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한은 마을 앞 연못에 서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1894년, 갑오년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들판 너머로 짙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차가운 갯바람이 불어왔다. 그의 두루마기 자락이 펄럭였다. 그는 하늘님께 심고를 드리고 두 손으로 목검을 잡고 재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내리쳤다. 챙하는 소리가 연못을 흔들었다.
느티나무 고목의 잔가지들이 연못 속에서 미세하게 떨었다. 잔바람에 물살이 파르르 밀렸다. 이태 전에 이웃마을 송촌리 이순홍(李順洪) 도인에게 입도식을 한 후로 그는 날마다 연못 가에서 수련을 했다. 그는 두 입술을 꼭 다물고 날카로운 눈으로 들판 너머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미 입도한 도인들의 발걸음이 저 바다 너머 섬마을의 골목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썰물이 되면 바다가 열리는 덕도에 갈 생각이었다. 요즘 들어서 부쩍 섬마을에 도인들이 늘어나서 가는 곳마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올해는 예사롭지 않는 해가 될 터였다. 이미 고부에 가서 전봉준을 만나고 온 후라 그의 가슴에는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장흥고을의 대접주들과 숱하게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은 탓에 그는 대흥면과 인근의 섬마을의 도인들을 조직하고 무기를 마련할 준비를 철저히 해 나가고 있었다.
왼쪽으로 천관산의 잘 생긴 이마에 구름이 한 점 머물러 있다. 그는 다시 목검을 내리고 정자로 올라가서 정좌를 했다. 산기슭에는 정월 초하루의 찬란한 햇살이 고요히 퍼져 내렸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천관산을 향해 다시 심고했다. 뾰족한 봉우리에서 퍼져 나오는 산의 기상은 마을에 그대로 흘러들었다. 대흥면 연지리, 갑오년의 새아침을 맞으며 이인한은 남다른 각오를 새겼다.
고즈넉한 마을에서는 연기가 피어 올랐고 아침 차례를 지내느라 부산한 발걸음들이 사립짝을 맴돌았다.
이인한의 아내인 유씨는 마루에서 서서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느티나무 옆 제각에서 수련을 하는 이인한의 소리가 휘익휘익 집안에까지 서늘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유씨는 날렵한 남편의 몸놀림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슴 한쪽으로 찬 바람이 불어가는 듯했다. 남편이 목검을 휘두르며 허공으로 발차기를 할 때에 들리는 휘파람 소리는 왠지 석연치가 않았다. 그 소리 끝에 무엇인가 불길한 소식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휘익 휘익 휘이익!”
바람을 가르며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이는 발짓에는 예사롭지 않는 힘이 실려 있어서 살기마저 느껴졌다. 유씨는 그럴 때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심고했다.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것이 동학이라고 하니 설마 남편이 나쁜 일이야 저지를까 마는불안한 마음은 영 가시질 않았다. 요즘 들어서 남편을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어떤 때에는 멀리 약산도에서 한 무더기 도인들이 집을 찾아오기도 했고, 근동의 사람들도 남편의 옷자락만 보여도 고개를 숙였다.
남편은 오뚝한 코에 뾰족하게 내리뻗은 턱선, 그리고 쉽게 열리지 않는 입술로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을 지녔다. 유씨는 늘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남편이 목검을 들고서 제각에 앉아서 부연 안개가 깔린 들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남편은 올해가 시천주(侍天主)라고 했다. 유씨 또한 남편을 따라 입도식을 했고 유씨의 형제 자매들도 모두 도인이 되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녹록하게 보이진 않았다. 유씨는 가만가만 남편의 곁으로 다가갔다.
“시장하시겠어요. 어서 아침 드세요. 설날인데 여기저기 세배도 가야지요.”
이인한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내는 천관산을 머리에 지고 고요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내는 어렵고 힘들 일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인한은 그런 아내가 항상 고마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를 따라 마을 안길로 들어섰다.
몇해째 흉년이 이어져서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지 않았다. 고구마와 잡곡으로 끼니를 떼우던 이웃들이 설날이라 곡간 깊숙이 숨겨 두었던 쌀을 꺼내 떡을 만들고 갖은 나물을 무쳐 차례상을 차리고 있었다.
설을 쇠기 위해서 열흘 전부터 바다로 나가서 채취한 굴로 떡국을 끓였다. 골목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흘러 나왔다.
“오늘도 어디로 나가시렵니까? 설날이라 찾아오는 친척들이 많을텐데요.”
유씨도 굴을 끓인 물에 마늘과 떡을 넣어 끌인 떡국에다 김을 잘게 썰어 넣어서 차례상을 차려 놓았다.
“집안에 드는 손님은 당신이 대접하시구려. 일이 다급하게 되어서 출타해야 하오. 대흥면의 이방언 어른을 찾아뵙고 올해 일을 상의해야 한다오.”
그는 식고를 마치고 들이켜듯 순식간에 떡국 그릇을 비워냈다. 유씨는 무슨 일이나 서두르지 않던 남편이 아침마저 이처럼 서둘러 먹는 것을 보면서 또다시 급박한 상황을 느꼈다.
“도인들은 사람을 하늘처럼 여긴다는데 왜 관아 몰려가서 큰 소란을 일으키나요? 당신도 설마 그런 일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니지요?”
아내는 수저를 들지 못하고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인한은 물그릇을 입으로 가져 가며 아내에게 대답했다.
“도인들이 꿈꾸는 세상은 차별도 없고 굶주림도 없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라오. 그런데 지금은 관리들의 횡포가 날로 심해서 백성들이 살 수가 없지 않소. 이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백성들뿐이오. 그러자면 동학의 세력이 더욱 강고해져야만 하는 것이요. 그런데 지금 동학에 들어오고 싶어도 관의 탄압이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백성이 한둘이 아니요. 그러니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칼을 쥐고 있는 관리들의 횡포를 우선 물리쳐야 하오.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백성들을 살릴 수 있겠소.”
유씨는 눈물이 그렁해지면 대꾸했다.
“관아에 잡혀간 어르신들이 환곡의 이자를 내지 못해서 곤장을 맞고 줄초상이 날 것 같네요. 곤장 독을 빼겠다고 며느리들이 오래 묵은 똥물을 받으러 다니던데 참 안됐습니다. 수의도 준비하지 못하겠다고 관이나 직접이라도 짜겠다고 생소나무를 베었어요. 그렇지만 오래도록 그렇게 해 오던 것을 관리 한두 명을 혼낸다고 바뀌겠습니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지요.”
이인한은 유씨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도인들이 관아로 몰려가 난폭한 관리를 징치하는 것은 개인적인 보복이 아니라 나랏님에게 고변하자는 것이오. 백성들이 이처럼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 백성들을 괴롭히는 관리를 그냥 두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하는 거예요. 나라 전체가 변해야 백성들이 살 수 있지 관리 한 명을 쫓아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도인들이 더 잘 알고 있소. 당신도 도인이 아니요?”
그는 아내에게 합장을 하고 꾸벅 절을 했다. 그러나 유씨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당신 때문에 친정아버님도 그리고 남동생도 모두 도인이 되었지요. 그러나 저는 불안합니다. 당신도 친정식구들도 신변에 위험한 일이 닥치지 않아야 할 텐데, 날마다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니 저는 도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유씨의 얼굴에는 남편의 안위에 대한 근심이 흐르고 있었다. 이인한은 그런 아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삶이란 유한한 것, 어차피 한 세상을 살다가 돌아갈 뿐이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니, 죽음을 두려워하여 구차한 삶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오. 옳은 것을 보고 행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도(道)를 행하는 일이지 않겠소. 죽음이란 성령으로 몸을 바꾸는 것일 뿐 슬프고 안타까운 것은 아니라오.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다 가면 후손들과 후학들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삶이 열리지 않겠소.”
유 씨는 남편의 패기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감이 생겼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어떤 일에도 기운이 꺾이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이십 년이 넘었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이 찾아와도 남편은 의연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있으면 걱정 근심조차 쉽게 사라져 버리곤 했다.
“좋은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오. 내 안에서 불안한 생각을 하면 아무리 훌륭한 꿈이라도 이룰 수가 없소. 그러나 내가 자신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뤄낼 수 있단 말이오. 새로운 세상을 만들 기운이 우리에게 내리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소?”
유 씨는 헝클어진 머리를 두 손을 쓸어 내려 가다듬으며 나직이 대꾸했다.
“요즈음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걱정도 많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거슬려서 되는 일이 없다는데 당신이 하고자는 일이 어쩌면 나랏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일이요, 변란을 꾀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면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작은 부스럼 따위를 크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무쪼록 몸조심 하시고 다녀오십시오.”
“모든 것을 하늘님에게 맡기고 두려워하지 말아요. 하늘님이 답을 내려줄 것이오. 날마다 수련을 하고 하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 그런 두려움도 사라질 테니 일동일정에 늘 심고를 하시오.”
이인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읍내까지는 삼십 리이니 지금 부지런히 걸어도 점심때가 지나야 도착할 수 있었다. 유 씨가 조용히 일어나 솜두루마기를 내주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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