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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김현옥

작품 [님, 모심] - 5회 장일순, 탄압 받다 장일순, 탄압 받다 (1960~1977년)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은 다음, 장일순은 자신의 구상을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가 스물여섯 살이었다. 먼저 가족의 동의를 얻어 냈다. 그리고 전 재산을 동원하여 장윤(張潤), 김재옥(金在玉)과 함께 성육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한 다음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의 맥을 잇는다는 뜻으로 ‘대성학교’로 이름을 지었다. 장일순은 이사장으로 추대되었다. 대성중고등학교 인가 과정은 지난하였다. 공무원들은 장일순의 나이가 어리다고 쉽게 인가를 내주지 않았다. 온갖 꼬투리를 잡아 서류를 반려하기 일쑤였다. 막걸리라도 사 줘야 일이 처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정치를 통해 바로잡고 싶었다. 그때는 이승만 정권이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던 시절이었다. 1956..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4회 원주와 해월 최시형 원주와 해월 최시형 “선생님, 해월 선생은 원주에서 붙잡힌 다음 어떻게 되셨어요?” “원주에서 문막까지 가서 거기서 뱃길로 여주를 거쳐 서울로 끌려간 다음 압상되어 서소문 감옥에 갇히셨지. 이때 모모한 제자들이 모두 서울로 몰려들었고, 이종훈이란 도인이 일선에서 해월 선생과의 연락을 도맡았는데 서소문 감옥의 간수 두목 김준식을 찾아가 의형제를 맺었다고 하더군.” “보통 분이 아니시군요.” “이종훈은 동학에 입도한 직후에 보은 취회가 있었는데 큰돈을 들여 그 비용을 충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동학혁명 당시에 지혜와 용력을 발휘하여 관군과 담판을 지은 일로 여주 일대에서 동학도들의 명망을 얻었지. 하여 일제강점기인 기미년(1919)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분이기도 하지...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2회 해월 피체지 답사 해월 피체지 답사 기사는 예상했던 대로 반응이 뜨거웠다. 며칠 뒤에 유청은 기사가 난 신문을 들고 장일순 선생을 찾아갔다. 그 며칠 동안 장일순의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취재기자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학구열로 장일순의 말을 들어 보고 싶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녀는 오랜만에 어린애 같은 설렘을 느꼈다. 유청이 찾아가자 장일순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선생의 부모님과 형제가 직접 지었다는 아담한 기와집은 정원이 넓었다. 키 큰 측백나무 옆에는 쥐똥나무와 단풍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다. 정원 곳곳에는 산죽나무, 백일홍나무가 서 있었다. 초여름인데도 마당에는 질경이, 민들레, 괭이밥, 토끼풀 등이 납작 엎드린 채 꽃을 피우고 있다가 가끔씩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렸다. 자갈 틈 사이에 끼..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1회 장일순과의 대담 장일순과의 대담(1988년 5월) 치악산은 얼마 전에 연둣빛 등허리를 드러내더니 신록이 나날이 짙은 윤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꽃샘추위 뒤끝에 다사로운 봄 햇살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환한 이팝나무가 꽃잎을 터트리자, 덩달아 찔레나무와 아카시아나무도 꽃향기를 내뿜었다. 나무는 겨우내 향기로운 잎과 꽃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눈감고 가만히 숨을 들이쉬면 꽃향기가 맡아졌다. ‘이런 날엔 봄맞이 소풍이 제격인데….’ 유청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은 중요한 취재가 있는 날이다. 문화부장에게서 원주의 장일순이라는 분이 서울 인사동 갤러리 ‘그림마당 민’에서 서화전을 개최한다고 취재해 오라는 엄명을 받아 놓은 터였다. 장일순?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처음에 유청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장..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작품개요 작품 개요 동학 2대교조인 해월 최시형은 수운 최제우가 1864년 참형을 당한 뒤로 숨어지내면서 은밀하게 동학을 다시 키워오고 있었다. 그러다 수운 최제우의 신원을 회복하자며 이필제가 영해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그에 대한 조정의 탄압으로 해월은 강원도 태백산 속으로 숨어들어왔다. 강원도 사람들은 해월을 숨겨주면서 동학을 받아들였다. 해월은 영월과 정선을 중심으로 49일 기도와 제사의식을 통해 동학교세를 확장하고 조직을 튼튼히 하였다. 그리고 인제에서 동경대전을 간행하여 동학을 널리 퍼뜨렸다. 마침내 1894년 9월 기포령을 통해 전국의 동학도인뿐 아니라 국민의 1/3이 참가하였다. 강원도에서도 유시헌, 차기석 등이 참가하였다. 동학 혁명 실패 후 해월은 다시 강원도로 숨어들었다가 원주에서 잡혀 1898년.. 더보기
작품 [님, 모심] - 작가의 말 작가의 말 문화재청은 120년 전 동학군의 유골을 2015년 2월 16일 화장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동학소설 팀은 문화재청과 진도군청, 독립기념사업회 등 홈페이지에 철회를 요청하는 글을 올리고, 문화재청 앞에서 2인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기자와 관련 전문가를 동원해 위협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동참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진도 동학군의 유골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질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어느 것 하나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촘촘하다는 노자의 말이 떠올랐다. 나와 다른 존재, 나와 우주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점이라고 생각한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존재와 연결된 큰 존재인지, 나 하나의 생각과 행동이 주변에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지 생각하게 되면서 새.. 더보기
한울님이 나와 함께하므로 두려울 것이 없었다 Q. 소설 쓰는 과정에 생긴 에피소드 A. 1.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소설을 쓰고 있으면 가끔 교장 선생님이 교무실을 들여다 보시며 “아직도 안 갔어요?” 한다. 주말에 학교에 나오면 토요방과후담당 선생님, “바쁘시네요?” 한다. 주로 아침 8시에서 밤 10:00까지 학교에 남는데, 어쩌다 출장 가고 못 나가면 학교 숙직하시는 주사님 “ 김선생님 안 나와서 무슨 일인가 했어요.” 또는 9:00쯤에 가면 “김선생님, 오늘은 일찍 가시네요.” 한다. 2. 주말에 가끔 남편이 광주에서 강진으로 내려온다. 아내가 소설 쓴다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을까봐, 도시락에 과일을 싸 온다. 교무실 탁자에 단 둘만의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부른다. 때로는 산에 가자고 유혹한다. 해월 선생이 강원도에 피신하는 마음으로 산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