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꽃(7회) - 걷고 또 걷어가는 어세 모내기를 얼추 마무리한 후 하조도 선원들 일곱 명과 손행권 부자가 박중진의 집으로 모였다. 날이 부쩍 더워져서 방안에 들어앉기도 갑갑하여 마당 가 감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둘러앉았다. 박중진이 칡넝쿨을 째서 단단하게 엮은 두툼한 책을 가져왔다. 십 년째 이어 쓰는 치부책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총 야닯 동을 잡었어라우. 일곱 동을 한 마리에 두 푼 썩 받고 넘겠단 말이요. 일곱 동에 천사백 냥을 받었소야. 한 동은 우리 열다섯 맹이 세 두름썩 받었고, 남은 다섯 두름은 내가 진상품으로 바쳤고라이. 다들 애썼소.” 둘러앉은 사람들은 다들 머릿속으로 자신이 얼마를 받을 지 셈해 보느라 바빴다. “배랑 선주가 세 짓인게 사백이십 냥을 제하고, 나머지 구백팔십 냥을 열네 맹이 나누믄 한 사람 당 칠십 냥이 나오.. 더보기 피어라 꽃(8회) - 왜선을 몰아내다 옆집에서 옥동댁 시어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옥동양반이 재작년 겨울에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뒤 눈물이 마를 새 없던 노인네였다. 옥동양반은 배와 함께 수장되어 버렸는데 그 배에 대한 세금이 작년에 또 나왔다. 사망 신고하고 배도 잃어버렸다고 했지만 아전들이 서류를 고치지 않은 것이다. “선세 받어 갈라믄 내 아들 내놓고 받어 가그라아.” 노인네가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지난해에 세금을 받아 가던 아전들은 이번 세금은 이미 나온 것이라 어쩔 수 없으니 올해에만 내면 내년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약조하였다. 돌아가는 즉시 서류에서 배를 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옥동양반의 선세는 올해에도 나왔다. 달라진 것은 선세를 받으러 온 아전이 바뀐 것뿐이었다. 올해에도 하는 말은 똑같았다.. 더보기 겨울이 깊을수록 봄빛은 찬란하다(6회) - 상놈으로 태어난 죄(2) 그 며칠 후, 손병희는 이웃마을 친구 서우순 집에 들렀다. “이리 오너라.” 문을 열어준 것은 여종 말순이었다. 그런데 말순의 행동거지가 영 달라져 있었다. 땟국물 질질 흐르고 다 떨어진 치마저고리 대신 말쑥한 여염집 처자 행색을 하고 있고, 말씨도 굽신거림 대신 어딘가 모르게 당당하고 품위가 생겨 있었다. “말순아, 이리 와 아버지 친구에게 인사 여쭙거라.” 말순이 손병희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러자 서우순은 어리둥절해 하는 손병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올 정월부터 말순이는 종이 아니라 내 양딸이네. 이 세상 누구나 타고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죄 없이 양반, 상놈, 적자, 서자, 늙은이 젊은이, 남자 여자 차별하고 억압하는, 말도 안 되는 이런 짓거리들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네.. 더보기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66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