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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김현옥

님, 모심(강원도편) 1~14회 / 김현옥 장일순과의 대담(1988년 5월) 치악산은 얼마 전에 연둣빛 등허리를 드러내더니 신록이 나날이 짙은 윤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꽃샘추위 뒤끝에 다사로운 봄 햇살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환한 이팝나무가 꽃잎을 터트리자, 덩달아 찔레나무와 아카시아나무도 꽃향기를 내뿜었다. 나무는 겨우내 향기로운 잎과 꽃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눈감고 가만히 숨을 들이쉬면 꽃향기가 맡아졌다. ‘이런 날엔 봄맞이 소풍이 제격인데….’ 유청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중요한 취재가 있는 날이다. 문화부장에게서 원주의 장일순이라는 분이 서울 인사동 갤러리 ‘그림마당 민’에서 서화전을 개최한다고 취재해 오라는 엄명을 받아 놓은 터였다. 장일순?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처음에 유청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장.. 더보기
작품 [님, 모심] -14회 영월에서 49일 기도 (김현옥) 영월에서 49일 기도 다음 날 장봉애 아버지 장필생은 양양옥 관아 뜰에 놓인 형틀에 묶여 곤장 십여 대를 맞고서야 결국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어머니가 면회가 허락되었을 때는 엉덩이 살이 짓물러지고 터져서 양양옥 멍석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었다. 그녀는 옷 한 벌과 돈 30냥을 가져다 속전으로 바쳤다. 어머니가 딸 시집 밑천으로 모아 둔 돈이었다. 그러나 관아에서는 아버지를 내보내지 않았다. 어머니와 그녀는 날마다 감자며 조밥 등을 해 왔다. 잘 먹어야 장독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웃집에서 빌린 돈으로 곡식을 샀다. 집에 있는 그녀 동생들은 굶어서 누리끼리한 얼굴로 물배만 커져 있었다. “저…. 남편을 언제쯤 내보내 주시는 겁니까?” 장봉애 어머니가 옥을 지키는 포졸 눈치를 살피며 조심.. 더보기
님, 모심(13회) - 남대천 물고기의 주인 남대천 물고기의 주인 장봉애는 양양 오대산 자락에서 부모님을 비롯하여 일곱 형제자매와 함께 살았다. 그곳의 물은 오대산 가마소 계곡과 두로봉에서 발원하여 법수치리 계곡, 남대천을 지나 동해안으로 흘러갔다. 양양 사람들은 남대천을 모천, 즉 어머니 강으로 불렀다. 황어, 은어, 연어 떼가 시기별로 산란하기 위해 바다에서 돌아오는 풍족한 강이었다. 그러나 강에 고기가 많아도 그녀 가족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남대천을 비롯하여 양양에 있는 하천들은 다 관아에서 관리하여 물고기도 마음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산간 지방처럼 풀뿌리를 캐고, 한 뙈기 밭농사에 온 가족이 매달려 살았다. 그녀는 장녀로 태어났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동생들 때문에 어머니 젖은 늘 말라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린 동생.. 더보기
작품 [님, 모심] -12회 영월로 돌아가다 (김현옥) 영월로 돌아가다 “주인장, 안에 계십니까? 계십니까?” 한밤중 외딴 산골 집 밖에서 소리 죽여 부르는 소리에 장봉애(張奉愛)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여보, 누가 왔어요. 어서 일어나시오.” 남편 박용걸을 깨웠다. 박용걸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가더니 인사하는 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장봉애는 재빨리 옷을 갖춰 입었다. 이불 갤 틈도 없이 손님 두 사람을 방 안으로 데려왔다. 보름 전인가 들렀던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볼은 홀쭉해지고 광대뼈만 튀어나왔다. 그러나 쑥 들어간 두 눈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품어져 나왔다. 해월과 강수의 무명 저고리와 바지가 얇아서 몹시 추워 보였다. 그동안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상투는 헝클어졌고, 옷은 찌든 때에 .. 더보기
작품 [님, 모심] -11회 해월, 다시 일어서다(김현옥) 해월, 다시 일어서다 봄기운이 완연한 어느 날 다시 용담으로 갔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 스승님은 행선지를 밝히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용담은 인적이 끊겨 있었다. 언제 귀환할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관의 지목이 들끓고, 가정리 일대 최씨 문중과 수운 스승님의 부친인 근암공의 제자들이 수운의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질색을 하는 바람에 기약 없이 용담을 떠난 것이라 했다. 금등골로 돌아온 해월은 다시 일상적인 삶과 수련을 병행하며 공부하는 생활로 돌아갔다. 7월 어느 날 묵상에 잠겼다가 스승을 생각하자, 경주 서면 박대여(朴大汝) 집이 눈앞에 환히 보였다. 급히 행장을 꾸려 집을 나섰다. 과연 그곳에 수운 스승님이 와 계셨다. 전라도 남원 땅에서 겨울을 지내고 여름이 되어서야 경주로 돌아왔다고 했다... 더보기
작품 [님, 모심] -10회 최경상, 도를 닦다(김현옥) 최경상, 도를 닦다 해월은 통곡했다. 강수도 따라 울었다. 해월은 이 목숨을 오직 도를 위하여 쓰겠노라 다짐하였다. 강수도 남은 목숨을 해월을 위하여 쓰겠다고 결심하였다. 해월은 이윽고 울음을 멈추었다. 이 목숨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툭 트이며 기운이 맑아졌다. 맑고 차가운 산바람을 가슴 가득 들이마셨다. 높은 태백산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굽이굽이 능선의 이쪽과 저쪽은 양지와 음지가 섞여 있었다. 빛과 그늘은 둘이 아니었다. 산봉우리들을 그윽이 바라보니 부드러운 흙 가슴으로 뼈들을 감싸고 있었다. 산봉우리들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건 없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보았다. 가파른 벼랑에 군락을 이루며 서 있는 소나무들이며 회양목들이 거친 바람에도 꿋꿋하게..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9회 해월, 자살을 시도하다(김현옥) 영월 선바위산에 있는 선바위(소원바위) 해월, 자살을 시도하다 음력 9월 초 태백 산중에는 단풍이 한창이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낙엽송이며, 참나무가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졌다. 벌써 떨어진 진갈색 나뭇잎은 산길마다 수북했다. 밟을 때마다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낙엽 소리는 마치 말을 거는 듯도 하고, 해월의 마음을 알고 함께 울어 주는 듯하였다. 좁은 산길로 오르고, 골짜기 암벽을 타면서 다시 태백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해월 일행은 수운 선생의 유족이 살고 있는 영월 소밀원 근처에 당도하였다. 황재민을 산에 머물게 하고 해월과 강수는 약초꾼처럼 약초 담는 바구니를 메고 찾아갔다. 마침 수운의 부인인 박 씨와 세정, 세청 형제가 있었다. 이들이 들어서자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이필제가 다시 난을 일으..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8회 영해 교조신원운동 (김현옥) ◾1871년 해월 최시형 선생과 동학교도 등 수백 명이 거사를 위해 모였던 영해부 서면 우정동 (현재의 영덕군 창수면 신기2리 형제봉 아래) 병풍바위. ◾대동여지도 상의 영해부 지도-영해동학군의 진입과 퇴각로. 붉게 둥근 표시된 곳이 형제봉이다. 2. 벼랑 끝에서 영해 교조신원운동이 끝나고 (1871~) 해월 최시형, 강수, 이필제, 김낙균 등 영해 교조신원운동을 일으킨 주모자들은 살아남은 도인들과 함께 영해부에서 용화동 일월산 아래 윗대치를 거쳐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으로 숨어들었다. 해월 일행은 숲 속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나무가 울창하여 어둡고 음침했다. 여염 사람이 쉽게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두 말이 없었다. 신발도 꿰신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피해온 길이다. 수운 최제우 동학 교조가 .. 더보기
작품 [님, 모심]- 7회 장일순, 노동.농민 운동 속에서 생명을 고민하다 장일순, 해월을 만나다 협동조합은 한편에서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농촌이 계속 허물어지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농부가 작물의 품종을 스스로 선택하고 기계화도 많이 이루어졌다. 1977년 수출 100억 불을 달성했다고 대통령이 신문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동자의 낮은 임금과 낮은 쌀값 정책으로 이룩한 경제 성장이었다. 생산비를 밑도는 쌀값 책정에 농부는 농촌을 떠나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금방 무성해지는데, 농촌에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장은 정부의 방침이라며 다수확 품종 ‘통일벼’를 심고 농약을 살포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말에 따르지 않으면 빨갱이라는 신고가 들어갔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제초제와 비료를 선택했다. 농약 묻..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6회 장일순, 지학순 주교를 만나다 장일순, 지학순 주교를 만나다 어느 날 장일순의 봉산동 집으로 한 신부가 찾아왔다. 지학순(池學淳) 주교라고 했다. “함께 일할 신도를 찾았더니 누가 ‘저기 빨갱이로 몰려서 농사짓고 있는 사람 있으니 만나 봐라.’ 해서 왔습니다.” 지학순 주교는 장일순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장일순의 가슴에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저는 로마 교황청에서 주교로 임명받아 원주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교황님의 뜻을 함께 실천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주교는 좀 더 진지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그럴 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장일순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꿈은 종교적인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진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