학을 키우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여기서 다시 개벽 깃발을 높이 치켜들면 우리 동학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를 차분히 따져보려 했다. 생각은 복잡했지만 전라도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열망을 따라 새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고 동학의 세 확장에 힘이 났다.

다음 주 목요일(7월 23일) 9장 동학의 꿈이 연재됩니다.

 

삽입 그림 저작권 정보 : "Korea_Nature_in_Gyeonggido_05" by Republic of Korea is licensed under CC BY-SA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