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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한박준혜

은월이(13회)-<하지> 은월과 연산현감이 만나다. 하지 夏至 (음5.19/양6.22) 어느덧 장마가 찾아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던 일손에 잠시 짬이 생겼다. 장마가 다 지날 때까지 영옥은 은월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전주댁은 은월이만 보면 욕을 했다. 하지만, 전주댁도 한 걸음에 달려갈 만한 거리에 있는 영옥에게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전주댁은 은월이가 나갈 차비를 하자 큰소리를 냈다. “내 포기하는 거 아닐세…. 하기야, 지년이 혼례를 하면 지 맘대로 살 수 있나. 실컷 지 맘대로 살라고 그냥 두는겨!” 은월은 전주댁의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문을 나섰다. 대문 밖에 비를 흠뻑 맞고, 한 도령이 서 있었다. 은월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 도령에게 말을 건넸다. “누구신데, 이 비를 다 맞고서 예 서 있으십니까?” “은월 접장, 뭔 일 있는겨?”.. 더보기
은월이(12회)- <망종> 김석진과 영옥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망종 (음5.3./양6.6) 은월이는 김석진과 영옥이와 함께 말을 타고, 논산평야를 달렸다. 평야에는 모내기를 끝내 푸른 생기가 땅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들판은 평화롭기만 했다. 까마귀 울음소리가 정겹기만 했다. 셋이 도착한 곳은 논산평야 지대 한가운데 있는 황화산이었다. 산기슭을 올라가자 평지가 나왔다. 수십 명의 젊은 도인들이 무예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은월이를 보자 젊은 도인들은 연습을 멈추고, 은월 근처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연습에 방해된 것은 아닌가요?” 젊은 도인들은 땀을 닦으면서 일제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은월이와 사람들은 노송 아래 모여 앉았다. 김석진이 손뼉을 치면서 말을 했다. “자, 다들 모이셨습니까? 우리에게 무예 훈련을 강조한 은월 접장입니다.” 은월은 허리를 반 정도로 .. 더보기
은월이(11회) -<소만> 싸움의 절반 후방준비를 다그치며 소만 (음4월중순, 양5.21경) 보리가마니들이 강경포에 가득했다. 은월은 강경포구를 거닐다가 보리가마니 앞에 섰다. 보리가마니를 세고 있던 상인이 은월이를 보자 반갑게 뛰어왔다. “은월 접장 오셨습니까?” 은월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보리가마니를 바라봤다. 상인은 걱정스런 말투로 말을 했다. “쬐다 군산으로 갈 것들입니다. 왜놈들 배만 터지게 생겼으니…. 답답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우리 같은 장사치들이야 돈만 벌면 되지 않겠습니까?” 상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은월한테 바짝 붙었다. “왜놈들이 사재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전쟁이라도 할 심산 아니라면….” “왜놈들이야 워낙 근본이 없어서요. 겉만 사람이지 야수와 같은 것들이지요. 그러니 체면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있을까 싶습니다.” 속시원하게 말하는 은.. 더보기
은월이(10회) -<춘분> 금산기포로 김석진이 궁지에 몰리다 춘분 (음3.20) 은월당 안마당에서는 아낙들이 장독을 씻고 있었다. 장 담그기 좋은 날에 사람들이 모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장 담기 좋다는 춘분에 사람들이 알아서 모여 몇 일째 장을 담갔다. 너른 뒷마당이 꽉 찼다. 달구지에 장독을 싣고 온 금객주 휘하의 상인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 전주댁이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다들 새참은 먹어야지.” 일손을 놓고 그때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며, 아낙들은 전주댁을 바라보았다. 전주댁은 국수틀 손잡이를 누르면서 환히 웃고 있었다. 영옥은 국수틀에서 쏟아지는 국수를 끊는 물에 받아 익혀가지고 찬물로 옮겨 식히는 일을 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전주댁과 영옥의 모습을 본 은월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낙들은 개다리소반에 국수를 먹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더보기
은월이(9회)-<3월12일> 충의깃발을 들고 금산으로 갑신년 3월 12일. 드디어, 때가 왔다. 은월당 마당에는 백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 김석진과 영옥이가 충의라고 새겨진 깃발을 대나무에 묶었다. 대나무에 매달려 파란 하늘 속으로 솟구쳐 올라가는 깃발을 바라보다. 얼굴을 돌려 김석진을 향해 영옥은 방긋 웃었고, 김석진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바람을 받는 깃발의 힘을 지탱하느라 기우뚱대는 대나무를 김석진이 힘껏 잡아 쥐자 깃발이 하늘에서 휘날리게 힘차게 나부끼었다. “와-와-!” 함성이 힘차게 터져 나왔다. 하늘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바라보던, 은월이와 영옥이는 가슴이 터지듯 했다. 김석진이 깃발을 오른손으로 잡고, 무리를 향해 큰 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동도 여러분!” “예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원역으로 갈 것입니다... 더보기
은월이(8회) - 불난 집을 보고도 그냥 못 본 척 하자는 겁니까? 득달같이 달려온 의원에게 윤지영을 맡기고 은월은 방에서 물러나왔다. 잠시 후 은월은 박영채가 내어준 옷을 입고, 박영채와 마주앉았다. 박영채는 차를 건네며 말했다. “윤지영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더 이상 인연을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슨 말인지요?” “지난 회합 때에도 은월 접장이 추천해서 참여시켰지만 접내에서 말이 많습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박영채는 웃으면서 말을 했다. “은월 접장이 추천한 거 아닙니까?” “젊은 도인들이 뜻을 모아 추천한 것을, 무슨 연고로 제가 한 일이라고 넘겨짚어 말씀하십니까?” “젊은 도인들이 만든 충의가 바로 은월 접장이 뒤를 봐주고 있으니 은월 접장이 추천한 거지요.” “박 접장도 참 딱하십니다. 그리 억지를 부리다니 말입니다.”.. 더보기
은월이(7회) -<경칩> 제삿날 윤지영은 살을 깎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경칩 (음2.8/양3.5) 언땅을 비집고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이 싹을 틔웠다. 그들의 생명력으로, 날이 따뜻해지고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산짐승들도 완연 생기가 돌았다. 어느새 겨울잠을 끝낸 동물들도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은월당도 분주해졌다. 봄볕이 따사롭게 마당을 내리쬐었다. 대청마루에는 붉은 천이 곱게 펼쳐져 있었다. 영옥은 붉은 천에 금색실로 수를 놓고 있었다. 은월이는 마당을 항상 종종 걸음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전주댁을 눈으로 찾았다. “영옥아. 어머니가 보이 않는구나. 어디 아픈 거냐?” “볼일이 있다며 일찍 나가셨습니다.” “무슨 일?” “글쎄요….” 영옥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자주색 깃발을 들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은월 접장! 이 깃발에 수놓은 것 어때요.. 더보기
은월이(6회) - <우수>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6) 우수 (음1.14/양2.19) 겨울이 지나고 눈은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은 녹아서 물이 된다는 우수가 왔지만 아직 쌀쌀한 바람 끝자락마다 얼음바늘이 꽂혀 있었다. 은월당 마당에 아낙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김석진과 젊은 도인들이 후방을 책임질 아낙들 잔치를 거들고 있었다. 김석진은 묵묵히 화로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가마를 걸어야할 아궁이도 마당에 여러 개 만들었다. 영옥은 은월이 옆으로 다가 자신 있게 말을 했다. “연습 삼아 노상에 부엌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거 보세요, 무거운 가마솥 대신 쇠가죽으로 했습니다.” “잘했구나.” “지난 취회 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당에 펼쳐진 노상부엌을 보며, 은월은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 금객주는 달구지에 잔뜩 음식을 실고 왔다... 더보기
은월이(5회) -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5) 은월은 연산회합을 다녀 온 후 더욱 분주해졌다. 늘 그랬듯이 금객주를 먼저 찾았다. 영옥은 금객주와 은월당으로 들어왔다. 은월이 앉은 채 두 사람을 맞았다. “영옥이가 옆에 있어 든든하겠습니다.” 금객주는 은월 옆에 언젠가부터 늘 함께 있는 영옥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우리의 뜻을 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그것이 보따리를 싸들고 삼십년 동안 만들려고 했던 해월 선생의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금객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보자고 했습니까?” 은월은 방긋 웃었다. “예, 마음에 맞는 객주와 상인들을 따로이 규합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왜놈들 횡포에 큰 피해를 입은 자들, 관 것들에게 치를 떠는 사람들로…” “규모는 어떻게 할까요?” “대여섯 명씩 여러 개로 조직해 주십시오.. 더보기
은월이(2회) - 자주의 깃발은 함성이 되어(2) 은월이 -자주 깃발은 함성이 되어 “영--영--옥--아!” 함성소리에 깜짝 놀란 은월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형제바위에 김석진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포대를 감싸 안은 채 김석진은 다시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병풍에 둘러싸인 석바위 하나하나마다 부딪쳐 튕겨져 오르며 소용돌이 쳤다. 은월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허공으로 손을 내밀어 김석진을 잡아 보려고 했다. 소용없었다. 김석진의 우렁찬 소리는 다시 소용돌이처럼 은월이의 온몸을 감쌌다. “이놈들 듣거라. 이 땅은 수천 년 얼이 새겨진 곳이다. 감히, 왜놈들이 들어올 땅이 아니다!” 은월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어디선가 함성소리가 북소리에 실려 들려왔다. “와-와-. ” 김석진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내가 죽어도 개벽은 영원하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