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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꽃(5회) - 칠산바다 닻배 조기잡이 오늘은 박중진의 닻배 출어일이다. 한식날 지나 여섯물이었다. 한식날에 맞추어 떠나면 망종살까지 두 달여간 배에서 살며 조기를 잡았다. 날씨가 청명하면서도 바람이 적당히 불어 포구에 나온 사람들마다 얼굴이 환했다. 닻을 촘촘히 매단 닻그물부터 배에 실었다. 박중진의 아내가 겨우내 들기름을 먹인 면사로 짠 그물이었다. 그물 윗벼릿줄은 짚으로, 아래 벼리는 칡줄을 꼬아 만들었다. 선원은 선주 박중진을 포함해서 열네 명이었다. 선원 중에는 고군면 손행권 부자도 끼어 있었다. 각자 두 달 간 먹을 식량과 김치, 껴입을 옷에 우장, 앞치마, 손토시를 챙기니 짐이 커져 둥둥하니 한 짐씩 짊어지고 배에 올랐다. 배는 돛이 팽팽해져서 굽을 치는 말처럼 곧 달려 나갈 태세였다. 울긋불긋 깃발들도 바람을 가득 안고 부풀었다.. 더보기
은월이(7회) -<경칩> 제삿날 윤지영은 살을 깎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경칩 (음2.8/양3.5) 언땅을 비집고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이 싹을 틔웠다. 그들의 생명력으로, 날이 따뜻해지고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산짐승들도 완연 생기가 돌았다. 어느새 겨울잠을 끝낸 동물들도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은월당도 분주해졌다. 봄볕이 따사롭게 마당을 내리쬐었다. 대청마루에는 붉은 천이 곱게 펼쳐져 있었다. 영옥은 붉은 천에 금색실로 수를 놓고 있었다. 은월이는 마당을 항상 종종 걸음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전주댁을 눈으로 찾았다. “영옥아. 어머니가 보이 않는구나. 어디 아픈 거냐?” “볼일이 있다며 일찍 나가셨습니다.” “무슨 일?” “글쎄요….” 영옥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자주색 깃발을 들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은월 접장! 이 깃발에 수놓은 것 어때요.. 더보기
내포에 부는 바람(5회) - 박이용운 3 순섬이는 집안일을 끝낸 후 방으로 들어왔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땀을 식힐까 하여 뒤꼍으로 난 문을 열어 놓고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곰방대는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혼사가 깨지고 나서 외로움을 달래라며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었다. 장독대에는 진한 진분홍빛 맨드라미가 한창이었다. 꽃 모양새가 영락없이 닭 벼슬이다. 죽는 순간까지도 임금을 지켜낸 장군의 영혼이 환생한 꽃이라고 아버지가 말했었다. 그 옆에는 백일간이나 피어 있다가 진다는 백일홍이 연분홍 낯을 한창 드러내고 있었다. 매미 역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줄기차게 울어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년이 흘렀건만 곰방대를 입술에 갔다 댈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갑자기 순섬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따라 순섬이가 흐느끼기 시작했.. 더보기